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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야기

2026. 5. 19. 대만 옥산 기행문

by 아~ 네모네! 2026. 6. 1.

알짜배기 대만 여행

이현숙

 
기간: 2026년 5월 19일~ 26일
장소: 대만 옥산, 아리산, 화련, 양명산
 

  대만의 최고봉이 옥산이란 소리는 수십 년 전부터 들어왔다. 감히 여기에 갈 엄두도 못 냈는데 이번에 드디어 기회가 왔다. 4번 동생 부부가 여기 가려고 하는데 같이 가자는 것이다. 5번 동생까지 네 명이 가려고 제부가 몇 개월 전부터 산장을 예약하려 했지만 번번히 실패했다. 외국인 쿼터제로 외국인에게 우선 할당된 인원이 하루 24명 밖에 안 된다는 것이다. 나머지는 외국인과 내국인에게 함께 신청을 받아 추첨한다는 것이다. 몇 달간 신청했는데 매번 탈락 됐다가 드디어 당첨됐다는 연락이 왔다. 빨리 비행기표를 예약하라고 해서 5번 동생에게 같이 해달라고 부탁했다.
동생들과 제부와 같이 수리산에 갔을 때 제부가 일정표도 뽑아오고 간단히 설명도 해줬다. 그러면서 클룩을 설치하라고 한다. 제부에게 물어가며 앱을 설치하고 집에 와서 아들에게 부탁해 회원가입을 했다. 이지카드를 구입하라고 해서 23,000원 내고 산 후 아들이 수령증 QR코드도 프린트 해줬다.
 
  다음 날 교회 갔다가 집에 오니 5번 동생이 집에 있느냐고 카톡을 했다. 그렇다고 하니 금방 전화가 온다. 클룩을 열어서 자이에서 타오위안까지 고속철도 예약을 하라고 한다. 동생이 가르쳐주는 대로 화면을 올리고 내리고 클릭하고 하려니 정신이 하나도 없다. 미처 옷도 못 벗어서 진땀이 난다.
  내가 잘 못 하니까 핸드폰을 켜놓고 컴퓨터에서 해보라고 해서 핸드폰 스피커를 켜놓고 컴퓨터를 켰다. 50% 할인을 눌러야 한다고 해서 1+1을 눌렀다. 그런데 도착 장소에 타오위안이 활성화되지 않는다. 그래도 눌렀더니 사용 불가라고 나온다. 결국 포기하고 동생이 제부에게 다시 물어보겠다고 한다.
 
  동생들과 해외여행을 가면 값은 반으로 줄고 보는 건 두 배로 보니 좋긴 좋은데 할 일이 많은 게 문제다. 내 실력으로는 도저히 불가능해서 아들, 동생, 제부에게 부탁해야한다. 그래도 얼굴에 철판 깔고 오지 말라고 할 때까지 따라 다닌다. 참 대책 없는 노인네다.
 
  출발 1주일 전에 5번 동생이 카톡방에 사진을 올렸다. 두 발을 찍었는데 한쪽 발이 붓고 뻘겋다. 왜 발이 뻘거냐고 했더니 토요일날 산에 갔다가 내려와서 먼지털이기로 먼지를 털다가 넘어졌다는 것이다. 복숭아뼈가 골절되어 기브스를 해야하니 옥산에는 못 가겠다는 것이다. 에고~ 우째 이런 일이. 동생이 안 가면 나는 아무것도 못 하는데 큰일 났다. 나도 못 가는 거 아닌가 모르겠다. 1주일 안에 기적이 일어나서 말끔히 나았으면 좋겠다. 하지만 다음 날 도저히 안 돼서 비행기표와 기차표를 취소했다는 연락이 왔다. 4번 동생의 고소약과 대만 달러 환전한 것도 받아야하고 내 기차표도 다시 예약해야 하니 동생네 집으로 갔다.
  사패산 등산을 마치고 의정부경전철, 1호선, 4호선, 북한산우이선을 타고 솔샘역으로 갔다. 슈퍼에 들러 딸기를 사며 SK 아파트는 어디로 가야하느냐고 물으니 저쪽으로 가서 엘리베이터를 타고 3층에서 내려 사람들에게 물어보란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네이버 지도를 켜고 두리번 두리번거리며 사람들에게 물어물어 찾아갔다. 5번 동생이 현관 앞 오른쪽 작은 패드의 번호를 누르라고 했는데 어리버리 하다가 왼쪽 것을 눌렀더니 안 열린다. 자세히 보니 오른쪽에 작은 판이 보인다. 동생이 가르쳐준 번호대로 이걸 눌렀더니 스르르 문이 열린다. 24층으로 올라가 초인종을 누르니 동생이
"잘 찾아왔네." 하며 문을 열어준다. 나는 동생이 일어나지도 못해 기어 나오면 어쩌나 했는데 다행이다. 고소약과 대만 돈을 받고 기차표를 예매하는데 핸드폰으로 해도 안 되고 컴퓨터로 해도 안 된다. 할 수 없이 제부에게 전화해도 안 받는다. 동생이 같이 살고 있는 친구의 딸을 불러내어 해보려는데 제부가 카톡을 보냈다. 자기 친구가 같이 가기로 했으니 기다리란다.
   간김에 생선구이를 시켜 먹고 집으로 돌아왔다. 여행사를 통하지 않고 자유여행을 하려면 보통 힘든 일이 아니다. 세상 구경하려다 저승 구경할 것 같다. 매사에 어리버리하니 자신감이 없어 아무 것도 못 하겠다.
 
  다음 날 제부가 카톡방에 글을 올렸다. 옥산 산장은 예약자가 불참시 다른 사람으로 대체할 수 없단다. 되게 까칠하게 군다. 예약할 때 예약자 이름과 동행인 이름을 다 쓰나 보다. 하긴 대기자가 밀려있는데 다른 사람이 들어가면 안 될 것이다. 세 명이 가면 호텔에서 나 혼자 자야 하나 걱정이 된다.
  그런데 그 후 제부 친구가 옥산은 빼고 다른 일정은 같이 하겠다는 연락이 왔다. 다행이다. 제부 친구가 오면 제부가 친구와 자고 나는 4번 동생과 함께 자면 되니 안심이다. 나이 들수록 왜 이렇게 매사에 자신이 없어지는지 모르겠다. 아무래도 얼마 안 돼 방콕 신세가 될 것 같다.
 
