기행문

2006. 1. 21. 코타 키나발루

아~ 네모네! 2012. 10. 13. 14:40

 

 

 

 

 

코타키나발루

이현숙(李賢淑)

 

말레이시아의 수도가 쿠알라룸푸르라는 것은 시험 공부할 때 열심히 외웠었지만 코타키나발루라는 곳이 어디인지 키나발루산이라는 것이 있는지 도통 몰랐는데 운 좋게도 이번에 일중산악회에서 동남아 최고봉이라는 키나발루산에 가게 되었다. 코타키나발루는 보르네오섬에 있는 말레이지아 사바주의 주도로서 코타는 시()라는 뜻이고 키나는 차이나 즉 중국, 발루는 과부라는 뜻이란다. 옛날 한 여인이 중국인 남편을 기다리며 매일 키나발루산에 올라가 남편을 기다렸다는 전설에 의해 이런 이름이 생겼다고 한다.

 

114() 코타키나발루

새벽 5시부터 일어나 설쳤던 관계로 비몽사몽간에 헤매다보니 1130분에 인천공항을 출발한 비행기가 오후 4시쯤 코타키나발루 공항에 도착하였다. 한국에서는 영하의 날씨였는데 이곳은 32나 되니 갑자기 찜질방에 들어온 듯 숨이 탁 막힌다. 화장실이 어딘가 두리번거리니 한글로 화장실/’ ‘화장실/라고 쓴 글씨가 보인다. 한국인이 꽤 많이 오는 모양이다.

짐을 찾아 출구로 나가니 현지 가이드 허정무씨가 일중산악회라고 쓴 종이를 들고 우리를 기다린다. 첫인상도 좋고 이름도 허정무 감독과 같아 외우기 쉬웠다.

원래는 이날 바로 키나발루국립공원으로 이동하기로 되어있었으나 주말인 관계로 산장예약이 어려워 하루 늦추기로 하였다. 호텔로 가기 전에 필리핀 마켓에 들렀는데 조그마한 가게들이 다닥다닥 달라붙어 온갖 물건들을 팔고 있었다. 건물 밖에는 천막을 치고 음식들을 팔았는데 온갖 과일에 야채에 고기 등을 지지고 볶고 튀기고 하느라 냄새가 진동하였다. 우리는 망고 가게에 들러 주인아줌마가 잘라주는 망고를 허겁지겁 받아먹고는 다시 차에 올랐다.

돼지고기와 김치찌개로 저녁을 먹고 바닷가를 거닐다가 마젤란슈트라 호텔로 들어갔는데 7430호라고 하여 7층에 있는 줄 알았더니 엘리베이터에 5층까지밖에 없었다. 웬 일인가 우왕좌왕하다가 직원에게 물으니 4층이란다. 나중에 알고 보니 7은 동수였다. 방에 들어가니 이 지방에서 최고의 호텔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화장실부터 으리뻑쩍지근 하였다.

이번 여행도 임양숙씨와 룸메이트가 되어 또 튀긴 콩과 말린 새우를 얻어먹고는 기분 좋게 뽀송뽀송한 잠자리에 들었다.

 

115() 사피섬

새벽에 일어나 베란다로 나가보니 둥근 보름달이 말없이 철썩이는 바다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다시 들어와 잠시 누워 있다가 일찌감치 일어나 신연희씨, 조연옥씨와 넷이서 호텔 주변 바닷가를 산책했는데 예쁜 수영장이 있었다. 이게 있는 줄 알았으면 어제 저녁에 수영이나 할 껄 하고 아쉬워하며 아침식사를 하러 식당으로 갔다.

식사 후 물에 젖을 준비를 단단히 하고는 사피섬으로 향했다. 사피는 소라는 뜻이라는데 하늘에서 보면 섬 전체의 모양이 소같이 생겼다고 하였다.

스피드보트를 타고 사피섬으로 가는 길에는 보트가 한 번씩 널을 뛸 때마다 모두들 어린 아이 같이 소리를 지르며 즐거워하였다.

사피섬 선착장에 도착하니 말 그대로 물 반, 고기 반이었다. 고기들이 어찌나 많이 모여 있는지 좀 징그러워 보였다. 바닷가 둥근 테이블에 소지품들을 놓고는 퐁당팀과 안퐁당팀으로 나누어 파라세일링을 하러갔다. 우리 네 명과 부반장님 팀은 퐁당팀으로 가서 섰다. 생전 처음 하는 것이라 속으로 겁이 잔뜩 났지만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라는 각오로 배에 올라 바다로 나갔다. 우선 경험이 있는 부반장님 팀이 먼저 낙하산 같은 것이 달린 줄에 몸을 묶고는 배에 앉아 있으니 배가 속력을 내자 자연스럽게 하늘로 날아올랐다. 한참을 날다 속력을 줄이니 서서히 내려오다가 바닷물에 발이 잠기자 다시 속력을 높여 날아오르기를 몇 차례 하였다.

