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행문

2022. 10. 20. 베드로순례길 1

아~ 네모네! 2022. 11. 24. 22:51

주 뜻대로 하옵소서

이현숙

 

  TNT 회원들과 이탈리아에 있는 베드로 순례길을 걷기로 했다. 이탈리아말로 비아 프란치제나는 영국의 대성당이 있는 도시 캔터베리에서 프랑스와 스위스를 거쳐 로마까지 이어지는 길이다. Via''이란 뜻이고 ‘Via Francigena’프랑스에서 오는 길이란 뜻이다. 중세시대에는 교황청과 사도 베드로의 무덤을 방문하려는 사람들에게 중요한 길이자 순례길이었다. 베드로는 자기가 주님과 똑같은 자세로 죽는 것이 합당치 않다고 말하면서 자신을 십자가에 거꾸로 매달아 달라고 요청했다. 그리하여 베드로는 그의 나이 70세인 AD67년 네로에 의해 순교 당한다. 그가 순교한 자리가 지금의 바티칸 언덕이다. 베드로 성당이 있는 자리가 베드로가 처형당한 장소인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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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코로나 여파로 공항리무진 버스가 뜸하다. 새벽 620분 다음은 10시에 있다. 시간이 애매해서 지하철을 탔다. 지하철에서 한 아저씨가 일어서며 여기 앉으라고 한다. 고속버스터미널에서 내리려고 하니 자기가 짐을 들어주겠다고 한다. 에스컬레이터를 타며 어디 가느냐, 몇 시간 걸리냐, 왜 애들하고 안 가고 혼자 가냐? 하고 묻는다. 내가 14시간 걸린다고 하니 자기도 아들이 캐나다에 살아서 한 번 가려면 13시간 걸린다고 한다. 9호선 쪽으로 가려고 하기에 9호선 타냐고 하니 3호선 탄단다. 내가 혼자 갈 수 있다고 그냥 가시라고 하니 짐을 주고 간다. 꼬부랑 할머니의 민폐다. 100세 할머니로 아나? 이제 해외여행도 그만 다녀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9호선을 탔더니 출근 시간이라 사람이 어마어마하게 많다. 오징어포가 될 지경이다. 뒤에서 누가 어깨를 툭 툭 친다. 어떤 아줌마가 자리를 양보하며 앉으라고 한다. 이렇게 민폐를 끼치다가는 공공의 적이 될 것 같다.

공항에서 일행을 만났다. 정연씨 캐리어가 안 열린다. 열쇠 번호가 257이라는데 아무리 해도 안 된다. 결국 로마 호텔에 가서 뜯기로 했다.

  공항 톨게이트에 앉아 있는데 딸이 여행 잘 다녀오시라고 카톡을 보냈다. 어제는 지팡이 없이 몇 발짝 걸었다고 한다. 며칠 전만 해도 지팡이 짚고 걸었다는데 내 마음이 날아갈 것 같다.

  남편이 없으면 쌍 날개 달고 날아다닐 줄 알았더니 날갯죽지가 부러져 꼼짝을 못하겠다. 누가 남편 없다고 뭐라고 하는 것도 아닌데 혼자 주눅이 든다. 차 타는 데까지 가방 끌어다 줄 인간도 없고, 올 때 정류장에 나와 기다릴 인간도 없다. 남편은 내가 올 때면 미리 와 있다가 집까지 짐을 끌어 주곤 했다. 50년 동안 머슴처럼 부려 먹었더니 잽싸게 하늘나라로 도망가 버렸다.

  차가 있을 때는 공항까지 태워다주고 도착할 때 미리 와서 기다리곤 했다. 우리 비행기가 연착해 공항에서 3시간씩 기다릴 때도 있었다. 그때가 좋았다. '~ 옛날이여~.' 소리가 절로 난다. 공항 터미널에는 사람이 별로 없다. 널 널 해서 좋다.

  룸메이트인 순자 씨와 함께 짐을 부치는데 순자 씨 짐을 보니 21kg이 넘는다. 나는 11kg인데 말이다. 순자 씨는 준비의 여왕이다. 무얼 엄청 많이 가져와서 베푼다. 나는 대충 필요한 것만 가져오고 그냥 개기는 편이다. 팔꿈치가 아프니 짐이 더 두렵다.