  출발 3일 전 아침에 일어나니 눈이 퉁퉁 붓고 시뻘게졌다. 엊저녁에 고등어를 먹었는데 알레르기가 났나 보다. 시간이 가면 낫겠지 하고 그냥 있었더니 점점 심해진다. 예전에도 고등어 먹고 두드러기 난 적이 있었는데 방심했다. 그때 얼른 병원에 갔어야 하는데 이런저런 일을 하다 보니 저녁때가 되었다.
  아들네가 와서 저녁 식사를 하고 간 후 이부자리까지 다 펴놓고 나니 도저히 안 되겠다. 밤 10시가 넘었는데 내일 아침이면 더 부어서 눈을 못 뜰 것 같다. 그러면 119를 불러야 할 테니 안 되겠다 싶어서 건대병원 응급실로 갔다. 응급실 입구를 찾느라 이리저리 헤매다가 들어가니 대기 환자가 엄청 많다. 주말에는 외래 진료를 안 해서 그런가 보다. 한참 기다리다가 이름을 불러 안으로 들어가니 거기도 꽉 찼다.
  잠시 후 간호사가 오더니 혈압을 재고 이런저런 줄을 기계에 연결한다. 그 후 의사가 오더니 주사를 맞아야겠다고 한다. 차가운 수액과 함께 치료제가 혈관을 타고 들어간다. 천장의 에어컨에서 찬 바람이 내려오니 춥다. 침대에 놓인 시트를 바짝 끌어 올려도 춥다. 응급실에서는 환자복 대신 시트를 준다. 시트를 덮고 있자니 친정아버지도 떠오르고 남편도 떠오른다. 시트로 푹 덮었던 모습이 생각난다. 나도 이대로 시트에 폭 싸여 냉동실로 갔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주사를 다 맞고 약을 받아 나오니 이미 지하철은 끊겼고 택시를 탔다. 심야 요금을 내고 집에 오니 새벽 두 시가 됐다. 낮에 빨리 병원에 갈 걸 미루다가 거금 10만 원 날렸다. ㅠ ㅠ
  그런데 출발일이 다 되어가도 눈의 부기가 가라앉지를 않는다. 눈꺼풀이 반쯤 내려와 더 올라가지 앉는다. 이래 가지고 대만을 가기는 가려나 모르겠다. 가도 반밖에 못 볼 것 같다.
 
5월 19일 타오위안, 자이
  새벽 4시에 일어나 부리나케 준비를 하고 첫차를 타려고 사가정역으로 갔다. 첫차인데도 사람이 엄청 많다. 참 부지런한 사람도 많다. 고속터미널역에서 9호선을 타니 여기도 사람이 많아 서서 갔다. 김포공항에서 공항선을 타니 여기도 자리가 없는데 나보다 먼저 탄 청년이 한 자리 빈 곳에 앉지 않고 양보해줘서 겨우 앉았다. 늙어서 짐을 끌고 낑낑대니 민폐가 심하다. 그 청년 복 많이 받았으면 좋겠다.
  인천공항 지하철역에서 동생을 만나 공항으로 들어가서 체크인을 하려니 탑승권을 보여달란다. 셀프 체크인으로 탑승권을 뽑았다. 동생 부부는 이미 모바일 탑승권으로 만들어 왔다. 나도 집에서 해올 껄 그랬다. 제부 친구를 만나 출국 수속을 받으러 갔다.
  얼굴이 엉망 됐으니 카메라가 날 인식해줄까 걱정했는데 무사히 통과했다. 올해 들어 2월, 3월, 4월, 5월 네 번째 나가는데도 공항에만 오면 정신이 나가 항상 허둥댄다.
  안으로 들어가 후드 코트로 가서 두부 비빔밥과 순두부, 떡볶이를 먹었다. 이건 제부 친구가 쐈다. 제부 친구는 닉네임이 추산이란다. 추사 김정희와 다산 정약용을 따서 지었다고 한다.
  기내식 한 번 먹으니 두 시간이 후딱 지나간다. 타오위안 공항에 내려 짐을 찾아 이지카드 받는 곳으로 갔다. 수령증을 보여주고 카드를 찾아 전철을 타러 갔다. 쫑리 방향으로 타긴 잘 탔는데 한 정거 가니 종착역이란다. A13까지만 운행하는 거였다. 다시 내려 다음 열차를 타고 A18에서 내렸다.
  타오위안 고속철도 역에서 3시 30분 기차표를 1시 43분 기차로 바꿨다. 똘똘한 제부 덕에 2시간 가까이 앞당겼다. 자고로 머리가 좋아야 신간이 편하다.
  고속철도를 타고 1시간 정도 가서 자이역에서 내렸다. 여기서 7212번 버스를 타고 30분 정도 이동하여 일반열차 자이역으로 갔다. 역에서 물어물어 스타리 호텔로 갔다. 10층에 있는 호텔이다.
  호텔에 들어가면 그게 끝인가 했더니 히노키 마을을 보러 가자는 것이다. 우버 택시를 타고 히노키 마을로 갔다. 히노키는 편백 나무라는 뜻이다. 일본식 집들이 많은데 편백 나무로 지은 것이라고 한다. 이 골목 저 골목 다니다 보니 연못도 있고 소원을 적은 나무조각을 잔뜩 걸어놓은 벽도 있다.

 
  상점에서 나무조각을 사서 열심히 적고 있는 아가씨도 있다.

 
  무슨 소원을 빌었을까 궁금해진다.
 
  한 가게에 들어가 아이스크림을 사먹었다. 한 개에 5000원인데 맛이 그런대로 괜찮다.
히노키 마을을 나와 철도박물관으로 갔다. 아리산의 목재를 자이까지 실어나르던 기차들이 전시되어 있다.

 
  철도박물관을 나와 한식락이란 식당으로 가서 두부비빔밥을 먹었다. 식당을 찾느라 이리저리 알바를 했다.
호텔로 돌아오며 과일과 맥주를 사서 호텔 방 바닥에 앉아 먹고 마시며 하루를 마무리했다. 오늘은 참 길고 긴 하루였다.
 