다음에는 신연희씨와 조연옥씨가 타고 양숙씨와 나는 맨 마지막으로 탔는데 생전 처음 하늘을 날아보니 별로 무섭지도 않고 귓가에 스치는 바람에 기분이 그만이었다. 바다로 내려올 때는 겁이 났지만 무릎 정도만 잠기고 완전히 퐁당은 아니라 할 만 했다.

다음에는 씨워킹을 하러 갔는데 미리 사전 교육을 받고 작은 배를 타고는 바다로 나갔다. 조금 나가니 바다 위에 작은 원두막 같은 집을 지어놓고 투구 같은 것을 죽~ 늘어놓았다. 그걸 하나씩 뒤집어쓰고 바다로 들어갔는데

이게 어찌나 무거운지 손으로 들 수가 없었다. 우리가 사다리를 타고 어깨까지 들어가면 거기 직원이 머리에 이 뚜껑을 씌워 주었는데 물 속에서는 부력을 받아 그런대로 견딜 만 했다. 여기서도 용감한 부반장님이 제일 먼저 물 속으로 들어가고 두 번째로 내가 들어갔다. 귀가 약해 비행기가 착륙할 때 쩔쩔 매던 신연희씨는 물 속에 있는 시간을 최소한으로 줄이려고 제일 나중에 내려왔다. 사다리를 다 내려가니 속에서 기다리던 직원이 손을 잡고 부반장님이 있는 곳으로 데리고 갔는데 부반장님이 빵을 주는지 물고기 떼가 온몸을 뒤덮고 있었다. 내가 가자 나에게 봉지를 주기에 나도 빵을 꺼내니 모두 나에게 달려들어 앞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그렇게 들고 있다가 다음 사람이 오기에 나도 얼른 봉지를 넘겼다. 그런데 이놈들이 고기 맛을 못 봤나 사방에서 입질을 하니 그때마다 몸이 따끔따끔하여 이러다가 뜯겨 먹히는 거 아닌가 겁이 더럭 났다.

이렇게 다 내려오자 스킨 스쿠버 장비를 갖춘 사람이 우리 앞에서 산호도 보여주고 불가사리를 집어 눈에도 붙였다 가슴에도 붙였다 하며 웃음을 자아내게 하였다. 우리들은 투구에서 머리를 빼면 숨을 쉴 수 없으니 걸어 다니며 구경만 하고 만져볼 수는 없는 것이 아쉬웠다. 하지만 현란한 산호의 색깔과 물결 따라 움직이는 모양은 지상에서는 볼 수 없는 신기한 모습이었다.

다시 물 위로 올라와 이번에는 바나나보트를 타러 갔다. 바나나보트 역시 난생 처음이라 잔뜩 긴장을 하고 바다로 나아갔다. 배에서 바나나보트로 옮겨 타니 배가 달리면서 보트도 신나게 달렸는데 우리는 퐁당팀인 관계로 배가 갑자기 방향을 틀자 모두 물에 퐁당 빠져버렸다. 순간 당황하여 허우적거리는데 금방 물 위로 솟아올랐다. 나도 무서운데 양숙씨는 내 손을 꽉 잡고 놓지를 않는다. 이렇게 허둥대다가 배에 걸쳐놓은 사다리를 잡고 다시 배에 오르니 새삼 공기가 좋기는 좋구나 싶었다. 다음에는 대장님이 가르쳐준 대로 배가 방향을 트는 쪽으로 모두 몸을 숙이니 안 빠지고 잘 갔는데 방향을 더 심하게 틀어버리자 역시 보트가 뒤집어지면서 모두 빠졌다. 그래도 두 번째는 한결 안심이 되어 할 만 했다.

바나나보트까지 다 타고 해안으로 돌아오니 맛있는 바베큐 요리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다들 정신없이 퍼먹고는 이구아나를 보러갔다. 이구아나는 커다란 도마뱀같이 생겼는데 숲 근처에서 어슬렁어슬렁 걸어 다니고 있었다.

이구아나를 보고는 다시 배를 타고 호텔로 돌아와 샤워를 하고 회교사원과 사바주 청사를 보러 갔다. 회교사원은 꼭 인도의 타지마할 비슷한 모양이었는데 사방에 해자를 만들어 물 위에 떠 있는 궁전 같았다. 주청사는 원기둥 모양의 건물이었는데 360˚ 회전하게 설계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안전에 문제가 생겨 지금은 사용하지 못하고 그 옆에 새 청사를 만들어 사용하고 있었다.

