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빛 망구의 남미 여행
이현숙
기간 : 2023년 12월 29일 ~ 2024년 2월 7일
장소 : 페루, 볼리비아, 칠레, 아르헨티나, 브라질
남미는 두 번 다녀왔는데 동생들이 간다고 하니 또 따라나섰다. 내가 못 가본 우유니 사막과 티티카카 호수가 들어 있고 피츠로이 트레일과 토레스 델 파이네 트레킹이 들어서다. 세상에서 가장 멋있는 곳은 내가 안 가본 곳이라는 말이 맞는다. 인간은 가보지 못한 곳에 대한 끝없는 호기심과 열정에 이끌려 여행을 떠나는 것 같다.
2023년 12월 출발 전 준비
41일의 긴 여행을 준비하려니 할 일도 많다. LA를 경유하니 미국 비자부터 받아야 한다. 아들이 집에 왔을 때 부탁했다. 그전에는 혼자 하던 것도 못 하고 버버거린다. 자꾸 남에게 부탁하니 점점 더 모른다.
다음은 볼리비아 비자다. 볼리비아 대사관 홈페이지에 들어가니 인지가 없단다. 몇 주 후 인지가 도착했다고 하여 신청서를 작성하려니 또 버버거린다. 뭐가 잘못됐는지 빨간 글씨가 뜨는데 스페인어라 눈뜬장님이다. 이걸 스캔해서 스페인어 학과에 다니는 외손자에게 보냈더니 이미 등록된 메일이란다. 천천히 해보려고 했더니 5일 만에 또 인지가 없단다. 꼭지가 돌아버릴 지경이다. 도저히 자신이 없어서 대행사에 부탁했다. 보내라는 서류를 다 만들어 빠른 등기로 보냈다.
2주 후에 인지가 도착했다더니 하루 만에 또 인지가 없단다. 다시 또 몇 주를 기다려야 하니 잔액 증명서를 다시 떼서 대행사에 또 보냈다. 잔액 증명은 1개월 이내의 것이어야 한다. 3주를 기다렸더니 12월에 출발하는 사람에 한해서 하루만 신청받는다는 연락이 왔다. 이번에 못 하면 다시는 기다릴 시간이 없고 현지에 가서 비자를 받아야 하는데 값도 비싸고 시간도 걸리니 되도록 한국에서 받아야 한다. 속을 태우고 있는데 대행사에서 연락이 왔다. 신청했다는 것이다. 며칠 후 비자를 받았으니 12만 원을 보내라고 한다. 신이 나서 즉시 보냈다. 내일 도착할 거라고 한다. 다음 날 등기우편을 받으려고 집에서 꼼짝하지 않고 기다렸다. 우체부가 오자 너무 기뻐서 과자를 한 보따리 줬다. 감사하다고 얼른 받는다. 여권을 꺼내 볼리비아 비자를 보니 감격스러워 눈물이 날 지경이다.
저렴한 여행사로 가려니 왜 이리도 할 일이 많은지 모르겠다. 비싸게 갈 때는 여행사에서 비자도 받아주고 비행기 좌석도 받아주고 했는데 다 본인이 하라니 엄두가 안 난다. 아무 좌석에나 앉아서 가려고 멍청하게 있었더니 4번, 5번 동생이 다 해줬다. 나는 정말 전생에 나라를 구했나 보다. 다른 건 몰라도 동생 복 하나는 참 많다.
짐을 싸려 하니 약이 한 보따리다. 눈에 넣을 백내장약, 눈물 약, 귓속에 넣는 습진약, 콧구멍에 넣는 비염약, 입의 염증에 뿌리는 프로폴리스, 오래 걸어서 아래가 쓰릴 때 바르는 세레스톤지 연고 등을 챙기려니 한심하다. 구멍이란 구멍은 모두 말썽을 부리니 먹는 약까지 한 가방이다. 요즘 완전 병원 순례 대행진이다. 내과에 가서 고지혈증약과 위염약 지어오고, 이비인후과에 가서 귓병 약과 비염약을 받아왔다. 치과에 가서 잇몸 치료하고 잇몸 약도 지어왔다. 출발 전날은 눈이 아파 안과에 갔더니 눈에 눈썹이 들어갔다고 빼주고 결석도 생겼다고 떼어냈다. 눈에 넣는 소염제가 또 추가됐다. 이렇게 돌아다니다 보니 짐 쌀 시간이 없어서 전날 자정까지 쌌다.
