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근 반, 세 근 반
이현숙
기간 : 2023년 6월 11일 ~ 6월 20일
장소 : 노르웨이
몇 년 전부터 벼르고 벼르던 노르웨이 피요르드 트레킹에 나섰다. 비행기표까지 다 예약했다가 코로나로 무산되었던 여행인데 이번에 운 좋게 혜초여행사를 따라가게 되었다. 꿈에 그리던 그곳에 갈 생각만 해도 가슴이 두근거린다.
6월 11일 출발
공항철도를 타니 옆의 아줌마들이 말을 걸어온다. 오른쪽 여자가 어디 가느냐, 몇 살이냐, 며칠 동안 가느냐, 시시콜콜 묻는다. 내가 75살이라고 하자 왼쪽에 앉은 여자도 자기네 지휘자는 46년생인데 팔팔하다고 용기를 준다. 머리가 허여니까 80살도 넘은 줄 아나 보다. 이 여자는 내 트렁크 태그에 달린 이름과 주소를 자세히 보며 몇 명이 가냐, 누구하고 가냐 질문이 많다.
혼자 가는 게 이상한지 오른쪽 여자가 바깥양반은 안 가느냐고 한다. 작년에 하늘나라 갔다고 하니 그러냐고 잘 다녀오시라고 한다. 여기서도 또 남편 없다는 고백을 해야 하니 서글프다. 아줌마도 많이 다니시라고 하니 자기는 시장에서 일하느라 한 달에 이틀밖에 안 논단다. 이런 사람을 만나면 괜히 미안해진다. 남편 간 지 1년도 안 됐는데 이렇게 싸돌아다니고 있는 내가 참 철딱서니도 없다. 옛날 같으면 3년 동안 집안에서 꼼짝 못 하고 아침저녁으로 상식을 올리며 곡을 해야 할 텐데 세상을 잘 만났다고 해야 하나? 아마 그때 여자들이 나를 보면 미친년, 아니 죽일 년이라고 했을 거다.
왼쪽 여자는 자기는 음악을 하는 사람이라 음악 행사로 해외여행 자주 간다며 잘 다녀오시라고 검암에서 내린다. 머리 허연 노인네가 되니 사람들이 경계심 없이 쉽게 말을 걸어오는 것 같다. 남편이 차로 공항까지 태워다 줄 때가 그립다.
공항에 도착하니 인솔자 김대영 씨가 반갑게 맞이하며 배낭과 캐리어에 이름표를 붙여주고 주의사항을 알려준다. 젊고 멋진 남자가 친절하게 대해주니 좋기는 좋다.
비행기에 오르니 기내식이 나온다. 스푼과 포크가 나무로 되어 있어 환경 보호에 보탬이 될 것 같다.
6월 12일 스타방에르
기내식을 먹은 후 잠을 청하지만 낮잠을 자서 그런지 잠이 안 온다. 장씨 두명은 곤하게 잘도 잔다. 앉아있자니 허리가 아프고 식탁에 고개를 대고 엎드려있자니 간땡이가 아프다. 간에 있는 큰 혹 때문에 툭하면 간이 아파서 겁이 난다. 비즈니스석을 타자니 머니가 없고 해외여행을 포기하자니 내 안의 열망이 나를 괴롭힌다. 5번 동생이 뒤에 가서 서 있는 동안 두 자리 차지하고 쪼그려 누워본다. 한결 낫다. 5번은 참 배려심이 많다.
장미숙 씨가 스타방에르 가는 티켓을 비행기 두고 내렸다. 다시 발권받아야 해서 보딩 게이트 직원에게 좌석을 얘기하고 받았다. 1시간 30분 비행이라 아무것도 안 주는 줄 알았더니 샌드위치와 주스를 준다. 터진 입이라고 잘도 들어간다.
스타방에르 공항에 내려 짐이 나오기를 기다린다. 짐이 나오는 구멍을 바라보고 있자면 항상 긴장된다. 아프리카 킬리만자로 갈 때 내 짐이 오지 않아 5일 후 4,000m가 넘는 호롬보 산장에서 받았던 기억이 있어 짐 찾는 트라우마가 생겼다. 그때 얼마나 춥고 불편했는지 지금도 기억이 생생하다. 다행히 우리 모두의 짐이 잘 도착했다.
