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시감

아~ 네모네! 2008. 3. 3. 20:20

시감

 

이 현 숙

 

  오늘은 시험 보는 날이다. 아니 엄밀히 말하면 시험 감독하는 날이다. 내가 학생일 때는 선생님들은 시험도 안 보고 참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선생님이 되어 보니 그게 또 그렇지가 않다. 출제해야지 채점해야지 출제하고 나면 시험이 끝날 때까지 혹 문제가 잘못된 건 없는 지, 시험지 유출되지 않게 자투리라도 잘 보관했는지 불안하고 채점하고 나면 아이들에게 성적표 나갈 때까지 채점 상에 오류가 없었는지 또 걱정이 된다.

  학생들이 시험 볼 때 앞에 서서 감독하는 것도 이게 장난이 아니다. 행여라도 컨닝하는 학생이 있으면 학교가 시끄러워지니 눈을 부릅뜨고 아니 학생들을 투시하듯이 뚫어져라 쳐다보며 레이더망을 돌리듯이 시선을 돌려야 한다. 서서 떠들 때는 몰랐는데 입 다물고 서 있으려니 왜 그렇게도 잠이 쏟아지는지 눈꺼풀이 막 내려오려고 한다. 문제 다 풀고 엎드려 자는 아이들이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다. 그래도 잠을 쫓아보려고 옆으로 게 걸음질을 치며 왔다 갔다 해 본다. 시선을 학생들에게서 뗄 수가 없으니 몸은 학생들을 향하고 게 걸음으로 왔다 갔다 해야 한다.

  오늘은 3학년 시감이다. 작년에 2학년을 가르쳤기 때문에 눈에 익은 아이들이 많다. 작년에는 개구쟁이의 앳띤 얼굴이었는데 이제는 얼굴이 여기저기 툭툭 튀어나오고 키가 훌쩍 큰 것이 제법 청년 티가 난다. 가르칠 때는 말 안 듣고 장난친다고 잡아먹을 듯이 야단을 치다가도 헤어지고 나면 그렇게 아이들이 신통방통하고 기특하고 대견할 수가 없다. 졸업하고 사회인이 되어 버스 정류장 같은 데서 반갑게 인사를 하는 아이들을 보면 이게 또 장난 많이 치고 매 많이 맞은 아이들이다. “선생님 ○○ 학교에 계셨죠? 그 때 선생님에게 죽도록 맞았어요.”한다. 왜 맞았느냐고 물으니 물상 시간에 떠들고 장난치다가 선생님 자리에 가서 무릎 꿇고 앉아 있으라고 했는데 안 앉아있고 돌아다니다가 돼지게 맞았어요.”한다.

  내가 아무래도 폭력교사인가보다. 아이들을 이리저리 둘러보며 쟤는 하령이, 쟤는 경진이, 완익이, 준석이, 동영이, 일경이 하면서 이름을 기억해 보고 있는데 효진이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작년 물상 시간에 실험하다가 옆의 아이와 기절 게임(목조르기)을 하다가 기절하여 창틀에 머리를 부딪쳐 병원에 실려간 아이다. 한 쪽에 실험을 잘 못하는 분단이 있어서 도와주고 있는데 갑자기 선생님, 쟤 머리 터졌어요.” 하는 소리가 들려 머리를 드는데 갑자기 한 아이가 머리를 손으로 잡고 피를 뚝뚝 흘리면서 양호실로 뛰어가는 것이 아닌가? 아이들은 다 쫓아나가려고 일어서고 야단법석이길래 일단 반장보고 쫓아가 보라고 하고 아이들을 진정 시킨 후 양호실로 가는데 벌써 양호 선생님이 압박 붕대로 머리를 칭칭 동여매서 데리고 나오셨다.

  한 중근 선생님이 자기 차에 태워서 한양대병원 응급실로 데리고 갔다. 수업이 끝나고 양호 선생님과 같이 한양대병원에 가 보니 효진이는 많이 안정돼 있었다. 효진이 부모님도 오셔서 머리를 다쳤으니 후유증이 생기면 어떻게 하느냐고 큰 걱정을 하시는데 학생 관리를 잘못한 나는 너무도 죄송해서 머리를 들 수가 없었다. X-ray를 찍어 봐서 이상이 없어야 꿰맨다고 하는데 사진이 나올 때까지의 시간이 왜 그리도 길던지 피가 마른다는 소리가 이해가 갔다.