청사를 본 후 버스를 타고 키나발루 국립공원을 향해 출발하였다. 가는 길이 지루하다 싶었는지 대장님이 얘기를 시작하셨다.

옛날에 어떤 사람이 길을 가다가 멋있는 주전자를 주웠단다. 가만히 보니 예사 주전자가 아닌 것 같아 아라비안나이트에서처럼 손으로 문지르니 과연 거인이 뿅~ 하고 나오더니

주인님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하더란다. 이 사람은 신이 나서 돈도 많이 주고 예쁜 여자도 구해주고 결혼도 시켜달라고 했단다. 그랬더니

주인님 한 가지 이상은 안 됩니다.”

하기에 끝까지 우기면 돈 많은 예쁜 여자 구해다가 결혼까지 시켜주겠지하고 뻑뻑 우겼더니

주인님 알았습니다. 그렇게 해 드리지요.”

하더니 예쁘기는 한데 돈(미친) 여자하고 결혼을 시켜주더란다.

한바탕 웃기시더니 대장님이 풍경을 더 잘 보고 싶은 사람은 앞자리로 오라고 하여 신연희씨와 내가 앞으로 나가니 대장님은 뒷자리로 가신다. 조금 가다가 허정무씨가 티셔츠를 주며 입으라고 한다. 웬 셔츠인가 했더니 키나발루 등산로가 그려진 셔츠였다. 이걸 입고 자기가 설명할 때 서 있으면 아주 주겠다는 것이다. 나는 이게 웬 떡인가 싶어 얼른 입었다.

가는 도중 비가 내렸다 개였다 했는데 키나발루산은 구름에 가려 그 모습을 보여주지 않았다. 산장에 들어가기 전에 과일가게에 들러 바나나, 사과 등을 사고는 파인리조트산장에 짐을 풀었다.

방에 들어가 침대에 누우니 천장에 초록색 화살표가 붙어있었다. 이곳은 회교국이라 메카가 있는 방향으로 절을 하라고 이렇게 방마다 표시가 되어있다고 한다.

내일 라반라타 산장까지 가져갈 짐과 이곳에 맡길 짐을 구분하여 배낭에 넣고는 베란다에 나가 과일 파티를 벌였다. 과일까지 다 먹고 또 주변 산책을 나가니 이순희씨 부부가 벌써 나와 원추리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 있었다. 이렇게 부부동반으로 다니니 보기도 좋고 부럽기도 하였다.

이곳저곳 다니며 구경을 하다가 다시 돌아오니 키나발루산에 엉겨 붙었던 구름이 서서히 걷히고 기기묘묘한 봉우리들이 모습을 드러낸다. 다들 카메라를 들고 나와 정신없이 찍다가 저녁을 먹으러 식당으로 들어갔다. 샤브샤브 요리로 배를 불리고는 대장님이 주는 약들을 먹고 나니 허정무씨가 나를 보고 의자에 올라가란다. 의자에 올라가 섰으니 내가 입고 있는 셔츠로 내일 산행에 대한 설명을 한다. 다른 건 다 잊고 그저 한 시간 갈 때마다 쉼터가 있어 물과 화장실이 있다는 소리를 들으니 한결 마음이 놓였다.

이렇게 모든 준비를 마치고 그저 내일 비만 오지 말아라 하고 빌며 잠자리에 들었다.

 

116() 키나발루산

아침에 일어나니 다행히 비는 오지 않고 키나발루 정상의 구름이 서서히 걷히고 밝은 햇살이 나타났다. 7시에 간단히 아침식사를 하고 8시에 출발한다고 하니 한 명도 어김없이 모두 모였다. 하여튼 우리 팀은 시간 하나는 칼이다. 옷 입을 시간이 부족하면 벌거벗고라도 모일 것이다.

버스를 타고 국립공원 관리소에 도착하니 각자의 이름이 적힌 번호표를 주고 포터도 배정해준다. 각자의 짐을 저울로 달아, 들고 가는 만큼씩 돈을 지불하는데 내 짐은 6kg이라 15달러였다. 우리 포터는 다왓이란 사람이었는데 신연희, 조연옥, 임양숙, , 이렇게 네 명의 배낭 20kg에다가 자기 배낭까지 지겠다고 하였다. 체구도 작은 사람이 저걸 다 어떻게 지나 했더니 우선 내 배낭 뒤에다 한 개 매달고 왼쪽과 오른쪽에 매달고 자기 배낭은 앞으로 하여 다 짊어지고는 성큼 성큼 우리보다 빨리 간다. 나이 많은 아주머니 포터도 있었는데 긴 자루에 몇 개의 배낭을 넣고는 끈을 묶어 머리에 걸치고 걸었다. 이런 모양을 보고 스틱만 달랑 들고 가려니 같은 인간끼리 너무한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러다가 나중에 지옥 가는 거 아닌가 모르겠다고 하니 옆에서 신연희씨가 그래도 일을 안 주는 것보다는 일거리를 주는 게 더 나을지도 모른다고 한다. 하긴 그렇기도 하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편했다.

