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근길
이 현 숙
띵! 띵! 띠잉! 전기 밥솥에 전기 들어가는 소리가 어렴풋이 들려온다. 이상 없이 취사가 시작되는구나 생각하면서 꿈속을 헤맨다. 나는 전기 밥솥을 안방에 두고 쓴다. 밤사이에 정전이 되어 아침에 일어나 보니 생쌀일 때가 있어서 허둥댄 이후로는 아예 밥솥을 안방에 두고 밥이 되는 소리를 들으면서 일어날 마음의 준비를 한다. 꿈속에서 헤매다 보면 띠리릭, 띠리릭, 띠리릭, 알람시계 울리는 소리가 들린다. 시계를 잡아 꾹 눌러 놓고는 또 돌아눕는다. 비몽사몽간에 헤매다보면 삐리릭, 삐리릭. 삐리릭… 하고 가방 속에 있는 삐삐가 울린다. 정확히 15번 울리면 스스로 잠잠해진다. 여기가 데드라인이다. 여기서도 안 일어나면 끝장나는 날이다.
부리나케 벌떡 일어나서 옷을 주워 입고는 부엌으로 달려가서는 라디오부터 켠다. 홍소연의 ‘상쾌한 아침입니다’가 진행중이다. 결혼하고 처음에는 나만 혼자 캄캄한 부엌에 나와서 아침 준비를 하는 것이 너무 이상했다. 엄마도 몇 십 년을 우리가 일어나기 전에 일어나셔서 이렇게 혼자 아침 준비를 하셨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고 친정 엄마를 그리워하곤 했다. 국이 데워지려면 시간이 걸리니까 그 동안 맨손 체조를 한다. 맨손 체조가 끝나면 애들 아빠를 깨운다. 이것저것 반찬을 꺼내놓고 행주를 들고 안방으로 밥통을 꺼내러 가면서 애들을 깨운다. “김 효석, 밥 먹자. 효석이 일어나라.” 여기서도 반응이 없으면 “김 똥개 밥 먹자.” 하고 딸 방에 가서 “미숙이 밥 먹자.” 하고는 안방에 가서 밥통을 들고 나와 밥을 푸고, 국을 푸고 마루 라디에타에 말리려고 늘어놓은 도시락을 가지러가면서 딸을 다시 한 번 깨운다. 도시락을 싸는 동안 남편은 수저 놓고 물 따르고 반찬 뚜껑을 열어 놓는다. 그 때쯤 되서야 애들은 눈을 비비면서 방에서 나온다.
‘저렇게 일어나기 힘들면 좀 일찍 자면 될텐데… 왜 그렇게 밤늦도록 돌아다니나.’ 하는 생각이 든다. 나는 내 시간에 맞추어, 자는 애도 무조건 깨워서 밥을 먹인다. 우리 아이들은 밥 먹고 또 들어가서 잘 때가 많다. 아이들한테 좀 미안하기도 하다. 밥을 번개같이 먹고 ‘오성식의 굿 모닝 팝스’를 들으면서 설거지를 한다. 처음에는 ‘웬 남자가 저렇게 오두방정을 떠나’
했는데 들어볼수록 선생은 저렇게 통통 튀는 맛이 있어야 학생들이 졸지 않고 잘 듣겠구나 싶은 생각이 들고 배울 점도 많다. 듣기 평가까지는 설거지가 끝나야지 띵! 띵! 띠잉! 하면서 7시 시보가 울리면 이건 늦은 날이다. 세수하고 좀 찍어 바르고 늦어도 7시 30분에는 집을 나서야한다. 사실 사람들은 내가 화장을 전혀 안 하는 줄 아는데 그리는 걸 안 해서 그렇지 바를 것은 다 바른다.
대문을 나서며 이어폰을 귀에 꽂고 용마산역으로 뛰다시피 걸어간다. 신호등이 없는 횡단 보도 쪽으로만 골라서 걷는다. 검표기를 거쳐 계단을 내려가 내가 늘 서는 위치에 서면 안도의 한숨이 나오면서 오늘도 이 자리에 세워 주시고 일터로 향하게 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한다. 전철을 타면 공기가 탁해서 얕은 기침이 나온다. 군자역에서는 5호선으로 갈아타는 사람이 많아서 재수 좋으면 앉을 때도 있다. 여기서 못 앉으면 건대역까지 서서 와야한다. 건대역에서는 모두 내리기 때문에 2호선 쪽으로 빨리 가려고 해도 사람에 막혀서 걸을 수가 없다. 배낭을 지고 우쭐우쭐 걸어가는 대학생들을 보면 저 아이들은 저토록 열심히 공부하는데 내 아들은 왜 적응을 잘 못하고 휴학하고 집에 있나 싶은 게 마음이 아프다. 1년간 두란노에서 하는 훈련을 받는다고 월요일에 가면 목요일날 경배와 찬양 집회까지 마치고 밤 늦게 집에 왔다가 금요일에 쉬고 토요일에는 토요 훈련이라고 또 간다.
‘어려서부터 떼어놓고 다녀서 정서 불안에 걸렸나?’
‘임신 중에 감기약을 먹어서 그런가?’
별 생각이 다 든다. 7호선에서 2호선으로 올라오는 에스컬레이터는 유난히 길다. 7호선은 지하철이고 2호선은 지상철이라 어쩔 수가 없다. 긴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올라오다가 푸른 하늘도 보이고 간판들도 보이고 하면
“휴! 살았다.”
