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2021. 10. 31. 내 인생 최고의 순간

아~ 네모네! 2021. 10. 31. 17:46

내 인생 최고의 순간

이현숙

 

  겁도 없이 아프리카 최고봉 킬리만자로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아프리카라면 초등학교 때부터 교과서에서 검은 대륙이라고 배워서 하늘도 검고 땅도 검고 온통 검다고 막연히 생각했는데 인간만 까맸을 뿐 하늘은 푸르디푸르고 땅은 온통 총천연색으로 빛나고 있었다.

  케냐의 나이로비 공항에 내려서 짐을 찾는데 아무리 기다려도 내 짐 한 개가 나오지 않는다. 다른 사람이 가지고 나갔나 하고 나와보니 역시 내 카고백이 보이지 않는다. 박부장님은 짐을 일일이 확인하며 번호를 적고 대장님은 짐도 다 찾기 전에 왜 나왔냐고 누가 훔쳐 갔으면 어쩌냐고 이리 뛰고 저리 뛰는데 나는 속으로

왜 하필이면 나야?’ 하는 생각이 문득 떠올랐다.

하지만 이미 저질러진 일이니, 별수 있나 싶어 체념하고 있는데 부장님이 분실 신고를 하러 가자고 하였다. 다시 공항에 들어가 서류를 작성하고는 현지 가이드에게 짐을 찾게 되면 호롬보 산장까지 올려보내 달라고 부탁하고는 버스를 타고 탄자니아로 향했다.

  짐이야 어찌 되었건 눈 앞에 펼쳐지는 새로운 풍경에 정신이 빠져 넋 놓고 바라보는데 대장님이

그래도 이현숙 님 짐이 없어진 게 다행이다.” 한다.

  웬 뚱딴지같은 소린가 하고 쳐다보니 그래도 내 짐이 없어진 게 다른 사람 짐 없어진 거보다는 마음이 편하다는 것이다. 대장님 마음이 그렇다는 데 나라고 별수 있나? 이왕이면~ 내 짐 없어진 게 다행이라 마음먹으며 달리다 보니 대장님이 어떻게 해주시겠지 하는 생각에 마음이 편안해졌다. 사실 대장님이 벌거벗고 산에 올라가는 한이 있어도 나는 절대로 떨지 않게 해주실 거라는 확신이 있어 아무 걱정 없이 자연을 즐겼다.

  남망가 국경 마을에서 출입국 절차를 마치고 탄자니아의 아루샤에 도착하니 밤이 깊어 사방은 캄캄한데 호텔 로비에 짐을 놓고 저녁 식사부터 하였다. 식사 후 산에 가지고 갈 짐과 호텔에 맡길 짐을 분리했는데 나는 산에 갈 짐이 모두 카고백에 들었는지라 내려와서 입으려던 속옷만 챙겼다. 짐을 챙기다 보니 과연 대장님이 고소내의에 바지에 랜턴에 모자 등을 모두 챙겨 한 보따리 가지고 온다. 짐을 대강 챙기고 침대에 누우니 다리 쭉 뻗고 잘 수 있다는 게 이렇게 행복한 일인가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

  아침 일찍 호텔을 출발하여 마랑구 게이트에서 입산 신고를 한 후 회원 두 명에 한 명꼴로 가이드를 배정받았다. 수요반의 박용옥 씨와 나는 네비디라는 청년을 만나 배낭을 맡기고 맨몸으로 만다라로 향했다.

사실 같은 인간끼리 누구는 배낭을 앞뒤로 두 개나 지고 누구는 달랑 스틱만 들고 가는 게 마음에 걸리기는 했다. 그리고 인간을 평등하게 지으신 하나님이 이 모양을 본다면 뭐라고 하실까 싶기도 했다.

  열대 우림 지대를 통과하니 춥도 않고 덥도 않고 길은 평탄한 것이 그야말로 식은 죽 먹기보다 쉬웠다. 가끔 원숭이들이 나뭇가지 사이로 왔다 갔다 하고 나무에 척척 걸쳐진 이끼와 덩굴 식물을 보니 어디선가 금방 타잔이 나타나 소리칠 것 같은 착각이 들기도 했다. 새로운 풍경에 여기저기 눈길을 뺏기다 보니 어느덧 2,700m 고지의 만다라 산장이 나타나 우리는 방을 배정받아 들어가고 포터들은 방 앞에까지 짐을 가져다주었다.