5월 20일 대탑산
  아침 식사를 하러 밖으로 나가니 식당 문을 연 곳이 별로 없다. 한참을 헤매다가 조식을 한다는 집으로 들어갔다. 샌드위치와 국수 등을 먹었다. 맛나게 먹고 있으니 "오이씨?" 하고 묻는다. 우리가 일본 사람인 줄 알았나 보다. 이 사람들은 일본말과 한국말을 잘 구분하지 못하나 보다. 우리가 한국말로 한참 얘기를 했는데도 말이다.
  식사 후 호텔로 돌아오는데 자이역 앞에 긴 줄이 서 있다. 아리산 가는 사람들이다. 배낭으로 긴 줄을 세워 놓았다. 사람들 참 열성이 넘친다.
  호텔에 돌아와 짐을 챙겨 나와 우버 택시를 부르니 안 잡힌다. 자이역 앞 택시 승강장에서 일반 택시를 타고 자이 고속철도역으로 갔다. 렌트카 회사에 8시로 예약을 했다는데 아슬아슬하게 도착했다. 모든 스케줄을 예약대로 움직여야하니 긴장의 연속이다. 마치 007작전을 수행하는 듯하다.
  차를 빌려 아리산으로 향했다. 가다가 코끼리산이 보이는 쉼터에서 잠시 쉬었다.
  아리산 신목 호텔 앞에 주차하고 세븐일레븐에 가서 컵라면을 먹고 산행을 시작했다. 라면을 먹어서 그런가 알레르기 약을 계속 먹어서 그런가 영~ 속이 불편하다. 조금 올라갔는데 한 청년이 "몽키 몽키" 한다.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쪽을 보니 정말 원숭이가 있다. 우리는 원숭이를 구경하고 원숭이는 우릴 구경한다.

 
  소평 차점을 지나 계속 올라가니 철길이 나타난다. 일출 전망대 가는 기찻길이다. 엄청난 고목들이 늘어서 있다. 여기저기서 사진 찍기 바쁘다.

 
  이름 모를 야생화가 우릴 반긴다. 천남성 같은데 잎이 다르다. 모야모에 물어보니 아리사에마라고 한다.

 
  원양호용담도 예쁘다.

 
  벌벌 기다시피 엉금엉금 걸어 3.7km를 가니 대탑산 정상이다. 안개가 자욱하여 눈에 뵈는 게 없다. 정상에 있는 안내판에 대탑산 2663m 라고 쓴 종이가 묶여있다. 이걸 들고 사진을 찍었다.

 
  내려오는 길도 안개에 싸여 아련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아리산 자매담에도 들렀다. 언니 연못과 동생 연못이 있다.

 
  3대가 함께 존재하는 삼대목까지 보고 상가 쪽으로 내려와 샤브샤브를 먹었다. 오늘이 내 생일이라고 거한 걸 시켰는데 알레르기 때문에 고기도 못 먹고 술도 못 먹으니 그림의 떡이다. 복 없는 년은 자빠져도 코가 깨진다더니 먹을 복이 지지리도 없다.
  쎄븐일레븐에 들러 빵과 맥주를 샀다. 호텔로 돌아오는 길에 보니 초승달과 목성, 금성이 아름답게 빛난다. 스텔라리움으로 보니 위의 것이 목성이다.
  호텔방에 와서 생일 파티를 했다. 빵에다 새우깡을 꽂으니 그럴 듯하다.

 
  이번 여행 중에는 내 생일과 5번 동생 생일까지 들어 있는데 5번 동생이 못 와서 무척 아쉽다.
오늘은 4인 1실이라 더블 침대 두 개에 누워 잠을 청했다
 
5월 21일 아리산
  아리산 일출 전망대 가는 기차를 타려고 새벽 3시에 일어나 부지런히 준비했다. 추산은 어제 스텔라리움으로 별 보는 방법을 알려줬더니 벌써 밖으로 나가 별을 보고 있다. 학구열이 대단하다. 젊다는 소리다.
  호텔을 나와서 아리산 일출 전망대 가는 기차역으로 깄다. 매표소는 열지도 않았는데 사람들이 벌써 줄을 서 있다. 추산과 제부는 매표소 앞에 줄을 서고 동생과 나는 타는 곳에 가서 줄을 섰다. 제부와 동생이 작년에 왔다 가서 도가 텄다.
  기차에서 내려 정상으로 갔다. 깜깜한 길을 서로 앞다투어 달려간다. 빨리 가서 좋은 자리를 차지하려고 그러나 보다. 사람은 잉태되는 순간부터 죽는 순간까지 경쟁이다. 화장터에서도 줄을 서야 하니 말이다.
  구름이 약간 있기는 하지만 그런대로 볼만하다.

 
  국립공원 직원이 나와 그림이 그려진 헝겊을 들고 뭐라고 설명을 하는데 중국말로만 하니 뭔소린지 모르겠다.

 
  갑자기 웬 애기 소리가 나자 다들 웃음을 터트린다. 나중에 애기 아빠에게 물어보니 9개월 됐단다. 돌도 안 된 아기가 벌써 아리산 일출까지 봤으니 앞날이 창창할 것 같다.

 
  아리산 정상에는 카페와 박물관도 있다.
6시에 내려가는 기차를 타려고 올라올 때 산 표를 내니 왕복표가 아니란다. 다시 매표소로 가 표를 사서 기차에 올랐다. 종점에서 내려 식당으로 갔다. 호텔에서 준 식권에 표시된 식당이다. 간단한 뷔페인데 그런대로 먹을만하다.
  호텔로 돌아와 추산은 호텔에 남고 세 명이 차를 끌고 옥산으로 갔다. 입산신고소에서 신고를 했는데 여권 검사를 하며 얼굴을 확인한다. 5번 동생 대신 추산이 오면 어떨까 했는데 천부당만부당한 소리다. 대기자가 많기 때문에 취소자 대신 다른 사람을 넣으면 민원이 발생할 것이다. 신고소 앞에서 셔틀버스를 타고 산행기점으로 갔다. 버스가 작아서 6~7명 밖에 못 탄다.
  등산로 입구에서 산행을 시작했다. 북봉은 3920m, 동봉은 3940m다. 동봉이 주봉인가 보다.
계속 올라가는데 웬 짐꾼이 내려온다. 배운 산장에 짐을 나르고 오나 보다. 저런 사람들 덕에 많은 사람이 옥산에 오를 수 있다. 고맙다.

