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1998. 10. 1. 백운봉

아~ 네모네! 2008. 3. 3. 20:19

백운봉

이 현 숙

 

  어제는 윤순자 선생님, 김숙임 선생님과 백운봉에 갔었다. 나는 백운봉이란 이름도 못 들어봤었는데 김숙임 선생님이 가본 적이 있다고 해서 한 번 가보기로 하였다. 815분에 삼성역 근처에서 만나기로 했는데 830분이 넘어도 아무도 오지 않았다. 아침에 비가 오락가락해서 안 가려고 하나? 오다가 뭔 일이라도 생겼나? 별별 생각을 다 하며 집에 전화를 하려고 해도 전화번호도 모르겠고, 학교에 물어 보려고 해도 근처에 공중 전화도 없고 해서 전전긍긍하고 있는데 김숙임 선생님의 흰 차가 고개를 넘어 오는 것이 보였다. 차가 막혀서 늦었단다.

  배낭 정리도 하고 조금 더 기다리니 윤순자 선생님이 전철역 쪽에서 부지런히 올라오시는 것이 보였다. 둘이서 기다릴 때는 시간이 금방 가는데 혼자서 기다릴 때는 왜 그렇게 시간도 안 가고 불안하고 초조한지 모르겠다. 역시 사람은 사람 인() 자 모양으로 서로 기대고 살아야 넘어지지도 않고 안정감이 생기는 것 같다.

  일기예보에서는 오전까지 비가 온다고 했지만 용감하게 그냥 용문으로 향했다. 가는 길에 휴게소에 들러서 빵과 계란을 샀다. 김밥도 있었지만 김숙임 선생님이 휴게소에 있는 김밥은 상했을 지도 모른다고 해서 안 샀다. 나는 휴게소 김밥이건 길바닥 김밥이건 별 생각 없이 그냥 사 먹는데 가정 선생님은 확실히 다르구나! 생각하면서 다시 용문으로 향했다.

  상원사 입구에 차를 대 놓고 상원사로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계곡 물도 바라보고 이름 모를 들꽃도 만져보고 이런 얘기 저런 얘기하면서 20여분을 걸으니 상원사 건물이 눈에 들어왔다. 절 모양은 별로 특이한 게 없는데 절 앞마당에서 바라다보는 전경이 그만이다. 앞산의 골짜기 골짜기가 너무도 깊고 아늑해서 여인의 깊은 속을 들여다보는 것 같다. 신성한 부처님 전에서 생각이 너무 지나쳤나? 절 앞에서 일하는 사람에게 운필암 터로 가는 길을 물으니 그 쪽은 길이 없고 절 아래 있는 나무다리를 건너서 능선 길을 타라고 가르쳐 주면서 우리 세 명의 아래위를 훑어본다. 어디를 가려고 하느냐고 하길래 백운봉 간다고 했더니 우리가 영 시원찮게 보였는지 백운봉까지 가려면 5시간은 걸리는데 이 위에 있는 봉우리에나 가는 게 어떻겠냐고 한다.

  그래도 백운봉을 목표로 왔으니 일단 가 보기로 하고 나무다리를 건너 50m 쯤 오르니 어떤 남자가 벤취에 앉아 쉬고 있었다. “수고하십니다.” 인사를 하고 어디까지 가느냐고 물으니 백운봉에 간단다. 길 좀 물어보려고 하는데 아래쪽에서 웬 낯익은 얼굴이 숨을 헐떡이며 올라오고 있었다.

   자세히 보니 대학 동창인 김종화 선생님이었다. 졸업하고 한 번 본 적은 있지만 실로 오랜만에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만나니 너무도 반가워서 한참 악수하고 안부 묻고 나서 걸음이 느린 우리는 먼저 출발했다. 능선 길을 술 취한 뱀 모양으로 느릿느릿 구불구불 올라가다가 숨이 턱에 닿아 쉬고 있는데 김종화 선생님과 같은 학원에 계시다는 정원일 선생님이 먼저 올라 오셨다. 산에를 많이 다녀서 그런지 구리 빛 얼굴에 근육이 탄탄해 보였다. 나이도 45세 밖에 안 되고 산에 단련된 사람이라 그런지 숨 찬 기색도 없이 너울너울 잘도 올라간다.

  우리는 김종화 선생님이 올라올 때까지 좀 더 쉬다가 뒤따라 올라갔다. 바위가 나타나면 네 발로 기면서 숨이 끊어질 듯이 헐떡이며 주 능선에 올라서니 용문산 꼭대기의 군 기지가 코앞으로 다가왔다. 용문산 정상은 군인들이 다 차지해서 근처에 얼씬도 못 하니 우리는 왼 쪽 백운봉으로 방향을 돌렸다. 900m, 800m, 여우봉을 오르내리며 바라다보는 전망은 일품이었다.

