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사랑과 끝 사랑
이현숙
“야 너 애인 있냐?”
어느 날 갑자기 엄마가 나에게 묻는다. 무슨 소린가 하고 멍하니 쳐다보니 점을 보러 갔는데 점쟁이가
“언니는 애인이 없는데 동생은 애인이 둘이네.” 했다는 것이다.
언니는 예쁘게 생겨서 어딜 가나 예쁘다는 소리를 듣는다. 밖에 나갔다 올 때마다 누가 좇아왔다는 둥, 만나자고 했다는 둥 인기가 좋았다. 내가 보기에도 엉망으로 생긴 나는 아무리 돌아다녀도 누구 하나 건드리는 사람이 없었다. 어떤 점쟁이가 아마 헛소리를 했나보다고 흘려넘겼다.
나의 첫사랑은 어디서부터일까? 태어나서 처음 본 사람이 엄마니까 아마도 친정엄마가 아닐까? 하지만 엄마를 사랑한 기억은 별로 없다.
고등학교를 마칠 때까지 다른 친구들은 총각 선생님을 좋아하는 친구도 많고 선생님과 결혼한 친구들도 있는데 나는 별로 마음 설레게 좋아하던 선생님이 없다. 아마도 내 감성이 무디어서 그런지도 모른다.
대학교에 들어와 산악회 형들을 허구한 날 따라다니다 보니 선배들이 멋져 보였다. 한 학년 위의 선배가 있었는데 나에게 특별히 잘해주곤 했다. 이 선배와 가끔씩 개인적으로 만나곤 했는데 1학년 겨울방학 때인 것 같다. 이 선배는 집이 지방이라 서울 친척 집에서 다녔나 보다. 자기가 있는 집으로 놀러 오라고 했다. 별생각 없이 찾아갔는데 집에는 아무도 없었다.
그 선배는 나를 안으려고 했는데 나는 준비가 덜 된 건지 갑자기 당황하여 뿌리치고 나와버렸다. 이 선배가 정말 나를 좋아한 건지는 알 수 없지만, 그 후 만났을 때 자기는 첩의 자식이라고 했다. 나는 그런가 보다 했는데 자기가 사귀던 사람들은 이 얘기를 들은 후 모두 떠났다고 했다.
집에 와서 엄마에게 무심코 이런 말을 했더니 엄마는 펄쩍 뛰며 그 사람 다시는 만나지 말라고 했다. 피는 못 속인다는 것이다. 사실 첩의 자식이나 본처의 자식이나 다를 바가 없는데 아버지의 그런 성격을 물려받아 그럴 수도 있을 것이다. 엄마의 만류 때문이었는지 좋던 감정이 시들해졌는지 그 후 점점 멀어졌다.
이런 것도 첫사랑이라고 할 수 있을지 모르겠는데 하여튼 시시한 첫사랑을 한 셈이다. 이게 첫사랑이라면 나의 끝 사랑은 누구일까? 아마도 손자 사랑이 아닐까? 주말마다 손자가 우리 집에 온다. 토요일이 되면 아침부터 청소를 하고 문의 손잡이를 소독하고 손자가 오기를 기다린다. 아마 모든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다 마찬가지일 것이다. 친구들 핸드폰을 보면 십중팔구 프로필 사진이 손자들이다. 자식도 예쁘지만 늙어서 만나 그런지 손자는 더 예쁘다. 사실 따지고 보면 자식은 내 유전자를 50% 가지고 있지만, 손자는 25% 밖에 가지고 있지 않다. 그래도 손자가 더 예쁜 것은 무엇 때문일까? 내 유전자를 4분의 1밖에 안 가지고 있지만 내 DNA를 이어줄 사람은 손자밖에 없기 때문일 지도 모른다.
사람은 평생을 살아가며 끊임없이 누군가를 사랑하며 살아간다. 부모도 사랑하고 자식도 사랑하고 친구도 사랑하고 배우자도 사랑한다. 이런 사랑이 없다면 인류는 멸종될지도 모른다. 아마도 우리의 삶을 이어가는 끈은 이 사랑일 것이다. 우리의 육신은 밥을 먹고 살지만, 우리의 영혼은 사랑을 먹고 사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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