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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3. 13. 알짜배기 제주 여행

아~ 네모네! 2023. 3. 18. 18:13

알짜배기 제주 여행

 

이현숙

 

기간 : 2023313~ 317

장소 : 제주도

 

  티엔티 여자들이 제주로 봄맞이 여행을 떠났다. 4년째 제주살이를 하는 순환씨가 오라고 하니 열 일 제쳐놓고 출발이다.

 

313일 신나는 출발

  김포공항에서 순환씨, 명수씨와 만나 제주를 향해 신나게 출발했다. 정연씨는 친정엄마가 입원하여 부산에 가는 바람에 못 나왔다. 마음 한켠이 허전하다.

  제주공항에 내리니 양숙씨가 반가이 손을 흔든다. 렌터카를 타고 함덕에 있는 식당으로 갔다. 전복죽을 먹고 순환씨 집으로 향했다. 골목길로 들어서니 하얀 강아지가 어떤 집 담벼락 위에서 꼬리를 흔들며 짖어댄다. 순환씨가 예뻐하는 강아지란다.

  집에 도착하니 아담한 정원이 눈에 들어온다. 마당에 쌈 채소가 가득하다. 수선화와 마가렛 꽃도 함초롬히 피어 있다. 작년에도 왔었는데 더 예쁘게 꾸며 놓았다. 깔끔한 집안도 순환씨 모습을 보는 듯하다. 순환씨 덕에 매년 제주 여행 온다. 똘똘이 순환씨가 항공편도 예약하고 렌터카도 빌리고 집까지 제공하니 초저가로 여행을 즐긴다.

 

314일 동백길

  아침에 일어나 집 앞 화단에서 사진을 찍었다. 싱싱한 야채가 한가득하다. 먹고 싶은 마음이 절로 난다. 당근을 한 뿌리씩 뽑아서 먹어보니 모양은 초라한데 맛은 일품이다. 빛 좋은 개살구가 아니고 볼품없는 명품 당근이다. 식사 전 양숙씨와 순환씨가 오늘 갈 곳을 열라 검색한다. 명수씨와 나는 아는 게 없으니 그저 두 동생 뒤만 졸졸 따라다닌다.

  순두부집에서 아침 식사를 한 후 양숙씨가 차 뒤로 지나가자 트렁크 문이 열린다. 열쇠를 가진 사람이 가까이 오니 자동으로 열리는 게 신기하다. 너무 최신형이라 적응이 안 된다. 오전에는 양숙씨가 운전하고 오후엔 순환씨가 운전하기로 했다. 두 동생들 덕에 독거노인 팔자 폈다. 운전도 못 하고 요리도 못 하는 나는 완전 날로 먹는다. 친동생도 많은데 새로 생긴 동생들도 이렇게 잘해주니 동생 복 터졌다. 전생에 쌓은 복도 없는데 이게 무슨 복인지 모르겠다.

  "구간 단속 구간 종점입니다. 잠시 후 우회전입니다. 10시 방향으로 좌회전하세요."

친절한 네비년의 안내를 받아 무오법정사 주차장으로 갔다. 여기서 우리가 트레킹을 시작하는 곳으로 택시를 타기로 했다. 인터넷에는 택시 잡기가 어렵다고 해서 기대도 안 했는데 카카오택시를 부르니 10분 후에 온다는 것이다. 이게 웬 횡재인가 하며 택시를 기다렸다. 택시 기사가 오더니 자기가 실수로 핸드폰에서 수락을 누르는 바람에 할 수 없이 왔단다. 귀인을 만났다. 전생에 누가 덕을 엄청 쌓았나 보다.

  충혼탑에서 내려 돈내코 관리사무소를 향해 걸었다. 산불감시 아저씨가 길가에 서 있다. 근무 중인가 했더니 빨리 오라고 손짓한다. 가까이 가자 동백길 입구로 가는 길을 친절하게 가르쳐주고는 오토바이를 타고 휭하니 간다. 또 귀인을 만났다. 2km를 걸어 돈내코 관리사무실 앞에 도착했다.

  동백길은 처음부터 끝까지 동백 숲, 편백나무 숲, 삼나무 숲이 이어져 몸도 마음도 힐링 되는 느낌이다. 길에서 부산서 온 부부를 만났다. 이분들도 친절하게 길 안내를 해 준다. 또 귀인을 만났다. 오늘은 아침부터 저녁까지 귀인을 만난다. 오늘 장장 15km를 걸었다.