공항을 나오니 상큼한 바람과 눈이 시리게 맑은 하늘이 우리를 반긴다. 스타방에르 공항에서 다니엘이란 현지 가이드를 만났다.
호텔로 먼저 가서 휴식을 취한 후 점심을 먹고 페리를 타고 뤼세 피요르드를 보기로 했다. 스타방에르는 오일 플랫홈이다. 노르웨이에서 네 번째로 큰 도시인데 전체 인구 550만 중 15만 명 산다.
노르웨이는 북으로 가는 길이란 뜻으로 게르만 계통 바이킹족이 세운 나라다. 스웨덴, 노르웨이, 덴마크를 스칸디나비아 3국이라고 한다. 핀란드는 안 들어가는데 인종과 언어가 전혀 다르다고 한다. 핀란드는 우랄알타이어족이다. 스타방에르는 북해에 연해 있는 오일 도시다.
페리를 타고 뤼세 피요르드를 따라 올라가니 이틀 후에 갈 프레이케스톨렌 바위가 보인다.
갑자기 페리호 직원이 오더니 난간 같은 것을 쭉 밀어내고 사료통을 들고 흔든다. 이 소리를 듣자 절벽에 있던 염소 두 마리가 달려온다. 어미와 새끼인 듯하다. 매일 먹이를 주나 보다.
다시 항구로 돌아와 구시가지를 보았다. 집집마다 예쁜 꽃이 많다. 한 집 정원에 라일락이 예쁘게 피었다. 우리가 라일락이라고 하자 주인 할아버지가 릴락이라고 하며 라일락은 잉글리쉬라고 한다.
우리 호텔에서 컨퍼런스가 있어 행사 준비로 바쁘다. 저녁에 3코스로 먹으려 했지만, 준비가 안 된다고 하여 부페로 먹었다. 김 대리가 미안한지 와인 한 잔씩 돌린다. 매너 짱이다.
6월 13일 쉐락볼튼
쉐락볼튼 가는 날이다. 8시에 출발해서 버스로 3시간 이동했다. 오늘은 산악가이드도 동행한다. 쉐락은 지명이고 볼튼은 박혀있다는 뜻이다. 한 마디로 쉐락에 있는 박힌 돌이다.
피요르드는 빙하가 만든 협곡에 바닷물이 들어온 곳을 말하는데 노르웨이의 고유명사다. 노르웨이에는 2,000여 개의 피요르드가 있다.
버스를 타고 가며 풀밭에 앉은 소와 송아지를 보니 세상에서 가장 평화로운 풍경이란 생각이 든다. 그런 소를 잡아먹는 인간은 가장 잔인한 동물일까? 하지만 생명을 섭취해야만 생명을 이어갈 수 있는 모든 동물의 숙명이다. 어쩌면 소들의 입장에서 늙고 병들어 서서히 죽어가는 것보다 나을지도 모른다.
시드랄 뮤지엄 휴게소에서 잠깐 섰다. 교회 앞에 묘지가 있다. 자작나무가 아름답고 프로펠러가 전시되어 있다.
오위가드스톨 주차장에 도착하여 짝퉁 쉐락볼튼에서 사진을 찍었다. 암벽을 타며 쉐락볼튼으로 향했다. 중간중간 쇠사슬이 있어 크게 힘들지는 않다.
중간에 있는 산장에서 밀박스로 가져온 샌드위치를 먹었다. 5번 동생이 장갑 한 짝을 잃어버렸다고 한다. 되돌아갈 수는 없으니 하산길에 찾아보자고 했다.
쉐락볼튼에 올라 이 폼, 저 폼, 똥폼을 잡으며 사진을 찍었다.
쉐락볼튼 옆으로 올라가니 피요르드를 배경으로 기막힌 절벽이 나타난다. 절벽에는 폭포도 걸쳐있다.
돌아내려오는데 암벽의 철봉에 낯익은 장갑이 꽂혀있다. 5번 장갑이다. 누군가 날아가지 않게 철봉의 고리에 장갑을 끼워 놓았다. 이렇게 고마울 수가. 세상엔 참 착한 사람도 많다.
하산길에 한 명이 늦어져 우리는 먼저 출발하고 그 여자는 택시를 타고 오기로 했다. 다니엘에게 물어보니 택시비가 60~70만 원 정도 나올 거라고 한다. 우린 택시 안 타서 70만 원 벌었다. 저녁에는 어제 못 먹은 3코스로 먹었다.
