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행문

2023. 12. 29. 남미여행 3

아~ 네모네! 2024. 2. 24. 17:05

2024. 1. 15. 칠레 오소르노 화산

  푸에르토 바라스는 독일인들이 정착하여 만든 도시로 오늘날에도 독일인의 전통과 문화가 살아있는 도시다. 장미의 도시라는 이름대로 마을 곳곳에 장미꽃이 많이 피어 있다.

  오늘은 고문님이 몸이 안 좋아서 쉰다고 하여 어딘가 허전하다. 하비에르 가이드가 이것저것 열심히 설명해준다. 노인성 난청이라 한국말도 잘 못 알아듣는데 독일식 영어 발음은 더 알아듣기 힘들다. 우리가 차에서 내리려면 부지런히 발판을 놓아준다. 우리가 그 정도로 숏다리는 아닌데 어쨌든 그 성의가 고맙다. 내릴 때는 열심히 손도 잡아준다. 평생 이런 대접을 못 받아온지라 영~ 어색하다. 역시 송충이는 솔잎을 먹어야 하고 무수리는 무수리처럼 살아야 맘이 편하다.

  가다가 작은 교회와 묘지를 보았다. 아메리카 세콰이어 나무판으로 벽을 만들었다.

  교회 옆에는 묘지가 있는데 알록달록 꽃장식이 많아 밝은 느낌이 든다. 좀 더 가다가 양키우에 호숫가에 섰는데 오소르노 화산이 안 보여 아쉽다. 오소르노는 영 안 외워져서 오소리를 연상했다. 하비에르는 땅에서 화산재를 집어서 보여준다. 용암이 흘러간 계곡도 지나간다.

  국립공원 안으로 들어가 우렁찬 소리를 내며 흐르는 페트로우에 폭포를 보고 돌아 내려오다가 왼쪽 오솔길로 들어갔다.

  아담한 호수가 나타난다. 하비에르는 여기에 물고기가 산다고 먹이통까지 가져와 수면에 던진다. 잠시 기다리자 작은 파문이 일며 물고기가 올라와 먹이를 채간다. 한 가지라도 더 보여주려고 하는 성의가 고맙다.

  여기서 다시 차를 타고 양키우 호수 선착장으로 갔다. 유람선을 타고 오소르노 화산을 바라본다. 구름에 가려 보이다 안 보이다 하며 우리 애를 태운다. 10여년 전에 왔을 때는 구름 한 점 없이 맨얼굴을 보여줬는데 그새 엄청 도도해졌다.

  선착장에 와서 다시 차를 타고 오소르노 화산으로 갔다. 화산 밑 주차장에 내려 리프트 탈 사람은 타고 나머지는 걸어 올라갔다.

  까만 화산재 사잇길을 오르니 작은 봉우리가 나타난다. 기생화산이다. 여기서 분화구를 한 바퀴 돌아 내려가기로 했다. 큰 분화구 속에 작은 분화구도 있다.

  작은 분화구를 한 바퀴 돌고 올라와 큰 분화구를 돌아 내려왔다. 척박한 돌투성이 땅에서도 예쁜 꽃을 피워낸 야생화가 기특하다. 오소르노 화산은 수시로 안개에 뒤덮여 베일로 얼굴을 가린 여인 같다. 그래도 가끔씩 살짝살짝 얼굴을 보여주니 더 매력적이다.

  주차장으로 내려와 식당으로 가는데 길가에 여우가 앉아 있다. 처음에는 개인 줄 알았는데 주둥이가 뾰족하고 꼬리가 풍성한 걸 보니 여우가 분명하다.

  꼬불꼬불 비탈길을 내려오니 멀미가 난다. 식당에 들러서 대구 튀김으로 배를 채운 후 바라스 시내 마트에 들러 과일을 사 가지고 호텔까지 걸어왔다.

  저녁에는 성단 씨가 어제 사 온 와인과 마트에서 사 온 과일, 치즈로 와인 파티를 했다.

 

2024. 1. 16. 아르헨티나 바릴로체

  640분에 아침 식사하고 730분에 호텔을 출발했다. 버스터미널에 도착하여 750분 국제버스를 타고 아르헨티나로 향했다. 2층 버스인데 내 좌석번호는 16번이다. 멀미가 날까 봐 걱정하고 있는데 하미가 1층에 자리가 있으니 내려오라고 한다. 밑에 내려가니 좌석도 넓고 가리는 커튼도 있어서 편안하게 한숨 자고 나니 한 정류장에 서는데 커피 파는 아저씨가 들어와 소리를 지른다. 내 좌석에 손님이 타는지 다시 올라가라고 해서 쫓겨 올라왔다.