  구운 피자집을 찾아 헤매다가 못 찾고 목살을 사가지고 집에 오니 주인집 부부가 환영한다. 순환씨를 친자매보다 더 반가워한다. 주인아줌마가 자기 집으로 들어가더니 돼지고기 바베큐를 갖다준다. 텃밭에서 케일, 상추, 셀러리 등 쌈 채소를 뜯어 진수성찬으로 먹었다.

  양숙씨가 정연씨에게 카톡을 보냈는데 몇 시간 만에 답장이 왔다. 정연씨 어머니는 열이 내렸다고 한다. 걱정했는데 참 다행이다.

 

315일 다랑쉬오름, 붉은오름

  양숙씨가 아침마다 일찍 일어나 식사를 챙긴다. 호텔 부페 같다. 그날그날 간식도 챙겨준다. 준비의 여왕이다.

  다랑쉬오름으로 갔다. 제주도 동부에서 두 번째로 표고가 높으며 정상에 오르면 높은오름을 제외하고 가장 높은 오름이다. 제주 동부 일대와 주변의 아끈다랑쉬오름, 손지오름, 돝오름, 용눈이오름, 그리고 멀리 보이는 성산일출봉이 만들어내는 경치가 말 그대로 절경이다. 다랑쉬오름의 별명은 '오름의 여왕'이다. 다랑쉬오름의 어원은 다양하다. 지역주민들은 분화구가 달처럼 둥글다고 해서 다랑쉬, 월랑봉 등으로 부르며, 학자들은 '높은 봉우리를 가진 오름'을 뜻하는 우리의 옛말 '달수리'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지그재그 길을 지나 분화구에 오르니 바람이 어찌나 센지 날아갈 지경이다. 웬 남자가 사진도 찍어주고 설명도 잘해준다. 오늘도 귀인을 만났다. 다랑쉬오름 정상에는 망곡望哭의 자리라는 안내판이 있다. 조선 시대 때 이름난 효자인 홍달한이란 사람이 여기에 올라와 숙종의 승하를 슬퍼하며 통곡하던 자리라고 한다. 다랑쉬오름 초입에는 삼나무숲이더니 분화구 능선에는 소사나무 군락지다. 잎이 없으니 하얀 속살이 환상적이다.

  다랑쉬오름에서 내려와 앞에 있는 작은 다랑쉬오름에도 올라갔다. 아끈다랑쉬오름(작은 다랑쉬오름)은 온통 억새밭이다. 아끈은 제주도 말로 작다는 뜻이다. 다랑쉬오름에서 만난 젊은 부부를 또 만났다. 참 좋을 때다. 보기 좋다. 우리 부부도 저럴 때가 있었는데 하는 생각이 든다.

  교래에 와서 칼국수를 먹고 붉은오름으로 갔다. 네 명 모두 경로라 공짜로 들어갔다. 주차비 2천 원만 내려니 좀 미안한 생각이 든다. 붉은오름은 분화구의 흙 색깔이 붉어서 붉은오름이란다. 올라가는 길에 복수초가 지천이다. 노루귀와 큰개별꽃도 우릴 반긴다. 한 마디로 천상의 화원이다.

  순환씨 코는 개 코다. 냄새를 엄청나게 잘 맡는다. 세 명은 아무 냄새도 못 맡는데 수시로 특이한 향기가 난다고 한다. 누가 개띠 아니랄까 봐 뛰어난 후각을 지녔다. 걷다 보니 희한하게 꼬인 나무가 보인다. 그야말로 목생 木生이 꼬였다. 넝쿨식물이 휘감아 올라간 듯하다.

  어제도 오늘도 휘파람새가 울어댄다. 육지의 휘파람새보다 휘파람 소리가 좀 짧다 했더니 섬휘파람새란다. 내려올 때 보니 복수초가 다 오므렸다. 늙은 꽃은 오므릴 힘도 없는지 쫙 펴고 있다. 여자의 인생 같다. 인생무상이 아니고 화생化生무상이다. 붉은오름에서 내려와 풀밭에서 간식을 먹었다. 순환씨는 달래 캐기 바쁘다.

자기 집 마당에 심는단다. 살림꾼이라 다르다. 매트길을 걷다 보니 솔방울로 하트 모양을 만들어놓은 것이 보인다. 참 좋을 때다. 그 사랑 변치 말고 오래오래 간직하기를 빌어본다.