  다행이 이상이 없어서 잘 꿰매고 아물어서 머리카락도 잘 나고 이제는 잘 지내고 있는 걸 보니 마음이 든든했다. 한동안은 복도에서 만날 때마다 효진아, 괞찮냐?” 하며 머리도 들여다보곤 했는데 학년이 바뀌니 별로 만날 수가 없었다. 한창 장난이 심한 때가 되어 언제 어떤 일을 저지를 지 몰라 꼭 시한 폭탄들과 같이 사는 기분이다.

  효진이 얼굴을 보니 옛날에 담임했던 성훈이 생각이 떠올랐다. 그게 몇 년 전이냐? 1978년이니까 꼭 20년 전이로구나! 그 때도 성수 중학교에 근무하고 있었는데 1학년 담임 할 때 복성훈이란 아이가 있었다. 그 때도 시험 때 였는데 아침에 아이들이 자율 학습하는 동안 교실에 앉아 있는데 갑자기 다른 반 아이가 조용히 다가 와서는 선생님, 어제 성훈이가 교통 사고로 죽었는데요.” 한다. 처음에는 그게 무슨 말인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뭐라구?” 하니까 성훈이가요, 어제 미군 트럭에 받혀서 죽었는데요.”한다. 갑자기 세상이 멍해지는 게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시험이 끝난 후 그 때도 한양대병원에 갔었다. 성훈이는 사촌형이 자전거를 배우고 싶다고 성훈이 보고 밀어 달라고 해서 밀어주다가 미군 트럭에 받혀서 머리가 먼저 떨어졌단다. 사촌형은 다리만 조금 다쳐서 붕대를 감고 있을 뿐 멀쩡했다. 저 애는 저렇게 멀쩡한데 왜 성훈이만 죽어야 했는지 뭔가 억울한 느낌이 들었다. 숨이 넘어갈 듯이 우는 성훈이 어머니를 보니 뭐라고 위로를 해야할지 몰라 아무 소리도 못 했다.

  다음 날은 장례식이라 또 한양대병원 영안실에 갔다. 냉동실에서 염을 하려고 꺼내 놓은 성훈이를 보니 수술을 해 보려고 머리의 일부분을 밀어 놓았을 뿐 아무 상처도 없었다. 체육복을 입고 있었고 자는 듯이 누워 있었다. 관에 넣어져 하얀 차를 타고 화장터로 가는 것을 보고 학교로 혼자 돌아오는데 어찌나 마음이 아픈지 자식 잃은 어미의 심정이 이럴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죄인된 심정으로 학교에 돌아와 성훈이의 빈자리를 보니 또 눈물이 나왔다.

  그 때부터는 등교할 때마다 넌줄넌줄 걸어 학교로 향하는 아이들을 보면 딴 애들은 다 이렇게 학교에 잘 다니는데 왜 성훈이는 그토록 빨리 하나님 품으로 갔어야 했을까? 꽃을 보아도 피지 못하고 간 성훈이 생각에 슬프고 달을 보아도 슬펐다. 바람 소리를 들어도 슬프고 빗소리를 들어도 슬펐다.   왜 인간은 자기 생명 하나도 소유할 수 없을까? 모든 물질도, 몸도, 생명도 왜 우리는 모두 다 빼앗겨야 하는 것일까? 그 때부터는 한 순간밖에 존재하지 못하는 한 생명 한 생명이 너무도 귀하다는 생각과 학교에서 아무리 하찮게 보이는. 작고 공부 못하는 학생이라도 그 부모에게는 얼마나 소중하고 천하보다 귀한 아들인가 싶은 게 그저 살아만 있는 것이 고맙게 여겨졌다.

  과연 우리가 소유하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 솔로몬은 해 아래서 수고하는 것이 사람의 분 복이라고 했는데 정말 수고하는 것만이 우리가 누릴 수 있는 모든 것인가? 한없이 옆길로 빠지려고 하는데 끝나는 종소리가 나를 깊은 생각의 늪에서 끌어내었다.

 

'나의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1998. 10. 27. 개교기념일  (0) 2008.03.03
1998. 10. 12. 성묘  (0) 2008.03.03
1998. 10. 1. 백운봉  (0) 2008.03.03
1998. 9. 28. 시아버지  (0) 2008.03.03
1998. 9. 19. 출근길  (0) 2008.01.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