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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야기

2025. 10. 25. 게으른 년이 사는 법

by 아~ 네모네! 2025. 10. 31.

게으른 년이 사는 법

이현숙

 

  오늘도 아들이 반찬을 들고왔다. 장모님이 해주신 거란다.

남편이 간 후로 안 사돈이 가끔씩 애들 편에 반찬을 보내준다. 내가 혼자 있으니 잘 안 해 먹을 줄 짐작하고 그 집 반찬을 할 때 좀 넉넉히 해서 보내주는 것이다. 김장 때면 김치도 한통씩 보내준다. 나보다 나이도 훨씬 많아 80을 훌쩍 넘겼는데 아픈 허리로 부지런히 요리를 만드신다. 그 집 식구 셋에 아들네 식구 셋까지 여섯 명을 먹여 살리려면 엄청 힘들 텐데 말이다. 나는 혼자 살면서도 마냥 게으름을 부린다.

 

  두 분이   가을이면 종종 밤을 주우러 가는데 밤을 까서 한 보따리씩 주신다. 이걸 받으려면 미안하기도 하고 염치없기도 하다. 부부가 같이 앉아 밤을 까는 모습이 눈에 선하다.

  교회 가면 식사 후 남은 반찬을 한 봉지에 3천 원씩 판다. 이 돈은 선교비로 쓴다고 하니 일거양득이다. 가끔 이것도 사 온다.

  난 참 인복이 많은 것 같다. 나는 남들에게 별로 해주는 게 없는데 여기저기서 반찬도 주고 옷도 주고 신발도 준다. 나는 줄 게 없으니 가끔 책이나 과일을 준다.

  먹는 것뿐이 아니다. 전기레인지 위의 환풍기도 고장 나서 작동이 되지 않았다. 기름때가 잔뜩 묻었다. 싱크대도 수십 년이 지나니 문짝도 망가지고 제대로 닫히지 않는다. 며느리는 싱크대를 바꾸는 게 어떠냐고 하는데 생각만 해도 머리 골치가 아파 엄두를 못 낸다. 공사하려면 관리소에 신고해야지, 엘리베이터에 양해해달라는 글도 써 붙여야지 절차가 복잡하다. 뜯어내려면 드드득거리며 시끄러운 소리를 내야하고 먼지도 뒤집어 써야 한다. 죽을 때까지 그냥 살겠다고 버티고 있었더니 내가 여행 간 사이에 며느리가 환풍기를 바꿔놨다. 미안하기도 하고 고맙기도 하다.

 

  컴퓨터 책상과 의자는 산 지 40년도 넘었다. 의자가 부서지기 직전이다. 등받이가 딱딱해서 허리가 아프다. 담요와 조끼를 걸쳐놓아도 별 효과가 없다. 며느리가 보더니 자기가 바꿔주겠다고 한다. 나에게 어떤 모양이 좋으냐고 핸드폰 사진을 보여주며 묻는다. 대충 아이들이 좋다는 걸로 골랐다.

  다음 토요일에 책상과 의자를 배송하겠다는 문자가 왔다. 교회에서 철원으로 나들이를 가기로 해서 아들에게 전달했더니 자기가 우리 집에 와서 받겠단다.

  하루종일 잘 놀고 왔더니 아들이 와서 받아 조립을 다 해놨다. 기존의 책상을 걷어내고 새 책상으로 옮겨줬다. 버려야 할 책상도 폐기물 신고를 하고 출력해서 붙인 후 밖에 내다 놨다. 난 한 마디로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고 날로 먹었다.

 

  교회 지하 예배실 입구에는 신발장이 있다. 밖에서 신고 온 신을 여기 벗어 놓고 슬리퍼를 신고 들어간다. 나는 슬리퍼 가져다 놓는 것도 귀찮아 그냥 양말 바닥으로 들어갔다. 몇 년 동안 이렇게 했더니 한 권사님이 슬리퍼를 사다 놓고 이름표까지 붙여놨다. 여름에는 여름용 슬리퍼를 놓았는데 날이 추워지자 겨울용 두툼한 슬리퍼로 바꿔 놓았다. 이 권사님에게는 무얼 줄까 생각해 봐도 떠오르는 게 없다.

 

  남편이 간 지 3년이 넘었는데 남편이 근무하던 예원학교 국어 선생님이 명절 때마다 과일을 보낸다. 교장선생님 생각은 그만 잊으라고 해도 자기가 교장 선생님에게 받은 것이 많다며 꼬박꼬박 보낸다. 그냥 받기만 하려니 미안하기 짝이 없다. 이 빚을 어떻게 갚아야 할지 모르겠다.

 

  게으른 년이 살아가는 법은 딱 한 가지다. 그냥 참고 버티는 것이다. 그러면 보다 못한 누군가가 참지 못하고 도와준다.

 

  공기는 기압이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흘러가고, 물도 높은 데서 낮은 데로 흘러간다. 에너지가 많은 데서 적은 곳으로 흘러가듯 사랑도 많은 데서 적은 곳으로 흘러가나 보다. 나는 사랑이 별로 없는데 내 주위에는 사랑이 풍성한 사람이 많다. 그래서 여기저기서 사랑이 흘러든다.

  모든 어려움은 그냥 대충 버티다 보면 저절로 해결된다. 난 그냥 죽어라고 하고 참기만 하면 된다. 게으른 년도 죽으란 법은 없다더니 주위에서 도와주는 사람들 덕에 여태 잘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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