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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8. 22. 후지지 않은 후지산

아~ 네모네! 2023. 9. 4. 23:13

후지지 않은 후지산

이현숙

 

기간 : 2023822~ 829

장소 : 일본

 

  몇 년 전 1월에 일본으로 가족 여행을 갔다. 그 때 호수에 비친 하얀 후지산을 보고 그 매력에 푹 빠졌다. 버킷 리스트에 넣어두고 때가 오기를 기다렸는데 마침내 기회가 왔다. 동생들이 후지산 가려는데 같이 가겠느냐고 카톡방에 올렸다. 이게 웬 떡이냐 싶어 붙여주면 간다고 당장 댓글을 달았다. 사실 나이 74세나 되어 가겠다고 하면 누구나 부담될 것이다. 그래서 항상 조심스럽다. 그래도 염치 불고하고 따라나섰다.

822일 출발

  새벽기도 가려고 엘리베이터를 타니 내일 전 세대 가스계량기를 교체하겠다는 안내문이 붙었다. 어제까지는 없었는데 갑자기 웬일인가. 오늘 일본 가야 하는데 어쩌나 머릿속이 하얘진다. 한참 머리를 굴리다가 아침 식사 후 며느리에게 카톡을 보냈다. 안내문 사진까지 첨부하여 올 수 있냐고 물으니 올 수 있단다. 한시름 놓인다. 집에 사람이 없으니 여행 갈 때마다 여간 불편한 게 아니다.

  공항철도를 타고 가는데 5번 동생이 "2터미널이 맞죠?"하고 카톡방에 올렸다. 나는 당연하다는 듯 오케이를 날렸다. 그런데 잠시 후 4번 동생이 1터미널이라고 한다. 5번 동생은 '오 마이 갓'이라며 큰일 날 뻔했다고 한다. 매사에 꼼꼼하지 못한 내 불찰이다.

2터미널 공항에서 고소 약을 짓기로 했는데 어쩌나 걱정을 하고 있는데 4번이 1터미널에도 인제대 병원이 있다고 한다. 1터미널 지하에서 5번과 만나기로 했다. 카톡 없는 세상에서 어떻게 살았나 싶다.

1터미널 지하로 내려가 이리저리 헤매다 보니 인제대 병원이 나타난다. 진료신청서를 작성하고 나니 5번 동생이 들어온다. 들어오라고 하여 둘이 함께 들어가니 의사가 어디 가기에 고소 약을 지으려 하느냐고 묻는다. 후지산 간다고 했더니 몇십 년 의사했어도 후지산 가면서 고소 약 짓는 사람 처음 본다고 한다. 우리는 3,000m만 넘으면 갤갤댄다고 했더니 그런데 왜 가느냐고 한다. 산행을 별로 안 좋아하는 분인가 보다. 처방전을 받아 옆의 약국에 가서 약을 지었다. 다음은 SK 로밍서비스 하는 대로 가서 로밍을 했다. 난생처음 로밍도 해보고 할망구가 출세했다. 할 일을 다 마치고 식당에 들어가 비빔밥을 먹었다.

  1시에 4번 부부와 장미숙 씨를 만나 체크인하고 안으로 들어갔다. 안으로 들어가 또 쌀국수를 먹었다. 비행시간이 짧아 기내식을 안 줄 줄 알았더니 비빔밥과 빵을 준다. 또 먹었다. 오늘 다섯 끼 먹게 생겼다.

  나고야 공항에서 짐 나오기를 기다리는데 웬 개가 다가오더니 4번 뒤에서 납작 엎드린다. 직원이 다가와 배낭을 열라고 한다. 기내식도 걸린다. 정말 개코다. 저녁때 먹으려고 했는데 다 뺏겼다.

  전철표를 사는데 현금만 받는 곳도 있고 카드만 받는 곳도 있다. 카드 받는 곳으로 가서 표 5장을 샀다. 어디서 타는 줄 몰라 직원에게 물어보니 3번 홈에서 다음에 들어오는 전철을 타라고 한다.