해발 1890m에 있는 팀폰케이트를 출발하여 여기 보고 저기 보고, 여기 찍고 저기 찍고 하며 4개의 쉼터를 지나 5번째 산장인 라양라양 산장에서 포터가 운반해온 도시락을 먹었다. 도시락은 한식으로 만들었는데 닭고기에 생선튀김에 멸치조림, 물김치까지 우리나라에서 먹던 것보다 더 맛있었다.

이렇게 한 상 잘 먹고는 옆길로 들어가 식충식물을 보았는데 색깔은 연한 핑크빛도 있고 갈색인 것도 있었다. 주먹만한 주머니에 물이 가득 고여 있고 입구에는 상어 이빨 같은 날카로운 가시들이 안쪽 방향으로 나 있어 한 번 빠진 곤충이 절대 탈출할 수 없게 되어있었다.

기는 놈 위에 뛰는 놈 있고 뛰는 놈 위에 나는 놈 있다는데 이놈은 기지도 않고 가만히 앉아 나는 놈들을 잡아먹으니 단연 최고의 고수라는 생각이 들었다.

20분만 더 가면 더 많은 식충식물이 있다고 하여 부지런히 가이드를 따라가 길 아래쪽으로 내려가니 과연 어른 주먹 두개 정도 되는 큰 주머니들이 물을 가득 담고 곳곳에 널려있었다. 한 주머니에는 누가 그랬는지 나무젓가락까지 들어있었다. 꺼내려했으나 입구의 가시가 어찌나 날카로운지 포기하려는데 대장님이 조심스럽게 손을 넣어 꺼내셨다. 하여간 대장님은 자신의 말대로 돈 버는 거 빼고 다 잘한다. 그래서 내가 집에서 대장님 대장님 하면 옆에서 듣던 남편이

그 사람은 별도 안 달고 대장 노릇 잘 하네!” 한다.

정말 별만 안 달았지 별 네 개짜리 대장보다 못 하는 거 하나 없다.

이렇게 밀림의 매력에 푹 빠져 얼마를 걷다보니 갑자기 2층짜리 목조 건물이 나타난다. 이게 마지막 숙소인 라반라타 산장이란다. 해발3353m에 있는 산장 뒤로는 키나발루의 기기묘묘한 봉우리가 구름 속에서 까꿍 까꿍 하며 얼굴을 내밀었다 숨겼다 하고 있었다.

걸음을 멈추니 서서히 한기가 느껴져 건물 안으로 들어가 가져온 옷을 모두 꺼내 입고 식사가 준비되기를 기다렸다. 부페로 저녁 식사를 한 후 일몰을 보려고 베란다로 나가니 벌써 많은 사람들이 카메라를 들고 태양을 바라보고 있었다. 프로급 찍사인 호선생님은 식음을 전폐하고 좋은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 있다가 양숙씨가 나가자 자리를 맡기고는 안으로 들어왔다. 하지만 구름이 너무 많아 이날의 일몰은 별로 아름답지 못했다. 그래도 해가 완전히 진 것을 확인한 다음에야 우리는 숙소인 별관으로 10분쯤 더 걸어 올라갔다. 여기는 41실도 있고 81실도 있었는데 연희씨와 연옥씨, 양숙씨, 나 이렇게 넷이서 한 방으로 들어가 내일 정상 갈 때 필요한 짐을 챙기고 자리에 누웠다.

자리에 누우니 머리가 지끈지끈 욱신욱신 쑤셔왔다. 잠을 좀 자고 나면 나아지겠지 하고 잠을 청해도 잠이 오지 않았다. 연희씨와 연옥씨는 곧 잠이 드는 것 같았는데 양숙씨와 나는 엎치락뒤치락하며 몇 번씩 화장실만 드나들었다. 이렇게 뒤척이다 또 화장실에 가려는데 어지러워 화장실까지 가기도 힘들었다. 겨우겨우 화장실에 가자마자 저녁 먹은 걸 모두 토해버렸다. 나는 유난히 고소에 약해 3000m만 넘어가면 고소증상이 나타난다. 그래서 다시는 고산에 가지 말아야지 하다가도 몇 달 지나면 또 가고 싶어지니 이거 정말 불치의 중독 증상이다. 그래도 토하고 나니 머리가 좀 덜 아파서 잠이 드는가 했더니 그새 1시 반이 되어 다들 일어나 출발 준비를 했다.

