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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야기

2026. 4. 30. 네 개의 숫자

by 아~ 네모네! 2026. 5. 1.

네 개의 숫자

 

이현숙

 

  부엌에서 설거지하다가 눈을 들어보면 북한산이 한눈에 들어온다. 북한산부터 면목동에 있는 우리 집까지 아파트가 숲을 이루고 있다. 저 많은 구멍에서 한 구멍을 찾아 들어간다는 것은 보통 일이 아니다.

 

  목요일에 잠실 롯데 문화센터에서 수필반 수업이 끝나면 5단지에 사는 딸네 집에 들른다. 딸네 집에 가려면 머리를 한참 굴려야 한다. 우선 6번 출구로 나간다. 다음은 동 수를 기억해 내야 한다. 5.18 광주사태를 기억해 낸다. 동 앞에 가면 집 호수를 생각한다. 우리 집보다 두 층이 낮다는 것을 기억한다. 문 앞에 가면 번호키 번호를 생각해야 한다. 4+3=7을 기억한다. 오랜만에 갈 때는 핸드폰에 기록해둔 번호를 찾아본다. 내 나이 80도 안 됐는데 네 개의 숫자 기억하기도 힘들다. 더 나이 들면 딸네 집에도 못 찾아갈 것 같다.

 

  어렸을 때 시골 큰댁에 가려면 아무 숫자도 기억할 필요가 없었다. 모란에서 버스를 내려 신작로를 따라 걷다가 왼쪽 오솔길로 들어선다. 소막 고개를 넘어가면 저만치 편백나무 울타리에 둘러싸인 큰집이 보인다.

 

  나이 들수록 숫자 외우기가 힘들다. 숫자가 점점 낯설어지고 어색하다. 나는 그 흔한 번호키도 쓰지 않는다. 번호를 외우기가 귀찮아서 그냥 열쇠를 사용한다. 그것도 22년 전 이 집 주인이 이사갈 때 준 걸 그냥 쓰고 있다. 실제로 해외여행 갔다 와서 자기 집 번호키의 번호가 생각나지 않아 당황했다는 사람도 있다.

 

  물질 문명이 발달할수록 편리한 점이 많은 건 확실하다. 냉장고, 세탁기, 청소기, 전기밥솥 등 우리 삶이 많이 편해졌다. 그런데 몸이 편해진 만큼 생각할 것이 많아져 해골이 복잡하다. 어떤 삶이 더 행복한 것인지 알 수 없다. 그저 지금이 가장 편하고 행복한 때라고 생각하고 사는 게 상책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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