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래시모

2023. 12. 1. 최철성 글렌 굴드 특집

아~ 네모네! 2023. 12. 1. 23:22

클래시모 2023121

1. 진행자 : 최철성 회원

 

2. 감상곡 : 121일 감상회 (천재 피아니스트 Glenn Gould 다큐 영상)

* 1: Genius Within : The Inner life of Glenn Gould (글렌

굴드 고독한 천재의 영혼)

* 2: The Russian Journey (러시아 연주 실황)

  글렌 굴드는 1932년 토론토 동쪽 변두리 나무가 우거진 평화로운 동네의 견실한 중간계급 가정에서 태어났다. 글렌의 아버지 버트는 모피상으로 젊은 시절에 바이올린을 연주한 적이 있었다. 어머니 플로렌스는 피아니스트이자 음악 교사였다. 또 두 사람 모두 노래를 잘했다.

  사우스우드가 32번지에 자리한 집에서 태어나고 자란 굴드는 어린 시절부터 천부적인 피아니스트였다. 갓 태어난 굴드가 바로 손가락을 움직이는 것을 보고, 의사가 '이 아이는 커서 피아니스트 아니면 의사가 되겠군'이라고 했다고 한다. 에드바르 그리그의 후손이기도 하다.

  1955년도에 미국 음반 회사인 CBS(콜롬비아)에서 바흐의 골드베르크 변주곡 녹음을 계기로 젊은 나이로 세계적인 거장 반열에 올랐다. 6월의 뉴욕에 나타난 굴드의 모습은 가관이었다. 두꺼운 코트에 머플러를 두르고 베레모에 장갑을 끼고 있었다. 뉴욕의 물은 마실 수 없다면서 식수로 사용할 두 개의 물병을 지니고 5개의 약병과 그 유명한 의자까지 가지고 왔던 것이다. 이 의자는 다리가 모두 고무로 만들어진 것이어서 연주할 때 몸의 각도에 따라 자유자재로 움직일 수 있는 것이었다. 연주에 들어가기 전 굴드는 두 손을 20분간 더운물에 담그고 자신이 가져온 수건으로 손을 닦아 냈다. 녹음이 진행되는 동안 굴드는 도취한 상태에서 입을 벌리고 노래를 불렀으며 몸을 앞뒤로 구부렸다 폈다를 반복했다. CBS의 녹음기술자들은 굴드의 허밍을 녹음하지 않기 위해 각고의 노력을 기울였다. 이 음반은 1955년에 녹음하여 1956년 출시되자마자 곧 베스트셀러에 올랐으며, 이후 한 번도 절판된 적 없이 오늘날까지 잘 팔리고 있다. 이는 엄청난 성공이었으며, 글렌의 주위 사람들은 모두 기뻐했으나 조용하고 고독함을 즐기는 그에게는 힘든 점도 있었다. 그의 인터뷰에서 고백했듯이 갑자기 연주해 달라는 요청이 전 세계에서 쏟아져 들어왔고, 글렌은 점점 더 견디기 힘들어했다.

  그다지 알려지지 않은 젊은 피아니스트가 한순간에 세계적 거장 반열에 드는 것은 그 당시로서는 이례적인 사건이었다. 늘 고독함 속에서 혼자 일하는 것을 즐기던 굴드에게 주위의 관심을 받고 세계의 무대를 왔다 갔다 하는 것은 힘든 시련이었다. 그 시기에 굴드는 다양한 정신적, 신체적 고통과 병에 시달렸다. 그래서인지 그는 30대에 공연 은퇴를 선언했고 무대 활동보다는 녹음 활동에 더 열중했다. 그의 음악은 원래부터 개성적이었지만 30대 이후의 녹음을 들어보면 음악 초보자도 굴드 연주라는 걸 알 수 있을 정도로 완벽한 굴드 표 녹음이라는 걸 알 수 있다.

  50살에 요절한 말년의 굴드는 정신상태뿐만이 아니라 육체적 상태도 엉망이었다. 당시 10년 만에 굴드를 방문한 굴드의 친구와 그의 아내는 굴드를 보고 깜짝 놀랐다고 한다. 얼굴은 퉁퉁 붓고 피부는 죽은 사람 같아서 젊었을 적의 미모는 찾아볼 수가 없었고 눈에서는 생기를 찾아볼 수 없었다고 한다. 이미 그 당시 그는 음악 작업보다는 방송작업과 다른 분야에 더 관심이 많았기 때문에 말 그대로 취미로 피아노를 치는 수준이었다.      사실 굴드는 젊었을 적부터 자신이 피아노만 잘 치는 사람보다는 레오나르도 다 빈치처럼 모든 분야에 만능적안 사람으로 인정받기를 원했었다. 당시 CBS 스튜디오에서 가끔 연주녹음 작업을 했는데 죽기 몇 해 전부터 굴드는 자신이 곧 죽을 것이라며 자신이 사교성이 없어서 친한 이가 거의 없기에 장례식에는 사람들이 아무도 안 올 것이라며 말했다. 이렇게 매우 비관적으로 삶과 동시에 다시 한번 세계적인 업적을 이루고 싶었는지 이것저것 준비하고 있었다. 그렇지만 지난 20년의 세월 동안 과다한 약물복용으로 인해 그의 몸은 서서히 망가지고 있었고 그의 말년 연주 동영상을 보면 손가락이 가끔 이상한 반응을 보이는 게 약물 부작용 때문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다. 실제로 굴드의 일기에는 말년에 손가락의 이상을 호소하는 글이 많다.

  이런 상황에서 굴드는 재녹음은 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깨고 다시 한번 골드베르크 변주곡을 녹음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1981년에 녹음된 골드베르크 변주곡은 사실 1982년 굴드 사후에 발매되었다. 비평가 팀 페이지에 의하면 첫 번째 골드베르크 녹음 중에서 몇몇 부분이 굴드 맘에 들지 않았던 것도 재녹음의 이유 중 하나라고 한다.

  1982927일 굴드는 발작을 호소했다. 그의 비서가 의사를 불렀으나, 굴드의 비상 전화에 질린 의사는 그냥 응급실에나 가라고 했고 병원을 매우 싫어하는 굴드는 계속 버티다가 뒤늦게 병원에 갔다. 병원에서도 어찌할 방법은 없었고 증상은 갈수록 악화되어 의식을 잃고 뇌사 상태에 이르자 아버지의 동의 하에 호흡기를 떼고 장례식을 치렀다. 굴드가 나고 자라고 생활하고 죽은 캐나다 토론토에 있는 그의 묘비에는 골드베르크 아리아의 처음 몇 마디가 적혀있다.

 

3. 감상문

  글렌 굴드는 참 특이한 사람이다. 음악에 살고 음악에 죽었다고나 할까? 노래를 부르며 피아노를 치는 그는 무아지경에 빠져 저승을 헤매는 듯하다. 불안증 우울증에 시달리며 약물을 과용한 그는 약의 부작용으로 일찍 세상을 떠난 것 같다. 어찌 보면 천재는 참 불쌍한 사람이다. 사람들과 너무 달라서 함께 소통하지 못하고 함께 생활하지 못한다. 의자가 너무 낮아 피아노에 매달린 듯 연주하는 모습은 참 기이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