  4시에 집에 왔다. 순환씨는 오자마자 달래 심기 바쁘다. 다 심고 나더니

잔디밭에서 풀도 뽑고 채소밭에 물도 뿌린다. 볼수록 살림꾼이다. 그 남편은 참 복도 많다.

  저녁에는 순환씨가 김치찌개를 끓여 햇반을 먹었다. 찌개 맛이 환상이다. 순환씨는 여러 가지로 팔방미인이다. 저녁 식사 후 조잘조잘 입방아를 찢다가 꿈나라로 들어갔다.

 

316일 거문오름, 전이수갤러리

  제라딘 밥상 집에 가서 아침 식사를 했다. 5학년 이상은 성인과 같이 8,900원이다. 하긴 우리 손자도 어른보다 더 먹는다. 가격 대비 훌륭한 식사다.

  길가에는 목련꽃이 한창이다. 목련꽃처럼 추하게 죽지 말고 동백꽃처럼 아름답게 죽고 싶다. 이미 추해진 주제에 꿈도 야무지다. 식사 후 거문오름으로 갔다.

  거문오름에선 순환씨만 2천 원 냈다. 여기서는 만 65세가 되어야 무료입장이다. 이 오름이 중요한 이유는 이 화산으로부터 흘러나온 용암류가 경사를 따라 북동쪽으로 해안선까지 도달하면서 20여 개의 용암동굴(김녕굴과 만장굴 등)을 만든 근원지이기 때문이다. 거문오름은 제주도의 오름 중 유일하게 20076월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으로 등재되었다. 이곳은 숲이 우거져 검게 보여서 거문오름이라고 하였다. 양숙씨는 배낭에 우엉 물을 넣어 왔는데 안 된다고 하여 생수를 한 병 샀다. 발 빠르고 손 빠른 순환씨가 1030분으로 앞당겨 30분을 벌었다.

  거문오름의 오진희 해설사를 졸졸 따라간다. 스피커를 메고 다니지만, 뒷사람은 전혀 들리지 않는다. 그림의 떡이 아니고 그림의 해설사다. 떡이면 먹기라도 할 텐데 아무짝에도 쓸데가 없다. 젊은 사람들은 해설사 뒤에 바짝 붙어서 따라간다. 하긴 곧 땅속에 들어갈 나보다는 젊은 사람이 들어야지 싶다.

  정상에 오르니 거문오름 용암동굴을 만든 화산의 분화구가 한눈에 보이고, 분화구 안에는 낮게 솟아오른 작은 봉우리들이 있다. 주변에는 용암동굴을 비롯해서 화산탄, 용암함몰구, 수직동굴, 식나무와 붓순나무 군락지, 풍혈등 다양하게 발달한 화산 지형들이 보인다. 그 밖에 갱도진지, 병참도로 등 일본군의 태평양 전쟁 당시 군사 시설도 있다.

  걷다 보니 여기도 복수초가 만발이다. 알오름전망대를 지나 능선길로 들어섰다. 처음에는 능선길로 가겠다고 한 사람이 10명이었는데 갈림길에서 보니 어떤 부부와 우리 일행 4명뿐이다. 걷다 보니 힘들어서 포기했나 보다. 해설사가 나를 보더니 갈 수 있겠느냐고 묻는다. 머리가 허연 할머니가 간다고 하니 걱정되었나 보다.   능선으로 올라서서 9룡님부터 2룡님까지 알현하며 계속 걸었다. 9룡은 회룡은산봉, 8룡은 청룡음수봉, 7룡은 와룡농주봉, 6룡은 청룡출운봉, 5룡은 자룡고모봉, 4룡은 회룡고조봉, 3룡은 황룡토기봉, 2룡은 백룡망해봉이다. 1룡이 없나 했더니 관리소 아저씨가 처음 올라간 정상이 1룡이라고 한다.

  거문오름 관리소에서 사진전까지 본 후 화덕 피자집에 가서 피자를 먹었다. 네이버에 댓글을 달면 빵을 공짜로 준다고 해서 버버거리며 댓글을 달았다. 공짜면 양잿물도 먹는다는데 빵을 안 먹을 수는 없다.