  칠레 국경에 와서 출국심사를 받고 화장실에 다녀와서 모여있는데 한 직원이 다가와 같이 사진을 찍자고 한다. 자기 핸드폰으로도 찍고 우리 핸드폰으로도 찍었다. 차에 앉아서 보니 다른 여자들과 또 사진을 찍고 있다. 하는 일이 뭔지 모르지만 사진 찍는 게 본업인 듯하다.

  아르헨티나 입국심사는 여권검사만 하고 짐 검사는 안 한다. 아르헨티나 국경을 넘으니 계속 꼬부랑 내리막길이다. 멀미가 나서 죽을 맛이다. 바릴로체 터미널에 도착하여 재옥 씨는 버스에서 핸드폰이 떨어진 줄도 모르고 내렸는데 선희 씨가 가져왔다. 재옥 씨 오늘 운수 대통한 날이다. 바릴로체는 산 뒤에서 온 사람들이란 뜻이다.

  짐을 끌고 택시 정류장으로 갔다. 택시들이 줄지어 기다리고 있다가 호텔 이름을 말하니 즉시 출발이다. 호텔에서 방 배정받을 때마다 경로우대를 받으니 미안하기 짝이 없다. 생각할수록 민폐가 너무 심하다.

  샤워하고 인순 씨와 한식당으로 가서 비빔밥, 김밥, 라면을 먹었다. 고문님과 정심 씨, 정순 씨도 벌써 와 있다.

 

2024. 1. 17. 아르헨티나 페리토 모레노 호수

  남미에서 F는 찬물 C는 더운물을 나타낸다. 우리는 Ccold라는 생각에 자꾸 헷갈린다. 모처럼 비데가 있어서 사용하려다가 아랫도리가 다 익어버릴 뻔했다.

  식사 후 20번 버스를 타고 라오라오(현지 발음으로는 샤오샤오) 호텔까지 갔다. 여기가 버스 종점이다. 여기서 호수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 화장실을 이용하려고 호텔로 들어갔다. 문 앞에서 화장실을 물으니 호텔 직원이 화장실 앞까지 직접 안내해준다. 좋은 호텔은 역시 다르다.

  처음에는 트레킹 진입로를 몰라 이리저리 헤매다가 대장님의 명석한 판단으로 겨우 찾아갔다. 호텔에서 아스팔트 길로 30분 정도 가야 한다. 약간 오르막길인데 앞 사람을 놓칠까 봐 꼴찌에서 부지런히 따라가는데 갑자기 가슴이 뻐근해지면서 진땀이 나고 어지럽고 맥이 탁 풀린다. 처음 느껴보는 증상이다. 순간 겁이 더럭 난다. 요즘 가끔가다가 왼쪽 가슴이 뻐근하고 통증이 있어 의사에게 물어보니 협심증일 가능성이 있으니 더 자주 그러거나 통증이 심해지면 즉시 응급실로 가라고 했었다.

  순간 하늘나라에서 초대장이 온 건가 싶고 여기서 죽으면 민폐가 말도 아니게 심하니 죽더라도 집에 가서 죽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라오라오 호텔로 돌아가 커피숍에서 쉴까 하다가 일단 스틱을 꺼내 쓰러지지 않도록 살살 걸었다. 4번 동생이 준 로이코비를 먹고 조금 지나니 약간 정신이 돌아왔다. 하미팀장이 앞서가다가 돌아와서 동행해 주었다. 천천히 걸으니 발걸음도 조금씩 가벼워졌다. 일행들이 쉬며 간식을 먹는 곳에 이르러 복숭아를 먹었다. 먹고 나니 조금 힘이 난다.

  호수 전망대를 보고 근처에서 간식을 먹는데 5번 동생이 양상추에 고추장 넣은 걸 가져와 입에 넣어준다. 매일 동생들 덕에 먹고 산다.

  중간에 다른 전망대를 보려고 호숫가로 나가 보았는데 앞에 가던 대장님이 되돌아온다. 왜 오느냐고 하니 보기가 민망해서 나온단다. 안쪽으로 들어가 보니 젊은 여자들이 거의 나체 수준으로 썬텐을 하고 있다.

