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행문

2007. 1. 22. 일본 동경 여행

아~ 네모네! 2012. 10. 13. 15:10

 

 

 

 

 

 

 

 

 

 

 

<기행문>

일본 동경 여행

이현숙(李賢淑)

일본은 이번이 세 번째 여행이다. 한 번은 대학 동창과 큐우슈우로 갔었고 한 번은 어디 갈 땐 가 동경을 거쳐 가는 바람에 잠깐 들렀었다. 일본은 무슨 신사가 그리도 많은지 느낌이 어둡고 무거워서 별로 가고 싶지 않았지만 이번에 친정 새어머니 칠순 기념으로 친정 부모님과 동생들, 아이들 해서 열 일곱 명이나 되는 대가족이 일본에 가게 되었다.

 

113() 요코하마

두 시간의 비행 끝에 나리타공항에 도착하니 공항에 한글도 쓰여 있고 분위기도 인천공항과 비슷해서 외국에 온 것 같지 않았다. 단지 입국 절차를 밟는데 공항 직원이

곤니찌와?” 하기에 뭔 소린지도 모르면서 무조건

곤니찌와하고 대답했더니 도장을 쾅 쾅 찍어주며 여권을 내준다.

안쪽으로 들어왔더니 하나뿐인 올케 선주 엄마가 무슨 얘기를 했느냐고 묻는다. 그래서 곤니찌와?’ 하기에 나도 곤니찌와했다고 하며 곤니찌와가 뭐냐고 물으니 자기도 모르겠단다. 선주 엄마는 깔깔 대고 웃으며 자기는 내가 뭐라도 알고 말하는 알았단다. 나중에 가이드 최해연씨에게 물으니 낮 인사라고 한다. 무식한 도깨비는 부적도 안 무서워한다더니 무식하니까 뭔 소린지도 모르면서 무조건 잘도 떠들어 댄다.

 

버스에 오르니 가이드 최해연씨가 자기소개를 하며 자기 이름은 바다 자 에 제비 자 라고 하며 바다제비니까 갈매기라고 불러달란다. 그러고 보니 갈매기 같이 깨끗하고 우아하게 생겼다.

점심은 불고기 뷔페로 먹었는데 일본에서는 뷔페를 바이킹이라고 한단다. 그것은 옛날 바이킹들이 음식을 먹을 때 이렇게 마음대로 갖다 먹는데서 유래했다고 하는데 그럴 듯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점심 식사 후 고속도로를 타고 요코하마로 이동했는데 고속도로 톨게이트에서 통행료를 받는 사람들은 하나 같이 할아버지였다. 일본 전국 고속도로 톨게이트에서 일 하는 사람들은 거의 모두 할아버지인데 여덟 시간을 꼬박 서서 일한다고 하였다. 우리나라도 이렇게 일자리가 많아서 일 하고 싶은 노인들이 마음껏 일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요코하마에 도착하여 차이나타운을 둘러보았는데 많은 사람들이 길거리에서 커다란 찐빵과 만두를 사 먹고 있었다. 거리 모습은 우리나라 인천에 있는 차이나타운과 비슷했지만 훨씬 북적북적했고 오래 된 듯했다.

차이나타운에서 나와 산하공원(임해공원)을 보았는데 바닷가에 있는 공원이었다. 여느 공원과 비슷하게 분수대도 있고, 줄타기 묘기를 하는 사람들도 있었는데 줄 타는 실력은 우리나라 사람들이 한 수 위인 것 같다. 분수대에는 여신상이 있었는데 이 여신상은 요코하마가 산디에고시와 자매결연을 맺은 기념으로 보내 온 물의 여신상이라고 하였다.

비들기도 많았는데 먹이를 주는 사람, 사진을 찍는 사람이 바글바글 모여 있는 위로 한 떼의 갈매기들이 날고 있었다. 우리도 사진 몇 장을 찍고는 후지산 밑에 있는 가와구치코로 이동하였다.