  누런 황금 물결 사이로 멀리 남한강에 걸려있는 이포 대교가 보였다. 이포 대교를 보니 면목 시장에서 붕어를 팔던 할아버지 생각이 났다. 매일 밤 이포에서 고기를 잡아 아침이면 시장 바닥에 앉아 그물 손질을 하며 잡은 고기를 파는 할아버지인데 면목중학교에 있을 때 생물 선생님이 붕어 해부 실험을 한다고 직접 시장에 가서 큰 걸로 골라서 사겠다고 해서 같이 시장에 나와 샀던 기억이 났다. 지금은 그 선생님도 수녀원으로 들어가 버리고 할아버지도 보이지 않는다. 할머니도 돌아가시고 혼자 살면서 자기 집 전화 번호도 몰라서 남이 적어 준 것을 우리에게 보여주면서도 돈 계산은 잘 하셨는데 정말 어떻게 되셨는지 궁금하다.

  몇 개의 봉을 오르내리다 보니 갑자기 태산같이 큰 봉우리가 앞을 가로막는다. 도도하고 당당하게 생긴 폼이 감히 범접할 수 없는 기상이 서려 있었다. 용문산 정상에서 내려오던 정기로 마지막 힘을 다해 힘껏 내 지른 것 같았다. 정상을 바라보니 우리의 접근을 쉬 허락할 것 같지 않았지만 그래도 용기를 내어 달라붙었다. 위험한 곳에는 가는 자일이 곳곳에 매여 있었지만 그래도 겁이 나서 떨어지지 않으려고 바위를 붙잡고 안간힘을 쓰며 싱갱이를 하다 보니 갑자기 앞이 탁 트이면서 정상이 나타났다. 무슨 안테나 같은 것과 피뢰침이 세워져있고 천지에서 가져온 돌이 놓여 있었다. 억새 사이로 내려다보이는 황금색 들판은 먹지 않아도 배가 불렀다. 끝이 없는 듯 구불구불 면면히 흘러내리는 남한강에는 자갈 채취선이 떠 있고 멀리 대머리 같은 유명산도 보였다.

  산에 오를 때마다 느끼는 뿌듯함은 세상 어디에서도 느낄 수 없는 포만감이다. 나의 인생에서 가장 큰 스승이자, 친구이자, 동반자이다. 내가 몇 십 년 동안 가르친 것보다 산에 한 번 오면 더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을 것이다. 인간에게 가장 큰 스승은 자연이라는 생각이 든다. 좁은 학교에 잡아 가두고 교탁을 두들기면서 목청을 높이는 것보다 몇 십 배, 몇 백 배의 교육 효과를 얻을 수 있을 것 같다.

  정상에는 항상 삼각점이 있는데 실제로는 4각형 돌에 십자를 파 놓았는데 왜 삼각점이라고 했는지 모르겠다. 다른 산의 정상과 이으면 삼각형이 된다는 것인지 산의 정상에서 능선들을 이으면 삼각형의 모서리같이 된다는 것인지 항상 의아할 뿐이다. 그런데 김종화 선생님 말이 삼각점 옆에 ‘1’이라고 써 있으면 1등급 산이란다. 이게 사실인지는 모르지만 정말 정상에서의 조망은 어느 산에도 뒤지지 않는다.

  아쉬운 마음으로 이번에는 다섯 발로 기면서(엉덩이까지) 바위를 내려와 정상 밑의 약수터에서 목을 축이고 지겹도록 긴 567계단을 내려와 하산 길을 재촉하는데 다람쥐가 깜짝 놀라 달아났다. 다람쥐 있던 곳을 보니 밤송이가 반쯤 벗겨져 있었다. 다람쥐에게 미안하기는 하지만 밤을 까서 주머니에 넣고 계곡 길을 따라 내려왔다. 하산 길에 윤순자 선생님은 다리에 쥐가 나서 발끝을 따고 주무르고 하면서 겨우 차 있는 곳까지 내려와 실낱같이 가는 초승달을 바라보며 서울로 향했다.

 

'나의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1998. 10. 12. 성묘  (0) 2008.03.03
시감  (0) 2008.03.03
1998. 9. 28. 시아버지  (0) 2008.03.03
1998. 9. 19. 출근길  (0) 2008.01.03
1995. 11. 11. 혼자서 해 본 소리  (0) 2008.01.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