  나고야전철역에서 예약한 내일 기차표를 받으려는데 이리 가도 저리 가도 아니다. 예매한 표를 찾는 곳은 또 다르다. 뭐가 이리도 복잡한지 돌아버릴 지경이다. 겨우겨우 기차표를 받은 후 밖으로 나와 구글맵을 켜고 숙소를 찾아갔다. 숙소 앞 마트에서 맥주와 포도를 샀다.

  숙소로 들어가니 식당에 가서 무료 음료를 마시라고 한다. 식탁에 앉아 이번 여행의 성공을 기원하며 맥주를 마셨다. 미숙 씨가 가져온 황태 껍질 튀각이 안주로 최고다.

 

823

  아침에 일어나 날씨부터 확인한다. 소나기가 내린단다. 주간예보도 토요일 빼고는 연일 비다.

나고야역으로 지도를 보며 열심히 걸어간다. 어제 미리 사놓은 표를 넣고 들어간다. 표를 넣으니 기계 안으로 쏙 들어갔다가 나온다. 표에 구멍 한 개가 뚫려있다.

  50분 후 나카추가가와 역에 도착했다. 역사를 나와 왼쪽에 있는 화장실에 들러 버스 정류장으로 간다. 사람들이 길게 줄을 서 있다. 마고메행 버스를 타고 10분 가서 오치아이주쿠 버스 정류장에서 내린다. 버스를 탈 때 표를 하나씩 뽑는다. 표에는 숫자가 쓰여있다. 어디서 탔는지 나타내는 것 같다. 버스는 뒤로 타고 앞으로 내린다. 앞의 전광판에 어디서 탄 사람은 얼마 내라는 표시가 뜬다.

 

오치아이주크에서 내려 중산도(나카센도) 길을 걷는다. 삼나무숲이 싱그럽다.

  마고메까지 가서 소바와 맥주로 점심을 먹었다. 원래 우리가 점심 먹으려고 생각했던 식당은 모든 좌석이 예약되었다고 해서 안으로 들어가 정원만 구경하고 나왔다.

  점심 식사 후 츠마고로 출발했다. 뙤약볕을 걸으니 땀이 삐질삐질 나온다. 마침 아이스크림 가게가 나타난다. 안으로 들어가 바닐라 아이스크림을 먹으니 속이 시원하다. 중간에 남자 폭포와 여자 폭포가 있는데 서양 여자는 알탕도 즐긴다.

  우리도 폭포 아래쪽에서 발을 담그니 땀이 쏙 들어간다.

나기소역 조금 못 미쳐 큰 마트에 들어가 고기와 회, 김치 등을 잔뜩 샀다. 돈가스에 밥이 들어있는 도시락도 있다. 우리는 햇반은 없나 하며 찾고 있는데 5번 동생이 직원에게 도시락을 들고 가서 묻는다. "only rice. where?" 하자 금방 알아듣고 햇반 있는 대로 데려간다. 나는 주어 찾고 동사 찾고 하다가 아무 말도 못 하는데 5번은 순발력이 뛰어나다.

  저녁거리를 잔뜩 사가지고 숙소를 찾아갔다. 숙소 앞 칠판에는 제부 이름이 적혀있고 옆에는 열쇠함이 있다. 메일로 알려준 비밀번호로 열쇠함을 여니 열쇠가 들어있다.

  방으로 들어가니 전망이 기막히다. 다들 샤워를 끝낸 후 빨랫감을 가지고 빨래방으로 갔다. 우리가 어리버리하니까 관리인 아저씨가 다가와 동전 바꾸는 법과 세탁기 돌리는 법, 건조기 돌리는 법까지 알려준다.

숙소로 돌아와 고기와 회를 안주 삼아 푸짐한 저녁을 즐겼다. 오늘 16.5km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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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밤에 조용해지니 옆 찻길에서 달리는 차들의 소리가 천둥소리 같다. 다른 건 다 좋은데 요게 문제다.

숙소 앞 공원으로 산책을 갔다. 긴 다리(모모스케브릿지)도 있는데 동생들은 여기서 팔짝 팔짝 뛰며 높이 뛰기를 한다.

길 옆 축대에 있는 그림 앞에서 갖가지 포즈를 잡으며 또 사진을 찍는다.