 

버스를 타고 가다보니 4시 반 밖에 안 됐는데 벌써 해가 지고 어두워진다. 동경이 우리보다 더 남쪽에 있는데 왜 해가 이렇게 빨리 질까? 의아해하다가 생각해보니 동경이 서울보다 동쪽에 있기 때문이었다. 우리는 일제시대부터 동경에 표준시를 맞추어 쓰고 있는데 동경이 우리보다 동쪽에 있으니 해가 먼저 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가와쿠치코 로얄 호텔에 도착하니 다다미방에 이불이 얌전히 깔려있고 장 안에는 일본 전통 옷인 유카타가 얌전히 개어있었다. 갈매기씨가 일러준 대로 왼쪽 옷깃이 위로 오게 입고 벨트를 두 번 돌려 맨 다음 옷소매 속에 수건을 넣고 온천으로 내려갔다.

온천에 들어가니 지키는 사람도 없고 각자 알아서 바구니에 옷을 벗어 놓고는 탕으로 들어가게 되어있었다. 우리도 들어가 몸을 좀 덥힌 후 노천탕으로 갔다. 여섯 명이 거기 둘러 앉아 수다를 떠니 일본 여자들은 조심조심 우리 뒤쪽으로 들어와 조용히 앉았다가 역시 뒤쪽으로 조용히 나간다. 우리는 앞으로 다녀도 되는데 미안하게 왜 저러나? 하며 한참을 더 앉아 노냐 노냐 놀다가 온천욕을 만끽하고 방으로 돌아왔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마침 이날 8시 반부터 불꽃놀이를 한다고 하여 호수가로 나가니 벌써 뻥뻥 소리와 함께 불꽃이 피어오르고 있었다. 불꽃이 한바탕 터질 때마다 사람들의 탄성 소리도 함께 터져 피어올랐다. 세상에서 제일 재미있는 것이 불구경, 물 구경, 싸움 구경이라더니 정말 불꽃놀이는 언제 봐도 환상적이고 우리 마음을 설레게 한다. 불꽃이 하늘 높이 날아오를 때면 우리 마음도 함께 하늘로 날아오르고, 불꽃이 하늘 가득 퍼질 때는 우리 마음도 폭발하듯 퍼져 나간다. 불꽃놀이가 끝나자 아쉬운 마음을 안고 방으로 돌아왔다.

114() 하코네

아침에 일어나 창문을 여니 눈앞에 하얀 설산이 나타난다. ~ 저게 후지산이로구나 싶어 얼른 카메라를 꺼내 서서히 햇살이 퍼지는 설산을 몇 장 찍었다.

남편이 온천을 떠나기 전에 한 번 더 몸을 담그자고 하여 또 온천으로 내려갔다. 또 노천탕으로 나가니 하얀 그믐달이 상큼한 모습으로 나를 맞는다. 아침에는 아무도 없어 혼자 전세 낸 기분으로 느긋하게 물줄기가 뿜어져 나오는 구멍에 앉았다. 비데도 하고 세정도 하고 혼자서 앞뒤로 맛사지하며 즐기다가 안으로 들어오니 동생 미경이가 와 있다. 노천탕에 가보라고 하고는 다시 방으로 돌아왔다.

방에 와서 또 후지산을 보려고 창문을 여니 아니! 이럴 수가? 여자 노천탕에서 어떤 여자가 왔다 갔다 하는 게 그대로 보이는 게 아닌가? 일본에는 남녀 혼탕의 문화가 있다더니 이런 것쯤은 아무 것도 아닌가보다. 아무 볼거리도 없는 할머니 몸매이긴 하지만 그래도 누가 봤으면 어쩌나 싶었다. 어제 올케와 선주는 노천탕에 안 왔는데 혹시 미리 알았나? 설마 알았으면 들어오라고 했겠지.

나중에 동생 혜숙이에게 얘기했더니 자기 방에서는 남탕이 보였다고 하며 사람이 없어 눈요기 할 기회가 없었다고 하였다.

