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친 열정
이현숙
오늘은 북한산 비봉으로 향한다. 화요트레킹에 온 지 21년이 넘었다. 함께 오래 산행하다 보니 가족처럼 친해졌다.
내가 산에 오르기 시작한 것은 1968년 대학교 1학년 때다. t서울사대에 입학하여 교내 게시판을 보니 산악부에서 천마산 가는데 희망자는 청량리역으로 모이라는 것이다. 아무것도 모르고 무턱대고 청량리역으로 갔다. 대충 둘러보다 배낭 진 사람들에게 천마산 가느냐고 하니 그렇단다. 무조건 따라붙었다. 기차를 타고 마석에서 내려 천마산으로 향했다.
난생처음 산행을 하니 겁도 나고 숨이 끊어질 것 같았다. 정상에서 평내역까지 갈 때는 기차 시간에 맞추려고 냅다 뛰었다. 그때만 해도 교통 사정이 안 좋아 기차도 자주 없었고 통행금지도 있어서 이 기차를 놓치면 바깥에서 날밤을 새울 판이었다.
하룻밤 자고 나니 온몸이 빠개지듯 아팠다. 강의실을 옮겨 다니려면 계단을 오르내릴 수가 없어서 난간을 잡고 부들부들 떨었다. 이렇게 시작된 나의 미친 열정은 그칠 줄 몰랐다. 등교하면 산악부실에서 살다시피 했다.
한 번은 비 오는 날 만장봉에 올랐다. 그때만 해도 안전벨트도 없고 안전모도 없었다. 하강할 때는 허벅지에 자일 하나 달랑 감고 서서히 줄을 빼며 내려왔다. 그런데 물기를 잔뜩 머금은 자일과 바지 때문에 자일이 잘 빠지지를 않았다. 아차 하는 순간 자일을 놓치고 거꾸로 매달렸다. 밑에서 남자 선배가 다시 자일을 잡아보라고 소리쳤다. 몸을 올려 다시 잡으려고 애쓰다가 밑으로 뚝 떨어졌다. 선배가 팔을 벌려 나를 받았지만 떨어지는 속도가 있어 머리를 바위에 부딪쳤다. 머리에서는 피가 흘렀다. 그 선배는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며 "야 너 오늘 제삿날 될 뻔했다."고 농담을 했다.
그 후로 앉았다 일어설 때마다 온몸이 부서지듯 아팠지만 안 아픈 척 표정 관리를 했다. 엄마가 알면 산에 못 가게 할까봐 그게 두려웠다. 지금까지 살아온 중 이때가 내 인생 최대의 황금기가 아닌가 싶다.
제 버릇 개 못 준다고 지금도 기회만 있으면 산에 간다. 지리산 종주를 할 때나 의상 능선을 오를 때면 젊은 사람들이 실례지만 연세가 어떻게 되느냐고 묻는다. 머리가 허연 할머니가 꾸부정한 모습으로 산에 오르는 걸 보면 걱정이 되나 보다. 내가 봐도 걱정된다. 팔 다리 힘 다 빠지고 균형감각도 다 떨어졌는데 주제 파악 못 하고 날뛰는 모습이 가관이다. 가끔 이러다 제 명에 못 죽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듵 때도 있다. 이 미친 열정이 언제까지 계속될지는 나도 모르겠다.
그런데 어디 미쳐서 이렇게 사는 것이 좋은지 편안하고 안락하게 살다가 조용히 죽는 게 좋은지 모르겠다. 불후의 걸작을 남긴 예술가들을 보면 자기의 모든 에너지를 쏟아붓고 요절하는 사람이 많다. 대충 살았으면 그렇게 빨리 죽지는 않았을 텐데 하는 생각도 든다. 내 자식들이라면 걸작을 안 남겨도 좋으니 편안하게 살라고 하고 싶다.
57년간 이어져온 미친 열정이 조금만 더 이어졌으면 하는 마음으로 오늘도 난 산에 오른다. 어쩌면 이 세상은 미치지 않고는 살 수 없는 곳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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