  아침 산책을 하고 방으로 돌아오니 비가 내린다. 배낭 커버 씌우고 비닐로 등산화를 싸서 중무장을 했다. 나기소역에서 기차를 타고 야부하라역까지 갔다. 야부하라휴게소에서 아침을 먹으려 했지만, 휴게소 내의 식당은 10시부터 연다고 한다. 휴게소에서 옥수수와 빵을 사서 아침을 해결했다. 여기서 도리이 고개를 향해 걷기 시작했다. 비가 오락가락하니 뜨겁지 않아서 좋다. 도리이고개 정상에는 대피소 건물도 있고 약수도 흐른다.

도리이 고개를 넘어 나라이추쿠에 오니 관광지라 사람들이 제법 많다.

  소바집에 들어가 소바와 모찌를 먹었다. 우리나라 모찌를 생각했더니 생판 다르다 찰밥을 뭉친 것 위에 무슨 소스 같은 것을 얹어놓았다.

  나리오역에서 1시간을 걸어 기소히라사와역으로 갔다. 여기서 기차 타고 4개 역을 지나 시오지리에서 내려 신주쿠행 특급 열차를 타고 코후 역에 내렸다. 기소히라사와는 무인역이라 기차를 탄 후 표를 뽑아야 한다. 플랫폼으로 들어오니 승차 위치가 표시되어 있다. 무인역이지만 관리하는 할아버지가 와서 화장실 청소도 하고 화단의 풀도 뽑고 있다.

  시오지리에서 환승하려고 내렸다. 기차에서는 나가서 계산하라고 해서 개찰구로 왔더니 매표소에서 함께 내라고 한다. 줄 섰다가 표 사려고 하니 안에서 계산하고 나와야 한단다. 직원과 함께 제부와 5번 동생이 안으로 다시 들어가 계산하고 좌석만 받아왔다. 시간이 없으니 기차표는 열차 안에서 직원에게 사라고 한다. 지정 좌석에 앉아있으니 직원이 지나간다. 5번이 직원을 불러 비용을 내고 기차표를 받았다. 무슨 007 작전도 아니고 정신이 하나도 없다.

  코후로 오는 기차에 앉아있는데 손자가 전화를 한다. 포켓몬 카드를 샀느냐고 하는데 계속 산으로 다니느라고 못 샀다고 했다. 어디 가서 사기는 사야 하는데 어디서 파는지를 모르니 큰일 났다.

  코후에서 내려 숙소로 이동했다. 짐을 풀고 나와 소바집에 가서 오리 칼국수로 몸보신을 했다. 호텔로 돌아와 천연온천장에 가서 뜨끈한 탕에 들어가니 온몸의 피로가 풀린다. 빨래를 하고 9층에 올라가 건조기로 말렸다. 내려오려고 하다가 옆에 있는 안내문을 보니 아이스바와 유산균음료가 공짜다. 공짜라면 양잿물도 먹는다는데 5번과 나도 아이스바를 3개씩 먹었다.

  5번은 그동안 쓴 돈을 계산하느라 4번과 머리를 쥐어짠다. 동생들 덕에 난 항상 날로 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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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40분 버스를 타고 가와쿠치코역(하구호역)으로 출발했다. 버스값이 올랐나 보다. 우리가 조사한 것보다 비싸졌다. 1,500엔인 줄 알았더니 1,690엔이 됐다. 2일 치 교통 할인 티켓도 없어져서 사지 못했다. 장사 잘되나 보다. 935분에 블루인 버스를 타고 종점에서 내린다.

  풍혈과 빙혈을 봤다. 풍혈 가는 길은 제주도 곶자왈 비슷하다. 동굴 속에 얼음이 많다. 풍혈 속에는 각종 씨앗과 누에고치를 보관해놓았다.

빙혈은 오리걸음으로 기어가야 한다.

  단열팽창으로 공기 온도가 낮아져 한여름까지 얼음이 있는 게 참 신기하다. 팽창에는 열팽창과 단열팽창이 있다. 열을 주어 팽창하는 것은 열팽창이고 압력이 낮아져서 팽창하는 것은 단열팽창이다. 공기가 좁은 바위틈을 나와 갑자기 팽창되면 자신이 가진 열을 소모하면서 온도가 내려간다.

