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자에 있는 지리종주
이현숙
기간 : 2023년 7월 28일 ~ 7월 31일
장소 : 지리산
5번 동생이 카톡방에 지리산 종주해 보겠느냐고 올렸다. 함께 산에 다니는 동생 상보가 산장 예약 신청을 했는데 당첨되었다는 것이다. 조금 겁나긴 했지만 무조건 간다고 했다. 일단 한 다리 걸쳐놓고 그때 가서 못 가면 취소하더라도 기회는 잡고 볼 일이다.
7월 28일 비몽사몽
밤 11시 59분에 출발하는 버스를 타려고 동서울터미널로 갔다. 5번 동생과 상보, 상보 동생 상숙이까지 다들 일찍 도착했다. 집이 가까운 내가 꼴찌다. 74살이나 된 짐 덩어리를 여기 붙여준 동생들이 고맙다. 5번 동생은 나보다 10살 아래, 상보는 16살 아래, 상숙이는 19살 아래다.
버스에 앉아 비몽사몽간에 헤매면서 백무동으로 향했다.
7월 29일 천왕님 뵙기
새벽 3시 반에 백무동 터미널에 도착했다. 화장실도 다녀오고, 준비 운동도 하고 스틱을 뽑아 들고 천왕봉을 향해 출발한다. 마치 전투에 나가는 여전사들 같다. 다들 잽싸게 달아나고 우리 팀이 꼴찌다. 머리에 헤드랜턴을 달고 깜깜한 산속으로 전진한다.
하동바위를 지나 참샘에 도착하니 사방이 서서히 밝아온다. 안내문에는 대장균이 많아 먹을 수 없다고 되어있다. 여기서 간식과 물을 먹고 다시 출발했다. 날밤을 새웠더니 정신이 몽롱하다. 땅을 딛는 것인지 허공을 딛는 것인지 어질어질하다.
소지봉을 지나 무감각하게 하염없이 걸다보니 장터목대피소가 나타난다. 벌써 많은 사람들이 도착하여 식사를 하고 있다. 우리도 여기서 아점을 먹기로 했다. 상보가 코펠과 버너를 모두 가지고 왔다. 우리 네 명중 체격이 가장 작은데 짐은 제일 많이 졌다. 모든 예약도 도맡아서 하고 마트에 들러 반찬거리도 사왔다. 어디서 이런 힘이 나오는지 아무리 자세히 봐도 알 수가 없다. 세계 7대 불가사의에는 못 들어도 8대 불가사의에는 들 것 같다.
장터목은 산청군과 함양군 사람들이 물물교환을 하기 위해 장이 섰던 곳이다. 등짐을 지고 이 어려운 고개를 올라와 여기에 장이 섰다는 것이 생각할수록 놀랍다. 대피소에서 햇반을 사고 상보가 가져온 어묵과 라면을 끓여 맛난 점심을 먹었다.
큰 배낭은 대피소 한 쪽에 모아놓고 작은 배낭에 물과 핸드폰, 간단한 간식만 넣고 천왕봉으로 출발했다. 햇빛이 어찌나 강한지 돌아가실 지경이다. 그래도 마음을 비우고 걷고 걷다보니 통천문이 나타난다. 천왕님을 만나려면 하늘로 통하는 통천문을 지나가야 한다. 멀리 천왕봉에 있는 사람들이 개미처럼 작게 보인다.
배낭 무게가 작으니 걸을 만하다. 가파른 고갯길을 계속 올라가니 드디어 천왕봉이 나타난다. 정상석에서 사진을 찍으려고 사람들이 줄을 서 있다. 우리도 줄을 서서 기다린다. 평소에는 수백 미터씩 줄을 섰다는데 오늘은 수십 미터 정도다. 우리 차례가 되어 앞으로 찍고 뒤로 찍고 두 판씩 찍은 후 간식을 먹고 다시 장터목대피소로 내려왔다.
작은 배낭을 다시 큰 배낭에 넣고 세석대피소로 출발했다. 이 무거운 멍에를 내려놓으려면 어서 빨리 세석까지 가야 한다. 찬송가에서는 ‘고통의 멍에 벗으려고 예수께로 나갑니다.’인데 우리는 고통의 멍에 벗으려고 세석으로 나아간다. 짐은 무겁지만 푸른 하늘과 초록의 숲, 천상의 화원 같은 야생화가 우리를 반겨주니 지루한 줄 모르겠다.
시간이 넉넉하니 촛대봉에서 놀다 가기로 했다. 이름은 촛대봉인데 별로 촛대 같지 않다.
그늘이 없어서 바위 밑에 누워 휴식을 취한다. 바위에 누워 하늘을 바라보니 세상만사 모든 걱정이 사라진다. 이 맛에 산에 온다.
건너편에 있는 돼지바위에도 올라갔다. 상보는 돼지 뒷다리도 잡고 올라타기도 한다.