 
  등산로 입구에서 배운 산장까지는 8.5km다. 가다가 화장실 표시가 있어서 왼쪽으로 올라가다가 힘들어서 노상방뇨를 하는데 웬 남자가 올라온다. 완전 쪽 팔렸다.
  동생과 제부는 같이 출발해도 1분 안에 내 시야에서 사라진다. 혼자서 천천히 오르다 보니 위에서 동생이 부른다. 대피소로 올라가니 동생과 제부는 이미 간식을 다 먹고 바나나 한 개와 빵 반쪽을 내 몫으로 남겨 놨다. 다 먹고나니 청솔모가 나타난다. 이놈 동작이 느려서 빵 한 톨도 못 얻어먹었다. 여기서 출발하려는데 비가 부슬부슬 내린다. 비옷을 챙겨 입고 다시 산행을 시작했다.
  도저히 끝날 것 같지 않던 산행길이 끝나고 갑자기 배운 산장 건물이 눈에 들어온다. 안으로 들어가니 동생과 제부가 체크인을 하고 있다. 현금으로 내야 하는데 돈이 부족하니 대만 돈 1000 달러를 달라고 하여 얼른 꺼냈다. 내가 늦어서 빨리 체크인을 못 한 것 같아 미안하다.
  방 배정을 받은 후 얼른 옷을 갈아입었다. 이 방에 있는 침대 중 내 자리에만 커튼이 있다. 완전 비지니스석이다. 5시에 저녁을 먹으러 내려가니 식당에 사람이 가득하다. 겨우 자리를 잡고 앉아 배식을 받았다. 세 가지 초이스가 있다. 소고기, 돼지고기, 닭고기다. 우리는 돼지고기를 선택했다. 체크인 할 때 식권을 사는데 고기 종류에 따라 식권 색이 다르다. 간단하지만 먹을만하다.
  내일은 2시에 죽을 먹고 정상에 가야하니 일찌감치 잠자리에 들었다. 침낭 하나에 2만 원이라고 해서 있는 옷을 다 꺼내 입고 그냥 잤다.
 
5월 22일 옥산
  새벽 1시 반에 일어나 대충 준비하고 식당으로 내려갔다. 간단한 조식을 먹고 옥산 정상을 향해 출발했다. 달도 별도 없는 캄캄한 밤이다. 줄지어 올라가는 사람들의 불빛만 반짝인다. 동생과 제부는 순식간에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한참 올라가는데 한 여자가 혼자 왔느냐고 묻는다. 일행이 앞에 있다고 말해도 영어를 못 알아듣는지 번역기를 돌려 보여주는데 일본말이다. 코리아라고 해도 못 알아듣더니 한국이냐고 한다. 그렇다고 하니 한국어로 번역한 글을 보여준다. 혼자 가면 위험하니 자기와 같이 가자고 한다. 이 여자는 대만 팀의 가이드인 듯하다. 남자 가이드는 앞에 서서 가고 이 여자는 뒤에서 후미를 본다. 졸지에 대만 팀에 합류하여 천천히 올라갔다. 동생과 제부가 추운 정상에서 떨며 기다릴 것 같은데 앞서서 갈 수도 없다. 걷는 시간보다 쉬는 시간이 더 많다. 안개가 자욱하게 올라와 나무와 꽃에 물방울이 잔뜩 맺혔다. 바위 틈에 핀 에델바이스도 촉촉하게 젖어 물을 흠뻑 마시고 있다.

 
  우리야 안개가 없이 청명한 하늘이 좋지만 식물들에게는 이것이 일용할 양식이다. 한 마디로 생명줄이다.
정상 400m 전쯤 갔더니 동생과 제부가 기다리고 있다. 여기서부터는 동생을 따라 올라갔다. 물론 동생과 제부는 안개 속으로 금방 사라졌다. 그래도 대만 팀을 앞질러 올라갔다. 바위에 설치해놓은 쇠사슬에 물방울이 가득 맺혀 물이 줄줄 흐른다. 손으로 잡으니 장갑이 젖는다. 그래도 위험하니 안 잡을 수가 없다. 안개 속에서 희미한 불빛을 따라 아슬아슬하게 올라가니 드디어 정상이다. 일출 보기는 틀렸으니 인증 사진만 찍고 하산을 시작했다.

 
  바위가 젖어 내려오는 길이 더 조심스럽다. 이름은 곱디고운 옥(玉)산인데 생김새는 완전 칼이다.
정상에서 배운 산장까지 2.4km를 쉬지도 않고 물 한 모금 안 마시고 내려왔다. 남겨두고 올라간 짐을 챙긴 후 쌀국수를 먹고 다시 출발했다. 8.5km 내려오는 동안 대피소에서 두 번 쉬고 화장실도 안 가고 열심히 걸어도 따라갈 수가 없다. 제부와 동생은 대피소에서 나를 마냥 기다린다.
  한참 내려오는데 한 남자가 나를 보고 몇 살이냐고 묻는다. 77살이라고 하자 코리아 후렌드라고 하며 함께 사진을 찍자고 한다. 대만에도 쪽 팔리게 생겼다. 나이 많은 노인이 열심히 산행하는 모습을 보면 자기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기나 보다.
  산행기점에 내려와 셔틀버스를 타고 우리 차가 있는 주차장으로 왔다. 여기서 다시 아리산 국립공원으로 와 추산을 만났다. 추산은 우리가 점심도 못 먹고 온다고 샌드위치와 우유를 사가지고 나왔다. 자이 고속철도역으로 가다가 전망 좋은 곳에 주차하고 정자에 앉아 샌드위치를 먹었다.
  자이 고속철도역에 도착하여 기차표를 바꿔보려고 했지만 여의치 않아 두 시간을 대합실에서 시간을 죽였다. 예약했던대로 5시 32분 기차를 타고 타이페이로 가서 다시 화련 가는 기차를 탔다.
  밤에 도착하여 체크 인을 하고 편의점에서 컵라면과 김치를 사다가 방에 와 간단히 저녁을 먹고 1시 반에 잠자리에 들었다. 오늘 24시간 풀코스로 놀았더니 돌아가실 지경이다.
 
5월 23일 화련
  과자와 우유, 사과와 망고로 간단히 아침식사를 했다.