  빙혈을 보고 나와 아침에 호텔에서 가져온 푸딩을 먹었다. 조금 걸어가려니 배가 살살 아프다. 날짜가 오래된 것인지 아니면 한참 끌고 다녀서 그런지 모르겠다. 홍엽대(고요다이)를 향해 올라가는데 도저히 참을 수가 없다. 먼저들 가라고 하고 길옆으로 들어가 실례를 했다. 노상 방뇨는 수없이 해봤어도 노상 방분은 처음이다. 홍엽대 정상에는 후지산 사진이 가득 걸린 매점이 있다. 할머니 혼자 우동도 판다.

홍엽대에서 나와 삼호대로 갔다. 삼호대(산코다이) 전망이 끝내준다. 새파란 하늘에 흰 뭉게 구름, 그리고 내려다 보이는 세 개의 호수. 날씨가 받쳐주니 뜨거운 햇살도 감사할 따름이다

오호대(아시와다산)에서 후지산을 가리키며 사진을 찍었다.

(아

  산에서 내려와 71번 입봉기 버스 정류장에서 4S 버스를 타고 하구호역으로 왔다. 버스가 27분 지연되어 길바닥에서 마냥 기다렸다. 하구호스테이션에 보관한 짐을 찾아 오늘의 숙소인 일본식 전통 게스트하우스에 들었다. 다다미방에 온갖 일본 옷이 걸려있다. 입어보라는 뜻인가보다.

  부엌에는 그릇도 잔뜩 있는데 써도 된다고 한다. 물도 후지산에서 내려오는 것이라 그냥 먹어도 된단다.

1층은 로비인데 전통 체험을 할 수 있도록 꾸며 놓았다. 한 서양 여자가 붓글씨를 쓰고 있다. 벽에는 손님들이 쓴 글씨들이 붙어있다.

  저녁은 로비에서 샤부샤부를 먹었다. 주인이 미리 주문을 받아 배달시켜준다. 식당에 가서 먹는 것보다 우리끼리 맘껏 떠들며 먹으니 좋다.

 

826

  새벽에는 물병을 잃어버리는 꿈을 꿨다. 사람들은 출발하는데 미숙 씨와 함께 물병 찾아다니느라 허둥대다가 깼다. 물병에 대한 스트레스가 있었나 보다.

  아침에 일어나니 뒷산 허리에 안개가 자욱하게 걸려있다. 날다람쥐 4번 부부는 새벽에 일어나 동네 한 바퀴 돌러 갔다. 힘이 남아도나 보다.

  7시부터 아침 식사라고 해서 내려가 보니 빵이 든 예쁜 그릇에 방 이름이 적혀있다. 우리 빵을 가져다가 식탁에 차려놓고 커피와 함께 아침을 먹었다.

  식사 후 가와쿠치코역(하구호역)으로 와서 여기저기 구경하다가 4번 버스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렸다. 제부가 나를 보고 의자에 앉으라고 하자 옆에 앉아있던 젊은 커플이 일어나며 앉으라고 한다. 우리가 경로라고 하는 말을 감으로 알아들었나 보다.

  95분 버스를 타고 두 정거장 갔는데 사람들이 다 내린다. 버스를 잘못 타서 죽자사자 걸어서 원위치로 되돌아왔다. 세상만사 맘대로 되는 게 없다. 내가 보려고 하는 것보다 보여주는 대로 봐야 한다. 935분 버스를 초치기로 타고 다시 출발했다. 매일 매일이 라이브쇼다.

  다음 정류장에 도착했는데 서양 청년. 두 명이 달려오며 손을 흔든다. 달려오더니 어디 가느냐고 묻고 탄다. 기사가 버스 티켓을 뽑으라고 하는데 잘 못 알아듣는다. 우리가 티켓 나오는 기계를 가리키며 뽑으라고 알려줬다. 며칠 있었다고 벌써 남에게 가르쳐주는 수준이 됐다.