  힘이 빠지니 점점 배낭이 무거워진다. 배낭 속에 들어 있는 돈 때문이다. 돈이 무거워 보기는 난생처음이다. 아르헨티나는 제일 큰돈이 2,000페소짜리다. 어제 250달러 환전해서 265,000페소 받았는데 모두 1,000페소짜리로 받았으니 한 짐이다. 그걸 배낭에 지고 왔으니 배낭이 무거울 수밖에. 라오라오 정상에 오르니 호수 전경이 눈부시다. 노르웨이의 피요르와 비슷하다. 이 폼 저 폼 잡으며 사진을 찍고 내려왔다.

  버스 정류장에 와서 20번 버스를 타고 호텔로 돌아왔다. 온종일 먼지가 푹석푹석 날리는 산길을 걸었더니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땅강아지가 되었다. 오늘은 하미까지 16명이 모두 15km 완주하여 흐뭇하다.

  호텔로 돌아와 오늘 입었던 옷을 몽땅 벗어서 빨았다. 잠시 쉬다가 세계적으로 유명하다는 알베르또 식당에 가서 줄부터 섰다. 대통령궁에서 일하던 셰프가 나와서 차린 식당이라는데 1시간 전부터 줄을 선다. 우리도 720분에 도착하여 40분 줄 섰다가 겨우 들어갔다.

  고문님은 어제 잃어버렸던 바람막이와 안경을 찾으러 한식당으로 갔는데 다 찾았다고 한다. 비싼 거라는데 참 다행이다. 어제 한식당에 두고 왔는데 주인이 찾아가라고 전화를 했단다.

  식당 안으로 들어가 주문을 하는데 한꺼번에 주문하느라 아수라장이다. 인순 씨와 나는 꽃등심을 시켰다. 고기가 어찌나 부드러운지 입에서 살살 녹는다. 그동안 사료 수준으로 먹다가 남의 살을 먹으니 좋기는 좋다. 시원한 맥주까지 한 잔 곁들이니 금상첨화다. 우리가 먹는 동안에도 사람들이 계속 줄을 서서 기다린다. 유명 맛집이 확실하다.

  식사 후 호텔로 오다가 초콜릿 가게에 들렀다. 규모가 어마어마하다. 돌아오는 길에 있는 교회 첨탑 위로 상현달이 떴다. 그런데 남반구의 상현달은 우리나라의 하현달 모양이다. 신기하다.

 

2024. 1. 18. 아르헨티나 오토산

  오늘도 20번 버스를 타고 캄파나리오 언덕으로 갔다. 두 명은 리프트 타고 올라가고 11명은 걸어 올라갔다. 그런데 줄이 길어서 걷는 사람이 더 빨리 올라갔다. 정상 부근에는 마리아상과 십자가가 있다. 사방이 호수다. 호수와 설산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 또 걸어 내려왔다.

  다음은 51번 버스를 타고 오토산으로 갔다. 버스에서 내려 곤돌라를 타러 갔다. 성인은 12,000페소인데 경로는 8,000페소다. 남미에 와서 경로우대 많이 받는다. 표를 사러 가는데 안내 여직원이 지금 바람이 많이 불어서 내려올 때는 버스를 타고 내려와야 한다고 말한다. 그건 나중 사정이고 일단 타고 올라갔다. 곤돌라에서 내려 그곳 레스토랑에서 점심을 먹기로 했다. 360° 회전하는 레스토랑이다. 샌드위치가 7,200페소인데 팁까지 8,000페소 냈다.

  점심 식사 후 오토산 둘레길을 걸었다. 진입로를 못 찾아 조금 돌기는 했지만 금방 임도 같이 넓은 길을 찾았다. 시원한 그늘 길을 4km 정도 가니 갑자기 커다란 바위가 나타난다. 여기에 올라가니 그림 같은 풍경이 펼쳐진다. 푸르디푸른 호수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었다. 엎어져서 찍고 자빠져서 찍고 신나게 찍고는 하산을 시작했다. 짙푸른 호수의 색이 빨려 들어갈 것 같다. 서양사람들은 이런 호수를 바라보고 살아서 눈이 푸른색으로 변했을까? 곤돌라 타는 곳으로 돌아와 곤돌라를 타고 내려왔다.