세석대피소 부근 원추리와 하늘말나리 같은 것에 얇은 망을 씌워놓았다. 씨를 받아서 적당한 곳에 뿌리려나 보다. 세석대피소에 도착해 무거운 배낭을 내려놓으니 고통의 멍에를 벗은 듯하다. 오늘은 12.8km 걸었다.
7월 30일
세석대피소를 떠나 벽소령으로 향한다. 어제도 오늘도 온통 꽃 잔치다. 해마다 이런 잔칫상을 받는 우린 참 행복한 사람들이다. 이런 상을 받고도 이거 달라 저거 달라 하는 우리는 어찌 보면 참 염치없는 인간이다.
영신봉을 지난다. 상숙씨는 온통 검은 색으로 도배를 했다. 옷도 장갑도 버프까지 모조리 검은 색이다. 상보는 이런 동생을 보고 까마귀라고 놀린다.
사실 젊은 사람들에겐 검은색이 참 화려한 색이다. 얼굴에 활기가 넘치니 검은 옷이 얼굴을 더 빛나게 한다. 나 같은 노인은 얼굴이 거무죽죽하니 다 죽을상이라 검은 옷을 입으면 저승사자처럼 보인다. 어쩔 수 없이 유치찬란한 색 옷을 입는다. 이런 내 모습을 보면 산수국을 보는 듯하다. 산수국은 꽃이 너무 보잘것없고 눈에 띄지 않으니까 화려한 가짜 꽃을 달았다. 가짜 꽃으로 벌을 유인하여 수정하려는 속셈이다.
선비샘에서 만난 사람들이 날 보고 몇 살이냐고 묻는다. 상보가 아까 칠선봉도 올라갔다고 하니 5번 동생이 이번에 노르웨이 가서 쉐락볼튼도 올라갔다고 말한다. 한 사람이 쉐락볼튼이 어디지? 하니까 다른 사람이 거기 인증사진 찍는 데 있잖아 한다.
선비샘에는 이런 유래가 있다. 옛날 이곳에 이씨라는 화전민이 살았다. 이 노인은 평생 멸시와 천대를 받고 살았는데 죽어서라도 남들에게 존경을 받고 싶었다. 그는 죽기 전 자식들에게 이 샘터 위에 묻어달라고 유언을 하였다. 효성스런 자식들은 아버지 유언대로 이 위쪽에 묻었고 사람들은 샘물을 받기 위해 고개를 숙이게 되었다. 이 노인은 자기 소원대로 무수한 선비들에게 절을 받게 되었으니 하늘나라에서 흐뭇한 미소를 짓고 있을 것이다.
선비샘에서 앞으로 걸어가며 5번 동생이 “이번에 언니 완전 스타 됐네.” 한다. 평생 살아오면서 스타 될 일이 없었는데 지리산 덕에 난생처음 스타도 돼보고 좋긴 좋다. 어제와 오늘 연세가 어떻게 되느냐는 질문을 수십 번 받았다. 이마빡에 ‘내 나이는 만으로 74세’라고 써 붙이고 다녀야 하려나?
벽소령대피소에서 아점을 먹고 연하천을 향해 출발했다. 형제봉에서 간식을 먹으며 형베봉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는다. 5번 동생이 상보에게 날씬하게 찍어달라고 하자 앞쪽에서 오던 남자가 웃음을 짓는다. 하긴 요새는 포토샵이 발달하여 홀쭉하게도 할 수 있고 뚱뚱하게도 만들 수있다. 얼굴의 주름도 펴주고 뽀샤시하게 화장도 해준다.
연하천대피소 앞 계곡물에서 발도 닦고 세수도 했다. 완전 얼음물이다. 5번은 상보가 물을 부어줘서 머리도 감는다. 정말 강심장이다. 난 몇 초 동안 발 담그기도 힘든데 말이다.
연하천 대피소에서 자리 배정을 받고 저녁 식사 전 쪽잠을 잤다. 코 골며 숙면을 했더니 개운하다. 5번이 가져온 된장찌개와 명이나물, 상숙 씨가 만들어 온 고추장아찌와 황태 볶음으로 푸짐한 저녁을 먹었다. 상보는 6첩 반상이라고 즐거워한다. 동생들 덕에 난 완전 날로 먹는다. 이번 여행에서 상보는 우리를 먹이고 재우고 태우기까지 다 해준다. 모든 걸 다 예약하고 먹거리도 사서 잔뜩 지고 왔다. 이런 동생들을 만나 이 나이에 지리산 종주까지 하게 됐으니 아무래도 내 팔자엔 지리산 종주가 여러 번 들어있나 보다. 대학교 2학년인 1969년에 처음 종주를 시작해서 이번이 네 번째다. 오늘은 9.4km 걸었다.
7월 31일
새벽 3시 30분에 별을 보며 연하천 대피소를 출발했다. 헤드랜턴을 켜고 가니 온갖 곤충들이 달려든다. 작은놈들은 그런대로 견딜만한데 큰 나방이가 눈으로 달려드니 걷기가 힘들다. 스틱을 든 두 손으로 연방 쫓아내려니 여간 성가신 게 아니다. 한 마디로 나방이와의 전쟁이다.
