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2021. 12. 3. 산호혼식

아~ 네모네! 2021. 12. 6. 13:47

산호혼식

이현숙

 

  금혼식이나 은혼식은 들어봤어도 산호혼식이란 말은 처음 들어본다. 은혼식은 결혼 25주년을 기념하는 것이고, 금혼식은 결혼 후 50년이 되는 해를 축하하는 것이다. 산호혼식은 35주년을 축하하는 의식으로 이날은 부부가 서로 산호로 된 선물을 주고받는다고 한다.

  우리 부부는 1973년에 결혼했으니 48년이 되었다. 은혼식도 산호혼식도 해본 적이 없는데 50년 되는 해에는 금혼식이나 해볼까.

  결혼기념일이 돌아오면 선물을 주고받는 사람들이 꽤 많은 것 같다. 내가 다니는 미용실 원장님은 은혼식 때 남편이 다이아몬드 반지를 해줬다고 자랑한다. 나는 다이어몬드는 고사하고 구리반지도 받은 적이 없으니 할 말이 없다. 결혼식도 돈이 없어 남편이 계를 미리 타서 빚으로 했으니 패물을 바라기도 힘들었다. 그래도 금반지 하나씩은 해서 결혼식 때 서로 끼워주기는 했다. 그때도 결혼식에서 서로 반지를 끼워주는 순서가 있었다.

  그런데 몇 달 후 집에 도둑이 들어와 반지 케이스는 방바닥에 버리고 반지만 가져갔다. 낮에 사람이 없는 줄을 알았는지 다락에서 상자까지 꺼내어 TV를 가져갔다. 당장 그날부터 TV를 못 보니 속이 상했다.

  결국 결혼 예물은 아무것도 없게 되었다. 그 후 48번의 결혼기념일에 한 번도 반지를 한 적이 없으니 지금은 도둑이 들어온다고 해도 가져갈 것이 없다.

  우리 부부는 기념일을 챙길 줄 모른다. 생일이 돌아와도 그저 미역국 한 그릇 먹으면 그만이다. 요즘은 그것도 귀찮아서 그냥 패스한다. 금혼식이 돌아온다고 해도 아마 그냥 지나갈 것이다.

  그나마 우리 결혼기념일을 기억해주는 건 오로지 사위뿐이다. 우리 결혼기념일이 되면 예쁜 딸 낳아줘서 고맙다고 맆 써비스를 한다. 무슨 선물을 주는 건 아니고 카톡만 보낼 뿐인데 그것도 엄청 고맙다. 내 딸을 예쁘다고 봐주니 더이상 바랄 것이 없다.

  사실 기념일이란 게 따지고 보면 별거 아닐지도 모른다. 그날이 그날이고 어제 뜬 해가 오늘도 뜨는 것인데 굳이 날을 정해서 야단법석 하는 게 아닐까. 하지만 이 힘든 인생에서 기념일이라도 챙기면서 살면 훨씬 덜 힘들고 따뜻한 삶을 살게 될 지도 모른다.

  불행 중 다행인 것은 남편과 내가 똑같이 무심하다는 거다. 한 사람은 달력에 동그라미를 치면서 열심히 챙기는데 한 사람은 깜빡 잊고 지낸다면 서운할 것이다. 우리는 이런 점에서 천생연분이다. 똑같이 잊고 사니 스트레스 받을 일도 없고 억울해할 일도 없다. 아마 앞으로도 죽는 날까지 이렇게 살다 죽을 것이다. 거기다 알던 것도 깜빡깜빡 잊는데 어찌 이 시점에서 새로운 것을 기억하길 바라겠는가. 그저 팔자대로 살면 세상 편하고 좋다. 그래도 돌아올 금혼식이 은근히 기다려지는 이 심사는 또 무엇인가.

산호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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