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1995. 11. 11. 혼자서 해 본 소리

아~ 네모네! 2008. 1. 3. 21:22

혼자서 해본 소리

 

이현숙 (김효석 어머니)

 

우리 아이들이 태어났을 때 해본 소리

이 아이들은 내 의지로 태어난 것은 아니고, 그렇다고 자기 의지로 태어난 것은 더 더욱 아닌데 누구 의지로 이 세상에 태어났을까?”

 

내가 딸이었을 때는 딸기를 갖다 놓으면 항상 좋은 것부터 골라 먹었는데 어머니가 된 다음부터는 애들이 곪은 것을 먹을까봐 상한 것부터 집어 먹는다. “딸과 어머니는 이렇게 다른 것이로구나!”

 

우리 애들이 어렸을 때 용마산에 데리고 가면 효석이는 꼭 가운데 서서 가려고 한다. 누나가 조금이라도 앞에 가면 난리 난다. “엄마는 앞장서서 가고 누나는 뒷장서서 가! 나는 속장서서 갈테니까.”

 

효석이가 국민학교 4학년 때 용마산에 올라가는데 정상 가까이서 어떤 애를 만났다. 그 아이가 효석이 보고 아저씨, 이 밑에 약수터 있어요?” 그러길래 내가 너 몇 학년이냐?” “4학년이요.”

 

효석이가 국민학교 5학년 때 모처럼 시간이 났길래 운동회 하는데 가보니 이건 정말 눈 뜨고 못 보게 생겼다. 달리기를 하는데 키는 제일 큰놈이 제일 꼴찌에서 빌빌거리며 기어가는 꼴이라니. “! 내가 저걸 아들이라고 낳고 미역국을 먹었나?”

 

중학교 3학년 때는 효석이하고 아빠하고 포천 이동에 가서 갈비 먹고 오는데 검문소에서 헌병이 효석이 보고 하는 소리 현역이십니까?”

 

중학교 때까지만 해도 별로 돌아다니지 않고 집에 그런대로 잘 붙어 있더니 고등학교 올라와서는 놀기 아니면 자기다. 저래 가지고 어떻게 대학을 갈까? 하고 속을 태우다가 에라이 똥개야! 니가 공부해서 나주냐? 니 마누라주지.”

 

내 아들은 침착하고 과묵해서 내가 뭐라고 물어도 끄떡끄떡 아니면 절레절레다.’ 이렇게 생각했는데 여자 아이한테서 전화오니까 이게 웬 일? “뭐하고 놀았냐? 재미있었냐?”하면서 한 시간을 끄는데 내가 아들 한 번 잘못봤네!’

 

지난 추석날에 대전 큰댁에 갔다가 조금 늦게 와보니 남자애들 여자애들 떼를 지어 몰려 와서는 떡볶이를 해먹고 감자튀김 해먹고 온 부엌을 난장판을 만들어 놓고 여자애가 설거지를 하고 있다. “! 너 살림 내줘도 되겠다.”

 

효석이는 면목동에서 태어나서 면목중학교를 졸업하고 면목 고등학교에 다니고 있다. 면목대학교가 없었기 망정이지 정말 완전히 면돌이 될 뻔했다. 효석이가 태어날 때만 해도 면목동에 여기저기 공터도 많고 동이로나 용마산길도 뚫리지 않고 그런대로 한적한 시골 같았는데 이제는 동서남북으로 길이 뚫리고 전후좌우에서 3층집, 4층집이 올라가니 멀리 보이던 북한산, 도봉산, 불암산도 다 가리워지고 손바닥만한 하늘만 남았다. 우리에 갇힌 짐승과 같은 불안과 초조가 항상 마음의 밑바닥에 깔려 있다. 도시는 지구라는 생물에게 발생한 문둥병 환처와도 같다. 도시에서 태어나 도시에서만 자란 아이들은 참 불행하다. 그래도 면목동에는 용마산이라도 있어서 숨구멍이 막히지 않는다. 어쩌다 평일에 시간이 나서 용마산 정상에 올라가 벤치에 누워 하늘을 보면 흰구름이 뭉쳤다 퍼졌다 하는 것이 사람이 나고 죽고 나고 죽고 하는 것 같다. 그러면 되지도 않는 시가 내 입에서 저절로 흘러 나온다.

 

나는 죽어 산에 눕고 싶다.

봄에는 꽃피고

여름엔 매미울고

가을엔 색동옷에

겨울엔 흰옷입는

어머니 품속같은

산에 누워

영원한 자연으로 돌아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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