토끼봉으로 오르는 길은 계단의 연속이다. 이번엔 계단과의 전쟁이다. 웬 놈의 토끼가 이렇게 콧대가 높은지 모르겠다. 화개재를 지나 삼도봉으로 향한다. 삼도봉도 계단의 연속이다. 숨이 턱에 닿을 즈음 삼도봉 표지석이 나타난다. 삼도봉은 전라북도, 전라남도, 경상남도가 만나는 곳이다.
삼도봉을 지나 반야봉으로 향한다. 조금 올라가다가 삼거리에 큰 배낭을 내려놓고 작은 배낭만 지고 올라갔다. 반야봉에 올라가니 아무도 없다. 우리는 반야봉을 독차지하고 개인 사진도 찍고 자매끼리도 찍었다. 상자매(상보와 상숙이)와 숙자매(현숙이와 임숙이)가 둘씩 둘씩 하트를 그리며 온갖 폼을 잡고 사진을 찍었다. 정상에 올랐을 때 아무도 없으면 온산을 독차지한 것 같아 기분이 좋다.
다시 삼거리로 내려오니 상숙씨 배낭이 열리고 과자봉지가 바닥에 떨어진 채 과자가 널려있다. 아마 산짐승이 와서 과자를 꺼내 먹었나 보다. 배낭까지 여는 걸 보니 참 똑똑한 놈인가보다.
노루목 쪽으로 내려와 노고단을 향해 출발했다. 임걸령 옹달샘에서 시원한 물로 목도 축이고 물병에 물도 채웠다. 상보는 이 물이 지리산에서 제일 맛있는 물이라고 한다.
노고단고개에 오니 국립공원 직원이 있다. 이 직원에게 부탁하여 넷이서 인증사진도 찍었다. 상보가 우리는 종주했다고 자랑한다. 가슴이 뿌듯하다.
상보가 노고단 올라가는 것도 예약해서 이곳에 배낭을 내려놓고 노고단 정상을 향해 출발했다. 상숙씨는 자기는 안 올라갈 거라고 하더니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잘 올라간다. 평소에 산행도 별로 안 했다는데 젊음이 좋기는 좋다. 상숙씨는 성격도 좋고 애교도 많아서 어디 가나 사랑받을 것 같다.
학교 다닐 때 교과서에 이런 시조가 있었다.
‘까마귀 검다 하고 백로야 웃지 마라
겉이 검은들 속조차 검을쏘냐
아마도 겉 희고 속 검은 건 너뿐인가 하노라.’
상숙씨는 겉만 검은색이지 속마음은 백옥같이 희고 착하다. 정이 참 많은 것 같다. 남편이 누군진 몰라도 아내 정말 잘 얻었다.
온갖 야생화를 보며 즐기다 보니 노고단 정상이다. 老姑는 늙은 시어머니라는 뜻이니 어떤 시어머니가 여기에 단을 쌓으며 소원을 빌었나 했더니 그게 아니다. ‘노고란 늙은 할머니라는 뜻으로 지리산 성모인 마고 할미를 가리키는 말이다. 노고단이라는 지명은 할미당에서 유래한 것이다. 통일 신라 시대까지 지리산 최고봉 천왕봉 기슭 할미에게 산신제를 드렸던 할미당이 있었다. 고려 시대에 이곳으로 옮겨진 후 지명이 한자어인 노고단으로 바뀌었다. 신라 시대 화랑들은 이곳에서 수련하면서 탑과 단을 쌓고 천지신명과 노고 할머니에게 나라의 번영과 백성의 안녕을 기원했다고 한다.
노고단대피소로 내려와 남은 반찬과 햇반으로 배를 두둑이 채웠다. 성삼재를 향해 내려오는데 소나기가 내린다. 3일 동안 비도 안 맞고 날씨도 좋아 나 같은 노약자도 종주가 가능했다. 이제 버스 타면 동서울터미널까지 직행할 수 있으니 비가 오거나 말거나 아무 걱정이 없다.
성삼재에 도착하니 화장실 옆에 119차가 와 있다. 화장실을 향해 물대포를 쏘아댄다. 무슨 일인가 했더니 말벌집을 제거하는 중이란다. 쥐방울만 한 벌 잡으려고 대형 트럭이 출동했다. 이렇게 벌집까지 없애주니 참 우리나라 좋은 나라다. 아이스크림을 사 먹으며 버스가 오기를 기다렸다. 버스에 올라 자리에 앉으니 3일간의 여정이 까마득하게 느껴진다. 오늘은 약 18km 걸었다.
이번 여행은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는 완벽한 여행이었다. 앞으로 내 생전에 다시 와 볼 수 있을지 모르겠다. 이건 아무래도 지나친 욕심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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