6월 14일 프레이케스톨렌
아침 식사 때 팬케이크 굽는 프라이팬 옆에 웬 스프레이가 있어서 눌러보니 무슨 액체가 분무 되어 깜짝 놀랐다. 5번 동생 왈 팬에 뿌리는 기름이란다. 도무지 요리를 안 하니 이런 게 있는 줄도 몰랐다. ㅠ ㅠ. 로프투스 올렌스방 호텔에서 3연박을 한다.
하리포드 피요르드에 있는 하랄왕의 칼 세 개가 있는 곳에서 사진을 찍었다. 바이킹들이 전쟁할 때 하날이란 왕이 통일 왕국을 만들었는데 그 전쟁을 기념하는 조형물이다. 하랄의 본명은 하랄 호르 파그레인데 하랄은 노르웨이 고유어로 고운 머리라는 뜻이다. 세 개의 칼은 통합, 자유, 평화를 의미한다.
바이킹이란 이름은 200년 전부터 쓰였다. 덴마크 바이킹이 특히 호전적이고 약탈이 심했는데 여자 노예를 많이 잡아 성노예로 팔았다. 땅이 척박하고 생활이 불안정해서 바이킹이 될 수밖에 없었다. 이들은 아들을 선호했는데 성인이 되면 무조건 쫓아냈고 그들은 바이킹이 되었다. 영국 윌리엄 왕조의 조상도 바이킹이었다.
가다가 14.4km 해저터널 통과했는데 세계에서 최고로 긴 해저터널이다. 해저가 아닌 지상 터널도 세계 최장 터널이 노르웨이에 있는데 길이가 무려 25km라고 한다.
프레이케스톨렌바위에 이르니 사제는 없고 관광객만 바글바글한다. 그 모양이 제단처럼 네모반듯하게 생겨서 제단 바위라는 이름이 붙었다. 제단 바위 옆으로 올라가니 제단 바위가 한눈에 들어온다. 바위 위의 사람들이 개미 같다.
어제 간 쉐락볼튼은 개 동행 금지였는데 여기는 금지가 아니라서 개를 데려온 사람들이 엄청 많다. 완전 개판이다. 프레이케스톨렌은 영화 미션임파서블에서 톰 크루즈가 와서 찍은 장소다.
다 내려오니 5번 동생과 인순 씨가 카페에서 손을 흔들며 오라고 한다. 가까이 가니 인순 씨가 맥주와 아이스크림을 사준다.
버스 타고 1시간 가서 카페리 타고 20분 이동한 후 다시 버스로 3시간 이동하여 로프투스에 있는 호텔로 향했다. 2시간 정도 가서 폭포를 보려고 버스에서 내렸다. 라떼포스라고 쓰여있어 커피를 생각했더니 로떼란다. A를 O로 발음하나 보다. 수량이 어마어마하다. 눈이 녹는 시기라 그렇단다. 물보라가 엄청나서 나이아가라 폭포에 온 느낌이다.
북유럽 신화의 토르는 망치를 들고 싸우는 신이다. 그는 힘이 세고 정의롭다. 신들이 등장할 때부터 세상은 몰락한다고 예언되어 있단다. 그리스 로마신화와 비슷하다. 오딘은 제우스에 해당하는데 애꾸눈이며 까마귀를 데리고 다닌다. 그의 아들이 토르다. 요일의 어원은 북유럽어에서 왔는데 Moon에서 Monday, Sun에서 Sunday, Tuesday의 Tues는 전쟁의 신, Thursday는 토르에서 유래되었다.
노르웨이에서 버스 기사는 8일에 한 번은 쉬어야 한다. 그래서 내일은 호텔 근처를 산책하기로 하고 그다음 날 트롤퉁가에 가기로 했다.
트롤은 숲을 지키는 요정이다. 트롤은 밤에만 활동하는데 사람을 잡아먹기도 한다. 퉁아는 혓바닥을 뜻한다. 퉁가라고도 하고 퉁아라고도 하나보다.
로프투스 호텔에 도착하니 전망이 기막히다. 피요르드 건너편으로 설산이 펼쳐진다.