2023. 12. 29. 출발
드디어 출발이다. 출발 당일은 새벽같이 일어나 대충 떡으로 때우고 커다란 짐을 끌고 집을 나섰다. 사가정역에 오니 에스컬레이터가 고장이다. 엘리베이터가 있는 곳은 멀고 신호등도 건너야 한다. 그냥 질질 끌고 긴 계단을 내려오려니 그렇지 않아도 아픈 허리가 아작날 판이다. 전철을 타려니 사람이 어찌나 많은지 사람이 터져 나올 지경이다. 커다란 트렁크와 배낭을 지고 밀고 들어가려니 들어갈 수가 없다. 뒷사람이 트렁크를 힘껏 밀어줘 겨우 문이 닫혔다. 그 사람은 못 탔다. 타고 나니 사방에서 눌려 트렁크와 배낭이 찌그러질 판이다. 숨쉬기도 힘들다.
고속터미널에서 9호선으로 갈아타고 김포공항에서 공항선을 탔다. 다행히 경로석에 자리가 있어 앉았다. 앉아서 보니 배낭 허리 주머니가 열렸다. 아무리 뒤져봐도 집 열쇠와 캐리어 열쇠가 없다. 앞이 캄캄하다. 다행히 캐리어 열쇠 여분은 배낭 윗주머니에 있다. 아들에게 카톡을 보내 집 열쇠를 잃어버렸으니 내가 도착하는 날 우리 집에 와 있으라고 했다. 마음을 비우고 우연히 패딩 잠바 주머니에 손을 넣었더니 거기 있다. 어이가 없다. 다시 아들에게 카톡을 보내 찾았다고 했다. 아주 생쇼를 한다.
공항에서 체크인한 후 맵스미를 열어 우리가 갈 곳의 지도를 다운 받느라고 한바탕 난리를 쳤다. 환율 플러스도 깔고 이것저것 하느라 시간이 금방 간다. 공항이 혼잡하여 20분 늦게 출발했다. 여행객이 많기는 많은가보다. '헤어질 결심' 영화도 보고 '걸어서 세계 속으로'도 보고 하니 시간이 잘 간다.
LA 가까이 가니 여명이 밝아온다. 그런데 유난히 확확 밝아지는 느낌이 든다. 우리가 동쪽으로 날아가기 때문인가? LA 공항에서 캐리어를 찾아 다시 부치고 엑스레이 투시기를 통과하는데 내 배낭이 옆으로 빠진다. 뭔 일인가 걱정하며 양말 바람으로 왔다 갔다 했다. 여기선 신발까지 벗어야 하니 더 불편하다. 한참을 기다려 직원이 내 짐을 가져오기에 앞으로 갔더니 모니터를 보고는 엄지척하며 그냥 내어준다. 열어보지도 않을 걸 왜 옆으로 뺐나 모르겠다. 나중에 제부에게 물어보니 기계가 먼저 보고 분리하는데 사람이 다시 봐서 이상 없으면 안 열어본다는 것이다. 기내에서 가져온 고추장 때문인가 걱정했는데 한시름 놓았다.
리마행 비행기에서는 옆자리가 비어서 쪼그려 누워 잘 잤다. 한잠 자고 일어나서 이번에 받은 파일들을 찬찬히 읽다 보니 아뿔싸 시에라컵과 수저를 안 가지고 왔다. 캠핑이 있다는 걸 알았으면서 왜 이걸 안 챙겼나 모르겠다. 한참 머리를 굴리다가 기내에서 식사할 때 준 일회용 나무 포크 하나 챙겼다. 아고~ 계속 실수 연발이다.
밥 먹고 기내 화장실에 줄을 서 있는데 앞의 여자가 칫솔을 가리키며 뭐라고 뭐라고 한다. 먼저 들어가라는 것 같아 땡큐하며 들어갔다. 남을 위한 작은 배려가 참 마음을 따뜻하게 한다. 나 같으면 이런 생각을 못 했을 거다.