  후지산은 한라산 비슷하다. 사람도 산도 멀리서 보여야 멋지다.

B88 번 버스 정류장에서 내려 파노라마전망대로 올라가다가 시간이 부족해서 되돌아왔다. 정진호(모토스호)에는 캠핑하는 사람들과 낚시질 하는 사람들이 평화롭다.

  여기서 다시 버스를 타고 돼지머리 공원으로 갔다. 공원에서 간식을 먹고 진마폭포로 출발하는데 소나기가 퍼붓는다. 아스팔트 길에서 김이 무럭무럭 올라온다. 가마솥의 끓는 물에서 올라오는 김 같다.

  여기서 타누키 호수 쪽으로 가는 동안 소나기가 계속 퍼붓는다. 천둥 번개가 요란하다. 고다누키고 습지에는 데크가 깔려있어 걷기 편하다.

타누키호에 비친 후지산이 아름답다. 타누키 호수는 댐으로 막혀있는 인공호수다.

  호수를 반 바퀴 돌아 내려와 큐카무라 후지 호텔 앞 의자에 앉아 버스를 기다렸다. 미숙 씨가 호텔에서 사 온 육포칩과 모찌로 요기를 했다. 냉동 모찌라서 얼마나 딱딱한지 이빨이 부러질 지경이다. 여기서 50분을 기다려 425분 버스를 타고 백사 폭포로 갔다.

  시라이토폭포(백사폭포)는 하얀 실처럼 생긴 폭포가 여러 개 있다. 오토도메폭포(음지폭포)800년 전에 소가 형제가 이 폭포 근처에서 복수하기 위한 상의를 하고 있었는데 폭포 소리가 너무 시끄러워 이야기할 수 없다고 하자 폭포 소리가 멈췄다고 해서 소리 에 그칠 를 써서 음지 폭포라고 했단다.

  다시 버스를 타고 후지노미아로 와서 호텔에 들었다. 이온 몰로 가서 비빔밥도 먹고 포켓몬 카드도 샀다. 통역기로 포켓몬 카드는 어디 있느냐고 물으니 매장 배치도를 보여주며 알려준다. 2층으로 올라가 다시 물어보니 직접 매장까지 데리고 간다. 매장은 찾았는데 다 팔리고 없단다. 실망하며 다른 카드를 보고 있는데 4번이 이거 포켓몬 아냐? 한다. 두 개가 있다. 얼른 샀다. 나중에 알고 보니 카드가 아니고 카드 케이스다.

  호텔로 돌아와 샤워 후 세탁기를 돌리려는데 동전을 넣어도 금액이 올라가지 않는다. 5번 동생이 직원을 불러와 열쇠로 쑤셔 넣으니 겨우 돌아간다.

  내일 산장으로 가지고 갈 짐을 챙긴 후 잠자리에 들었다.

 

827

  후지산 올라갈 때 꼭 필요한 짐만 가지고 가고 나머지는 숙소에 맡겼다. 산장 화장실에는 휴지가 없다고 해서 호텔 화장지도 챙겼다. 5번은 어제 젖은 등산화를 말리느라 아침까지 분주하다.

  1030분 버스를 타려고 아침 식사 후 버스표를 미리 예매했다. 로비에 내려와 짐을 맡기니 번호표를 준다. 81번이다. 차 시간이 남아서 시원한 로비에 앉아 음료를 마셨다. 5번은 안마 의자에 앉아 마사지도 한다. 오늘도 소나기 예보가 있다. 7합목까지 비 안 맞고 가는 게 목표다.

  930분 버스를 타고 12시쯤 후지노미아구치 5합목에 내리니 연탄가스 냄새가 심하게 난다. 고소증세가 온 것이다. 하긴 600m에서 2,400m까지 버스를 타고 올라왔으니 고소증이 나타나는 게 당연하다.

  6합목을 향해 올라가는데 구조대원이 웬 여자를 업고 내려온다. 겁이 더럭 난다. 나도 나중에 저렇게 내려오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6합목 산장에서 컵라면을 사 먹었다. 고소약과 소화제, 정로환도 먹었다. 7합목으로 올라간다. 올라가는 길이 환상이다. 어제까지만 해도 후지산이나 한라산이나 거기서 거기라고 생각했는데 휠 났다.