하는 안도의 한숨이 나온다. 공기를 빨아들여 숨을 쉬어야하는 인간은 역시 지상에서 살아야하나 보다. 무엇인가 지하에서는 숨이 막히는 것같이 답답하다.
‘나중에 무덤에서 부활할 때는 이런 기분일까? 아니면 내가 내 육체에서 떠나는 날 이런 기분일까? 사람이 육체에 갇혀서 시간과 공간의 한 순간, 한 점에 묶여 있다는 것은 너무 답답하다. 이 육체 밖으로 나가면 영원에서 영원까지, 무한에서 무한으로 시공간을 초월하여 마음껏 달릴 수 있을까?’
2호선 열차를 타고 북쪽을 향해 서 있으면 오른 쪽에 아차산부터 불암산, 수락산, 저 멀리 의정부 쪽에 사패산, 도봉산, 북한산까지 한 눈에 다 들어온다. 무학 대사가 어떤 분인지는 모르지만 서울 위치 하나는 참 잘 잡았다. 산들이 울타리 같이 둘러싸고 있어 아늑하고 편안한 느낌이다. 아차산의 면면한 능선을 바라보면 온달 장군이 아차산에서 전사를 했다는데 저 능선에서 말을 달렸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온달 장군이 마셨다는 온달샘이 능선 바로 밑에 있는 걸 보면 분명히 그랬을 것 같다. 맑은 날은 정상에 있는 태극기 깃대까지 또렷하게 보인다. 뭐니뭐니해도 생기기는 불암산이 가장 잘 생겼다. 사방 어디서 보아도 ‘뫼 산(山)’자 모양으로 우뚝한 것이 어느 한 구석 이지러진 데가 없다. 언제 보아도 당당한 모습이 마음에 든다.
수락산은 의정부 쪽에서 오면서 보아야 막 비상하려는 독수리 날개같이 제 모습을 나타내는데 이쪽에서는 별 모양이 없다. 멀리 사패산은 도봉산 끝에 겨우 붙어서 엄마 등에서 떨어지지 않으려고 꼭 붙어있는 애기 같다. 도봉산은 선인봉, 만장봉, 자운봉이 우람하게 버티고 서서 칼 같은 절벽이 속인은 감히 접근할 마음도 먹지 못하게 기를 죽인다. 북한산은 누가 그랬는지 진짜 케네디 얼굴 같다. 머리는 이마 앞으로 좀 나와 있고, 눈망울도 뚜렸하고, 코도 우뚝하다. 그런데 목의 뼈가 좀 너무 크다. 케네디 조상은 하와가 주는 선악과 중에서도 특별히 큰 것을 받아먹다가 목에 걸렸나보다. 북한산을 바라보다 보면 성수 중학교 교가가 떠오른다.
“북한산 줄기 따라 뻗어온 정기-, 한강수 흘러 내려 굽이 치는 곳-”
한강수까지는 그래도 이해가 가는데 북한산은 어째 너무 멀리서 끌어온 것 같다. 그런데 사실 둘러보면 근처에 산이 없다. 정기를 받기는 받아야겠는데 근처에 산이 없으니 저기서부터 끌어왔나보다. 눈을 지그시 감고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데 갑자기 “다음은 건대입구, 건대입구역입니다.”
하는 소리가 들린다.
‘이게 웬 일인가? 내가 어디서 전철을 잘못 탔나?’
싶어서 깜짝 놀라 눈을 번쩍 뜨니 뚝섬역이다. 기관사가 방송을 잘못 틀었나보다. ‘휴! 10년 감수했네.’
‘가끔 저런 사람도 있구나. 하긴 인간이 하는 일이니 실수도 있겠지.’
너그러운 마음으로 용서를 하고 학교로 향한다. 등교시간이라 학생들이 많다. 친구와 장난치며 가는 아이, 자전거를 타고 자동차 사이로 요리조리 곡예를 하며 가는 아이, 수퍼 앞 오락 기계에서 잠시 오락하는 아이. 등교하는 모습도 가지가지다. 그런데 우리 학교 아이들 명찰은 학년 별로 색깔이 다르다. 1학년은 새 파란 청색, 2학년은 하늘색, 3학년은 노란색이다. 잘 생각해보면 그게 참 순리적이랄까? 자연스럽다고 할까? 그렇다. 1학년은 새싹같이 파랗고, 2학년은 좀 빛이 바랬다가, 3학년이 되면 누렇게 뜬다. 이렇게 말하면 너무 심했나? 등교길에 있는 은행나무 같이 노랗게 단풍이 든다. 우리 학교 학생들은 다른 것은 몰라도 인사는 참 잘한다. 신호를 기다리다 보면 뒤에서
“물상 선생님, 안녕하세요?”
하고 크게 인사를 한다. 주위에 있는 사람들이 다 쳐다보니 좀 겸연쩍기도 하고 속 보인 것 같이 좀 부끄럽기도 하고 그렇다. 선생님들과 수다를 떨며 학교에 도착하여 교무실 중앙 탁자에 있는 출근 카드에 싸인을 하고 일간 업무 쪽지를 집어 들면 오늘의 출근길은 끝나고 하루의 일과가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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