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서 해본 소리
이현숙 (김효석 어머니)
○ 우리 아이들이 태어났을 때 해본 소리
“이 아이들은 내 의지로 태어난 것은 아니고, 그렇다고 자기 의지로 태어난 것은 더 더욱 아닌데 누구 의지로 이 세상에 태어났을까?”
○ 내가 딸이었을 때는 딸기를 갖다 놓으면 항상 좋은 것부터 골라 먹었는데 어머니가 된 다음부터는 애들이 곪은 것을 먹을까봐 상한 것부터 집어 먹는다. “딸과 어머니는 이렇게 다른 것이로구나!”
○ 우리 애들이 어렸을 때 용마산에 데리고 가면 효석이는 꼭 가운데 서서 가려고 한다. 누나가 조금이라도 앞에 가면 난리 난다. “엄마는 앞장서서 가고 누나는 뒷장서서 가! 나는 속장서서 갈테니까.”
○ 효석이가 국민학교 4학년 때 용마산에 올라가는데 정상 가까이서 어떤 애를 만났다. 그 아이가 효석이 보고 “아저씨, 이 밑에 약수터 있어요?” 그러길래 내가 “너 몇 학년이냐?” “4학년이요.”
○ 효석이가 국민학교 5학년 때 모처럼 시간이 났길래 운동회 하는데 가보니 이건 정말 눈 뜨고 못 보게 생겼다. 달리기를 하는데 키는 제일 큰놈이 제일 꼴찌에서 빌빌거리며 기어가는 꼴이라니. “와! 내가 저걸 아들이라고 낳고 미역국을 먹었나?”
○ 중학교 3학년 때는 효석이하고 아빠하고 포천 이동에 가서 갈비 먹고 오는데 검문소에서 헌병이 효석이 보고 하는 소리 “현역이십니까?”
○ 중학교 때까지만 해도 별로 돌아다니지 않고 집에 그런대로 잘 붙어 있더니 고등학교 올라와서는 놀기 아니면 자기다. 저래 가지고 어떻게 대학을 갈까? 하고 속을 태우다가 “에라이 똥개야! 니가 공부해서 나주냐? 니 마누라주지.”
○ ‘내 아들은 침착하고 과묵해서 내가 뭐라고 물어도 끄떡끄떡 아니면 절레절레다.’ 이렇게 생각했는데 여자 아이한테서 전화오니까 이게 웬 일? “뭐하고 놀았냐? 재미있었냐?”하면서 한 시간을 끄는데 ‘내가 아들 한 번 잘못봤네!’
○ 지난 추석날에 대전 큰댁에 갔다가 조금 늦게 와보니 남자애들 여자애들 떼를 지어 몰려 와서는 떡볶이를 해먹고 감자튀김 해먹고 온 부엌을 난장판을 만들어 놓고 여자애가 설거지를 하고 있다. “야! 너 살림 내줘도 되겠다.”
○ 효석이는 면목동에서 태어나서 면목중학교를 졸업하고 면목 고등학교에 다니고 있다. 면목대학교가 없었기 망정이지 정말 완전히 면돌이 될 뻔했다. 효석이가 태어날 때만 해도 면목동에 여기저기 공터도 많고 동이로나 용마산길도 뚫리지 않고 그런대로 한적한 시골 같았는데 이제는 동서남북으로 길이 뚫리고 전후좌우에서 3층집, 4층집이 올라가니 멀리 보이던 북한산, 도봉산, 불암산도 다 가리워지고 손바닥만한 하늘만 남았다. 우리에 갇힌 짐승과 같은 불안과 초조가 항상 마음의 밑바닥에 깔려 있다. 도시는 지구라는 생물에게 발생한 문둥병 환처와도 같다. 도시에서 태어나 도시에서만 자란 아이들은 참 불행하다. 그래도 면목동에는 용마산이라도 있어서 숨구멍이 막히지 않는다. 어쩌다 평일에 시간이 나서 용마산 정상에 올라가 벤치에 누워 하늘을 보면 흰구름이 뭉쳤다 퍼졌다 하는 것이 사람이 나고 죽고 나고 죽고 하는 것 같다. 그러면 되지도 않는 시가 내 입에서 저절로 흘러 나온다.
산
나는 죽어 산에 눕고 싶다.
봄에는 꽃피고
여름엔 매미울고
가을엔 색동옷에
겨울엔 흰옷입는
어머니 품속같은
산에 누워
영원한 자연으로 돌아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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