 
  오늘은 화련 관광을 하는 날이다. 택시를 8시간 빌려 여기저기 둘러 보기로 했다. 화련은 길이 좁고 험해서 70세 이상인 사람에게는 차를 빌려주지 않는단다. 8시 30분에 호텔 앞에서 택시 기사 장준웨이를 만났다. 1일에 15만원이다.
우선 동서횡관공로를 보러 갔다. 대만을 동서로 횡단하는 도로다.

 
  타이루거 협곡은 10시에 개방하므로 입구에 택시를 주차한 후 데칼룬트레일 쪽으로 갔다. 여기서 조금 걷다가 시간이 되어 택시로 돌아왔다. 타이루거 국가공원은 제주도 한라산과 자매결연을 한 공원이다. 화련에는 2024년 4월 3일 7.2도의 강진이 발생하여 협곡이 많이 망가졌다. 택시를 타고 약 30분 달려 천상(텐샹)까지 올라간 후 주차장에 택시를 대고 건너편에 있는 상덕사로 갔다. 상덕사에는 열 개의 얼굴을 가진 보현보살상이 있는데 얼굴 표정이 모두 다르다.

 
  상덕사에서 내려와 트피두 트레일 쪽으로 갔다. 여기서 천상기독교회 방향으로 걸어가니 옛 성당 건물이 나타난다.
다시 주차장으로 돌아와 택시를 타고 입구 쪽으로 내려왔다. 곳곳에 지진으로 무너진 바위 지대가 나타난다. 좁디좁은 협곡에 바위를 깎아 만든 찻길이 아슬아슬하다.

 
  다시 입구를 향해 내려오다가 장춘사를 보았다. 쌍폭 위에 있는 두 개의 건물이 그림 같다.

 
  협곡을 나와 식당으로 갔다. 생선찜과 돼지고기, 양배추볶음, 죽순요리 등을 시켰는데 양배추와 죽순, 계란탕이 나온 후 아무리 기다려도 다음 요리가 나오지 않는다. 제부가 아무래도 이상하다며 주인을 불러 얘기하자 쏘리를 연발하며 서비스로 계란볶음요리를 준다. 요새는 인터넷이 발달하여 어느 누가 삐딱하게 댓글을 올리면 가게 문 닫을 지경이니 주인들이 손님에게 엄청 잘 한다.
  식사 후 청수단애 절벽으로 갔다. 이름 그대로 푸른 바다와 깎아지른 절벽이 절경이다.

 
  여기를 떠나 신성 구시가지를 보러 갔다. 레몬주스가 유명하다기에 가게 앞에 가니 사람들이 줄 서서 사고 있다. 맛을 보니 시원하고 새콤달콤하여 갈증이 싹 가신다.
  다음은 파란 담으로 유명한 신성사진관으로 갔다. 집을 배경으로 사진 찍는 사람들이 많다. 실내에는 옛날 카메라가 보인다.

 
  이름은 新城인데 지금은 구시가지가 되었다. 그 시절에는 이곳이 새로운 성이었나 보다. 인생도 무상하지만 거리도 무상하다.
  구시가지를 떠나 모찌떡 파는 가게로 갔다. 모찌 종류가 어마어마하다. 모찌를 사가지고 칠성담 해변으로 갔다.
  칠성담이라고 해서 무슨 연못인 줄 알았더니 그냥 바닷가다. 여기서 모찌와 레몬주스를 먹고 해변가를 걸었다. 곳곳에 돌탑이 있다. 탑을 쌓으며 소원을 빌면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동생네도 쌍둥이 손주가 무럭무럭 잘 자라라고 7층 돌탑을 쌓았다.

 
  한 젊은 부부는 21층 탑을 쌓았다. 이들의 소원이 꼭 이루어졌으면 좋겠다.

 
  칠성담 해변을 떠나 호텔로 돌아와 잠시 쉰 후 야시장을 보러 갔다. 자유광장을 지나 팬케이크를 먹으러 갔다. 45달러짜리는 계란이 들어가고 30달러 짜리는 안 들어간다고 해서 45달러짜리 두 개를 사서 나눠 먹었다.

 
  다음은 만두를 먹으러 갔다. 찐만두와 샤오롱바오 만두를 시켰다. 가게 앞에 있는 절에서는 법회가 열리는지 엄청 시끄럽다. 호떡집에 불난 것 같다. 내일이 부처님 오신 날이라 성대한 법회가 열리는 듯하다.
  만두를 먹고 해변으로 가는데 불꽃놀이를 하는지 폭죽 터지는 소리가 들리고 밤하늘에 불꽃이 찬란하게 펼쳐진다.
동대문 자강 야시장으로 들어서니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다. 곳곳에 버스킹하는 젊은이도 있다.

 
  이곳의 구운 옥수수가 유명하다고 해서 제부가 줄을 서서 주문한 다음 한참 후에 찾아왔다. 옥수수를 불에 구운 후 무슨 소스를 잔뜩 발라놨다. 먹어보니 달아도 너~무 달다. 먹기를 포기하고 싸가지고 택시를 타고 호텔로 돌아왔다.
  마트에 들러 연어회와 삶은 꼴뚜기, 두부, 우유 등을 사가지고 방으로 돌아왔다. 엘리베이터에 보니 웬 사진이 붙어 있고 작은 쪽지도 붙어있다. 손님들이 호텔 직윈을 평가하는 표 같다. 사장님의 생각이 기발하다.
  방에 와서 연어와 꼴뚜기를 안주 삼아 어제 남은 맥주를 먹었다. 추산이 뜨거운 물에 옥수수를 씻어 말갛게 벗겨놨다. 내일 기차에서 먹어야겠다.
  오늘도 빡센 일정을 마치고 잠자리에 들었다.
 