  식사 후 전이수갤러리로 갔다. 마침 행사가 있는지 화환이 가득하다. 도지사님이 온다고 전이수 화가도 나와 있다. 소박하고 순진하게 생겼다. 순환씨가 광펜이라고 하니까 같이 사진도 찍어준다. 그림의 색채가 샤갈을 연상시킨다. 앞으로 세계적인 화가가 될 것 같다.

  바닷가 카페에서 차 한잔하며 예약 시간을 기다렸다. 430분에 다시 전이 수갤러리로 가서 동영상을 보았다. 전이수와 전유태 형제의 작업 모습과 작품들을 소개한다. 이수는 왼손잡이인 듯하다. 이수는 먼저 글을 쓰고 그에 맞는 그림을 그린다고 한다. 전시실에 있는 그림 밑에는 그에 맞는 글이 같이 전시되어 있다. 80대 할머니들이 쓴 글씨체가 정겹다.

  이수는 머리를 길렀는데 잘라서 소아암 환자를 위해 기증한단다. 80대 같은 10대다. 80대 할머니들은 10대 소녀들 같다.

  혼자 된 할아버지가 혼밥을 먹는 그림과 글이 마음에 와닿는다. 부인을 잃은 경험도 없는 소년이 어찌 이다지도 독거노인의 심정을 잘 아는지 놀랍다. 남편을 잃은 내 심정과 똑같다. 나는 남편이 죽어 나간 후에야 알았는데 이수는 어린 나이에 결혼도 안 해보고 이런 심정을 어떻게 알았을까? 그야말로 80대 같은 10대다.

  갤러리를 나와 집으로 돌아오는데 첫날 보았던 강아지가 담 너머에서 반갑다고 짖어댄다. 순환씨가 "진돌아~" 하고 부르니 꼬리치며 난리를 친다. 순환씨는 모든 동식물을 사랑하는 것 같다.

 

317

  오늘은 서울로 올라가는 날이다. 새벽 5시부터 일어나 설친다. 양숙씨는 이것저것 남은 음식 정리하고 먹어 치워야 할 것은 식탁에 차려놓는다. 냉장고 정리도 자기 집처럼 깔끔하게 해놓는다.

  순환씨는 텃밭에서 쪽파, 케일, 상추를 뜯어 봉지 봉지 담아준다. 친정엄마라도 되는 듯하다. 명수씨는 화장실부터 집 안 구석구석 청소한다. 나는 5일 내내 날로 먹는다고 하니 양숙씨가 다음에는 익혀 먹으라고 우스갯소리를 한다.

  모까에 사진을 올리며 식물 이름을 자꾸 물었더니 시나브로님이 제주도에 갔느냐고 묻는다. 역시 고수다. 집을 나오니 하늘이 잔뜩 찌푸렸다. 사흘 굶은 시어머니 상이다. 이런 소리 안 들으려면 항상 방끗방끗 웃어야겠다.

  렌터카를 반납하고 공항으로 향했다. 공항 에그드롭 카페에서 토스트와 커피를 마시었다. 음식이 나오기 전 남편 성토가 이어진다. 세 명 모두 불만을 토로한다. 섬 하나 사서 희려씨 남편까지 네 명 모두 보내자고 한다. 아무래도 죽어야만 좋은 남편이 되나 보다. 그런데 양숙씨 남편에게서 전화가 온다. 언제 남편 욕 했나 싶게 반색을 하며 받는다.

  엑스레이 검사를 받는데 양숙씨가 걸렸다. 칼이 들어 있는 걸 깜빡했단다. 시간이 없어서 그냥 다음에 제주도 올 때 찾기로 하고 맡겼다. 칼을 보니 10여 년 전 실크로드 갔을 때 산 칼이다. 칼의 문양도 멋지고 칼이 잘 들어서 양숙씨가 애용하는 칼이다.

  면세점에서 순환씨 남편 담배를 사려 했는데 남편이 피는 담배가 없단다. 관태 아빠에게 점수 좀 따놓으려 했는데 다 틀렸다. 초치기로 발 빠르게 움직여 탑승 마감 시간에 딱 맞춰 게이트에 도착했다. 다음에 오면 갈 곳과 음식점까지 다 정해놓았으니 다음을 기약하며 발걸음도 가볍게 비행기에 올랐다.

 

이번 여행은 알차게 걷고, 알차게 보고, 알차게 먹고, 알오름까지 본 알짜배기 여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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