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행문

100일간의 세계일주 2 (요코하마)

아~ 네모네! 2024. 12. 7. 22:40

 12월 7일 출발

 드뎌  출발이다. 아침 먹고 남은 국과 반찬은 냉동실에 넣고 화장품까지 캐리어에 다 넣었다.

  집에서 11시쯤 출발하면  되니 두 시간 정도 여유가 있다. 어제 클래시모에서 감상한 곡에 대한 감상문과 사진을 정리해서 블로그에 올리고 나니 30분이 남는다. 평소하던대로 성경 듣기를 하는데 목사님이 전화를 한다. 잘 다녀오라는 말을 들으니 황송하다. 올해 4월에 우리 교회에 오셨는데 어찌나 열심히 하시는지 모든 교인들이 다 좋아한다. 목사님의 부모님은 아들이 담임목사 되게 해달라고 많이 기도 하셨다더니 정말 젊은 나이에 담임목사가  되었다. 나는 아들이 장신대 목회자 과정에 들어간다고 했을 때 그냥 대기업 들어가서 돈 많이 벌어 잘 먹고 잘 살면 되지 신학대학은 뭐하러 가나 생각했다. 힘들고 어려운 일은 남의 집 아들이 하고 그저 내 아들은 편하고 안락한 삶을 살았으면 싶다. 나는 너무 이기적인가보다.
  막 출발하려는데 손자가 전화를 한다. 잘 다녀오시라고 하며 며느리를 바꿔준다. 전철역까지 짐을 들어주겠단다. 그냥 갈 수 있다고 했다.
  김포공항에 도착해 1층에 있는 로밍센터에 가서 로밍을 했다. 이것 저것 궁금한 것을 묻고 있는데 금형씨가 온다. 금형씨는 짐이 많다고 언니와 같이 왔다. 나는 동생이 다섯 명이나 되도 이런 생각조차 해본 적이 없다. 금형씨는 참 좋은 언니를 두었다.
  잠시 후 흰구름씨도 도착해 체크인을 하러 갔다. 내 짐이 잘 들어기가나 모니터를 보고 있는데 갑자기 내 이름을 부른다. 웬일인가 싶어 안으로 들어가다가 퍼뜩 소금 생각이 났다. 들어가서 직원에게 소금 때문이냐고 하니 꺼내보란다. 꺼냈더니 무슨 셀로판지 같은 걸 대본다. 별 반응이 없자 열어보더니 나가도 된다고 한다. 마약으로 의심했나보다.
  안으로 들어가 점심을 먹기로 했다. 며느리가 준 20만원이 생긱나 내가 사려고 했더니 흰구름은 600달러 받았다고 하고 금형씨는 500만원 받았단다. 나는 꼬리 팍 내렸다.
  비행기를 타려니 막내 동생이 떠오른다. 뇌수술 후 한 달이 넘도록 깨어나지 못하고 중환자실에 누워있다. 목을 뚫고 목관까지 끼고 여러  개의 주사줄까지 낀 모습이 애처롭다. 내가 나가 있을 때 아주 가버릴까봐 걱정이다. 제발 빨리 깨어나 활짝 웃는 모습으로 만났으면 좋겠다.
  비행기가 이륙할 때마다 자연의 신비에 감탄한다. 비행기의 윗먼은 볼록하고 아랫면은 납작해서 달리면 윗면의 바람은 속도가 빠르고 밑면은 느리다. 바람의 속도가 빠른 곳은 압력이 약해서 윗면의 압력이 아랫면보다 작아서 비행기는 위로 떠오르게 된다. 모든 유체는 유속이 느릴수록 압력이 커진다는 베르누이의 원리 때문이다. 하지만 아무리 그렇더라도 그토록 가벼운 공기가 그 무거운 비행기를 들어올린다는 것은 생각할수록 신비하다.
  기내식을 먹으니 해외여행 간다는 실감이 난다. TV에서 어떤 아이가 스튜어데스를 몰라서 비행기에서 밥 주는 이모가 되고 싶다던 말이 생각나 피식 웃음이 나온다.
  오늘 대형사고 쳤다. 하네다공항에서 입국심사 하다가 캐리어를 두고 나왔다. 나와서 일행을 기다리면서도 그 사실을 몰랐다. 그 사람들이 내 짐을 싣고 나온 후에야 알았다. 입국심사용 QR 코드 스캔한 거 찍어라, 여권 찍어라, 손가락 찍어라, 얼굴 찍어라 하는 바람에 혼이 나갔나보다. 첫날부터 이 지경이니 100일이 지나면 어떻게 될지 큰 걱정이다.

