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1998. 10. 27. 개교기념일

아~ 네모네! 2008. 3. 3. 20:22

개교기념일

 

이현숙

 

  우리 학교 개교기념일은 1026일이다. 우리 학교의 좋은 점 가운데 하나가 개교기념일이 단풍철에 있다는 것이다. 이 때 쯤이면 전국 어디가나 단풍 구경을 할 수 있다. 올해는 또 기가 막히게도 월요일에 걸려서 연휴가 되었다. 학교 선생님들이 설악산에 간다고 같이 가자고 하길래 무조건 따라 붙었다. 나이 오십에 같이 가자고 하는 게 그저 고마워서 두 말 않고 가기로 했다. 더 나이 들면 걸리적거린다고 누가 가자 소리나 하겠나 싶어서, 지금 안 가면 평생 다시 못 갈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흔쾌히 가겠다고 약속을 했다.

  양호 선생님은 성수 주일 안하고 어딜 놀러 가는냐고 새벽 기도라도 하고 가라고 하셨는데 아침에 일어나 보니 갈 준비하기도 바빠서 도저히 갈 수가 없었다. 자는 남편에게 미안하지만 불 다 켜 놓고 주섬주섬 담아서 계단을 내려오는데 전철표를 어디에 두었는지 생각이 안 나서 계단에다 짐을 도로 다 꺼내 놓고 찾아도 없다. 나중에 보니 배낭 뒷주머니에 들어있었다. 부리나케 도로 쑤셔 넣고 첫 전철을 타려고 용마산역에 도착하니 시간이 다 돼서 아무래도 놓칠 것 같았다. 한 번 놓치면 15분을 기다려야하니 도로 면목 4동 동사무소 앞으로 내려와 택시를 탔다.

  택시 기사가 산에 가느냐고 하길래 그렇다고 했더니 자기도 고등학교 다닐 때 산악회장이었다고 하면서 도마치 고개가 어떻고 저떻고 하면서 늘어놓는데 내 배낭 속에 있는 삐삐가 삐리릭 삐리릭 울린다. 평소에 일어나던 시간이라 알람이 울리는 것인데 기사는

빨리 안 온다고 삐삐 치나보죠?”

한다. 굳이 아니라고 하기도 뭐해서 가만히 있었다.

 

  강변역에 내리니 610분까지 오라고 했는데 550분밖에 안됐다. 20분 동안 뭘 하나? 생각하다가 막간을 이용하여 볼일이나 볼까 하고 한가한 곳을 찾아 2층으로 올라갔다. 화장실에 들어가서 쭈그리고 앉아 한참 힘을 쓰려고 하는데 바퀴벌레 한 마리가 쪼르르 기어 나온다. 이 놈을 휴지로 눌러 죽일까 말까 하다가 이 놈도 이 좋은 세상에서 한 번 살아 보겠다고 기를 쓰고 나왔는데 굳이 내가 죽일 필요가 있나? 살만큼 살다가 죽겠지 싶어서 쳐다보고 있으니 살았다 싶었는지 옆 칸으로 뺑소니를 친다.

  물끄러미 문짝을 바라보니 잭키, 파라다이스, 하이트, 접속 등등의 광고 스티커가 붙어 있었다. 이게 뭔가 하고 들여다보니 침식 제공, 초보자 우대 등등의 말만 있을 뿐 뭐하는 곳인지는 써 있지 않았다. 아마 사람 장사하는 곳인 것 같다. 여자 애들이 가출하면 잘 데도 없으니 이런 데로 쉽게 빠질 것 같았다. 시간도 많으니 느긋하게 볼일을 보고, 곧장 가면 아침부터 향기롭지 못한 냄새를 풍길 것 같아서 이리 저리 배회하다가 10분 정각에 다시 출입구 쪽으로 가니 아무도 안 보인다. 현관 옆 의자에 앉아서 기다리는데 15분이 되어도, 17분이 되어도 아무도 나타나지 않는다. 내가 상봉터미널을 동서울터미널로 잘못 알았나 싶어서 유인물을 꺼내보니 분명히 동서울터미널이다. 조바심을 하고 앉아 있는데

여기 있었어요?”

하면서 김숙임 선생님이 나타난다. 1분쯤 더 있으니 송희석 선생님이 나타나서 속초행 버스 타는 곳에 있었다고 하면서 그리로 가자고 해서 같이 가보니 마석 산악회 이혁구씨도 와 있었다.

