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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야기

2025. 9. 1. 등신인가 봐

by 아~ 네모네! 2025. 9. 8.

등신인가 봐

이현숙

 

  오늘도 용마산자락길을 걷는다. 한참 올라가는데 한 여자가 내려오다가 "안녕하세요?"하며 인사를 한다. 멍하니 쳐다보니 마스크를 벗고 얼굴을 보여주며 동태마을에서 만났던 사람이라고 한다. 동태마을이란 소리를 듣자 옛생각이 떠오른다. 이 식당은 남편이 있을 때 종종 갔던 식당이다. 지금은 없어진 지 오래됐다.

  그후 용마산자락길에서 만날 때마다 가끔 인사를 했는데도 얼굴이 도통 떠오르지 않는다. 왜 혼자 올라오느냐고, 교장선생님은 왜 안오셨느냐고 해서 3년 전에 하늘나라에 갔다고 하니 깜짝 놀라며 어쩌다가 그리됐냐고 한다. 암이 온몸에 퍼진 후 알아서 어쩔 수 없었다고 하자 눈물을 글썽이며 내 팔을 붙잡고 건강하시라고 한다.

  나도 눈물이 핑 돌았다. 이 여자는 내가 남편과 함께 다니는 게 너무 보기 좋았다고 한다. 남편 있을 때 함께 다니라고 했더니 그래야겠다고 한다. 이 사람은 내 얼굴도, 남편이 교장했던 것도 다 기억하는데 나는 이 여자를 도통 모르겠다. 남편이 교장이라고 이 여자에게 말한 기억은 없는데 어떻게 알았나 모르겠다. 나는 아마도 사람을 기억하는 데는 등신인가보다.

  교사 생활할 때는 아이들 이름과 얼굴을 잘 외었다. 그때는 한 반에 70명이었는데 1번부터 70번까지 순서대로 이름과 얼굴을 기억했다. 소풍이라도 가면 번호대로 세워놓고 출석표 없이 확인했다. 그런데 지금은 한 사람의 이름과 얼굴도 기억하기 힘들다.

  뇌세포는 500억개 정도인데 태어날 때부터 서서히 파괴된다고 한다. 뇌세포는 세포분열을 하지 않아 새로 생성되지는 않고 아이가 자라면서 신경세포 내의 물질이 증가하여 머리가 커지는 것이라고 한다. 노화가 시작되면 하루에 약 20만 개씩 뇌세포가 파괴된다고 한다. 그러니 뇌가 수축하여 크기가 작아지고 뇌 기능도 떨어져 기억력이 떨어진다. 자연히 움직임도 둔화될 수밖에 없다. 한 마디로 서서히 골빈당이 되는 것이다. 아마도 죽을 때 쯤에는 골이 텅 비어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할 것이다. 어쩌면 지상에서의 모든 일은 잊어버리고 홀가분하게 하늘나라로 날아갈 것이다.

  내가 혼자 됐다는 말을 하면 사람들은 하나같이 건강하시라고 한다. 건강하면 독거노인 생활을 오래 해야하는데 이건 축복인지 저주인지 모르겠다. 그저 고통 없이 가능한 한 빠른 시간 안에 하늘로 훨훨 날아 올라갔으면 참 좋겠다. 하지만 이건 입에 붙은 말뿐이고 막상 저승사자가 눈앞에 나타나면 걸음아 날 살려라 소리치며 삼십육계 줄행랑을 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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