6월 15일 올렌스방 트레킹
로프투스 호텔 앞의 올렌스방 숲길로 산책하러 갔다. 낙엽송 그늘이 환상이다.
전망대에서 시내를 보니 설산과 피요르드가 어우러져 한 폭의 그림이다. 전망대 건물 안에는 책도 비치되어 있고 다락방도 있다.
호텔에 돌아와 점심을 먹은 후 수영을 하고 스파와 사우나도 즐겼다. 물놀이를 하고 방에 와보니 눈의 실핏줄이 터졌다. 저녁에 보니 입술도 부르텄다. 완전 저질 체력이다. 주제 파악 못 하고 날뛰는 내가 가소롭다.
저녁 식사 후 김 대리님이 내일 먹을 간식을 나눠준다. 작은 봉지에 양갱, 비타500, 홍삼 등이 들어있다. 육포까지 모두 서울서 준비해온 것이라 한다. 얼굴도 잘 생긴데다 이쁜 짓만 골라서 하니 모두들 좋아한다. 이 사람 저 사람 자꾸 간식을 주니 날이 갈수록 간식이 쌓여간다. 서울 갈 때는 한 보따리 싸가게 생겼다.
6월 16일 트롤퉁가
오늘은 대망의 트롤퉁가에 가는 날이다. 밀박스 2개를 들고 6시에 출발했다. 오따까지 40분 정도 가서 6시 50분에 셔틀버스를 두 번 타고 올라간다. P2에서 P3까지 급경사 구간 2km를 차 타고 올라가니 한결 수월하다. 오따 택시 셔틀버스에는 양옆에 긴 줄이 있고 그 줄에 고리 모양의 줄이 매달려있다. 나중에 다니엘에게 물어보니 버스를 세워달라고 할 때 당기는 줄이란다.
P3에서 트롤퉁가까지는 10km다. 급경사 구간 2km를 차 타고 올라왔으니 나 같은 노약자도 도전해볼 만하다. 트롤은 산을 지키는 요정인데 밤에만 나온다. 태양 빛을 받으면 몸이 굳어버린다. 그런데 밖에 있다가 햇빛을 받아 혀가 굳어서 트롤퉁가가 되었다고 한다.
눈길과 돌길을 걷고 걸어 무아지경에 이를 즈음 갑자기 혓바닥처럼 생긴 커다란 바위가 나타난다. 꿈에 그리던 트롤퉁가다. 배낭과 스틱을 내던지고 사다리를 타고 내려가니 사람들이 줄을 서 있다. 인증샷을 찍으려는 사람들이다. 김 대리님은 위에서 카메라를 들고 대기하다가 우리 회원이 나타나면 사진을 찍어준다. 6월이라 그런지 줄이 길지 않다. 트롤퉁가 위에서 인증 사진을 찍은 후 그 아래쪽에 있는 짝퉁 트롤퉁가에서 또 사진을 찍었다. 요정 혓바닥에 올라서기가 얼마나 힘든지 돌아가실 지경이다.
이 폼 저 폼으로 실컷 찍은 후 다시 올라와서 샌드위치를 먹었다. 다 먹고 나자 김 대리님이 단체 사진을 찍자고 한다. 한 번에 8명 밖에 못 올라간다고 해서 8명씩 두 팀으로 나누어 찍었다. 기차놀이 하듯 줄줄이 사탕처럼 찍고 만세 삼창하듯 만세를 부르며 찍었다. 실컷 배부르게 찍고 하산을 시작했다.
눈 건너 돌 건너 하염없이 걷다 보니 영원히 끝날 것 같지 않던 길이 끝나고 셔틀버스 정류장이 나타난다. 여기서 두 번 버스를 타고 내려오니 반가운 우리 버스가 보인다. 버스를 타고 호텔로 돌아오니 온몸이 만신창이가 된 것 같다.
6월 17일 휴즈달렌 계곡
오늘은 하르당에르 지역 휴즈달렌 계곡 트레킹을 하는 날이다. 15km를 걸었는데 달은 숲이란 뜻이라고 한다. 휴즈달렌은 고원지대다.
두 명의 가이드가 나왔는데 여자 가이드는 강아지까지 데리고 왔다. 강아지 끌고 나온 가이드는 처음이다. 강아지 이름이 딜레마라고 하는데 왜 그런 이름을 붙였는지 모르겠다. 우린 딜레마에 빠진다는 생각 때문에 별로 좋은 이름 같지 않다.