페루 입국하는데 윤석리? 윤석리? 하기에 뭔 소린가 하다가 아차 '현숙 리' 라는 소리구나 싶어 예스라고 했다. 스페인어는 h가 묵음이라는 생각이 났다.
페루 공항에서 페루라고 쓰여있는 그림을 보니 비로소 남미에 왔다는 실감이 난다.
미라플로레스 호텔에 와서 짐 정리하고 누우니 밤 12시가 넘었다. 길고 긴 하루였다.
2023. 12. 30. 페루 리마
아침 식사 후 옥상에 모여 하미 팀장이 여행 시 주의사항을 전달하고 나스카까지 필요한 비용을 걷었다. 옷은 2박 3일 짐만 챙기고 여름옷과 바람막이, 선글라스와 모자를 챙기라고 한다. 캐리어는 호텔에 맡기고 쿠스코는 추우니 두꺼운 양말과 옷도 준비하라고 한다. 옛날에 쿠스코 왔을 때 고산증으로 엄청 고생한 생각이 떠올라 고산증약도 챙겼다. 나스카에서 비행기 탈 때 멀미가 날 수 있으니 아침식사는 적게 하는 게 좋다고 한다.
오늘 일정은 버스에 2박 3일 짐을 놓고 걸어서 투어한 후 점심 먹고 피스코로 넘어간다. 리마에서 사랑의 공원을 보고 환전소에 가서 400달러를 1472솔로 바뀠다.
구시가지로 이동하여 아르마스 광장으로 갔다. 아르마스는 무기란 뜻이고 아르마스 광장은 무기 거래가 있던 중심 광장이다. 오늘 무슨 공연이 있는지 멋진 옷을 입고 준비하는 사람들이 있다.
대통령궁을 보고 대성당으로 갔다. 문이 안 열려 산토도밍고 교회를 보러 갔다. 교회 뒤쪽으로 가니까 산이 보인다. 산꼭대기까지 알록달록 게딱지 같은 집들이 붙어 있다. 미술작품 같다.
피스코로 출발하기 전 유료 화장실에 갔다. 지저분하다. 가다가 휴게소에서 아이스크림을 사 먹고 다시 출발했는데 여기는 화장실이 무료다. 무료 화장실이 리마 유료 화장실보다 훨 낫다.
피스코에 도착하여 콜로라도 숙소에 도착했다. 집이 시끌벅적 난리다. 연말이라 온 친척들이 모였단다. 샤워를 하는데 찬물만 나온다. 저녁식사를 어찌할까 생각하다가 거리로 나가 햄버거 가게로 갔다. 맛집인지 대기 줄이 길다. 5솔이다. 주문하느라고 생쇼를 벌인다. 상보 씨는 고기 빼고 치즈 넣어달라고 하는 모션을 하느라 고기를 가리키며 손가락으로 ×를 해도 통 못 알아듣고 고기를 하나 더 넣으려 한다. 우여곡절 끝에 겨우 목적 달성하고 나니까 번역기로 할 껄 하는 생각이 든다. 1솔은 350원인데 5솔이니 1,700원밖에 안 된다. 고기, 계란, 소시지, 양배추까지 푸짐하게 넣어준다.
상보, 상숙 씨와 함께 중앙광장 벤치에 앉아 햄버거를 먹었다. 연말 축제가 한창이다. 숙소로 돌아와 피자와 맥주로 파티를 벌이며 위하여를 외쳤다.
2023. 12. 31. 페루 바예스타섬
밤에 불이 안 들어온다고 이방 저방 난리가 났다. 전기가 부족해서 단전을 하나 보다. 광장에서 밤새 쿵작거리는 소리가 그치지 않는다. 날밤을 새우다시피 했다.
6시 30분 식사 후 7시 30분에 출발했다. 방값은 185솔을 둘이 나누어 냈다. 항구를 향해 달리다가 해변에 있는 홍학도 보았다. 모터보트를 타고 바예스타섬으로 달렸다. 가다가 고래도 보고 산의 비탈면에 그려진 촛대 모양 그림도 보았다. 저렇게 큰 그림을 어떻게 산 위에 그렸나 신기하다.