 

카메라를 들고 호텔 앞의 가와구치코 호수로 나가니 동작 빠른 재숙이 내외가 먼저 나와 사진을 찍고 있었다. 엊저녁에는 별로 보이지 않던 오리들이 떼를 지어 몰려다니며 오리 주둥이를 물에 처박고 꽥꽥 대며 먹이를 찾는 모습은 생의 활기를 느끼게 해주고 이 세상은 한 번 살아볼 만한 세상이라는 생각을 갖게 해준다.

호숫가로 가보니 잔잔한 호수 물에 후지산이 비쳐 그야말로 그림 같은, 아니 그림보다 더 멋진 풍경을 연출하고 있었다. 우리는 아름다운 후지산에게 정신이 빼앗겨 여기서 찍고 저기서 찍고 정신없이 찍어댔다.

조금 있으니 혜숙이와 준호도 나오고 아버지 어머니도 나와 또 여기 서라 저기 서라 하며 한바탕 찍어댔다. 아버지는 뭘 자꾸 찍느냐고 하셔도 어머니는 남는 건 사진밖에 없다고 열심히 포즈를 취하셨다.

아침 식사 후 진숙이와 미경이 내외를 불러내어 또 호숫가에 가서 사진을 찍고는 하코네로 향하였다.

 

가다가 보석공장에 들렀는데 말이 공장이지 보석을 파는 곳이었다. 우리 식구들은 돈도 없고 보석에 별 관심도 없어 그저 그림의 떡, 아니 그림의 보석이었다. 눈요기만 하고는 후지산 옆을 지나 하코네의 아시호수로 유람선을 타러 갔다. 후지산에 조금이라도 올라보고 싶었지만 후지산은 1년 중 7, 8월 두 달만 개방한다고 하여 아쉬운 마음을 달래고 계속 달렸다.

하코네 국립공원은 일본 최초의 국립공원이라는데 아시호수에는 해적선 모양의 유람선이 있었다. 유람선에 올라 해적 모형 옆에서 해적의 포즈를 흉내 내며 사진을 찍고 또 계단으로 올라가 망원경을 보는 해적 옆에서도 찍고 주위도 이리 저리 바라보노라니 금방 30분이 지나 호수의 반대편에 도착했다.

아시호수를 떠나 이번에는 오와쿠다니 유황계곡으로 갔다. 계곡 가까이 가니 산 전체에서 흰 연기가 품어져 나오고 매캐한 유황 냄새가 코를 찔렀다. 그래도 우리나라에서는 볼 수 없는 광경이라 여기 저기 둘러보고는 이 지역의 특산물이라는 온천수로 삶은 달걀을 먹었다. 이 달걀은 색깔이 유난히 검은 갈색이었는데 맛은 기가 막혔다. 이 달걀을 먹으면 수명이 7년 연장 된다고 하여 하나 더 먹을까 하다가 너무 오래 살까봐 참았다.

 

식당으로 내려와 도시락으로 점심을 먹고는 동경으로 이동하였다. 동경에 도착하여 아사쿠사 관음사로 갔다. 관음사는 예전에도 한 번 왔던 곳이라 특별한 관심은 없었는데 갈매기씨 설명에 의하면 1958년 지다 형제가 강에서 고기를 잡다가 부처상을 발견했단다. 그런데 부처상의 목이 부러져 있어 다시 붙인 후 관음사를 짓고 이 부처님을 모셔 놓았단다. 그래서 목 잘린 퇴직자들이 목이 다시 붙기 바라는 마음에서 여기에 와 이 부처님께 빈단다.

관음사에는 사람들이 어찌나 많은지 마치 사람 홍수가 난 것 같았다. 향 연기를 씌는 곳에도 바글바글하고 손 씻는 곳에도 접근하기 힘들게 사람이 많았다. 그 앞의 상점가에도 사람이 어찌나 많은지 이리 밀리고 저리 밀려 다녔다. 올 때는 안 쪽 골목길로 오니 조금 걷기가 편했다. 관음사 본당에 들어가니 동전을 던지는 사람들이 어찌나 많은지 동전 떨어지는 소리가 요란했다. 근처까지 갈 수가 없으니 멀리서 던지는데 동전 통이 원체 커서(약 가로 3m×세로 2m) 골인은 잘 되는 것 같았다.

