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2021. 11. 29. 엄지가 굵은 이유

아~ 네모네! 2021. 11. 29. 14:14

엄지가 굵은 이유

이현숙

 

  엄지손가락 끝이 갈라져 아프다. 오른쪽 엄지손톱 옆이 갈라져서 살짝 닿기만 해도 바늘로 찌르는 것 같다. 발뒤꿈치가 갈라져 반창고를 붙이는 일은 수십 년 전부터 있는 일이다. 손가락은 지금까지 별일 없이 잘 지내왔는데 올해는 손가락도 반란을 일으킨다. 두 발에 허연 반창고를 붙이고 양말을 신으면 반창고가 밀려 양말에 자꾸 달라붙는다. 이제 손가락까지 처덕처덕 붙여야 하니 이런 추세로 가다가는 온몸을 반창고로 도배를 해야 할 모양이다. 갈수록 몸에서 수분과 기름기가 사라지니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친정아버지의 손가락이 떠오른다. 손가락마다 하얀 반창고로 칭칭 감았던 기억이 난다. 90살이 넘도록 한약재 일을 하던 아버지는 한 번도 그 고통을 가족에게 말 한 적이 없다. 그저 묵묵히 손가락을 싸매고 멘소래담을 바르곤 하셨다. 아버지의 그 손가락이 보고 싶다. 여덟 명이나 되는 우리 가족 모두를 먹이고 입히고 가르치느라 온몸이 바스러지도록 일했다.

  돌아가시기 한 달 전 119대원에게 업혀 계단을 내려가면서도 나는 아픈 데 없다는데 왜 이러느냐고 했다. 끝까지 자식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려고 참고 참으신 것이다. 생각할수록 대단한 분이다.

  손가락 하나 아플 뿐인데 여간 불편한 것이 아니다. 특히 엄지손가락이 더 영향이 큰 것 같다. 과일을 깎을 때도 네 손가락으로 칼을 잡고 엄지 하나로 힘을 주어야 한다. 칫솔질할 때도 네 손가락으로 칫솔을 잡고 엄지로 힘을 주어야 한다. 1100은 아니라도 14는 감당해야 한다. 이것이 엄지가 굵어야 하는 이유인 것 같다.

  특히 네 손가락은 한 방향으로 달렸지만, 엄지는 여기서 직각으로 펼 수 있으니 용도가 다양하다. 손가락을 볼 때마다 조물주의 세심한 배려에 감사한다. 모두 한 방향으로 달려있다면 엄청 불편했을 것이다.

  사람도 마찬가지 아닐까? 다른 사람과 조금 다르다고 왕따를 시키고 괴롭히는 것은 그 사람의 독특한 역할을 몰라서 그럴 수도 있다. 그런 사람이 평범한 사람들은 하지 못하는 일을 하고 있을 것이다.

  네 손가락의 길이가 모두 다른 것도 각자 맡은 역할이 달라서일 것이다. 우리가 서로 다름을 받아들이고 이해한다면 이 지구상의 수많은 문제가 사라질 것이다. 인종 차별도, 빈부 차이도, 지식의 많고 적음도 모두 받아들일 때 우리 사회는 좀 더 살기 좋은 곳으로 변하지 않을까?

 

'나의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2021. 12. 10. 세상이 왜 이래  (0) 2021.12.11
2021. 12. 3. 산호혼식  (0) 2021.12.06
2021. 11. 18. 잃을수록 감사  (0) 2021.11.24
2021. 11. 5. 못 생겨서 다행  (0) 2021.11.07
2021. 11. 1. 나의 스승은 누구인가?  (0) 2021.11.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