  비행기에 올랐다. 내 옆자리의 순자 씨가 눈치 빠르게 빈자리로 옮겨간다. 두 자리 차지하고 편안히 누웠다. 먹고 자고 먹고 자고 순둥이 아기처럼 먹으면 잤다. 그러다가 잠이 안 오면 심심풀이 땅콩으로 끼적거린다. 카톡도 안 되니 할 일이 없다.

  명수 씨는 남편 무릎을 베고 편안히 잠들었다. 나에겐 불가능한 일이다. 내 남편은 가루가 되어 유골함으로 들어갔으니 언감생심 꿈도 못 꿀 일이다. 잃는 것이 있으면 얻는 것도 있다고 했던가?. 남편은 잃었지만, 자유를 얻었다고 자위해본다.

  로마 공항에 도착하기 전 김 사장님이 유심을 바꿔준다. 또 정연씨 핸드폰이 말썽이다. 유심이 빠지지를 않는다. 원장님이 없으니 되는 게 없다. 레오나르도 다빈치 공항에 도착해서 공항 옆 힐튼호텔에 들었다. 방에 와보니 물 한 병도 없다. 하루 숙박비가 50만 원이라는데 해도 해도 이건 너무한다. 칼만 안 들었지 완전 날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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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침에 정연씨에게 캐리어 열었느냐고 물으니 미숙 씨가 스푼으로 30초 만에 우두둑 뜯고 유심도 핀으로 꺼냈단다. 장미숙은 장가이버다.

  김 사장님이 렌터카를 빨리 찾아왔다고 일찍 출발하자고 카톡방에 올렸다. 아무리 기다려도 미숙 씨와 정연 씨가 안 나온다. 호텔 지배인은 빨리 차를 빼라고 난리다. 한 시간이 되어가도 카톡 전화도 안 받고 카톡도 안 본다. 무슨 위급상황이 생겼나 하고 아무래도 여자가 올라가는 게 좋을 것 같아 방으로 올라갔다. 문을 두드리며 왜 안 나오냐고 하니 연락 올 때만 기다렸다는 것이다. 왜 카톡방을 안 보냐고 하니 정연씨는 무음으로 해놓고 미숙 씨는 카톡방 알림 끄기를 해놨다. 허둥지둥 내려와 차에 올랐다.

  네비가 가르쳐주는 대로 호텔을 찾아 비포장길로 들어갔더니 완전 산길이라 도저히 갈 수가 없다. 되돌아 나와 겨우 겨우 찾아갔다. 고풍스러운 분위기가 몇 년 전 갔던 우간다 호텔 같은 분위기가 느껴진다.

  호텔에 짐을 풀고 루카성으로 갔다. 성에 들어가 순례자 스탬프북을 사려고 안내센터 갔지만 6시까지만 열어서 못 샀다. 기차역에는 7시까지 한다고 김 사장님이 달려갔지만, 스탬프북이 없어서 그냥 왔다. 루카는 푸치니의 고향이다. 루카 성벽을 걷는 사람들이 보인다. 베드로 문으로 들어가 산 미켈레 대성당으로 갔다. 미카일 천사가 조각되어 있다. 기둥 조각이 모두 다르다.

  광장에서 수프와 샐러드, 피자를 먹고 젤라토도 사다 먹었다. 식당에 젤라토가 없어 김 사장님이 사러 갔다. 한참 만에 젤라토 아이스크림 일곱 개를 양손에 들고 오는데 막 녹아내린다. 가까운 곳 가게가 닫아서 멀리 가서 사 왔다는 것이다. 여기 가게들은 포장도 안 해주나 보다. 이런 줄 알았으면 같이 갈 걸 그랬다. 김 사장님을 너무 부려 먹어 미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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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도 새벽 2시에 깼다. 병원에 있는 딸에게 운동 열심히 하라고 카톡방에 올렸다. 오늘은 토요일이라 회진이 없겠다고 하니 방금 왔다 가셨단다. 오늘이 당직인가 보다. 강남세브란스는 보호자 관리가 좋다. 매일 아침 어느 의사가 몇 시에 회진한다고 카톡을 보내준다.