 

관음사에서 나와 긴자 거리를 보러 갔는데 긴자는 한문으로 은좌(銀座)였다. 옛날에 주조국이 여기 있어 은의 거리라는 이름이 붙여졌는데 후에 이 건물이 일본 은행이 되었다고 하였다. 긴자는 서울의 명동 거리 비슷했다.

일요일이라 그런지 차의 통행이 금지되어 많은 사람들이 차도에 넘쳐 나고 있었다. 기모노에 게다를 신은 여자들도 많이 눈에 띄었는데 일본 버선은 우리나라 발가락 양말 같이 엄지발가락이 따로 떼어져 있어 게다를 신기 편하게 되어 있었다.

여기서는 각자 흩어져 보고 싶은 것을 보고 555분까지 버스 내린 곳으로 오라고 하였다. 갈매기씨는 여기서는 차가 오래 설 수 없으니 시간을 꼭 지켜야 한다고 신신당부하였다.

다들 흩어지고 아버지 어머니, 남편과 나, 남동생 우경이 이렇게 다섯은 특별히 살 것도 없어 긴자 거리 끝까지 걸어갔다. 걸어가며 보니 악기를 연주하는 사람들이 있었는데 의상으로 보나 얼굴 생김새로 보나 꼭 남미 사람들 같았다. 좀 더 가니 무용을 하는 사람들도 있고 꼭 우리나라 대학로 같은 모습이었다.

차량통행이 금지된 곳 끝까지 갔다가 다시 돌아와 처음 장소로 오니 다들 모였는데 재숙이네 큰 아들 정민이가 보이지 않는다. 왜 식구끼리 같이 다니지 그랬냐고 했더니 재숙이는 승민이 보고 형과 같이 다니라고 했는데 왜 혼자 왔냐고 승민이를 나무란다. 승민이는 또 형이 자기 앞서서 먼저 갔다고 하였다. 재숙이와 정민이 아빠는 정민이가 길눈이 유난히 어두운 길치인데 날은 어두워지고 이거 어디 가서 애를 찾나 하고 허둥지둥 돌아다녔다.

버스는 와서 기다리고 길이 하도 복잡하니 기사의 얼굴이 굳을 대로 굳어졌다. 재숙이네 식구는 모두 흩어져 정민이를 찾아 나섰는데 조금 있으니 정민이가 버스로 찾아왔다. 어디 갔었느냐고 물었더니 아까 여기 왔었는데 버스가 없어서 잘못 왔는 줄 알고 근처를 헤맸다는 것이다. 아니 우리가 모여서 기다리면 버스가 6시에 온다고 하지 않았느냐고 했더니 그 말은 못 들었다고 하였다. 정민이는 찾았는데 이번에는 찾으러 간 사람들이 안 와서 또 얼마를 기다리다가 다 모여 겨우 안도의 한숨을 쉬고는 도요타 자동차 전시장으로 갔다.

 

여기서는 200엔을 주고 전자동 자동차 시승을 하려했으나 25분을 기다려야한다고 쓰여 있어 포기하고는 멋있는 자동차들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었다. 최고로 비싸다는 자동차를 타고 사진을 찍었는데 혜숙이가 찍고 그 후에 내가 찍었더니 남편이 날 보고

의원님 사모님은 앉은 모습부터 척 어울리는데 누구는 영 안 어울리네.”

한다.

그래서 카메라에 찍힌 사진을 보니 동생은 정말 남편이 도의원이라 그런지 의젓한 게 사모님 같이 보이는데 나는 파출부가 앉은 것처럼 보였다. 다 지위에 맞게 체형과 얼굴 모습도 변하는 모양이다.

 

여기서 나와 오다이바에 가서 저녁을 먹었는데 사람이 어찌나 많은지 무슨 전쟁터에 온 것 같았다. 밥이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 모르게 대충 허기를 모면하고는 도쿄돔 옆에 있는 도쿄돔 호텔로 갔다. 이 호텔은 무궁화가 다섯 개 라더니 과연 방도 깨끗하고 공기도 쾌적하였다.