  50번 버스를 타고 호텔로 돌아왔다. 어제 오늘 산길을 걷느라 먼지를 홈빡 뒤집어썼다. 여기 흙은 어찌나 고운지 밀가루보다 더 곱다. 발을 디딜 때마다 푹석푹석 먼지가 올라온다. 바릴로체는 먼지로체다. 샤워 후 오늘도 옷을 빨아 널었다.

  버스 타고 이리저리 다니며 산길 찾아 산행하는 대장님을 보고 인순 씨는 천재라고 말한다. 전용 차량 빌리고 현지 가이드 썼으면 돈 엄청나게 들었을 거라며 이런 분은 여행비 받지 말고 회원들이 나누어 내야 한다고 말한다. 생각해보니 그게 맞는 듯하다.

  저녁에는 한식당에 가서 김밥을 먹었다. 오는 길에 내일 점심때 먹을 빵과 과자를 샀다.

 

2024. 1. 19. 아르헨티나 엘찰텐

  오늘은 느긋하게 아침을 먹고 910분에 택시를 타고 바릴로체 공항으로 갔다. 9,000페소 정도 나온다. 아르헨티나 국내선은 15kg에 맞춰야 한다고 해서 무거운 거 몇 개 뺐더니 15.1kg이다. 그런데 17kg 넘는 사람도 다 무사통과했다. 아르헨티나 항공은 대한항공 마일리지 적립이 가능하다.

  엘찰텐 숙소는 더블 3개 트리플 3개라고 해서 공항에서 사다리 타기를 했다. 오늘 밤 방짝은 누가 될지 궁금하다. 나는 더블2로 뽑았는데 트리플로 바꿨다.

  아르헨티나 항공은 물 한 모금도 안 준다. 항공기가 요동이 심해 비행기 멀미가 나려고 한다. 칼라파테 공항에 내리니 비행기에 연결하는 브릿지에 LG 마크가 붙어 있다. 기분이 좋다. 칼라파테 공항 카페에서 간단히 요기한 후 220분에 일반버스를 타고 엘찰텐으로 출발하려 했는데 340분이나 되어 버스를 탔다. 사다리 타며 열라 조를 짰는데 숙소의 방 형태가 또 바뀌어서 다시 조를 짜아한다. 이거야말로 도루묵이다.

  버스터미널 도착 후 택시를 타려 했지만 택시가 없어서 16명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15분 걸어서 숙소에 도착했다. 짐을 풀고 근처 마트에 들러 소고기와 당근, 양파를 사다가 푸짐한 저녁을 먹었다. 동생들이 야채국수를 만들고 있는데 현지 여자 둘이 들여다보며 이게 무슨 요리냐고 묻는다. 하미가 와서 설명해줬다.

  한 남자가 와서 무슨 요리를 하는지 호박을 써는데 칼질이 엄청 능수능란하다. 평소에 요리를 많이 했나 보다. 계란도 삶고 고구마도 쪄서 내일 아침과 점심 준비를 했다.

 

2024. 1. 20. 아르헨티나 피츠로이

  430분 출발하여 피츠로이 전망대까지 가기로 했다. 3시에 일어나서 준비하고 헤드랜턴을 켜고 집을 나섰다. 한참 오르다 보니 동쪽 하늘이 붉게 물든다. 피츠로이가 여명을 받아 불타는 고구마처럼 변했다. 카프리 호수에 비친 붉은 봉우리가 신비하다.

  카프리 호수를 지나 계속 가니 피츠로이가 점점 가까이 다가온다. 커다란 바위 봉우리에 올라서자 갑자기 호수가 나타난다. 호수 위에 피츠로이가 웅장한 자태를 드러낸다. '! 나 이런 사람이야.'가 아니고 '! 나 이런 산이야.'라고 소리치는 듯하다. 구름 한 점 없이 알몸을 드러낸 피츠로이를 배경으로 인증사진을 찍은 후 하산을 시작했다.

  3km 정도 내려와서 선두그룹은 오른쪽으로 빠지고 고문님과 나는 올라온 길로 내려갔다.

고문님은 걸음이 빨라 순식간에 시야에서 사라지고 혼자서 노냐노냐 놀면서 내려왔다. 올라갈 때는 캄캄해서 아무것도 못 봤는데 내려오면서 보니 형형색색 야생화도 많고 굽이굽이 흐르는 강물을 바라보니 여기가 에덴이 아닐까 싶다. 여기는 총 10km에 얼마 남았는지 표지판이 잘 되어 마음이 편하다. 오늘 20km 걷는 데 10시간이나 걸렸다. 온몸이 만신창이가 되었다.