5월 24일 타이페이
  제부가 아침에 동생에게 전화를 했다. 9시 55분 기차를 9시로 변경했으니 7시에 아침식사를 하자는 것이다. 1분 1초라도 아껴서 더 보여주려는 노력이 고맙다.
  일어나 눈물 약을 넣는다는 게 스킨을 넣었다. 에고~ 환장하겠네. 해가 갈수록 실수하는 종류도 다양해진다. 앞으로 또 무슨 짓을 저지를지 몰라서 불안 불안하다.
  이 호텔은 와이파이 비밀번호를 거울 밑에 대문짝만하게 써 놓았다. 좋은 아이디어다.
  오늘은 로비에서 아침식사를 하기로 했다. 어제 사온 빵, 우유, 요구르트, 망고, 계란 등으로 푸짐한 아침상을 차렸다.
  망고까지 먹고 짐을 챙겨 화련 기차역으로 갔다. 화련역을 출발해서 2시간 반 정도 가니 타이페이역이다. 역에서 나와 택시를 타고 그린월드 호텔로 갔다. 여기에 짐을 맡기고 우육면을 먹으러 갔다. 소고기가 엄청 많이 들었다. '중'자를 시켰는데도 남았다.
  지하철 西門(시먼)역 5번 출구에서 훤트립 fun trip 여행사의 오후 관광을 하기로 했다. 1일 관광이 9600원이다. 와~ 싸다. 기다리다가 날이 하도 더워 지하철역 지하상가로 내려갔다.
  조금 걸어가니 북해도 아이스크림 집이 보인다. 추산이 안으로 들어가 직원과 뭐라고 뭐라고 하더니 오라고 손짓을 한다. 가보니 아이스크림을 먹자고 한다. 카드가 되냐고 물었나 보다. 대만은 카드 안 되는 곳이 너무 많다. 바닐라 아이스크림을 먹었는데 맛이 엄청 진하고 맛있다. 맛나게 먹고 있는데 옆의 서양 남자가 추산의 등산화를 보더니 매우 무거워 보인다고 자기 것은 아주 가볍단다. 그러면서 바꿔 신어 보자고 신을 벗어준다. 내가 들어봐도 엄청 가볍다. 상표를 보니 사구아로베어풋 슈즈다. 어디 상품이냐고 하니 타이완 제품이 아니고 중국산이란다. 구겨지기도 잘 해서 주머니에 넣고 다녀도 되겠다.

 
  시먼역 5번 출구로 나오니 훤트립 여행사 직원이 기다리고 있다. 차량번호와 휴대폰 번호를 적은 종이를 들고 있다가 찍으라고 한다. 이것 참 좋은 아이디어다.
  버스에 올라 예류지질공원으로 갔다. 여기는 2001년도에도 왔었다. 여왕머리(클레오파트라 바위)를 봤던 기억이 난다. 들어가는 입구에 클레오파트라 바위의 목이 매년 얼마나 가늘어 졌는지 나타낸 사진이 있다.

 
  낙타 바위를 보고 안으로 들어가 왼쪽 계단으로 올라가 전망대에서 공원을 내려다보니 전체가 한눈에 들어온다.

 
  여왕 머리 바위로 가니 사진을 찍으려는 사람들이 줄을 길게 서 있다. 우린 옆쪽으로 가서 대충 찍었다.

 
  선녀 신발을 찾으려고 "선녀 신발이 어디 있지?" 하며 두리번거리니 경비하는 아저씨가 신발 저기 있다고 알려준다. 한국인이 하도 많이 오니 한국말도 아나 보다.

 
  대충 구경하고 나오다가 짝퉁 여왕 머리 앞에서도 사진을 찍었다.

 
  다음은 스펀(十分)으로 갔다. 스펀은 화전민 10가구가 모여 살았는데 열 가루라서 스펀이라고 했다. 화전민 마을이었는데 통신수단으로 천등을 띄었다. 석탄을 발견한 곳인데 폐광된 후 쇠퇴했다. 그 후 천등 날리기를 하며 유명 관광지가 되었다. 천등에 소원을 적는데 '이세 기원'이라고 쓴 젊은 부부도 있다. 얼른 애기가 생겼으면 좋겠다.
우리 네 명도 각자 소원을 적어 날렸다. 어떤 천등은 올라가다가 어느 집 지붕에 걸렸다. 띄운 커플이 안타까워 어쩔 줄 모르자 직원이 긴 막대를 가져가 옆으로 밀어 하늘로 보내줬다. 천등 날리기를 마치고 지우펀으로 갔다.

 
  지우펀은 금광이 있던 곳인데 폐광되었다. 사람들이 떠나고 노인만 살았는데 여기서 ‘비정성시’라는 영화를 찍었다. 비정성시는 2.28 사건을 배경으로 한 영화인데 영화 촬영지가 지우펀이었다.
  대만이 일제 식민지에서 벗어난 직후 경찰의 폭력 사건으로 민간인이 사망하면서 본성인과 외성인의 갈등으로 번져 대규모 시위로 발전했다. 그 당시 집권 세력은 장제스의 국민당 정부였는데 군대를 투입해 시위대를 강경 진압하면서 수만 명의 희생자를 냈다고 한다. 비정성시의 대표적인 주인공은 양조위로 베니스 영화제에서 황금사자상을 수상하면서 세계적인 스타가 되었다.
[출처] 대만 - 지우펀(2026/04/22)|작성자 esau92
  이 영화가 대박이 났고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양조위가 일몰을 바라본 곳에 아미차루라는 다방이 있었고 그 후 10개나 생겼다.
  1930년대에 만들어서 길이 매우 좁다. 300m 정도 걸어서 상가를 지난다. 입구에는 추두부집이 있다. 안으로 들어가니 온갖 가게들이 빽빽이 들어차 있고 사람들이 물밀듯이 몰려다닌다. 정신이 하나도 없다. 갈증이 나서 수박주스를 사 먹었다.
  아미차루 앞에도 사람들이 사진을 찍느라 북새통이다.

 
  홍등거리를 지나 집합 장소로 오니 한 건물 앞에서 아이들이 음악에 맞춰 춤을 추고 있다. 확실히 아이들은 우리 사회의 활력소이자 비타민이다.

 
  지우펀까지 다 보고 시먼역까지 오니 9시 40분이나 됐다. 만원도 안 되는 가격에 알차게 구경 한번 잘 했다. 닉네임이 유준상인 우리 가이드는 경력이 오래됐는지 사람들 인솔을 기막히게 잘한다. 매일 수많은 사람을 불만 없이 매끄럽게 인솔하려면 엄청 힘들텐데 마치 가이드의 달인처럼 보인다.
오늘도 아침부터 밤까지 빡센 하루를 보내고 잠자리에 들었다.
 