  인사를 나누고 조금 기다리니 김재영 선생님이 커다란 배낭을 지고 나타난다. 20분이 넘어도 이을숙 선생님이 안 와서 여차하면 차표를 무르고 다음 차를 타자고 하는데 말이 끝나자 곧 이을숙 선생님이 나타난다. 무거운 배낭을 지고 차에 오르니 곧 차가 출발하여 어슴푸레한 새벽 공기를 가르며 올림픽 대교를 건너 88도로를 타고 달린다. 미사리에서 팔당대교를 다시 건너는데 벌써 차들이 대교 위에 가득 차서 움직이지 못하고 있었다. 차들이 서로 몸을 부대끼며 일렬로 늘어서자 겨우 조금씩 움직이기 시작한다. 강을 끼고 달려서 그런지 아침 안개가 자욱하여 창문에 물방울이 가득 붙어서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다. 홍천에 도착해서야 겨우 안개가 조금 걷히고 홍천터미널에서 잠시 서길래

화장실 갔다 와도 돼요?” 하니까

안돼요.”

하고 한 마디로 잘라 버리는 버스 기사의 위세에 짓눌려 다시 자리로 돌아와 앉아 있으니 좀 더 가서 성산 휴게소에서 선다.

“45분까지 타야돼요

하는 기사 아저씨의 명령에 부지런히 내려서 휴게소에 들어가 우동을 사서 최대한 빠른 속도로 먹고 버스로 뛰어가니 기사 아저씨가 아직 안 와서 커피 한 잔을 요리조리 돌려 가며 마시고 있는데 기사 아저씨가 와서 얼른 탔더니 다 탔나 묻지도 않고 출발해 버린다.

! 겁나는 세상이네.’

생각하며 잠을 청해봐도 영 잠이 오지 않는다. 김숙임 선생님이 남들은 다 자는데 안 자면 늙은이 소리 듣는다고 자자고 해도 잠이 오지 않는다.

  남편이 운전할 때는 안 졸려고 기를 써도 잠이 쏟아지더니 이제는 자려고 기를 써도 잠이 안 온다. 잠자기를 포기하고 이런 저런 얘기를 하며 단풍 구경, 억새 구경을 하다 보니 어느 덧 한계령에 도착했다. 1030분이나 되어 매표소를 통과해 올라가는데 100m도 못 가서 김재영 선생님이 몸 컨디션이 영 말이 아니라고 하면서 다시 내려가 혼자서 서울로 가겠다고 엄살을 부린다. 조금 가면 풀린다고 달래고 달래서 조금 가면 또 도저히 안 되겠다고 서울 가겠다고 떼를 쓴다. 체했나 보다고 이혁구씨가 침으로 따고, 김숙임 선생님이 바지가 불편해서 그런가보다고 자기 바지를 꺼내 입히고 해서 또 얼마를 가니 얼굴이 조금 펴지는 것같았다. 아무래도 막내라서 어리광을 좀 부렸나보다. 빵을 좀 먹고 능선 길을 올라가니 멀리 왼 쪽으로 귀때기 청봉이 보인다.

아무리 보아도 귀 모양은 아닌데 왜 귀때기 청봉이라고 했나 모르겠네

하니까 이혁구씨가

겨울에 저기 올라가면 바람막이가 없어서 귀때기가 떨어져 나가는 것같애요.”

한다. 귀때기가 떨어져 나갈 것 같아서 귀때기 청봉인지, 대청 중청 소청 끝청은 눈 코 입같이 고만고만하게 붙어 있는데 혼자서만 귀 같이 멀리 떨어져 있어서 귀때기 청봉이 되었는지는 몰라도 민둥한 봉우리에 너덜지대가 많은 것이 춥기는 춥게 생겼다. 삼거리에 올라서서 대청봉을 향해 우측으로 틀어서 계속 능선을 타고 걷는데 갑자기 하얀 공 같은 물체가 멀리 보인다. 거기가 중청이란다. 송희석 선생님은

! 꼭 공룡알 같다.”

고 외친다. 내가 보기에는 무슨 레이더 기지 같았다. 능선 길을 가면서도 송희석 선생님은

아이구 배고파. 뭐 좀 먹고 가요.”

해서 빵 좀 먹고 조금 가면 또

아이구 배고파. 내 뱃속에는 거지가 들어앉았나 봐.”

하며 보챈다.

장인순 베이커리 빵 좀 먹어봐요.”

하면서 장인순 선생님이 직접 만들어준 빵을 꺼내 주었다. 장인순 선생님이

나는 대청봉에 못 가도 내 빵은 대청봉까지 가겠구나!”