산에도 섬에도 나무 한 그루 없다. 우리나라처럼 비가 많이 온다면 한 방에 흘러내려 그림이 사라졌을 것이다. 기막힌 풍경을 보고 있자니 딸 생각이 난다. 딸은 여기에 올 수 있을까. 몸이 불편해서 힘들 것 같다. 마음이 짠하다. 내가 모든 걸 너무 많이 먹어버려 딸이 먹을 게 없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바예스타섬에 도착하니 산이 온통 하얗다. 새똥이 온 산을 뒤덮었다. 새똥이 좋은 비료가 되어 새똥을 수거해서 판다고 한다. 바다사자, 가마우지, 펠리컨 등 이름 모를 새들이 섬의 절벽에 붙어 있다. 섬을 새들로 도배를 한 듯하다. 배에서는 탄성이 그치지 않는다. 바다사자들은 낮잠 시간인지 바위에 늘어져 잠만 자고 있다. 허구한 날 사람들이 몰려와 소리를 질러대니 관심도 없는지 눈도 뜨지 않고 잘도 잔다.
배를 돌려 항구로 돌아와 해변에서 이런 폼 저런 폼 잡으며 사진을 찍었다.
현지 가이드도 자기 핸드폰으로 우리를 찍어댄다. 다시 버스를 타고 와카치나로 가다가 와인 가게에 들렀다. 이것저것 맛보다가 취할 지경이다. 공금으로 와인 두 병 샀다.
이카에 도착하여 와카치나사막에서 버기카를 탔다. 모래언덕을 기어 올라가야 하는 줄 알았더니 버기카가 태워서 올려다 주고 샌드보드를 타고 내려오기만 하면 되니 식은 죽 먹기다.
모래언덕에서 밑을 내려다보니 아찔하다. 머뭇거리고 있는데 용감한 상숙 씨가 1등으로 타고 내려간다. 보드를 잡고 엎드려서 내려오니 그렇게 무섭지는 않다.
두 번째 내려올 때 앞 사람이 미처 비키기 전에 조수가 나를 내려보내는 바람에 앞 사람과 부딪칠 뻔했다. 방 향을 틀어보려고 해도 잘 안 된다. 손가락을 살짝 부딪쳐 조금 아프기는 했지만 크게 다치지 않아서 천만다행이다. 조수 소년도 놀랐는지 쏜살같이 뛰어 내려와 나를 보더니 괜찮냐고 한다. 괜찮다고 했더니 다시 뛰다시피 올라간다. 다음 사람이 보니 헥헥거리며 숨이 끊어질 듯 올라왔단다. 미안하다.
그림 같은 오아시스를 배경으로 온갖 포즈로 사진을 찍고 점심 먹은 식당으로 돌아와 얼굴에 묻은 모래를 대충 씻고 나스카를 향해 출발했다.
3시간 정도 걸려 나스카 시내로 들어오니 연말이라 그런지 거리에 사람이 넘쳐난다. 숙소에 들어가 샤워를 한 후 양말을 빠는데 모래가 끝없이 나온다.
저녁 8시에 1층에 모여 와인 파티를 했다. 낮에 사온 커다란 수박을 쪼개 16명이 포식을 했다. 오늘이 올해 마지막 날이라 나스카 시내도 쿵쾅쿵쾅 번쩍번쩍 난리가 났다. 페루 사람들은 참 흥이 넘치나 보다. 자정에 한바탕 불꽃놀이를 하더니 그 후로 잠잠해졌다. 그래서 오늘은 조용하게 잘 잤다.
2024. 1. 1. 페루 나스카 라인
수로 구경 가는 사람은 6시 30분에 아침 식사를 하고 6시 45분에 아쿠에뚝또 수로를 향해 출발했다. 긴팔 옷과 긴 바지로 중무장을 했다. 모기가 많다고 하여 모기 퇴치제도 준비했다. 수로에 도착하여 모기 퇴치제를 뿌리고 수로로 내려갔다. 여러 나라의 수로를 보았지만 이렇게 특이한 수로는 처음 본다. 나선형으로 된 길을 따라 내려가면 물이 흐르는 구멍이 나타난다. 3km의 거리에 20여 개의 나선형 구멍이 있고 그 구멍으로 흐르는 물까지 내려갈 수 있다. 1년에 한 번 정도 몸집이 작고 마른 사람이 들어가 수로 속 풀이나 찌꺼기를 청소한다고 한다. 참 물 먹고 살기 힘들다. 우리나라는 사방에 계곡물이 흐르니 그야말로 축복받은 나라다.