 

117() 정상

2시 반에 포터들이 끓여준 물로 코코아 한 잔씩 먹고 밖이 얼마나 추운지 몰라 옷이란 옷은 다 껴입고 모자에 마스크까지 중무장을 하고는 밖으로 나갔다. 하지만 아직 머리가 어질어질하여 정상까지 갈 수 있을지 걱정이 되었다. 가능한 한 심호흡을 하며 천천히 걸으니 그런대로 걸을만하였다. 대장님은 현재 기온이 13라고 별로 춥지 않은 편이라고 했지만 그래도 낮은 곳에서의 13보다는 훨씬 춥고 바람도 차가웠다. 사방이 캄캄하니 앞사람 발만 보고 줄줄이 올라갔는데 멀리 앞서 올라가는 사람들의 랜턴 빛으로 갈 길을 짐작할 뿐이었다. 몇 번씩 숨을 몰아쉬며 두 시간 정도 올라가니 사얏사얏대피소가 나타나고 여기까지 올라온 사람들의 번호를 적었다.

대피소를 지나니 나무들은 사라지고 본격적인 암벽지대가 나타나고 달과 별이 보였다. 갑자기 대장님이

오른쪽 하늘을 보세요.”

하기에 하늘을 올려다보니 북두칠성이 보였다. 그런데 북두칠성의 모양이 국자가 엎어져 국물이 다 쏟아지게 생겼다. 달이 어찌나 밝은지 랜턴 불을 끄라고 하여 다들 불을 껐는데 쏟아지는 달빛을 받으며 야간 산행을 하는 맛은 신비로움의 극치였다. 나중에 들으니 음력 보름 때면 항상 날씨가 따뜻하고 이렇게 좋단다. 다음에 오는 사람들도 음력 보름에 맞춰 오면 좋겠다.

사방이 조금씩 밝아오자 우뚝우뚝 솟은 바위들이 기기묘묘한 형상을 이루고 동쪽 하늘이 뿌옇게 밝아왔다. 가파른 경사길을 올라 정상에 오르니 이미 많은 사람들이 바위에 다닥다닥 붙어 카메라를 들고는 일출을 찍으려고 대기하고 있었다. 우리도 비좁은 틈으로 들어가 자리를 차지하고 일출을 기다리는데 어찌나 바람이 강한지 카메라가 흔들려 사진을 찍기가 힘들었다. 그래도 정상 표지판이 있는 곳에서 대장님이 모두 사진을 찍어준 후 하산을 시작했다. 정상이 하도 좁아 열 명 이상은 앉아있기도 힘들었다.

내려오면서 보니 산 전체가 하나의 통짜 바위였고 빙하의 침식작용으로 생긴 혼(뿔 같이 뾰족한 봉우리)이 곳곳에 하늘을 찌를 듯 서 있었다. 옛날에는 여기도 빙하가 덮여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런 절경이 나타나니 호선생님은 이리 뛰고 저리 뛰며 이 사람 찍어주랴 저 사람 찍어 주랴 홍길동처럼 동에 번쩍 서에 번쩍 하였다. 손은 이렇게 해라 발은 이렇게 해라 스틱은 이렇게 짚어라 하며 가르쳐 주는 대로 온갖 포즈를 취하며 사진을 찍다보니 어느 덧 사얏사얏 대피소를 지나 우리가 자던 곳에 이르렀다. 각자의 방에 들어가 다시 얇은 옷으로 갈아입고는 아침식사를 하러 식당이 있는 라반라타 산장에 가니 어제 여기서 잔 김숙자님과 길용녀님이 우리를 반긴다.

아침 식사를 마치고는 한 눈 한 번 팔지 않고 부지런히 걸어 팀폰게이트까지 내려오니 허정무씨가 벌써 내려와 우리를 맞아준다. 관리사무소에서 등정증을 받고 버스를 타고 조금 내려와 중국집에서 점심 식사를 하였다. 점심을 먹으며 등정 축하를 하였는데 남자대표 이인섭님과 여자대표 최순자님이 케잌 절단을 하고 후식으로 맛있게 나누어 먹었다.

점심식사를 마치고 다시 버스를 타고 코타키나발루 시내로 이동하여 마젤란슈트라호텔로 들어와 짐을 풀고는 잠시 쉬었다가 저녁식사를 하러갔다. 저녁식사 때는 민속공연을 보며 해산물 요리를 먹었는데 섬이라 그런지 싱싱한 해물요리의 맛이 기가 막히게 좋았다.