방에서 내다보니 도쿄돔 앞 광장에 여러 가지 모양의 조형물에 조명이 휘황찬란하였다. 어른들은 우경이 방에서 간단히 술 한 잔씩 하고 아이들은 정민이네 방에 가서 카드놀이를 하였다.

 

115() 닛코

아침에 방의 서랍을 열어보니 금고 장치가 되어있었다. 좋은 호텔이라 이런 것도 있구나 감탄하며 여권과 지갑을 넣고 비밀번호를 입력하니 자동으로 잠겼다. 금고 덕분에 이날은 여권 잃어버릴 염려 없이 홀가분하게 다녔다.

동경에서 아침 일찍 출발하여 닛코로 달렸는데 꽤 멀리서부터 눈에 덮인 난타이산(男體山)이 계속 보였다. 난타이산은 남자의 몸을 닮았다고 하여 남체산이란 이름이 붙었는데 예전에는 여자가 이 산에 등산하는 것이 금지되어 있었다고 한다. 일본도 남존여비 사상이 어지간히 강한 가보다.

난타이산에서 분출된 용암이 강을 막아 1300m 높이에 호수가 생겼는데 이 호수가 주젠지 호수였다. 주젠지 호수는 둘레가 21km나 되는 큰 호수였는데 주위가 산으로 둘러싸여 마치 천지를 보는 듯 했다. 호수 물도 맑고 주변 경치도 좋아 눈과 얼음 위로 엉금엉금 걸어 다니며 사진을 찍었다.

호수에서 다시 버스를 타고 산길을 굽이굽이 내려와 개곤노다키 폭포, 일명 개곤 폭포를 보러 갔는데 겨울이라 물은 많지 않았지만 그래도 얼음과 눈이 덮인 사이로 쏟아져 내리는 물줄기가 그런대로 볼만 했다.

개곤 폭포인지 개코 폭포인지 폭포 구경을 마치고 이번에는 식당으로 갔다. 식당 건물 밖에는 태극기도 꽂혀 있고 중국기도 꽂혀 있는 것으로 보아 관광객이 주로 이용하는 식당인 것 같았다.

 

점심 식사 후 세계문화유산에 등록된 동조궁을 보러갔다. 동조궁은 에도막부 시대의 초대 장군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영혼을 모신 사당인데 그의 손자 이에미쓰에 의해 지어졌단다. 거대한 도리이를 지나 삼나무 숲과 석등이 늘어 선 길을 따라가니 궁전보다 화려하고 조각이 정교한 많은 건물들이 나타났다. 출입문의 오른쪽 두 번 째 기둥이 거꾸로 되어있다고 하여 다들 자세히 들여다보았는데 어떤 무늬가 거꾸로 된 것인지 잘 알 수 없었다. 이것은 완벽한 건물은 무너진다는 속설 때문에 일부러 거꾸로 만들어 세웠다고 하였다.

원숭이 조각이 있는 건물도 있었는데 한 원숭이는 귀 막고, 한 원숭이는 입 막고, 또 한 원숭이는 눈을 막고 있는 모양이 재미있었다.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탔던 가마 앞에서 사진을 찍은 후 우는 용을 보러갔다. 용이 어떻게 우나? 하고 안으로 들어가 보니 용의 그림 밑에서 막대기를 딱딱 치니 찍찍 소리가 나는 것이었다. 남미에서도 어떤 탑 앞에서 손뼉을 치니 찍찍 소리가 났는데 거기서는 뱀의 소리라고 하였다. 주위 건물에 소리가 부딪치며 일어나는 공명 현상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여기서 나와 옆에 있는 절 쪽으로 갔는데 여기 오니 일본 학생들이 단체로 관람을 왔는지 웃고 장난치며 들어오고 있었다. 교복을 보니 여학생들은 우리 학생들과 별로 다르지 않았는데 남학생 교복은 우리가 중고등학교 다닐 때 입던 것 그대로였다. 우리나라에서도 일제 시대 때부터 입던 것이라고 했는데 도대체 일본 사람들은 유행도 모르나 1세기에 걸쳐서 같은 교복을 입히다니 기막힌 일이다.