했는데 끝청도 못 와서 먹었으니 뭐라고 할까? 생각하다가 배낭 속에서 가나 뱃속에서 가나 마찬가지지 하면서 다시 배낭을 지고 능선 길을 걸으니 멀리 파란 지붕의 봉정암이 보인다.

  대학교 1학년 가을에 산악회 사람들과 설악산에 와서 봉정암에서 잤던 기억이 났다. 그 때 봉정암에서 백담계곡으로 내려가면서 푸르디푸른 물에 둥둥 떠내려가는 붉디붉은 단풍을 바라보며 이렇게 아름다운 세상에 태어나 이렇게 아름다운 광경을 보았으니 지금 죽어도 여한이 없겠다고 생각했는데 벌써 30년을 더 살았다.

  말로만 듣던 용아장성, 공룡능선, 화채능선을 바라보며 가다 쉬고 가다 쉬고 하는 사이 어느 덧 중청 대피소에 다다랐다. 대피소 직원이 예약했냐고 묻길래 이혁구씨가 안 했다고 하니까 오늘은 예약 취소가 많아서 재워 주지만 다음부터는 예약하고 오라고 하면서, 물은 식수로만 써야지 양치질을 한다던가 세수를 하면 절대 안 된다고 으름장을 놓는다.

  꼭 생기기도 못 생긴 사람들이 더 씻는다고 말하는데 꼭 나를 보고 하는 소리 같아서 슬그머니 뒤로 물러났다. 나는 침낭을 안 가지고 가서 추울까봐 담요를 5개나 빌렸다. 71번에서 76번까지라고 자리를 정해주길래 담요를 들고 계단 아래로 내려가니 무슨 군대의 내무반같이 2층으로 된 긴 마루방에 번호가 쭉 매겨져 있었다.

  우리 자리에 짐들을 내려놓고는, 일찍 도착했으니 오늘 대청봉에 가보자고하여 대피소를 나섰다. 대청봉에 있는 나무들은 바람이 너무 세어서 그런지 모두 드러누워서 살고 있었다. 안내판에 보니 눈 잣나무라고 써 있었다. 내 생각에는 누운 잣나무라고 써야할 것같은데 왜 눈 잣나무라고 했는지 모르겠다. 특이한 환경의 토양과 식물을 연구하는지 여기저기 팻말이 붙어 있었다.

  오늘은 바람이 적은 편이라고 하는데도 어찌나 바람이 센지 여기도 귀때기청봉 같았다. 대청봉에서 낙조를 보려고 했었는데 너무 추워서 포기하고 정상주 한 모금씩을 마시고 김을 씹으며 그냥 내려왔다. 내려오면서 끝청으로 가라앉는 해를 바라보는 맛도 그런 대로 괜찮았다.

  중청대피소에 도착하니 상큼한 초승달이 우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이혁구씨가 밥하고, 송희석 선생님이 국하고, 가져온 반찬을 꺼내 저녁을 먹고 화장지로 설거지를 했다. 밥그릇, 국그릇, 물그릇, 커피그릇이 다 합쳐서 한 개씩이다. 9시에 소등한다고 해서 잠시 나와 하늘을 바라보니 구름 한 점 없는 새까만 하늘에 별들이 총총히 박혀 쏟아질 듯이 빛나고 있었다. 내가 아는 거라곤 북두칠성과 카시오페아밖에 없으니 물상선생님 체면이 말씀이 아니다. 별을 바라보고 있노라니 엄마, 별은 왜 안 떨어져? 본드로 붙였어?”

하고 묻던 어릴 적 딸 아이의 목소리가 들려오는듯 했다.

  다시 자리로 돌아와 담요 2장을 깔고 옷을 있는 대로 모두 입고 담요 2장은 덮고 자리에 누웠다. 원체 추위를 많이 타는 체질이라 중무장을 하고 자리에 누웠는데 조금 있으니 발이 답답해온다. 일단 양말을 벗고 조금 있으니 또 더워온다. 바지 한 개를 벗고. 파카 벗고, 차례차례로 벗어도 덮다. 나중에는 담요도 제켰다 덮었다 하며 어렴풋이 잠이 들었는데 누구 삐삐인지

삐리릭 삐리릭

소리가 나는 바람에 깼다. 시계를 보니 15분이다.