5월 25일 중정기념당, 양명산
  오늘은 중정기념당을 보고 양명산에 오르기로 했다. 지하철을 타고 중정기념당역에서 내려 5번 출구로 나가니 자유 광장이 나타난다. 거대한 건물들이 우리를 압도한다.

 
  어제까지 문화예술제를 해서 시설물 철거를 하고 있다. 9시에 육중한 철문이 열리고 장개석 동상이 나타난다.
계단 아래쪽에서는 근위병 교대식이 진행된다. 절도 있는 동작이 로보트 같다.

 
  교대식을 보고 중정기념관으로 들어가니 장개석의 사진과 유물들이 전시되어 있다. 장개석과 송미령 여사의 결혼사진도 있다. 둘 다 인물이 출중하다.

 
  1966년 이곳을 방문한 박정희 대통령과 찍은 사진도 눈에 띈다.

 
  중정기념관을 보니 지도자의 역활이 얼마나 큰지 실감 난다. 모택동과 장개석의 이념이 달라 하나의 중국이 둘로 갈라져서 무수한 국민이 불편을 겪는다는 생각이 든다. 어떻게든 서로 합의해서 하나의 중국을 유지했으면 좋았을 텐데.
중정기념당을 나와 다시 전철을 타고 시린역에서 내려 260번버스를 탔다. 양명산 종점에서 내려 108번 셔틀버스를 탔다. 108번 버스는 빨간색과 초록색이 있어서 목적지에 맞는 걸 타야 한다. 우린 빨간색을 타고 올라갔다. 고개 마루에서 내리니 바람이 어찌나 센지 화장실까지 걸어가기도 힘들다. 스틱으로 중심을 잡으며 간신히 화장실을 다녀와 산행을 시작했다.
  산에서는 곳곳에 흰연 기가 피어오르고 노란 유황이 돌에 붙어있다. 등산로에는 억새뿐이라 그늘이 없다. 그나마 바람이 강해서 다행이다. 올라가며 보니 꼬리가 파란 다섯 줄 도마뱀도 있고 꼬리가 잘린 도마뱀도 있다.

 
  정상까지 1.6km 계단길을 계속 올라가니 드디어 칠성산 주봉 정상(1121m)이다.

 
  날씨가 청명하니 가시거리가 엄청나다. 여기서 동봉으로 갔다.

 
  동봉에서 또 인증샷 한번 날리고 몽환호로 갔다. 꿈 속에서나 볼 수 있는 아름다운 호수다.

 
  다음은 냉수갱으로 갔는데 물이 없다. 냉수에 발좀 담가보나 했더니 말짱 꽝이다.

 
  다음은 경천강으로 갔다. 넓은 초원이 눈 앞에 펼쳐진다. 초원으로 올라서는 곳에 세 개의 기둥이 서 있다. 소를 피하는 기둥이다. 소가 쫓아오면 기둥 뒤로 피하라고 그림으로 자세히 그려놨다. 기둥 뒤에 있으면소가 쫓아오다가 좁은 기둥에 걸려 못 나온다는 것이다.
  경천강 초원 위에서 웨딩 촬영하는 신혼부부들이 여럿 보인다. 안아주고 업어주고 난리가 났다. '그래 지금이 좋을 때다. 맘껏 즐겨라. 이제부터 애 낳고, 키우고, 부부 싸움하며 살려면 고생을 바가지로 할 꺼다.'

 
  의자에 앉아 쉬고 있는데 한 살 정도 된 남자 애기가 아장아장 다가온다. 내 스틱이 신기한가 보다. 만져보라고 하자 조심조심 잡는다. 쿵쿵 찍어보라고 하자 살살 찍어 본다. 한창 호기심이 많을 때다. 나이가 들수록 매사에 무디어지고 촉이 다 떨어진다.
  우리 딸도 어렸을 때 반달을 보면 달이 깨졌다고 하고, 별은 왜 안 떨어지냐고 본드로 붙여놨냐고 했다.
여기서 경천강 비지터센터로 내려와 초록색 108번 버스를 타고 처음 출발했던 곳으로 왔다. 양명산 종점에서 다시 260번 버스를 타고 시린역에서 지하철을 타고 시먼역으로 갔다. 저녁 식사를 하려고 삼미식당을 찾아갔더니 에고~ 월요일이 휴일이다. 할 수 없이 택시를 타고 호텔 근처 우육면 집으로 갔다. 주스와 콜라 등 음료가 무한 리필이라 몇 컵씩 들이켰다.
  든든히 배를 채운 후 마트에 들러 맥주를 사가지고 와 호텔방에서 마지막 밤을 보냈다.
 
5월 26일 고궁박물관
  시먼역에서 전철을 타고 중정기념당역에서 빨간색 전철로 갈아타고 시린역에서 내렸다. 여기서 빨간색 버스 304번을 타고 종점에서 내리니 고궁박물관이다.
  우리의 도슨트 가이드가 집안 사정으로 25분 늦는다는 연락이 와서 매표소 앞 의자에 앉아 기다렸다. 여자 가이드가 와서 티켓을 산 다음 이어폰과 수신기를 받았다.
  고궁박물관의 유물은 장개석이 피신 올 때 자금성의 보물을 가져온 것이다. 이 박물관은 세계 4대 박물관 중 하나인데 70만개의 유물을 보유하고 있다.
  5000개만 전시하고 나머지는 지하 벙커에 보관하고 있는데 이것을 돌아가며 전시한다. 루불 박물관은 40만개의 유물을 보관하고 있다고 한다.
  우선 도자기방으로 갔다. 신석기 시대 유물인데 밑에 다리가 있는 것은 밑에 불을 지펴서 음식이나 술을 데우기 위함이다. 도자기는 도기와 자기를 합친 말인데 도기는 저온에서 구운 토기이고 자기는 고온에 구운 토기다. 강아지 모형의 껍질이 벗겨진 것은 무덤에 매장되었을 때 벗겨진 것이다.

 
  가마를 나타내는 요(窯)는 가마의 모양을 나타낸 상형문자인데 밑에 불 화(火)자가 있다.
송나라 초기의 도자기는 심플한데 용, 박쥐, 아기 동자는 길상이다. 아기 동자 모양의 베개도 있다.