12월 8일 요코하마 ( 스카이가든, 붉은 벽돌 창고)
    흰구름 아니었으면 얼어죽을 뻔 했다. 엊저녁에 추워서 이불 뒤집어 쓰고 벌벌 떨고 있는데 카톡을 올렸다. 에어컨 온도를 30도로 올리면 따뜻한 바람이 나온다는 것이다. 덕분에 잘 잤다.
  7시에 식당에 내려가니 줄이 엄청 길다. 그래도 일본식이라 먹을만하다. 방으로 올라와 쉬고 있는데 흰구름이 와서 오늘 뭘 볼까 검색했다고 한다. 매사에 똑 소리 난다.흰구름 안 왔으면 큰일 날 뻔 했다.
  밖으로 나가려는데 한 남자가 방에서 나오며 타올과 쓰레기통을 문 밖에 내놓는다. 우리도 다시 방으로 들어가 똑 같이 했다.

  요코하마 항구로 가니 우리가  화요일에 탈 크루즈선이 벌써 와 있다. 여객선 터미널로  들어가 우리가 집합할 9번 출구를 찾아보니 8번까지 밖에 없다. 안내소에 물어봐도 모른다. 착한여행에 메일을 보내도 주말이라 안 본다.
  큰 갑판 모양으로 보이는 데크에 하얀  드레스를 입은 아가씨가 보인다. 곧 이어 정장을 한 청년도 나타난다. 결혼을 앞둔 신랑 신부가 야외 촬영 나왔나보다. 신랑 신부는 언제 봐도 싱그러운 아름다움이 있다.


  야마시카공원으로 가니 아담한 건물이 보인다. 인도 수탑이다. 관동대지진 때 요코하마시가 외국 상인들을 위해 적극적으로 베풀어 준 구조에 감사해서 인도 상인 조합에서 만든 탑이다.


  야마시카공원에서 요코하마 마린타워 쪽으로 가니 웬 긴 줄이 있다. 티켓 파는 곳인 줄 알았더니 음료수 파는 트럭에서 음료를 사려는 줄이다. 건물 안으로 들어가보니 이미 매진이다.


  이건 포기하고 여기서 요코하마 스카이가든을 찾아갔다. 구글 지도도 켜고 이 사람 저 사람에게 물으며 간다는 것이 엉뚱한 건물로 들어가 헤맸다. 엘리베이터 앞에 서 있는 남자에게 물으니 잘 모르겠다고 검색을 하더니 우리를 커다란 창문 쪽으로 데려가 저 건물이라고 알려준다. 다시 나와 그 건물을 향해 걸어 갔다.


  간신히 입구를 찾아 5층으로 올라가 중국집에 들어가 점심을 해결하고 2층에 있는 스카이가든  매표소로 가니 경로는 800엔이다. 안으로 들어가 엘리베이터에 오르니 고속으로 올라가서 그런지 귀가 멍멍하다. 69층에서 내려 전망대로 나가니 요코하마 시내가 발 아래 펼쳐진다. 끝이 안 보이게 넓다. 멀리 후지산도 보인다. 구름이 살짝 걸쳐있다. 작년에 동생들과 후지산에 올랐던 기억이 새롭다.

  갖가지 모형과 레고도 있는데 우리 손자가 오면 엄청 좋아할 것 같다.


  전망대에서 내려와 빨간 벽돌 창고로 불리는 아카렌가 창고로 갔다. 건물이 아름답다. 옛날에는 창고로 쓰였다는데 지금은 작은 상점과 식당들이 들어차서 사람들이 밀물처럼 몰려다닌다. 사람에 떠밀려 다니다가 밖으로 나왔다.


  호텔로 돌아오니 우리 방문 손잡이에 타올이 걸려있고 쓰레기통도 깨끗이 비워놨다.


  잠시 쉬다가 저녁을 먹으러 다시 69층 랜드마크 타워로 갔다.
호텔에서 불러 준 택시를 타고가니 콜비 500엔이 추가된다.
  초밥집에 들어가 거금 3300엔 짜리 초밥과 맥주를 시켰다.음식이 깔끔하니 맛깔스럽다. 올 때는 소화도 시킬겸 호텔까지 걸어왔다.
  방으로 들어와 눈찜질기를 가지고 식당으로 가서 전자렌지로 데우려니 일본말로만 되어 있어 모르겠다. 직원에게 물어보니 와서 눌러준다. 오늘 2만 8천보 걸었다. 아무래도 주제 파악 못하고 너무 날 뛰는 거 같다.

12월 9일 요코하마 2 (삼계원)

  오늘은 식당으로 내려가니 텅 비었다. 월요일이라 모두 집으로 갔나보다.
  오늘도 욕심껏 잔뜩 담았다. 꾸역 꾸역 먹다보니 다 먹었다. 사람의 몸이란 위 아래가 뚫린 밑 빠진 독이라 무한정 들어가나보다.
  식후엔 꼬박꼬박 약 먹고 눈에 약 넣고 이 쑤시느라 할 일이 많다. 약을 네 보따리나 가져왔더니 캐리어의 반을 차지한다. 이런 추세로 나가다간 약 넣는 캐리어 한 개 더 만들어야할 판이다. 그 때까지 여행 다닐지는 모르지만 말이다.
  오늘은 삼계원이란 곳에 가보기로 했다. 호텔 직원이 패밀리 마트 앞에서 106번 버스를 타라고 해서 그 앞에 가니 106번이 없다. 청소하는 아저씨에게 물으니 스타디움 끝나는 곳에서 좌회전해서 가면 그 정류장이 있단다. 겨우 겨우 찾아가 106번 버스를 타고 삼계원 앞에서 내려 한 아가씨에게 물으니 자기를 따라오란다. 300m가니 삼계원이 나타난다. 경로가 700엔이라고 해서 여권 보여주며 2100엔 냈더니 요코하마 시민만 할인해준단다. 할 수 없이 1000엔씩 내고 들어갔다.