4 폭포까지 다녀왔는데 1 폭포에는 100년이 넘은 수력발전소가 있다. 수력발전소 위쪽에는 물이 내려오는 관이 있다. 손을 대보니 진동이 엄청나다.
길가에는 노란 미나리아재비와 핑크빛 쥐손이풀이 흐드러지게 피어 천상의 화원 같다. 계곡에 걸린 무지개가 기막히다. 어찌나 포즈들을 잘 잡는지 무지개를 먹는 것 같다.
4 폭포 앞 마당바위에서 하늘을 보고 누우니 그야말로 세상에 부러운 놈 하나 없다. 눈이 녹아 수량이 풍부하다. 다 내려오니 계곡물이 있어 신발의 먼지를 닦아냈다.
우리 버스를 타고 오는데 터널 속에 로터리가 있어 사방으로 통한다. 하르당에르 피요르드를 가로지르는 현수교도 있다.
구드방겐에 있는 호텔에 짐을 풀고 바이킹 마을을 둘러보았다. 바이킹 복장을 한 아저씨가 우리를 데리고 다니면서 설명을 해준다. 북유럽 신을 만들어 놓은 곳에서 북유럽 신화도 말해준다. 옆에는 닭장이 있는데 신화에 의하면 수탉 세 마리가 동시에 울면 세상의 종말이 온다고 해서 두 마리만 키운단다.
화살 쏘기와 도끼 던지기도 체험하게 해준다. 희순 씨는 칼도 잘 휘두르고 도끼도 잘 던진다. 전생에 바이킹이었나보다.
바이킹들이 쓰던 여러 가지 무기와 조리기구도 보여줬는데 파리채가 재미있다. 얇은 가죽에 구멍을 뽕뽕 뚫어놓았다.
바이킹 마을을 다 둘러본 후 여기서 저녁 식사를 했다. 바이킹 복장을 한 남자가 써빙을 한다. 식당이 어찌나 어두운지 밥이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 모르겠다.
방으로 돌아오니 에어컨이 없어서 찜질방 같다.
6월 18일 플롬 산악열차
침대에 누워 천장을 바라본다. 유리로 된 천장으로 지붕 위의 톱풀이 보인다. 바람에 하늘거리는 모양이 아름답다. 저 아이는 지붕 위에서 태어나 평생 지붕에서 살다 갈 것이다. 나는 지구라는 별에 태어나 뿌리내리고 살다가 흙이 되어 다시 지구가 될 것이다.
어제 바이킹 마을에서 설명을 들었더니 침대 장식이 눈에 들어온다. 머리맡에는 창, 칼, 도끼, 방패로 꾸미고 침대 귀퉁이는 배의 머리 장식 모양으로 만들었다.
오늘은 플롬 산악열차를 탔다. 한국 사람이 많이 오는지 한국어로 된 안내서도 있고 한국말 안내방송도 나온다. 여기는 터널이 20개나 된다. 그때마다 다니엘이 창문을 내렸다 올리기 바쁘다. 점심 먹고 바로 기차를 탔더니 졸음이 쏟아진다.
중간에 기차에서 내려 폭포를 구경했다. 빨간 옷을 입은 여자가 음악에 맞춰 요정 흉내를 내는 것은 20년 전이나 똑같다. 2002년 여기 왔을 때 붉은 악마 티셔츠를 입은 소년을 만났다. 한국에서 왔느냐고 물으니 이곳에 입양되어 왔다고 했다. 그 소년도 이제 30대 청년이 되었을 텐데 어디서 어떻게 지내는지 궁금하다. 폭포의 물보라를 맞고 나니 잠이 확 깬다.
미르달에서 내려 베르겐행 기차로 갈아탔다. 보스까지 간 후 우리 버스를 타고 베르겐으로 갔다. 아까 열차는 찜통이더니 이번 열차는 에어컨도 들어오고 조용하니 쾌적하다. 와이파이도 되니 더 좋다.
베르겐은 산 사이의 평지란 뜻이다. 비가 많아 나쁜 날씨는 없다는 말이 있다고 한다. 서쪽에서 가장 큰 도시로 무역이 발달했고 예전 수도였다. 무역상들의 한자동맹이 있었고 그 사무실이 있던 곳으로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등록된 곳이다.