  7합목 고라이코산장에서 1인당 만 엔씩 내고 자리를 배정받았다. 칸칸이 나누어져 있고 전등도 달려있다. 자리에 누우니 손이 달달 떨리는 느낌이다. 고소 약 때문인가 보다. 화장실에 갈 때는 열쇠를 가져가야 한다. 투숙객에게는 돈을 안 받지만 다른 등산객은 돈을 내야 한다. 알바생이 지키고 있다.

  5시에 저녁을 준다. 내일 먹을 도시락도 미리 나눠준다. 저녁을 먹고 클린징 티슈와 동전 티슈로 고양이 세수를 했다. 이 닦을 곳이 없어 그냥 자리에 눕는다.

 

828

  새벽 1240분에 7합목 산장에서 출발했다. 캄캄한 밤에 헤드랜턴을 켜고 줄줄이 올라가니 그 모습이 장관이다.

7합목 산장에서 위로 올라가니 원조 7합목 산장이 또 있다.

  8합목, 9합목으로 올라갈수록 바람이 점점 차가워진다. 패딩에 바람막이까지 입고 단단히 무장했다. 내 걸음이 느려서 미리 도착한 동생들 얼굴이 퍼렇게 되어 기다리는 모양을 보면 참 미안하다. 10합목 산장 앞에는 일출을 보려는 사람들이 바글바글하다. 1인당 300엔씩 주고 화장실에 갔다. 오줌 한 번 누는데 3천 원이라니 좀 비싸기는 하다. 하지만 화장지는 있다.

  정상인 겐가미네봉에는 기상관측소가 있다. 정상 사진을 찍으려는 사람들이 길게 줄을 서 있다.

사진 몇 장 찍고 분화구를 한 바퀴 돌기로 했다. 분화구 모양도 멋있지만, 색깔이 기기묘묘하다.

  한 바퀴 다 돌고 왼쪽으로 내려와 보영산(호에이산) 쪽으로 갔다. 화산재로 뒤덮인 길이라 쭉쭉 미끄러진다. 지그재그로 올라오는 사람들이 개미 행렬 같다.

  보영산 가까이 오니 호장근이 피어, 마치 고랭지 배추밭을 보는 것 같다. 보영산 정상에는 안개가 자욱하다. 여기서도 정상 사진을 찍고 6합목 쪽으로 하산했다.

  화산재로 뒤덮인 길을 계속 내려오려니 엄지발가락이 아프다. 1분화구 바닥에는 넓은 평지가 있고 의자도 있다. 화산이 터질 당시 어떤 모양이었을까 상상해본다. 여기서 간식을 먹고 다시 출발했다.

5합목까지 내려와 택시를 타고 후지노미아역으로 왔다. 버스를 타려면 4시간은 기다려야 하니 택시 한 대당 10만 원이 넘는 거금을 투자했다.

  호텔로 돌아와 맡겼던 짐을 찾아 역으로 가서 시미즈로 갔다. 중간에 한 번 갈아타야 한다. 시미즈의 호텔에서 체크인을 하려니 4시부터 하니까 짐을 맡기고 밖에 가서 놀다가 4시에 오라고 한다. 화장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변기 뚜껑이 저절로 열린다. 나올 때는 다시 닫힌다. 참 좋은 발명품이다. 사실 화장실에 들어가 변기 뚜껑을 손으로 잡고 열 때 기분이 좀 찝찝했었다.

  시간 보낼 곳이 없으니 이른 저녁을 먹기로 했다. 어시장에 있는 횟집에 가서 푸짐한 저녁을 먹었다. 한국서는 방사능 오염수 방출한다고 난리를 치는데 우리는 일본에 와서 회를 먹는다. 우리가 강심장인가?

 

829

  호텔에 짐을 맡기고 시미즈 역으로 갔다. 시미즈 역에서 257번 버스를 타고 미호의 마쓰바라 송원(三保松原)으로 갔다. 소나무길이 멋지다.