산에서 주린 배를 잔뜩 채우고는 회교사원의 야경을 보러 갔는데 마침 달이 떠올라 호수에 비치는 바람에 사원은 쳐다도 안보고 물에 비친 달을 찍느라 여념이 없었다. 이렇게 보너스 구경까지 하고는 회교사원을 보니 조명이 어찌나 아름다운지 낮에 보던 것과는 또 다른 신비감을 느낄 수 있었다.

야경까지 모두 보고는 호텔에 돌아와 다시 바닷가를 거닐다가 연옥씨가 바닷물에 발 좀 담가보자고 하여 물로 들어가니 따뜻한 게 기분이 그만이었다. 양숙씨가 바닷가에서 돌을 주으며 멋있다고 한국에 가져가겠다고 하기에 욕심 많은 나는 다섯 개나 주워가지고 나오려니 연희씨가 모든 것은 제 위치에 있어야 참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다고 다시 제자리에 두라고 하여 모래사장에 다시 던져 놓았다. 연희씨는 나이도 나보다 어린 사람이 어쩌면 그렇게도 생각이 기특한지 보면 볼수록 저절로 고개가 숙여졌다. 산에서도 휴지 쓰면 자연을 훼손한다고 화장실 갈 때 휴지도 안 쓰는 모양을 보고 30년이 넘게 아이들을 가르쳐온 내가 새삼 부끄러운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바닷가에서 돌아다니다가 넷이서 우리 방에 들어와 대장님이 주신 잎새주를 마시며 마지막 밤을 즐겼다. 46일 밖에 안 되니 시작하자 곧 끝나는 것 같아 아쉬움이 더 했다.

 

118() 빠다스강

이 날은 래프팅을 하기 위해 8시에 호텔에 짐을 맡겨 놓고는 래프팅회사의 버스를 타고 빠다스강으로 향했다. 여권은 미리 여행사 사장에게 맡겼는데 미리 공항에 가서 수속을 해 놓겠다고 우리는 실컷 놀다가 늦게 와도 된다고 하였다. 여권을 주고 나니 갑자기 몸이 홀가분해지는 게 날아갈 듯 하였다. 해외여행 하면 항상 여권 잃어버릴까봐 신경이 쓰여 부담감에 짓눌려 있게 된다. 여권 하나만 없어도 이렇게 홀가분한데 가진 것 다 버리고 입은 옷 다 벗고 몸뚱이까지 버리고 갈 때는 얼마나 가볍고 상쾌한 기분일까?

가는 도중 대장님은 말레이지아 집들을 봐라, 바다를 봐라 하시며 행여 한 가지 경치라도 놓칠까봐 부지런히 챙겨주신다. 버스가 작아서 그랬는지 아니면 감기약이 안 맞았는지 가다가 김여희씨 올케의 친구인 김희려씨가 버스에서 내려 토하고 난리를 쳤다. 여희씨는 까딱없이 건강하게 잘 견디는데 희려씨는 글자가 뒤집어져서 그런지 속이 완전히 뒤집어진 것 같았다.

얼마를 토하고 진정을 시킨 후 다시 출발하여 기차역에 도착했는데 희려씨는 더 심해졌는지 걷지도 못하고 일어서지도 못했다. 두 사람이 겨드랑이를 끼고 간신히 부축하여 대합실 긴 의자에 눕힌 후 손 발을 주무르고 한참동안 어찌할 줄 몰라 다들 걱정하고 있는데 얼마 후 화장실에 가겠다고 하여 갔다 오더니 조금 진정이 된 듯하였다. 어찌나 얼굴이 창백하고 덜덜 떠는지 우리는 래프팅이고 뭐고 응급실로 가야하는 게 아니냐고 했더니 그래도 본인이 기차를 타고 가겠다고 하여 허정무씨가 긴 박스 포장지를 가져와 화물칸에서 누워 겨우 래프팅 종착점까지 갔다.

기차는 우리나라에서는 듣도 보도 못하던 작고 엉성한 협궤열차였는데 밀림 속을 달리는 단선열차였다. 우리는 여러 칸으로 나누어 잽싸게 자리를 찾아 앉았는데 기차 안에는 현지인들과 섞여 앉아 그들의 모습을 가까이에서 볼 수 있어 더 친근한 느낌이 들었다. 내 옆에는 아기를 안은 여자가 앉았는데 내가 쌀과자를 주자 아기에게 봉지를 뜯어주었다. 아기는 과자가 맛이 있는지 열심히 빨아먹다가 엄마가 잠시 빼앗으면 떼를 쓰고 울었다. 네 달 됐느냐고 손가락 네 개를 펴드니 3개월 됐는지 세 손가락을 편다.