  아침 식사 후 로비에서 수다를 떤다. 남편 욕 잔치가 벌어졌다. 나이 든 여자들의 단골 메뉴다. 방의 물은 한 병에 1.5유로라서 계산하기 바쁘다. 우리는 김 사장이 1.5 유로라고 해서 안 먹었다. ᄏᄏ

  알토파시오 순례길 시작점까지 차를 타고 갔다. 김 사장님은 점심 먹을 장소에 차를 두고 되돌아오기로 했다. 비아 프란치제나(일명 베드로순례길)은 영국 캔터베리에서 시작된다. 캔터베리 대주교가 로마 교황청에 승인을 받기위해 걸어가던 길이라고 한다.

  알토파시오는 빵이 유명한 동네다. 중세시대 소금이 비싸서 소금을 안 넣고 천연 효소로 발효시킨다. 유럽 밀가루는 입자가 곱다. 알토파시오 성당 앞에 있는 순례자 그림에서 사진을 찍었다.

  알토파시오에서 빵을 먹고 걷기 시작했다. 알토파시오의 주산업은 가죽 염색이다. 메디치 가문이 만든 다리도 있고 제지 산업도 유명하다. 어제 점심 먹은 휴게소 테이블보도 종이였다. 종이가 어찌나 정교하고 아름다운지 천으로 만든 줄 알았다.

  순례길은 알토파시오 성당에서 시작된다. 성당 정면의 파사드 양식을 보고 건축양식을 안다고 한다. 보수할 때마다 여러 가지 양식이 추가되는데 로마네스크는 로마 시대의 양식이다. 알토파시오는 이태리 북과 남의 중심, 동과 서의 중심이다. 그래서 병원과 숙소, 타우기사단이 있었다. 곳곳에 순례객들이 보인다. 김 사장님이 갈레노에서 스탬프 북을 사서 도장까지 찍어왔다.

  오늘은 산 미니아토까지 걸을 예정이다. 산 미니아토는 나폴레옹의 고향이다. 그의 아버지가 코르시카섬으로 이주했다. 코르시카섬이 그때는 이탈리아 땅이었는데 후에 프랑스 땅이 되어 나폴레옹은 프랑스 사람이 되었다.

  푸체키오에서 점심 먹을 계획이다. 푸체키오는 피노키오라는 뜻이다. 아르노강이 푸체키오를 지나기 때문에 염색 산업이 발달했다. 아르노 강은 피렌체를 지나 지중해로 빠진다.

  폰테 카피아노에서 뚝방길 따라 마냥 가다가 피렌체로 갈 뻔했다. 햇볕이 어찌나 강한지 뙤약볕에 겨울옷 입  고 걷다가 산 채로 바베큐 될 뻔했다. 미숙 씨가 보더니 얇은 옷을 빌려줘서 갈아입었다. 뚝길을 마냥 걷다가 푸체키오로 가는 길을 놓쳤다. 김 사장님이 차를 가져와 타고 폰테 카피아노(카피아노 다리)로 되돌아와 점심을 먹고 푸체키오에서 다시 걷기 시작했다.

  산 미니아토에 도착해 두오모 성당과 망루를 보았다. 1인당 3유로씩 주고 망루 꼭대기에 올라가니 사방이 탁 틔어 가슴이 후련하다. 올라가는 비용은 한 명이 올라가면 4유로, 둘이 올라가면 6유로다.

  망루에서 내려오니 직원이 위에 사람이 있느냐고 묻는다. 두 명 있다고 알려줬다. 문을 닫으려나 보다. 망루에서 내려와 어떤 호텔에 들어가 스탬프를 받고 기분이 좋아 손에 들고 사진을 찍었다.

  보나파르트 광장으로 가다가 맥주파는 집을 보니 온갖 맥주병들이 보인다. 맥주 킬러 정연씨와 순자 씨가 들어가더니 얼굴 그림이 그려진 맥주캔을 사가지고 나온다. 길바닥에서 맥주캔을 들고 사진을 찍으며 생쇼를 벌였다. 순례자들이 이래도 되나 모르겠다.

  보나파르트 광장 옆 성당에 들어가니 순례자 조형물이 있다. 조형물 앞에서 사진 찍으니 한 할머니가 미숙 씨를 끌고 제단 옆 방으로 들어간다. 따라 들어가니 밧줄이 있고 당겨보란다. 함께 당기니 종이 울린다. 성당 종도 쳐보고 촌년이 정말 출세했다.