  세계문화유산에 등록된 공원이다. 공원 앞에는 이 공원에 대한 전설이 적혀있다. 선녀가 내려와 소나무에 날개옷을 걸쳐 놓았는데 한 어부가 발견하고 가져왔다. 선녀가 와서 날개옷을 돌려달라고 하자 어부는 내가 발견했으니 내 꺼라고 우겼다. 선녀는 날개옷이 없으면 하늘나라로 돌아갈 수 없다고 절망에 빠져 울부짖자 어부는 조건을 걸었다. 이 날개옷을 입고 천상의 춤을 추면 돌려주겠다고 했다. 그러자 선녀가 날개옷을 입고 춤을 추고는 춤이 끝나자 안개 속으로 사라졌다. 입구에는 선녀가 날개를 걸었다는 소나무도 있다. 이런 정도로 어떻게 세계문화유산에 등록되었을까 싶다. 썰을 잘 풀었던가 국력이 강해서인가 모르겠다.

  입구에서 해변을 따라 왼쪽으로 가니 후지산이 보인다. 바다를 배경으로 흰 구름 허리띠를 두른 후지산이 기막히게 아름답다.

  후지산은 보면 볼수록 잘 생겼다. 어제는 후지산의 속살을 보고 오늘은 겉살을 봤다. 제부의 선배가 여기 가보라고 했다는데 정말 고맙다. 5번 동생은 물고기까지 집어 나무토막에 얹어놓고 입에 손가락을 넣으며 재미있어한다.

  다시 입구로 와서 이번에는 오른쪽으로 갔다. 초입에 날개옷 기념비가 있다. 웬 여자가 가면을 들고 있는 조각이 있어 여기서 사진을 찍는데 한 남자가 다가오더니 사진을 찍어 주겠단다. 미숙 씨가 핸드폰을 주니 렌즈까지 닦아서 찍어 준다. 일본사람들 정말 친절하다.

  공원에서 나와서는 버스 시간이 다 되었다고 달려간다. 이 팀을 따라다니려면 가랑이 찢어질 지경이다. 다시 257번 버스를 타고 시미즈 역으로 왔다. 제부와 5번 동생은 차표를 사러 기차역으로 달려가고 세 명은 호텔로 가서 짐을 찾았다. 병에 물을 채우고 나서 객실에 과일을 두고 왔다고 하니 찾으러 간다. 다시 오더니 없다고 하며 무슨 과일이냐고 한다. 사과와 블루베리라고 하니 다시 찾아보겠단다. 잠시 후 찾았다고 하며 다른 방에 두었단다. 청소 아줌마들이 자기들 방에 갖다 두었나 보다. 기차 시간에 맞추려고 또 달려간다. 연일 007 작전이다.

  시미즈 역에서 기차를 타고 시즈오카역에서 신칸센 열차로 환승해서 나고야역까지 갔다. 환승할 때는 승차권 2개를 다 구멍에 넣어야 한다.

  나고야역에서 공항철도 타는 곳을 찾아 헤매다가 겨우 찾아서 좌석이 있는 표를 사려는데 잘 모르겠다. 여직원이 와서 도와줘서 표를 샀다. 표가 5개 나오기에 그걸 가지고 3번 플랫폼에 있으니 그 여자 직원이 다시 왔다. 승차권만 가져오고 좌석표를 안 가져왔다는 것이다. 뭐가 이렇게 복잡한지 모르겠다.

  겨우 공항에 도착하여 출국 심사를 하고 들어오니 '돌아오지 마.'라고 써 붙여놨다. 뭔가 욕먹는 느낌이다.

  짐을 부치고 안으로 들어가 과자와 생초콜릿을 샀다. 생초콜릿은 두 시간 지나면 녹는다고 해서 보랭 주머니를 샀다. 이게 또 100엔이다. 18번 게이트로 와서 의자에 앉으니 그동안의 일이 꿈만 같다. 구운몽이 아니고 8운몽을 꾼 것 같다.

 

  이번 여행은 정신없이 돌아친 007여행이다. 후지산은 절대 후지지 않은 최고로 멋진 산이다. 미남 중에서도 최고의 미남이다. 버킷리스트에서 한 개를 또 지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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