우리 앞쪽에 원종하님이 앉고 그 앞에 중학생 정도로 보이는 남자 아이 둘이 앉았는데 앉자마자 어찌나 담배를 피워대는지 원선생님이 머리를 내두르다가 담배 피우지 말고 껌 씹으라고 껌을 주자 그 다음부터는 별로 피우지 않았다. 한 아이는 우리도 부처님을 닮을래요.’라고 쓴 티셔츠를 입고 있었는데 아마도 성지 순례하러 온 불교신자가 주고 간 게 아닌가 싶었다. 이 아이들에게도 쌀과자를 주었더니 좋아서 입이 귀까지 올라간다. 이렇게 몇 정거장 가다가 이 두 아이가 내리면서 우리들에게 미안했던지 원선생님에게 수가 놓아진 예쁜 벨트를 주고 내린다. 받을 줄만 아는 게 아니라 줄 줄도 아는 고운 심성의 국민이란 생각이 들었다.

기차는 몇 칸 되지도 않는데 웬 장사는 그리도 많은지 객차 수보다 장사 수가 훨씬 더 많았다. 이 사람 저 사람 뻔질나게 드나들더니 웬 할아버지 장사가 우리 옆쪽에 아예 진을 치고 앉더니 한국이 일본과 같은 나라냐? 래프팅하러 가냐? 하고 이 얘기 저 얘기 하더니 웬 과일을 주고 먹으란다. 이게 이름이 뭐냐고 하니 잠부라고 한다. 그냥 먹으라고 하지만 미안해서 1달러 주었더니 굳이 사양하다가 받는다. 하여튼 이 나라 사람들은 친절이 큰 관광자원인 것 같다.

잠시 후 한 남자가 두 아이를 데리고 탔다. 또 두 아이에게 쌀과자를 주니 아빠 눈치를 보며 받지 않는다. 먹으라고 자리에 놓아주니 집지 못하고 가만히 있다. 잠시 후 래프팅 종점에 도착하여 짐은 그곳에 맡기고 다시 기차에 오르니 두 아이는 쌀과자를 먹고 있었다. 아마 아빠가 먹으라고 했나보다. 허정무씨가 맨발로 가라고 했지만 나는 그냥 샌달을 신고 갔다. 기차가 출발하여 30분쯤 가니 아이 아빠가 여기서 내리라고 손짓을 한다. 그래도 혹시나 싶어 주저주저하는데 허정무씨가 와서 내리라고 하기에 모두 내려 보트 있는 곳으로 가니 거기 직원이 이것저것 주의를 주는데 또 은근히 겁이 났다. 보트를 수레에 싣고 강으로 운반하고 우리들은 걸어갔는데 철길 옆 자갈이 어찌나 뜨거운지 임경희님은

이거 지옥이 따로 없네.”

하며 발을 딛지 못한다. 양숙씨와 나는 샌달을 신어서 아무 어려움 없이 잘 걸어갔지만 가이드 말 잘 들은 사람들은 발바닥이 타는 듯 하다고 풀뿌리를 찾아 걸어보지만 풀도 얼마 없어서 발바닥 다 데었다고 난리들을 쳤다.

겨우 강가에 도착하여 보트를 띄우고 내려가는데 래프팅 도우미들이 어찌나 한국말도 잘 하고 웃기는지 무슨 재롱이 잔치를 보는 듯 하였다. 우리는 여기서도 퐁당팀에 들어갔는데 얼마를 내려가더니 강으로 뛰어들라고 하였다. 처음에는 겁이 났지만 물에 떠내려가며 수영하는 재미도 꽤 괜찮았다. 다들 어찌나 수영을 잘 하는지 저만치들 내려가고 나는 뒤에서 허우적대니 도우미가 내 구명 자켓을 잡아준다. 그 바람에 물에 누워 슬슬 내려가니 파란 하늘에 흰 구름이 마냥 평화로워 보였다. 우리 도우미는 유난히 웃겨서

앞으로 앞으로

하나 둘! 하나 둘!” 하며 구령을 붙이다가 자기 나라 말로

사뚜 두아! 사뚜 두아!” 한다. 우리도 이걸 배워

사뚜 두아! 사뚜 두아!” 하다가

영차! 영차!” 하며 열심히 저었다.

이렇게 몇 번씩 물에 뛰어들며 한참을 내려가다가 도우미가 지금쯤 닭날개가 거의 다 익었을 것이라고 하며

치킨 웨이트 치킨 웨이트하며 열심히 저으라고 한다. 자기는 젓지도 않고

유워 유워 로큐! 유워 유워 로큐!” 하고 노래를 부르며

전적으로 우리 웃기는 일에만 전념하였다. 그래서 언제 시간이 가는지도 모르게 종점까지 와 버렸다.