 

2024. 1. 21. 아르헨티나 쎄로 토레

  오늘은 느긋하게 7시에 아침을 먹고 8시에 출발했다. 식당에는 한국 국기도 걸려있다. 한국 사람도 많이 오나 보다. 세로토레(Cerro Torre)트레킹을 하는 날이다. 체력에 따라 선택하기로 했다.

A: 엘찰텐-토레 호수 왕복 18km 6시간

B: 엘찰텐-토레 호수-Mirado Maestri 왕복 22km 8시간

엘찰텐은 세찬 기류가 피츠로이산 정상에서 충돌하여 구름이 생기면서 하얀 연기를 뿜어내는 것 같아서 엘찰텐(연기를 뿜어내는 산)이라고 불렀다.

  점심과 간식을 준비하여 기대 반 걱정 반의 마음으로 호텔을 나섰다. 산은 내 마음을 가장 설레게 하는 대상이면서 가장 두려운 대상이다. 오늘도 날씨는 쾌청이다. 우리 마음도 쾌청이다.

  숲길로 들어서니 여기저기 고사목이 쓰러져 있다. 나무들은 죽은 시체도 멋있다. 자연에 순응하며 살다가 자연의 부름에 순순히 순종하기 때문일까? 인간은 오래 살겠다고 온갖 건강식품 먹어대며 아등바등 살다가 죽을 때가 되면 안 죽으려고 발악을 하며 죽기 때문에 죽은 모습도 그렇게 추한 모양이다.

  오늘도 꼴찌에 멀리 떨어져서 혼자 걷는다. 꼴찌로 가니 좋은 점도 있다. 침 고이면 침 뱉고 방귀 나오면 맘 놓고 뿡뿡 뀐다. 똥 나오면 똥 누고 오줌 나오면 오줌 눈다.

  숲길도 지나고 뙤약볕도 지나고 예쁜 꽃을 만나면 열심히 찍는다. 나중에 모야모에 물어볼 생각이다. 문득 이런 내 모습을 보고 꽃들은 뭐라고 할까? 하는 생각이 든다. '뭣이 중헌디? 내가 더 중헌 겨 이름이 더 중한 겨?'라고 할지도 모른다. 모든 사물은 이름이 붙여지는 순간 이름 안에 갇히는지도 모른다.

  오늘은 또 어떤 모습의 호수가 나를 반겨줄까 기대감을 가지고 열심히 걸어간다. 걸음이 너무 느리다 보니 앞에 오는 사람에게도 뒤에 오는 사람에게도 수시로 길을 비켜줘야 한다. 그래서 오늘 그라시아스소리와 무차 그라시아스소리 음청 많이 들었다.

  한 부부가 뒤에서 오기에 또 길을 비켜서니 앞질러 가다가 돌아서서 여자가 나에게 묻는다. 혹시 나이를 물어도 되냐고 하기에 75살이라고 하니 "amazing"이라고 한다. 한참 가다가 다시 만났는데 엄지척을 날린다. 주제 파악 못 하고 아무 데나 대가리 디미는 게 내 최고의 단점이다. 내일이란 단어는 내게 있을지 없을지 모르는데 뭐든지 오늘, 지금 이 순간에 해야 한다는 강박관념 때문이다. 내일을 위해 아끼거나 주저할 일이 아니다.

  내려올 때도 혼자 오게 될 확률이 높으니까 열심히 길을 외우면서 간다. 걷고 또 걸어 아무 생각 없이 걷고 있는데 갑자기 눈앞에 호수가 나타난다. 푸른 눈동자 같은 호수가 나타날 줄 알았더니 뿌연 잿빛 호수다. 빙하가 녹은 물이라 석회질이 많은가보다.

  호숫가에서 간식을 먹었다. 곳곳에 돌울타리도 있고 나무울타리도 있다. 바람이 엄청나게 세니까 바람막이로 해놓은 것 같다.

  간식을 먹은 후 호수로 내려가 손을 담갔더니 얼음장처럼 차다. 하긴 물 위에 빙하에서 떨어져 나온 얼음 조각들이 둥둥 떠 있으니 차가울 수밖에 없다.