 
  북경 고궁박물관에도 아기 동자 베개가 있다. 여요에서 구운 간장 종지는 481억원에 경매되었다. 여기서 구운 것은 청자색인데 문양이 없다. 고려청자가 유명한 이유도 색깔 때문이다.
  건륭제가 서긍에게 고려에 가서 청자 비법을 알아오라고 했다. 갈라짐이 없는 그릇을 만들려면 온도와 시간이 정확해야 한다.
  명나라 때는 백자에 문양을 넣었는데 이것을 청화백자라고 한다. 여기에 아라베스크 문양이 있는 것은 페르시아에서 들어온 문양이다.
  이 때 이슬람에서 안료도 들여왔다. 도자기에 있는 다리를 고적대라고 한다. 고적대 밑에 불을 놓아 음식이나 술을 데운다.
  안료의 황금색은 임금을 위해서만 썼다. 도교를 상징하는 문양도 있는데 복숭아와 100마리의 사슴 문양이 있다. 사슴은 길상이다. 녹은 녹(祿)을 받는다는 뜻도 되고 사슴 록(鹿)도 된다.

 
  용의 발가락 다섯 개는 왕을 상징한다. 그림을 그리는 방법은 두 가지인데 유상채는 유약 위에 그림을 그리는 것이고 유하채는 유약 아래에 그림을 그리는 것이다. 닭과 병아리가 그려진 찻잔은 2014년 경매에서 550억원에 거래 되었다.
청나라 시대엔 도자기 안에 도자기가 들어있는 도자기를 만들었다. 청나라 건륭제 때 예술이 번성했다. 아기 동자 베개 밑에는 건륭제가 쓴 글이 있고 열을 받았을 때 베개가 터지지 않게 구멍도 뚫어 놓았다.
사각그릇 밑에도 글을 썼는데 이것은 개 밥그릇으로 추정된다.

 
  당나라 때는 사후세계를 믿었고 그 사람이 사용했던 것을 같이 매장했다.
당삼채는 황색, 녹색, 갈색을 말한다. 말 탄 여자상도 있는데 여자들이 땅을 보고 뭔가를 들고 있는 모양이다. 레이디 플레잉 폴로 게임을 하는 모양이다. 가발을 쓴 걸 보면 귀족 부인인 듯하다.

 
  당나라 미인은 뚱뚱한 방실이 언니 같은 상이다. 양귀비도 뚱뚱했다.

 
  청동기로 만든 계량도구도 있다. 쌀을 되는 말 같이 생겼다. 신망이란 말인데 부피와 길이를 잴 수 있다.

 
  청동기에는 3000년 전 역사가 기록되어 있다. 자금성 고궁박물관에는 더 많다. 한 아름 이상 되는 건 못 가져왔다..
모택동은 문화재에 관심이 없었고 이 유물은 국민당 소유다. 한자는 두 종류가 있는데 번체는 대만에서 사용하고 간체는 중국에서 쓴다.
  이곳 전시물 중 쟁반, 동파육. 배추가 유명한데 배추는 지금 출장 중이다.
  모공정의 모는 성씨고 공은 존칭, 정은 솥을 뜻한다. 즉 모씨의 솥이다.

 
  딩타이퐁은 신을 위한 제기인데 술을 담는 독이다. 여기 152개의 글자가 새겨져 있다. 여기에 샤넬 문양과 비슷한 문양이 있어서 샤넬 술독이리고도 한다.

 
  술독 아래에 술을 푸는 국자도 있다. 술독의 양 손잡이는 여기에 헝겊 주머니를 걸어 찌꺼기를 제거할 때 썼다.
배추는 서태후가 며느리 맞을 때 친정 아버지가 딸을 위해 만들어 준 것이다. 옥의 색깔을 보고 배추를 만들었다. 배추 위의 메뚜기와 여치는 다산을 상징한다.

 
서태후가 만든 배추도 있다.
  동파육은 마노라는 돌로 만들었는데 껍데기에 염색을 했다. 원래 이름은 육형석(肉形石)인데 소동파가 왕의 미움 받아 귀양 갔을 때 적벽강에서 파도를 바라보며 술과 삼겹살을 먹었다고 하여 동파육이라고 했다.

 
  옥은 에너지를 뿜어낸다. 그래서 왕족이 항상 근처에 두고 살았다. 옥병풍은 팔폭 병풍인데 수렴 청정할 때 이 병풍 뒤에서 청정을 했다. 화련의 옥이 최고다. 한국 춘천에서 나는 옥은 13위다.
  한국에는 팔만대장경이 있는데 여기는 용장경이 있다. 비단 위에 금으로 글씨를 썼다.
  상아를 공처럼 만들었는데 18겹의 공을 조각했다. 이 공은 3대에 걸쳐 만들었는데 너무 작고 정교해서 할아버지가 만들다가 실명해서 아버지가 만들고 아버지가 만들다가 또 실명하여 아들이 완성했다.

 
  손톱 보호 아트도 발달했는데 네일 아트는 권력의 상징이다. 보통 두 손가락에 끼웠는데 서태후는 네 손가락에 모두 끼웠다. 그래서 아무것도 할 수 없고 모든 것을 시녀들이 해줬다. 똥꼬도 시녀가 닦아 줬을 것이다.

 
  동양 예술은 작가 이름이 없다. 주로 왕의 명령으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박물관을 나와 택시를 타고 시린역에 와서 전철을 탔다. 중산역에서 환승하여 시먼역까지 왔다. 여기서 어제 휴업이었던 삼미식당으로 갔다. 초밥과 회를 먹었는데 맛이 깔끔하니 좋았다.
  식사 후 호텔에 가서 짐을 찾아 시먼역으로 갔다. 타이페이역에서 공항선으로 갈아타고 타오위안 공항 1터미널로 갔다. 이지카드의 잔액이 1달러(50원) 밖에 남지 않은 알뜰한 여행을 했다.
  일찌감치 체크인을 하고 게이트 앞에 가서 두 다리 쭉 뻗고 쉬었다. 비행기에 오르니 그 동안의 일이 구운몽 아니 팔일몽을 꾼 듯 스쳐 지나간다.
 
  이번 여행은 최저의 가격으로 대탑산, 아리산, 옥산, 양명산까지 두루 섭렵하며 최고의 품질을 자랑한 알짜배기 여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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