호텔로 돌아와 다시 차를 타고 경비행기를 타러 갔다. 표를 산 후 몸무게를 잰 다음 표를 받았다. 몸무게를 고려하여 좌석을 지정한다고 한다. 경비행기 매표소 직원이 뭐라고 하는데 통 못 알아듣겠다. 5번이 구글 번역기를 들이대고 말하라고 하니 한국말로 나온다. 페루에 언제 왔느냐는 말이다. 12월 29일에 왔다고 말했다. 5번은 요즘 이 번역기 사용에 재미를 붙였다. 직원은 스마일이 한국말로 뭐냐, 땡큐는 한국말로 뭐냐 하고 연방 묻는다. 한국말을 배우려고 노력하는 모습이 보기 좋다.
경비행기를 타고 날아오르니 땅바닥에 갖가지 문양이 나타난다. 고래, 원숭이, 벌새, 도마뱀, 나선모양 등 크기도 모양도 다양하다. 바짝 마른 땅에 물줄기 모양이 보인다. 예전에는 여기도 비가 많이 내렸나 보다. 이 황량한 벌판에 무슨 목적으로, 무슨 방법으로 이런 그림을 만들었을까? 벌판 가운데로 길게 뻗은 아스팔트 길이 아스라이 펼쳐져 있다. 먼 훗날 후대인들이 저 길을 보고 특이한 나스카라인이라고 연구할지도 모르겠다.
나스카 라인을 보고 호텔로 돌아와 우리 차를 타고 리마를 향해 출발했다. 가는 길에 나스카 라인 전망대에 들렀다. 전망대 입장료는 6솔이다. 전망대에 오르니 우리가 경비행기 타고 보았던 나무와 손가락 모양이 보인다. 가까이 보니 더 선명하다.
좀 더 가다가 식당에 들렀다. 점심 식사 후 다시 버스를 타고 몇 시간을 달렸는데 한 사람이 점심 먹은 식당에 작은 가방을 두고 왔다는 것이다. 거기 현금과 핸드폰이 들었단다. 다들 긴장하며 걱정이 태산이다. 팀장이 식당에 연락하는 중에 고문님이 이 사람 핸드폰으로 전화를 하니 차내에서 소리가 들린다. 구세주의 소리를 듣는 것 같다. 소리 나는 쪽을 찾으니 의자 밑에서 소리가 난다. 가방이 의자 밑으로 흘러내려 갔나 보다. 다들 놀란 가슴을 쓸어내렸다. 없는 애기 떨어질 뻔했다. 아침에는 4번 동생이 나스카 경비행기 타러 갈 때 호텔 로비 소파에 핸드폰을 두고 와서 우리를 놀래키더니 모두 잘 찾아서 천만다행이다.
리마로 오는 길의 정체는 우리나라 명절 때 고속도로 같다. 가도 가도 끝이 없다. 교통 정체는 어느 나라나 마찬가지다.
2023. 1. 2. 페루 쿠스코
7시에 아침 식사를 하고 고산증약을 먹었다. 5번 동생이 홍삼액을 준다. 지난번에는 4번이 로이코비를 주더니 난 참 복이 많은가보다. 9시에 출발하여 리마 공항으로 갔다. 키오스크에서 체크인하려니 예약번호를 넣어도 인순 씨와 내 이름이 안 나온다. 나중에 팀장에게 부탁하니 체크인 안 한 사람을 눌러야 하는데 체크인 한 사람을 누른 것이다.
라탐 항공사는 카운터 체크인이 아닌 키오스크 체크인으로 진행한다. 국제선 이티켓 중 Lim-cuz 구간 예약 코드를 찾아 입력하고 여권을 스캔하면 탑승권과 짐 태그가 나온다. 이걸 끌고 가서 셀프로 부치는 시스템이다.