  다시 위로 올라와 호수 옆 너덜 길을 걸어 올라갔다. 어찌나 바람이 센지 나처럼 골다공증 심한 사람은 날아갈 지경이다. 한참 올라가는데 바위 위에서 사진을 찍던 여자가 손을 흔든다. 자세히 보니 내게 나이를 묻던 여자다. 계속 걸어 올라가니 트레일 끝이다. 빙하를 배경으로 다들 사진을 찍어댔다. 사진을 다 찍고 내려오며 또 그 여자와 굳바이를 했다. 대장님이 이 부부 사진도 찍어줬다. 빙하의 끝자락을 보니 인생의 끝을 보는 듯하다. 그 단단한 얼음덩어리가 맥없이 무너져 물에 둥둥 떠 있다.

  너덜 길을 내려오다가 옆으로 미끄러졌다. 오른쪽 팔꿈치가 까져서 피가 난다. 나중에 집에 와서 보니 오른쪽 허벅지도 길게 상처가 났다. 점점 더 걸음도 느려지고 넘어지기도 잘한다. 무슨 영화를 보겠다고 이렇게 피 보며 돌아다니는지 모르겠다. 하늘나라 가면 힘 안 들이고 드론으로 보는 것처럼 멋진 풍경을 볼 수 있을 텐데 말이다.

  내려오다가 시냇물을 만나 발도 씻고 손도 씻었다. 고문님은 시원하게 세수도 한다. 물가에 앉아 또 간식을 먹었다. 한참 더 내려오니 우리가 올라가던 길로 나왔다. 대장님이 기다리고 있다. 여기서부터는 왔던 길이니까 마음의 여유가 생긴다. 혼자서 하늘도 보고 땅도 보고 꽃도 보면서 노냐노냐 혼자 내려오는데 1km 남은 지점에서 마음 따뜻한 상보와 5번 동생이 기다리고 있다. 여태 기다리고 있었냐고 하니 오래 앉아 있어서 엉덩이가 아프단다. 두 동생들을 보니 안심이 된다. 큰길로 나와 맵스미로 우리 호텔을 치고 잘 찾아왔다.

  호텔에 들어오니 카톡 카톡 한다. 카톡방을 열어보니 하미 팀장이 어제오늘 걷느라 고생이 많았다며 주방 냉장고에 맥주를 넣어놓았으니 마시라고 한다. 냉장고에 가보니 시원한 맥주가 기다리고 있다. 두 병밖에 없기에 다들 가지고 갔나보다 생각하고 한 병을 방으로 가져와 마셨다. 순식간에 갈증이 싹 사라진다. 나중에 알고 보니 같이 마시라는 건데 우리가 다 마셔버렸다. 정말 대책 없는 할망구다. 눈에 뵈는 게 없다.

  방짝인 인순 씨가 카톡을 보더니 어젯밤은 설이가 남편 방문을 밤새 긁어대서 한잠도 못 잤단다. 내가 "설이가 엄마가 오랫동안 안 보이니 엄청 스트레스 받나 봐요." 했더니 그런가 보다고 훌쩍훌쩍 운다. 괜히 나도 눈물이 난다. 해외에 나와서 손녀 보고 싶다고 우는 사람은 봤어도 강아지 때문에 우는 사람은 첨 본다. 반려견을 키우는 사람들은 정이 참 많은 것 같다. 나는 애들이 어렸을 때 붓글씨 쓴답시고 앉았다가 애가 안기려고 가까이 오면 ", 1m 이내로 접근하지 마." 했던 기억이 떠오른다. 난 참 매정한 엄마다. 꼭 해야 할 일은 안 하고 쓰잘 데 없는 일만 열심히 한다.

 

2024. 1. 22. 콘도르전망대

  5시에 로비에 모여 Condor 전망대로 향했다. 피츠로이강을 건너 헤드랜턴을 켜고 캄캄한 숲길을 걸어가려니 날파리가 자꾸 달려든다.

  어떤 놈은 내 눈알로 투신자살을 한다. 썩은 동태 눈알 같은 내 눈으로 왜 뛰어드는지 모르겠다.

산 능선으로 올라가 왼쪽으로 가니 너른 바위 지대가 나타난다. 여기가 콘도르전망대다.

  여기서 일출을 기다려 불타는 고구마 피츠로이를 한 번 더 보려 했지만 구름이 가득해서 포기하고 오른쪽 능선길로 빙~돌아내려 왔다. 7km3시간 정도 걷고 호텔로 돌아왔다.