  성당 할머니에게 순자 씨가 주차장을 물었더니 물 달라는 줄 알고 물을 가져온다. 할머니는 성당 앞 수돗물을 받아 주며 먹으라고 한다. 완전 물 먹인다. 순자 씨는 울며 겨자 먹기로 수돗물을 받아먹었다.

  7시나 돼야 식당 문을 연다고 해서 호텔 쪽으로 오다가 중국집에 들어갔다. 어찌나 양을 많이 주는지 반의 반도 못 먹었다. 우리가 나올 때 식당 주인이 남긴 양을 보더니 깜짝 놀란다. 명수 씨가 "Too much"라고 했더니 웃더란다.

  어제 미리 와봤던 호텔이라 오늘은 실수 없이 잘 찾아 들어왔다. 모처럼 연 박을 하게 되어 3일 치 빨래를 해서 방안 가득 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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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다 깨면 잠이 오지 않는다. 새벽 2시는 한국시간으로 오전 9시다. 화장실로 들어가 딸에게 힘내라고 카톡을 보내려니 전송이 안 된다. 원체 오지가 되어 와이파이는 물론이고 데이터로도 카톡이 안 된다.

  뒤척이며 오만가지 생각을 한다. 갑자기 눈물이 솟구친다. 부부란 무엇일까? 이번 여행은 남편 있는 여자가 3, 과부가 2명이다. 남편 있는 여자들은 남편 욕하기 바쁘고 남편 없는 여자 둘은 남편을 생각하며 눈물을 삼킨다. 남편이란 존재는 살아서도 죽어서도 부인을 괴롭히는 것이 아닐까? 살아서는 서로 같은 극을 가까이한 것처럼 척력이 작용하고 죽으면 180도 방향을 바꿔 인력이 작용하나 보다.

  아침에 일어나 순자 씨에게 카톡이 안 된다고 하니 자기는 된다는 것이다. 다시 살펴보니 데이터가 꺼져있다. 에고~ 내 팔자야. 창문을 열고 침대에서 카톡 보는데 새소리가 들린다. 아침 인사를 하나 보다. 꾀꼬리가 아닐까? 식당으로 가는 길의 사이프러스 나무가 멋지다.

  아침 식사를 하다가 정연씨가 원장님과 여행 갔던 얘기를 하며 눈물을 닦는다. 미숙 씨가 날 보고 형님은 안 우느냐고 한다. 난 괜찮다고 하며 무심코 커피에 넣는다고 가져온 설탕을 과일 셀러드에 넣고 있다. 이런 내 꼴을 보고 다들 폭소를 터트린다. 나는 정신을 잘 차리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그게 아닌가 보다.

  남편이 병원에 있을 때 밤 12시 가까이 되어 병원에서 빨리 오라고 전화가 왔다. 잠자리에 들려다가 택시를 타고 병원으로 달려갔다. 서울의료원 건물을 보는 순간 며칠 전 북부병원으로 옮겼다는 생각이 떠오른다. 택시 기사에게 미안하다고 연신 사과를 하고 다시 북부병원으로 갔다. 그때부터 제정신이 아닌 것 같다.

  얼마 전에는 아들 고1 때 엄마들 모임이 있었다. 30년 된 모임이다. 내가 연락을 맡아 매달 카톡방에 올린다. 전날 밤에 확인차 다시 카톡방에 올리고는 그날 까맣게 잊고 혼자 점심을 먹는데 왜 안 오느냐고 전화가 온다. 아차~ 하고 부랴부랴 달려갔다. 한 마디로 얼이 빠졌다. 빠진 얼이 언제 돌아올지 모르겠다.

  식사 후 산 미니아토로 갔다. 보나파르트 광장에 있는 보나파르트 카페에서 빵을 사가지고 출발했다. 코이아노에서 김 사장님과 만나기로 했다. 감바시가 오늘의 최종 목적지다. 길 가는 차들이 빵빵거리고 손을 흔들며 응원해준다.