 

다시 동경으로 돌아와 신 도청 전망대를 보러 갔다. 전망대를 보려고 차에서 내려 걸어가다가 무심코 주머니에 손을 넣으니 주머니가 허전하다. 순간 아찔해지며 이거 카메라가 어디 갔나? 하고 이 주머니 저 주머니 다 뒤져도 없다. 이거 또 어디다 흘렸구나 싶었다. 한라산 가서도 설경을 열심히 찍어 가지고 다 내려와서 잃어버렸는데 이거 또 사진 열나게 찍어서 다 갖다 버렸구나 하고 한탄하니 재숙이가

아니 우리 사진은 언니 카메라에 다 들어있는데 야단났네.” 한다.

전망대고 뭐고 눈에 들어오지도 않아 대충 보고 버스에 오르니 자리에도 보이지 않는다. 카메라를 다시 사야겠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재숙이가 비시시 웃으며 카메라를 내민다. 내 의자에 떨어져 있더란다.

휴우 하고 안도의 한숨을 쉬고 자리에 깊숙이 들어 앉아 식당으로 갔다. 이날은 아버지 생신이라 저녁을 먹으며 생일 축하를 하려 했지만 근처에 케잌을 파는 가게가 없어 포기하고 불고기만 맛있게 먹고 호텔로 돌아왔다.

아이들과 정민이 아빠, 선주 엄마, 미경이는 게임CD 파는 가게에 들렀다가 전철을 타고 호텔로 돌아왔다. 우리는 모두 모여 슈퍼에서 사온 맥주로 생일 축하 파티를 하며 동경에서의 마지막 밤을 즐겼다.

 

116() 동경

이날은 느긋하게 일어나 황거를 보러 갔다. 황거는 에도시대 때 도쿠가와 이에야스 집안이 대대로 살던 곳인데 지금은 천황이 살고 있다고 하였다. 황거도 그 전에 한 번 보았던 곳이라 별 흥미는 없었지만 그래도 잘 가꾸어진 정원이 볼만 하였다. 공원 벤치 곳곳에는 노숙자들이 앉아 도시락을 먹으며 신문을 보고 있었다. 노숙자 생활 같은 것은 안 배워도 될 텐데 이런 풍습이 우리나라까지 건너와 우리나라에도 엄청난 숫자의 노숙자가 생겨 거리와 지하도에 깔려있으니 이건 보통 심각한 일이 아니다. 그 많은 노숙자들이 어서 빨리 자기 집으로 돌아갔으면 좋으련만.

황거 주위에는 해자가 둘러싸고 있었는데 이것은 적의 침입을 방지하려는 목적으로 만든 인공 호수라고 한다. 해자의 물은 매일 저녁 일부분씩 빼고 아침에 채우며 물갈이를 한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물도 깨끗하고 하얀 백조인지 거위인지 들이 유유히 노닐고 있었다.

황거까지 모두 보고 다시 나리타공항으로 가는 버스에서 갈매기씨는 우리보고 복도 많다고 하며 34일 동안 날씨가 너무도 좋았는데 내일부터는 비가 온다는 일기예보가 있다고 하였다. 하여튼 4일 동안 해주는 밥 먹고 깔아놓은 이부자리에서 자며 상팔자로 잘 지냈는데 서울 가면 또 다람쥐 쳇바퀴 속으로 돌아가겠구나 싶었다.

공항에서 수속을 마치고 면세점에 들러 이것저것 소소한 것들을 사고는 비행기에 올랐다.

 

이번 여행은 모든 것이 만족한 여행이긴 했는데 어쩐지 2% 부족한 느낌이 들었다. 새어머니가 아니고 친어머니였다면 그야말로 100점짜리 여행이 될 수 있었을 텐데……. 나는 우리 애들에게 이런 슬픔 주지 않게 온갖 좋은 음식과 온갖 보약 다 먹고 칠순까지 건강하게 잘 버텨야겠다. 그런데 그때까지 버티면 우리 아이들이 칠순 기념으로 같이 해외여행 가자고 하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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