  오다가 커다란 배낭 모양의 조각품에서 배낭을 멘 포즈로 사진을 찍었다. 4번 동생이 갑자기 이번 기행문 제목은 '은빛 청춘의 남미 여행'으로 하면 좋겠다고 한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청춘은 빼야 할 것 같다. '은빛 망구의 남미 여행'이 적당할 것 같다.

  호텔로 돌아와 아침식사를 하고 10시에 체크 아웃 했다. 식당 소파에 앉아 졸다가 12시쯤 주방으로 가서 어제 남은 고기와 야채로 간단한 점심을 먹었다. 오후 2시까지 호텔 식당에서 죽치다가 버스를 타러 갔다. 4번 부부는 그새 또 폭포를 보고 왔단다. 8km를 걸었다고 한다. 그야말로 찰떡궁합이다. 이런 부부는 지구상에 열 손가락도 안 될 것 같다.

  택시 3대를 불러 짐만 싣고 걸어서 버스터미널로 갔다. 버스에 짐을 실으려니 짐을 번쩍 들이 올려야 하는데 쩔쩔매고 있으니 고문님이 들어서 올려줬다.

  3시간 정도 달려도 계속 같은 풍경이다. 큰 산에 습곡구조가 선명하게 드러나 있다. 얼마나 큰 힘을 받았기에 단단한 암석이 저렇게 구겨졌을까? 저런 작용이 없이 풍화와 침식작용만 계속된다면 모든 육지는 바닷속으로 들어가고 말았을 것이다. 지구의 70%는 바다고 바다의 깊이가 육지보다 훨씬 깊기 때문이다.

  칼라파테 공항을 거쳐 칼라파테 시내에 있는 에코비스타 호텔로 갔다. 여기서도 택시 3대에 짐을 싣고 걸어갔다. 이 호텔에 오지 여행 다른 팀도 들었다. 호텔마다 3인실, 2인실, 4인실, 5인실 등 다양하다. 이번에는 4번 동생이 우리 방으로 왔다. 방팀, 차팀, 식사팀 등이 수시로 바뀐다.

  저녁에는 스시집에 가서 일식을 먹었다. 우리 호텔 강아지가 여기까지 따라와 식탁 밑에 납작 엎드리고 앉아 있다. 주인이 나가라고 해도 꼼짝도 안 한다. 1시간 기다려서 겨우 밥을 얻어먹었다. 우리 강아지는 오늘 손님 잘못 찍었다. 스테이크 먹는 팀을 따라갔어야 하는데 한 입도 못 얻어먹고 쫄쫄 굶었다. 오다가 슈퍼에 들러 고기라도 사주려고 했는데 10시가 넘어서 문이 닫혔다. 이 강아지 오늘 재수 옴 붙었다.

 

2024. 1. 23. 아르헨티나 모레노 빙하

  에코 비스타 숙소 사장님이 서울사대 나왔다고 하기에 수건을 바꾸러 가서 나는 화학과 68학번이라고 하니 자기는 수학과 69학번이란다. 내가 수학과 김학수라는 사람과 대학교 때 산악반에서 같이 산에 다녔다고 하자 맞는다고 자기 선배라고 한다. 우리 연배에는 여기 오는 사람이 별로 없는데 정말 반갑다고 좋아한다.

  아침 식사 후 슈퍼에 가서 함박스테이크 재료를 사다가 미리 준비했다. 인순 씨가 나에게 마늘 까고 양파 씻어서 다지라고 한다. 마늘을 까고 있자니 남편 생각이 난다. 마늘 까는 건 남편 담당이었는데 부려 먹을 인간이 없으니 아쉽다. 집에서는 반찬 안 하고 모조리 사다 먹었는데 몇 년 만에 양파를 다지려니 눈물 콧물이 쏟아진다.

  11시에 호텔을 출발하여 빙하 트레킹을 떠났다. 하미가 날 보고 흰 머리 안 보이게 귀마개 있는 모자로 잘 가리고 가란다. 65세 이상은 안 된다고 하는데 유통기한이 10년이나 지난 주제에 또 빙하트레킹을 하겠다고 설치는 나는 참 대책 없는 할망구다. 알래스카 매킨리산에서 1718일 동안 빙하 위를 걸으며 텐트 치고 잤는데 뭐가 부족해서 이렇게 욕심을 부리는지 모르겠다. 쥐뿔도 없어서 달러 빚까지 내야 할 판인데 말이다.