  고갯길을 올라가며 미숙 씨가 한마디 한다. "베드로는 왜 이 길을 걸어서 여러 사람 괴롭히나?" 만약 베드로가 들었다면 "누가 오라고 했냐?"라고 했을 것 같다. 토스카나 지방의 평온한 길을 하염없이 걷는다.

  감바시를 4km 정도 앞두고 김 사장님 차를 타고 감바시까지 갔다. 중앙광장에 있는 성당에 들어가 오늘 하루도 잘 걸었다는 감사의 기도를 드렸다. 제단 밑에는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후 그 시신을 내린 조각상이 있다. 성당에서 나와 한 식당에서 도장을 받았다. 오늘 38,463걸음을 걸었다.

  호텔로 돌아와 스테이크로 푸짐한 저녁을 먹었다. 저녁 인사는 '보나 떼라'라고 한다. 그것도 모르고 하루종일 봉주르노라고 했다. 우리 다섯은 먼저 방으로 돌아오고 김 사장님과 정연씨는 천천히 먹고 올라오겠다고 한다. 한참 후 정연씨가 강아지를 안고 옆 테이블의 외국인 부부와 찍은 사진이 올라온다. 식사하면서도 옆 테이블에 얌전히 앉아 있는 개를 유심히 보며 관심을 두더니 기어이 말을 걸었나 보다. 이 독일 부부와 한참 수다를 떨었단다. 정연씨 집의 개 심바가 노쇠해서 오늘내일한다더니 더 신경이 쓰이나 보다. 정연씨는 보면 볼수록 참 정이 많다. 그래서 원장님과 정을 떼기가 그토록 힘든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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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침마다 순자 씨가 홍삼 두 알과 물까지 갖다준다. 침대에 앉아 연일 룸서비스를 받는다. 홍삼을 먹고 나면 사과까지 깎아서 침대로 가져온다. 나는 다른 건 다 몰라도 룸메이트 복은 타고났나 보다.

  잠시 후 미숙 씨가 올라오더니 창가에 서서 누가 세레나데 좀 불러주면 좋겠단다. 환갑 진갑 다 지나고 경로증까지 받은 여자가 참 꿈도 야무지다. 몇 달 지나면 진짜 할머니 될 텐데 말이다.

  엊저녁에 우리가 들어오자 독일인 부부가 우리 테이블로 옮겨와 1시간 동안 수다를 떨었단다. 강아지 엄마들은 대화 내용이 무궁무진하다.

  호텔 수영장 가는 길 초원에서 꽃 달고 사진 찍었다. 나는 치매 소녀상 같고 정연씨는 바람 나서 집 나온 년 갔다며 깔깔대고 웃었다. 좋게 말해서 치매 소녀지 완전 치매 할머니다.

  감바시테르메 로마광장 앞에는 종탑이 있다. 종탑 꼭대기에는 피노키오 도깨비가 종 위에서 앉아 종을 치는 조각상이 있다. 이런 종탑은 처음 본다. 이 지역이 피노키오와 연관이 있나보다.

  오늘은 감바시테르메에서 출발하여 판콜레까지 걸었다. 오늘도 뙤약볕에 익어버릴 지경이다.

  판콜레 성당에 들어가니 무인 판매대가 있다. 스탬프 찍는 곳도 있어서 너도, 나도 도장을 찍었다. 산 지미냐노 가는 길에 호텔이 있어 짐을 풀고 잠시 쉬었다가 산 지미냐노로 갔다.

  아침에 까르푸에서 만난 모녀는 열심히 걷고 있다. Peruca 레스토랑 앞에서 또 만났다. 푸짐한 저녁 만찬을 즐기고 호텔로 돌아왔다. 오늘은 20,035걸음 걸었다.

  엊저녁에 춥게 자서 그런지 목이 아파 침 삼키기도 힘들다. 순자 씨가 인후염 약을 주고 명수 씨가 고농도 비타민을 주어 얼른 먹고 자리에 누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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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침에 일어나니 목이 조금 나아졌다. 오늘도 무사히 잘 견디기만 빌어본다. 아침마다 보수 공사를 한다. 날이 갈수록 공사가 커진다. 두 무릎에 패치를 붙이고 왼쪽 발등과 오른쪽 손에는 박찬호 크림으로 도배를 한다.

