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랑질
이현숙
아들네가 집에 왔을 때 무언가를 찾는데 서랍 속에서 먼지 쌓인 상패가 보인다. 대학교 2학년 때 받았던 우등상이다. 그 때도 이 상패를 별로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서랍 속에 처박아 두었는데 엄마가 후에 발견하고는 눈물을 흘렸다. 이런 걸 받았으면 엄마에게 보여줘야지 이렇게 처박아 두었느냐고 엄청 서운해했다. 그런 걸 가지고 뭘 저러나 했는데 지금 생각하면 ‘내가 너무 불효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녹슬고 먼지가 뒤덮인 상패를 꺼내서
"이런 게 여기 있었네." 하며 며느리에게 보여줬더니 이렇게 귀한 게 있었냐면서 자기를 달란다. 가보로 간직하겠다는 것이다. 대학교 1학년 때 학점이 좋다고 2학년 때 받은 것이다. 별로 대단한 상도 아닌데 가보로 삼겠다니 정말 쪽 팔린다.
그 후에 며느리가 우리집에 다시 왔는데 손자 책상 위에 잘 모셔놨다는 것이다. 손자에게 부담을 주는 것 같아 미안하다. 손자는 중학교 2학년인데 2학년 성적부터 내신에 들어 간다고 중간고사 때부터 온 식구가 초긴장 상태다.
사실 공부라는 게 학교 다닐 때뿐이지 졸업하고 나면 별것도 아니다. 나는 무늬만 KS지 실은 속 빈 강정이다. 세상사는 아무것도 몰라서 완전 허당이다. 이대 나온 동생들이 훨씬 똑똑하다. 교과서만 딸딸 외어서 시험은 잘 봤는지 모르겠는데 실제로 아는 건 아무 것도 없다.
거기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눈도 어두워지고 노인성 난청이라 듣는 것도 어둡다. 우리 아파트 엘리베이터 공사를 한 후 엘리베이터 앞에만 서면 뭐라고 하는 소리가 들리는데 뭔 소린지 모르겠다. 한 달을 들어도 모르겠다. 그 후 아들과 함께 들어오게 돼서 "얘가 뭐라고 하는 거냐?" 했더니 "몇 층 가세요?"라는 것이다. 듣고 보니 그제서야 그 말이 귀에 들어온다. 특히 기계음이 듣기 힘들다. 무슨 서비스 신청 할 때 전화를 하면 뭐는 몇 번, 뭐는 몇 번 하면 도무지 알아들을 수가 없다.
남편이 죽은 후 가스요금 고지서를 내 앞으로 하려니 난감하다. 전화로 하기 힘들어서 예스코 사무소로 직접 찾아가서 신청했다. 건강보험 가입자를 바꿀 때도 국민건강보험공단으로 직접 찾아갔다. 아이들과도 전화는 잘 하지 않고 주로 카톡으로 한다. TV를 볼 때는 자막이 잘 보이지도 않지만 읽기도 전에 지나가 버린다.
날이 갈수록 눈에 뵈는 것도 없고 들리는 것도 없으니 점점 골빈당이 될 수밖에 없다. 아무것도 안 보이고 아무것도 안 들리면 그제야 끝이 올 것이다. 그 날이 오면 한 줌의 재가 되어 사라질 것이다. 아니 사라지기도 힘들겠다. 남편 화장한 재를 진공 포장해서 유골함에 넣어 납골당에 모셨으니 나도 그렇게 되어 남편 옆으로 갈 것이다.
한줌 재로 가는 것이 우리 인생이니 가는 날까지 마음 편히 행복하게 살면 되지 공부하느라 스트레스받으며 불행하게 사는 건 아니지 싶다. 공부 말고도 자기가 좋아하고 잘하는 걸 하며 살면 될 것 같다. 이제 외모로 보나 내모로 보나 자랑할 것은 쥐뿔도 없는데 자랑할 깜도 안 되는 이런 걸 가지고 자랑질을 하고 있는 내 모습이 참 웃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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