베르겐의 피시마켓은 천 년 전부터 있었다. 이곳에서 푸짐한 해물 요리로 저녁 식사를 했다. 갑자기 김 대리가 날 보고 최연장자이니 건배 제의를 하라고 한다. 내가 나이 많고 걸음이 느려 지장 부린 것 같아 맥주를 낼까 생각했었다. 그 순간 며칠 전 한 부부가 맥주를 냈을 때 건배 제의를 하라고 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나에게 건배 제의를 하라고 하면 어쩌나 하는 생각이 들어 입 꾹 다물고 있었다. 어차피 하게 될 것을 진작에 낼 걸 하는 생각도 든다.
식사 후 베르겐 시내 구경을 하고 돌아오는 길에 옛 성문에서 사진 한 컷씩 찍었다. 호텔 방에 오니 11시가 다 됐다. 내일 비행기에서 자면 되니까 마음이 편하다.
6월 19일 플뤠엔 전망대
아침 식사 후 마트에 들러 초콜릿을 샀다. 미숙 씨가 헤이즐넛 말린 것도 하나씩 사준다. 호텔에서 후니쿨라 타는 곳까지 걸어갔다. 국립극장 앞에는 헨릭 입센의 동상이 서 있다.
여러 가지 동상이 있는 분수대를 지나 후니쿨라 타는 곳으로 갔다.
플뤠엔 전망대에 오르니 베르겐 시내가 한눈에 들어온다. 그림처럼 아름답다.
웬 염소들이 땅바닥에 누워 늘어지게 잠을 잔다. 오뉴월의 개 팔자가 아니고 염소 팔자다. 기념품점에 들러 컵을 몇 개 샀다. 컵의 문양이 참 예쁘다.
시내로 내려와 건반 모양 건물이 있는 공원도 보고 맛있게 보이는 빵도 샀다. 베르겐 공항으로 오는 버스에서 김 대리가 그동안 잘 협조해줘서 고맙다고 하며 자기는 정도와 안전에 힘썼다고 한다. 후기도 써달라고 부탁한다. 서울 가면 꼭 후기를 남겨야겠다. 김 대리는 목소리가 낭랑하고 발음이 정확해서 알아듣기 편하다. 항상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 보기 좋다.
다니엘은 그리그가 피요르드에 아침 해가 뜨는 것을 보고 썼다는 곡을 들려준다. 세심한 배려가 고맙다.
공항에서 짐 부치는 데 있는 여직원이 계속 버버거리는 바람에 엄청 시간이 걸렸다. 안으로 들어와 커피를 시켜 아까 산 빵으로 요기를 했다. 게이트 앞에서 보딩을 기다리며 5번 동생이 베레모 아줌마에게 배워온 블루투스 사용법을 배웠다. 손주 며느리에까지 배워야 한다더니 그 말이 맞는 것 같다.
암스테르담 공항에서는 환승 시간에 쫓겨 달리듯 게이트로 향했다. 짐이나 제대로 옮겨 실었나 모르겠다. 김 대리는 자기 좌석 번호가 45D라고 하며 약이나 도움이 필요하면 오라고 한다. 젊은 사람이 어찌 그리도 생각이 깊고 배려심이 많은지 다음에도 같이 여행했으면 좋겠다.
6월 20일 귀국
공항에 내려서 짐을 찾을 때마다 가슴이 두 근 반, 세 근 반 한다. 혹시나 짐이 안 오면 신고하려고 내 캐리어 사진도 찍어놨다. 그런데 이번에는 짐이 안 와도 별걱정은 없다. 아니 오히려 안 왔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약간 든다. 몇 년 전 짐이 안 왔을 때 집까지 배달해주었던 기억이 떠오른다. 무거운 짐 끌지 않고 홀가분하게 집에 가는 것도 괜찮았다. 하지만 이번에는 짐이 무사히 나왔다. 그런데 한 남자분 짐이 안 왔다. 공항 여직원이 어리버리하더니 착오가 있었나 보다. 별일 없이 전철 타고 집으로 향하니 큰 과업을 완수한 기분이다.
이번 여행은 힘에 부쳐서 입술 터지고 눈알 터져 만신창이가 되었지만 내 버킷리스트에서 하나를 지운 가슴 뿌듯한 여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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