종착점에 와서 우리가 맡겼던 짐을 찾아 샤워하고 옷을 갈아입은 후 부페로 점심식사를 하였는데 과연 닭날개가 수북하게 쌓여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닭고기에 양고기에 과일까지 온갖 음식을 보자 우리는 소라도 잡아먹을 기세로 달려들어 순식간에 싹쓸이를 해버렸다.

이렇게 포식을 하고는 기차 올 시간이 되었다고 하여 역으로 돌아오니 곧 기차가 도착하고 우리들은 모두 기차에 올랐다. 얼마를 가니 갑자기 먹구름이 몰려오더니 소나기가 쏟아졌다. 4일 동안 날씨가 어찌나 좋았는지 꼭 우리 잘 놀라고 하나님이 맞춤식 날씨를 만들어주는 것 같았다. 비에 젖은 빠다스 강을 바라보며 다음 정류장에 오니 호선생님과 대장님이 뛰어 들어오며

완전히 영화 찍었네.” 한다.

웬 영화냐고 했더니 뚜껑도 없이 마루판으로 된 화물차에 앉아오다가 비가 쏟아져 객실로 오려고 내렸는데 기차가 출발하여 죽기 살기로 달려 겨우 기차에 올랐다는 것이다. 하여간 호선생님의 호기심과 대장님의 뱃장은 상상을 초월한다.

코타키나발루 시내에 도착하여 한식당에 가서 저녁식사를 하는데 웬 한국사람 한 팀이 있기에 누군가 했더니 현지여행사 사람들이라고 한다. 허정무씨 하는 말이 사실 처음에는 현지 여행사에서 서로 우리 팀을 안 맡겠다고 했다는 것이다. 명단을 보아하니 나이는 50~60대 할머니들인데 키나발루산에는 가겠다고 하지, 오지 속의 빠다스강 래프팅은 하겠다고 하지, 해서 엄청 꺼려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24명중 22명이 등정을 했다고 하고 모두 래프팅을 했다고 하니 도대체 어떻게 생긴 사람들인지 보고 싶다고 왔다는 것이다. 우리 나이 사람들은 대부분 골프 아니면 온천이나 하고 간다는 것이다.

저녁 먹는 동안 내리던 비가 식사가 끝날 때쯤 멈추자 탄중아루 비치호텔에 가서 라이브쇼를 보며 코코넛 즙을 먹었다. 현지 여행사 사장이 기분이 좋아 코코넛을 내겠다는 것이다. 코코넛은 별 맛은 없었지만 몸에 좋다고 하여 꿀꺽꿀꺽 다 마셨는데 대장님이 우리들 먹는 모습을 찍어주셨다. 그런데 사진을 보더니 연옥씨가 너무 뚱뚱하게 나왔다느니 자기 코가 하마같이 나왔다느니 하며 몇 번을 다시 찍어 달라고 하였다. 정말 보통 사람 같으면 더러워서 안 찍어주겠다고 하련만 대장님은 몇 번씩 다시 찍어 연옥씨가 됐다고 할 때까지 찍어주셨다. 정말 대장은 아무나 하는 거 아니다.

코코넛 즙을 하도 마셨더니 금방 화장실에 가고 싶었다. 1인당 3링깃이라고 하는데 양숙씨가 깎아서 네 명이서 10링깃 주고 들어갔다. 정말 양숙씨는 가는 데마다 너무 잘 깎았다. 그래서 부자가 되었는지도 모른다.

탄중아루비치에서 거닐다가 쇼핑센터에 들러 이것저것 사고는 공항으로 이동하여 허정무씨와 아쉬운 작별을 하고는 비행기에 올랐다.

 

119() 귀가

하루 종일 차에서 흔들리고 배에서 시달린 관계로 타자마자 비몽사몽간에 헤매는데 새벽 3시가 넘어 식사가 나온다. 졸린 눈을 비비고 오믈렛으로 식사를 하고는 눈치 빠른 여희씨가 뒤에 빈 자리가 있다고 가는 바람에 두 자리 차지하고는 누워서 인천공항까지 편하게 왔다. 공항에 내려 짐을 찾아 대장님께 등정증과 씨워킹 증서를 받고는 밖으로 나와 집으로 향하는데 붉은 해가 나를 반겼다. 해외에 갔다 올 때마다 서울로 들어올 때는 내 집에 돌아오는 편안함이 느껴진다.

 

이번 여행은 산 좋고 물 좋고 날씨 좋고 사람 좋은 200점짜리 여행이었다.

 

'기행문' 카테고리의 다른 글

2006. 6. 25. 백두산  (0) 2012.10.13
2006. 6. 12. 아~ 알라스카  (0) 2012.10.13
2005. 10. 27. 중국 실크로드  (0) 2012.10.13
2005. 4. 20. 남미 기행문  (0) 2012.10.13
2005. 1. 22. 중국 장가계  (0) 2012.10.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