식당에서 집게로 빵을 집으려면 오른손이 아파서 집기 힘들다. 몇 달 동안 왼쪽 팔꿈치가 아파서 오른쪽으로만 스틱을 짚었더니 오른손이 아프다.

  산 지미냐노 탑들이 보이는 호텔 식당에 앉아 이국의 정서를 느껴본다.

강원도 임도를 걷는 기분으로 마냥 걷는다. 푸른 초원에 있는 집들이 그림처럼 아름답다. 정연씨가 "저 푸른 초원 위에 그림 같은 집을 짓고 사랑하는 우리 님과~" 하면서 남진 노래가 생각난다고 한다. '그림 같은 집을 짓고'까지는 혹시 가능할지 모르겠는데 우리는 '사랑하는 우리 님과' 부터는 불가능하다고 했더니 정말 그렇다고 한다. 사실 나는 남편을 별로 사랑하지도 않았는데 왜 이리 청승을 떠는지 모르겠다. 갑자기 모든 울타리가 무너져내려 알몸이 드러난 기분이다. 남편이 하늘나라에서 보면 "놀고 있네." 하면서 비웃을 것 같다.

  길 가던 자전거 부대 사람들이 우릴 보고 손을 흔든다. 베드로 순례길은 세 종류가 있다. 자동차 길, 자전거 길, 걷는 길이다. 이들은 자전거로 순례하나 보다.

  아스팔트 길에서 김 사장님을 만나 오래된 성당 앞에서 초밥을 먹었다. 우리는 생선을 먹고 모기는 우리를 먹는다. 이놈들이 오랜만에 별미를 만났는지 집중 공격이다. 추워서 얼어 죽을까 봐 겨울옷만 잔뜩 가져왔지 모기는 생각도 못 했다.

  차로 이동하여 꼴레 데 발델사에서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여유를 찾는다. 아침에 본 독일 모녀를 또 만났다. 여기서도 모기에게 집중 공격을 받는다. 이번에 이태리 모기에게 헌혈 많이 했다. 광장에 있는데 엠블런스가 온다. 그런데 그 번호가 118이다. 우리나라는 119인데 우리와 한 끗 차이다.

  호텔로 돌아와 잠시 쉬다가 고대도시 볼테라로 갔다. 로마 시대 원형극장이 있는 곳이다. 성문 앞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주차비를 내려는데 티켓 발매기에 동전이 안 들어간다. 한참 버버거리다가 김 사장이 동네 할아버지에게 물으니 우리 차로 데려가서 번호판을 가리킨다. 차 번호를 넣으라는 것이다. 차 번호를 넣으니 동전이 쏙 들어간다. 그 할아버지 참 똑똑하다. IQ 150인가보다.

  우선 성 밖에 있는 원형극장을 보러 갔다. 발굴하려고 출입을 금지한 것인지 시간이 늦어서 문을 닫았는지 모르겠다. 철망 밖에서 대충 구경을 하고 성안으로 들어갔다.

  성문 앞 정원에는 남녀가 키스하는 조각상이 있다. 적나라하게 잘도 표현했다. 성안으로 들어가니 미사가 진행 중이다. 딸이 완쾌되고 건희가 하나님이 보시기에 가장 좋은 대학에 합격하기를 기도했다. 오기 전에 3번 동생이 부탁한 지연이 결혼을 위해서도 빌었다. 지연이가 하나님 보시기에 가장 행복한 가정을 이루게 해달라고 작은 헌금통에 5유로 헌금도 했다.

  성안으로 들어가니 도시 규모가 어마어마하다. 볼테라가 이 근처에서 가장 큰 도시였단다. 건물이 오래되어 무너져 내릴까 봐 그런지 곳곳에 철봉으로 고정해놨다.

  모든 식당이 7시가 되어야 문을 연다. 한 식당에 들러 스테이크로 맛난 저녁을 먹고 집으로 왔다. 사방이 캄캄한데 꼬불꼬불 꼬부랑길을 마냥 내려온다. 김 사장님이 음악을 튼다. 무슨 곡인지 모르겠는데 슬프다. 뒷좌석에서 훌쩍훌쩍 우는 소리가 들린다. 정연씨가 또 원장님 생각하나 보다.

이렇게 울고 웃으며 또 하루를 보냈다. 집 떠나온 지 6일이 지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