  三溪園이라고 해서 계곡이 세개인가 했더니 이곳을 만든 만든 샤람의 호가 '삼계'다. 전통 일본식 정원으로 아름다움의 극치다. 웨딩 촬영 나온 신랑 신부가 많다.


  무슨 풍악소리가 들려서 가보니 원숭이 쇼를 한다. 원숭이가 어찌나 재주가 좋고 당당한 모습인지 절로 웃음이 나온다.


  전통 가옥에 들어가니 화로불을 피워놨다. 한 부부가 들어오더니 남자가 우리 사진을 찍어 주겠단다. 모처럼 셋이 사진을 찍었다. 남자는 일본사람인데 여자는 서양여자다.


  내가 사진을 찍어주겠다고 하니 둘이 다정하게 불 앞에 앉는다. 역시 사람은 남녀가 함께 있을 때 가장 아름답다.
  삼계원을 나와 내렸던 버스 정류장 건너편에서 아무리 왔다갔다 하며 찾아도 정류장이 없다. 이 사람 저 사람에게 번역기로 물어봐도 잘 모르겠다. 다시 내렸던 정류장으로 돌아와 요코하마 스타디움 방향으로 가는 106번 버스를 어디서 타느냐고  물으니  한 남자가 정류장에 붙어있는 버스 노선표를 가리키며 341번 급행버스가 3분 후에 오니 그걸 타라고 일러준다. 얼굴을 보니 아까 사진 찍어주던 남자다. 요것도 인연인가 보다.
  버스를 타고 오며 금형씨가 올 때 보아둔 초밥집에서 내려 점심을 먹으려고 했는데 찾기 힘들다. 우리 뒤에 앉은 여자가 한국말로 조금 더 가면 싸고 좋은 초밥집이 있으니 알려주겠단다. 그런데 한 젊은 여자가 오더니 하트 모양 카드를 보여준다. 그러자 이 여자가 벌떡 일어나 자리를 양보하고 우리 옆에 서서 간다. 여기도 임산부에게 하트 모양 카드를 주나보다.
  버스에서 보니 그 초밥집이 닫혀있다. 휴일인가보다. 어느 호텔에 있느냐고 해서 알려줬더니 스타디움 앞에서 내려 횡단보도를 건너 쭉 가면 된다고 한다. 어떻게 그토록 한국말을 잘 하느냐고 물으니 교포란다. 제주도에서 태어나 10대에 일본 와서 50년을 살았단다.
  오늘 세 명의 귀인을 만나 구경 잘 했다. 아침에 버스에서 내려 삼계원 갈 때 만난 아가씨와 사진 찍어 준 남자, 버스에서 만난 제주도 교포다. 우리가 전생에 덕을 많이 쌓았나보다.
  호텔로  오면서 초밥집에 들어가 점심을 먹으려했는데 브레이크 타임이라 5시에 연단다.            차이나타운에 먹을 것이 있나 하고 들어가니 울긋불끗한 장식 아래 사람들이 넘쳐난다.


  마땅한 식당이 없어 다시 나와 호텔 근처 햄버거 집에 들어가 햄버거와 콜라를 먹었다. 감자튀김이 맛있다고 했더니 흰구름이 신발짝도 튀기면 맛 있다고 농담을 한다. 다 먹고 나오는데 사장님이 문 밖까지 나와서 고맙다고 인사를 한다. 일본 사람들의  친절과 예의 바른 것은 배울만하다.
  호텔로 돌아와 쉬다가 아까 들어갔던 초밥집으로 저녁을 먹으러 갔다. 흰구름이 갑자기 락스를 사야겠다고 한다. 왜 그런가 했더니 베갯잇에 염색약이 묻었단다. 나 같으면 그냥 체크아웃 했을 텐데 엄청 깔끔한 성격인가 보다. 락스를 사서 들고 아까 그 식당으로 갔다. 그런데 3800엔 짜리는 런치 메뉴라고 해서 8900엔 짜리로 2인분만 시켰다. 게살도 맛 있고 회도 맛있다. 회에 금가루까지 발라놨다. 금가루 바른 회는 첨 먹어본다. 구운 소고기도 먹고 샤브샤브도 먹었다. 디저트로 아이스크림까지 먹고 호텔로 돌아왔다.


  샤워를 하고 나오니 흰구름이 카톡을 올렸다. 베갯잇의 염색약 자국이 깨끗이 지워졌다는 것이다. 나는 염색을 안 하니 이런 염려는 없다. 요코하마에서의 마지막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