쿠스코 공항에 도착하여 두꺼운 옷을 꺼내 입었다. 공항을 나오니 비가 온다. 속이 메슥거린다. 이곳은 안데스산맥이라 일교차가 20도 이상이라 한다. 우리 숙소에서 아르마스 광장은 도보로 5분 거리다. K Food 식당에서 해물 미역국을 먹었다. 반찬도 훌륭하다. 팁을 주니 팁은 안 받는단다.
점심 식사 후 아르마스 광장으로 갔다. 비바람이 몰아쳐서 12솔을 내고 성당 안으로 들어갔다. 본당과 지하 2층까지 다 보고 나오니 빗줄기가 약해졌다.
12각들을 보러 갔다. 12개의 각이 진 돌이 축대 가운데 박혀있다. 지나다니는 사람들이 하도 많아 사진 찍기가 힘들다.
다음은 산토도밍고 교회로 갔다. 표를 사려니 6시에 문을 닫는 데 들어갈 거냐고 묻는다. 30분 남았다. 15솔 내고 얼른 들어가서 부지런히 걷는다. 고소라서 천천히 걸어야 하는데 어쩔 수 없다. 1층 회랑을 걷는데 종탑 꼭대기에 있는 재옥 씨가 보인다. 우리도 종탑에 가려고 여기저기 들여다봐도 올라가는 계단이 없다. 5번이 또 재빠르게 번역기를 꺼내 직원에게 물어보니 뒤로 되돌아가면 있다고 한다. 겨우 계단을 찾아 올라갔다. 종탑 올라가는 데서 또 5솔 내고 종탑에 올라가니 멀리 보이는 산에 ‘비바 엘 페루’라고 쓴 글씨가 보인다. 갑자기 사이렌이 울린다. 빨리 나가라는 소리다. 쫓기듯 나왔다.
호텔로 돌아오니 머리가 깨질 듯 아프다. 바나나를 먹고 고소 약을 먹었다. 그래도 머리가 아프다. 2층에는 싱크대도 있고 커피포트도 있다. 물을 끓여 상보 씨가 가져온 수프를 먹고 에드빌을 먹었다. 4번 동생도 쩔쩔매기에 에드빌을 주고 먹으라고 했다. 방으로 돌아와 대충 짐 정리를 했다. 두꺼운 바지와 패딩까지 껴입고 잠자리에 들었다. 샤워는 엄두도 못 낸다.
2024. 1. 3. 페루 삭사이와망
오늘은 성스러운 계곡 투어 및 마추픽추가 있는 마을 아구아스 칼리엔테스로 이동하는 날이다. 2박 3일 짐만 챙기고 캐리어는 호텔에 맡겼다. 9시에 출발하여 차를 타고 예수상이 있는 산으로 올라갔다. 예수상은 브라질에만 있는 줄 알았더니 여기도 작은 예수상이 있다. 한 아줌마가 라마를 끌고 올라온다. 망토에는 아기 라마도 있다. 한 번 찍을 때 1솔씩 받는다. 너도나도 찍었다. 이 아줌마 오늘 횡재했다.
다음은 삭사이와망을 보러 갔다. 15세기에 잉카의 9대 왕이 지었다. 요새로 지었는데 15km 떨어진 곳에서 돌을 운반하여 지었다고 한다. 내진설계로 돌을 기울여 쌓았다. 여기서 태양 축제도 열렸다. 잉카는 왕이란 뜻이다.
성스러운 샘이라고 불리는 ’탐보마차이라‘도 보았는데 이곳은 잉카와 주술사가 풍년과 풍요를 위해 신탁을 받았던 곳이라 한다.
삭사이와망을 보고 땅 신에게 제사하는 곳도 보았다, 지하의 땅 신에게 제물을 드리는 제단도 있다. 여기서 버스를 타고 가다가 전망대에서 잠시 쉬었다. 여기서 도시락을 먹고 피삭으로 이동했다. 전망대 아래로 보이는 우루밤바강과 옹기종기 머리를 맞대고 있는 집들이 정겹다.