  아르헨티노 호숫가에서 가이드 죠셉이 엘 칼라파테라고 쓴 글씨 앞에서 사진을 찍어준다. 우리 차를 앞질러 달리는 오토바이들을 보니 체 게바라가 생각난다. 남미 대륙을 독립으로 이끈 체 게바라도 저런 모습으로 달렸을까?

  모레노 빙하가 보이는 장소에 서서 또 사진을 찍어댄다. 바람이 어찌나 센지 사진 찍기도 힘들다.

  전망대 카페에 도착해서 샌드위치를 먹고 전망대 길을 걸었다. 포인트마다 사진을 찍다 보니 시간이 금방 간다. 카페 앞 주차장에 3시까지 오라고 하여 255분쯤 모여있으니 가이드 죠셉이 와서 한국 최고란다.

  유람선을 타고 빙하 끝자락으로 갔다. 바위에 접안하고 내리는데 몇 명 내리지 못해 배가 바람에 밀려 멀리 가버렸다. 우리 팀 10명 중 3명밖에 못 내렸다. 어찌하나 당황하며 기다리는 데 멀리 있던 배가 다시 다가온다. 겨우 접안하고 모두 내렸다.

  가이드가 와서 인원 파악을 하고 빙하의 끝자락으로 데려간다. 거기서 헬멧도 쓰고 크램폰도 신고 중무장을 한다. 트레킹 가이드가 일일이 헬멧도 씌워주고 크램폰도 맞는 사이즈를 골라 신겨준다.

  그 후 일렬로 쭈욱 서서 펭귄 모양 뒤뚱뒤뚱 걸어간다. 스틱을 여기서 빌려준다고 해서 그냥 왔는데 빌려주지 않아 난감해하고 있는데 상숙 씨가 자기 것을 쓰라고 한 짝 빌려준다. 천만다행이다. 바람이 너무 세서 비틀비틀한다. 곳곳의 포토존에서 가이드가 일일이 사진도 찍어주고 부축도 해준다. 다들 너무 멋진 풍경에 입을 다물지 못한다.

  마지막 지점에서 빙하의 얼음을 깨 넣고 위스키를 한 잔씩 준다. 가이드가 이 병은 프랑스산이고 위스키는 스코틀랜드산이라고 농담을 한다.

  선착장으로 돌아와 무사히 배를 탔다. 배에서 가이드들에게 박수도 쳐주고 노래를 부르라고 하니 난감해한다. 대신 우리 모두 아리랑 노래를 불렀다.

  흡족한 마음으로 숙소에 돌아오니 4번 동생이 이 집 사장님이 서울대 동문들에게 대접을 하고 싶단다. 로비 식당으로 가니 사장님과 사모님이 벌써 나와 준비를 다 해놓았다. 아들과 직원들까지 다 함께 식사를 했다. 머나먼 이국땅까지 와서 사대 후배에게 푸짐한 대접을 받았다.

 

2024. 1. 24 칠레 나탈레스로 이동

  아침부터 정신없이 서둘러 버스터미널로 향했다. 숙소 사장님 부부에게 감사 인사를 하고 터미널에 도착해보니 벌써 숙소 강아지 타이슨이 와 있다. 주인보다 낫다. 터미널까지 배웅을 나오다니. 혼자 집으로 돌아가려면 쓸쓸할 것 같다. 타이슨은 매번 하는 일인지 담담하다. 다른 개와 싸우다가 한쪽 눈도 멀고 다리도 절게 되었다는데 자기 임무 수행은 충실히 잘한다.

  8시간을 가야 한다고 해서 물도 잘 안 마셨는데 휴게소에서 화장실 갔다 와 보니 우리 버스에도 화장실이 있다. 맘 놓고 사과와 자두를 먹었다. 이 버스 안에서는 와이파이도 되고 충전도 된다. 다들 핸드폰 보기 바쁘다.

칠레 입국심사를 받고 또 PDI를 받았다. 칠레는 이거 없으면 꼼짝 못 한다. 호텔도 여권과 함께 이걸 보여줘야 하는 곳이 많다.

  버스터미널에서 호스텔 낸시까지 짐은 택시로 보냈다. 호텔에 짐을 풀고 내일 텐트에서 잘 준비를 하려고 일부는 장비를 빌리러 가고 일부는 식량 준비를 위해 슈퍼로 갔다. 두꺼운 옷과 가져갈 식량의 양이 어마어마하다. 12일 산행을 무사히 마치길 기원하며 잠자리에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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