  화장실에 가려고 다시 양말 신고, 바지 껴입고, 파카까지 입고 밖으로 나가니 지평선 왼쪽에 있던 북두칠성은 오른쪽으로 돌아가고 카시오페아는 머리 꼭대기에 붙었다. 오리온과 황소, 마차부 자리도 떠올랐다. 몇 년 전인가 연수받으러 갔을 때 오리온자리를 모른다고 했다가 그것도 모르고 어떻게 과학 선생을 하느냐고 개망신을 당한 이후로 오리온자리 하나는 확실하게 외웠다. 밤에 현장에서 직접 배워야 하는데 별자리 그림은 백날 봐야 소용이 없다. 이번에도 가을철 별자리를 복사해 갔는데 아무리 들여다봐도 그 놈이 그 놈같고 이 놈이 그 놈같아서 통 갈피를 못 잡겠다.

  다시 자리에 돌아와 자리에 누워 눈을 감아도 별들이 총총하게 보인다. 저 많은 별 중에는 이미 없어진 별들도 있을 텐데 몇 만년 몇 억년 전에 떠난 빛이 아직도 오고 있으니 우리는 저 별이 지금도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반면에 몇 만년 몇 억년 전에 별이 만들어졌어도 그 빛이 지구에 도달하지 못하면 우리는 볼 수 없고, 그 자리에는 아무 것도 없다고 생각한다.

  눈에 보여야만 존재하는 것으로 믿는 우리는 참으로 엄청난 착각 속에 빠져 있는 것같다. 다시 잠이 오지 않아 뒤척이다가 잠이 조금 드나 싶었는데 사람들이 벌써 일어나 부스럭거린다. 새벽에 대청봉에 올라가려고 나서는 사람들이다. 시계를 보니 5시가 넘었다. 밖에 나가보니 안개가 자욱해서 일출 보기는 글렀다.

  아침을 해 먹고 커피에 과일까지 챙겨 먹고는 대피소에서 나와 대청봉을 배경으로 사진 한 장 찍고 중청을 돌아 소청으로 향했다. 소청에서 내려다보니 용아장성이 정면으로 보이고 멀리 귀때기 청봉도 보인다. 희운각 대피소로 발걸음을 옮기는데 김재영 선생님이 또 죽겠다고 엄살이다. 송희석 선생님이 오던지 말던지 맘대로 해. 오기 싫으면 한계령으로 도로 가.”

하면서 성큼성큼 걸어 내려간다. 별 수 없이 김재영 선생님도 따라 내려온다.

  희운각 대피소를 지나 양폭 산장을 거쳐 다시 한 번 올라서니 귀면암이다. 나는 귀면암이 무슨 암자 이름인줄 알았더니 바위 이름이었다. 무슨 자에 무슨 자 인지는 몰라도 귀신 귀자에 얼굴 면자 라면 천불동 계곡에 어떻게 귀신이 들어 왔을까? 천불동이면 부처님 바위가 1000개나 있다는 소리가 아닌가? 그런데 귀면암을 자세히 올려다보니 코도 우뚝하고 얼굴도 그런 대로 잘 생겼다.

  비선대를 거쳐 설악동에 내려오니 월요일인데도 어찌나 사람이 많은지 차가 밀려서 버스가 들어오지를 못한다. 한참만에 버스가 와서 타고 대포항에 들러 식사를 하고 횟집을 나서니 그 사이에 비가 뿌렸다.

  350분 고속버스를 타고 서울로 향할 때는 모두 지쳐서 차만 타면 푹 자려고 결심하고 탔는데 그게 또 맘대로 안 된다. 버스 기사가 너무 힘이 넘치는지. 서커스를 배웠는지 완전 공중곡예를 한다. 뱃속에 있는 회가 다시 살아났는지 속이 뒤집힐 지경이니 잠이고 뭐고 정신이 하나도 없다.

  새말 휴게실에서 커피 한 잔하고 다시 버스에 올라 서울로 향했다. 새말휴게소에는 몇 번 서 봤어도 새말 휴게실은 처음이다. 계속 들고일어나는 회들을 진정 시키면서 강변역에 다다를 때는 820분이 되었다. 동서울터미널 입구까지 와서 기사가 또 브레이크를 콱 밟으니 어떤 꼬마 여자아이가

엄마 버스가 깜짝 놀랐어?”

하고 묻는 바람에 한 바탕 웃었다. 이런 꼬마들의 한 마디 한 마디가 사막과 같은 어른들의 세상에 오아시스 같은 생명력을 불어넣어 주는 것 같다.

 

  버스에서 내려 전철역으로 향하는데 이을숙 선생님의 손에는 비닐 봉지가 들려 있었다. 차멀미를 참지 못해 다 와서 한바탕 했다는 것이다. 서쪽 하늘에는 오늘도 여전히 어제의 그 초승달이 우리를 배웅해 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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