다리를 건너며 보니 흙탕물이다. 피삭에는 계단식 농경지와 무덤들이 있다. 오후만 되면 비바람이 몰아친다. 폭삭 젖어서 버스로 달려왔다.
오안타이탐보에 도착하여 잉카인들의 조물주라고 하는 큰 바위 얼굴을 보고, 태양신에게 제사하는 제단과 달의 신에게 제사하는 제단을 보았다.
기차를 타기 전에 자유롭게 저녁 식사를 한 후 마추픽추 아래에 있는 아구아스 칼리엔테스까지 기차를 타고 갔다. 기차 있는 곳까지 춤을 추며 환송해준다. ’아구아스 칼리엔테‘는 스페인 말로 뜨거운 물이란 뜻인데 온천수가 나오는 곳이다.
기차에서 내려 숙소까지 걸어갔다. 내일 먹을 물과 빵을 사려고 내려가다가 고문님을 만났다. 지사제가 있느냐고 물으니 있단다. 고소약을 먹어도 설사가 난다. 나중에 대장님이 우리 방으로 가져다준다. 인순 씨가 준 약을 이미 먹어서 내일 아침에 먹기로 했다.
2023. 1. 4. 페루 마추픽추
어제부터 시작된 설사가 멈추지 않는다. 일곱 번 정도는 했나 보다. 5시에 빵만 조금 먹고 얼른 약부터 먹었다. 6시 20분에 마추픽추를 향해 출발했다. 셔틀버스를 타려는 줄이 어마어마하다. 우리는 7시에 셔틀을 타기로 했다. 긴 줄 옆에 8시 셔틀버스 탈 사람이 기다리는 곳도 있다.
마추픽추에 올라가 전망대 탑 앞에서 마추픽추와 와이나픽추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었다. 하미 팀장이 가져온 페루 전통 복장을 입고 너도나도 사진을 찍었다. 그런데 안개가 자욱해서 아쉽다. 해시계와 사원을 보고 커다란 바위에서 기를 받은 후 와이나픽추를 향해 출발했다. 마추픽추는 늙은 봉우리란 뜻이고 와이나픽추는 젊은 봉우리란 뜻이다.
와이나픽추로 가는 길에서 현지 가이드가 와이나픽추 갈 거냐고 묻는다. 그렇다고 하니 엄지척을 하며 와이나픽추 레이디라고 한다. 와이나픽추 가는 입구에서 이름을 적고 등산을 시작했다. 가파른 돌계단을 오르고 올라 정상에 오르니 사진 찍는 사람이 많아 줄이 길다. 정상에 오르기 전에 마추픽추를 배경으로 인증사진을 찍었다.
정상에 오르니 큰 바위가 있고 앉기 좋게 의자 모양으로 파놓았다. 여기서 앞으로 찍고 뒤로 찍고 신나게 찍은 후 내려왔다.
내려오면서도 하미팀장이 빌려준 망토를 걸치고 또 찍었다. 안개가 걷혀 마추픽추가 선명하게 보인다.
내려올 때는 버스를 타지 않고 걸어 내려왔다. 돌계단이 어찌나 긴지 도가니가 나갈 지경이다. 사진 찍을 때마다 가이드가 가르쳐준 대로 손가락으로 야마 모양을 한다. 와이나픽추 트레킹은 그야말로 야마 도는 트레킹이다. 현지인들은 라마를 야마라고 한다.
비가 많이 오기 전에 숙소에 도착하여 다행이다.
방에 들어와 샤워부터 했다. 땀을 어찌나 많이 흘렸는지 속옷이 다 젖었다. 쉬려고 누워있는데 동생들이 누룽지 끓였으니 먹으러 오라고 한다. 잘 먹고 있는데 상보 씨가 계란을 삶았다고 두 개를 들고 왔다. 난 참 동생 복이 많다. 우리 방에 돌아와 인순 씨에게 주니 맛있다고 잘 먹는다.
밤에 오늘 찍은 사진을 정리하려고 보니 259장이나 된다. 꼬박꼬박 졸면서 지울 것 지우고 카톡방에 올리려니 눈알이 빠질 지경이다. 앞으로는 사진 찍는 걸 자제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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