  짐을 넣고 일부 회원은 방에서 쉬고 일부 회원은 마운디 분화구를 보러 갔는데 온갖 야생화 위에 떠 있는 마웬지봉은 우리의 넋을 뺏기에 충분했다. 마웬지봉을 배경으로 정신없이 사진들을 찍고는 마운디 분화구로 올라가니 움푹한 분화구 속에 풀들이 우거져있었다. 분화구 주위를 돌아가니 눈앞에 광활한 평원이 펼쳐지는데 광활이란 이런 거로구나 싶고 끝없이 이어진 초원을 바라보고 있자니 가슴이 벅차올라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이럴 때는 인간 언어의 한계성을 더욱더 절실히 느끼게 된다.

  다음 날 아침 8시에 만다라 산장을 출발하여 3,720m에 있는 호롬보 산장으로 향했다. 잃어버린 짐이 도착할지 알 수 없어 하루는 팬티를 바로 입고 다음 날은 뒤집어 입고 이날은 이정임 님이 준 가제 수건으로 기저귀까지 만들어 차고 걸었다. 옷핀으로 고정을 하기는 했지만 그래도 좀 걸리적거리기는 했다. 기저귀 신세 졸업한 지가 언제인데 다 늙어 이게 무슨 고생인가 싶기도 했다. 그래도 형형색색으로 피어있는 야생화가 모든 어려움을 충분히 보상해주고도 남았다.

  오후 4시쯤 호롬보 산장에 도착하여 이번에는 방 하나에 여섯 명씩 들어갔다. 우리는 여자 싱글 여섯 명이 한방을 쓰게 되어 세 명은 밑의 침대에, 세 명은 2층 침대에 자리 잡았다.

  이날은 고소 적응 차 마웬지봉 근처까지 트레킹을 하였다. 얼룩말처럼 얼룩얼룩한 제브라 포인트를 지나 왼쪽 능선으로 오르니 내일 가야 할 키보 산장 가는 길이 나무도 없는 허허벌판에 끝없이 이어져 있었다. 내일은 땡볕에 고생깨나 하게 생겼다고 내심 걱정을 하며 마웬지봉으로 가는 능선까지 가니 멀리 키보 산장이 보이고 마웬지에서 직접 키보로 가는 길이 가느다란 실 같이 이어져 있었다. 여기서 우리는 마웬지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는 호롬보 산장으로 돌아왔다.

  한참 비가 내리는데 기다리고 기다리던 내 짐이 도착했다. 비가 와서 카고백이 좀 젖었지만, 정상에 가기 전에 짐이 도착한 것이 감지덕지하여 짐을 열어보니 아무 이상 없이 모든 물건이 고스란히 들어있었다. 우리는 빗소리를 들으며 내일은 제발 해가 나기를 기원하면서 잠자리에 들었다.

  아침에 일어나니 우리의 기원대로 날이 활짝 개여 밝은 햇빛이 웃음을 띠고 있었다. 일어나 밖으로 나가니 킬리만자로가 흰옷을 입고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어제까지만 해도 용옥 씨 말대로 머리 꼭대기에 껌딱지 붙은 것처럼 정상 부근에만 겨우 흰 눈이 조금 붙어있었는데 오늘은 전체가 흰 눈으로 덮여 그야말로 킬리만자로의 눈이 어떤 건지를 보여주고 있었다.

  이날도 아침을 먹자마자 약 먹을 시간이라고 대장님이 다이나맥스에 두통약에 아스피린에 산소 약에 자신이 처방한 대로 약을 나누어 준다. 약 안 먹으면 책임 못 진다고 엄포를 놓으니 우리는 울며 겨자 먹기로 주는 대로 받아먹었다. 그러면서 대장님이 없을 때는 돌팔이라고 부르고 대장님이 있을 때는 명의라고 아부를 하였다.

  아침 일찍 호롬보 산장을 출발하여 7시간의 산행 끝에 세계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있다는 4,700m 고지의 키보 산장에 도착했다. 키보 산장에는 물도 없고 화장실도 푸세식이라 좀 불편하기는 했지만 그런대로 침대는 잘만 했고 포터들이 오는 길에 길어온 물로 저녁도 만들어 줘 일찌감치 저녁을 먹고 잠자리에 들었다.

하지만 아직 잠들 시간이 되지 않아 뒤척이다가 11시에 일어나 수프를 먹고 밤 12시에 비장한 각오로 정상을 향해 출발하였다. 모든 방한복과 스패츠, 장갑을 착용하고 스틱을 들고 전투에 나가는 사람들처럼 일렬로 서서 나아갔다. 우리는 전체가 하나의 동물과 같이 연결되어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서울을 떠날 때는 초승달이던 달이 어느덧 오동통한 송편 모양으로 부풀어서 우리 앞길을 밝혀주고 북두칠성도 나지막이 떠서 우리를 환송해주었다.

  어차피 길 모양은 제대로 안 보이니 앞사람 엉덩이만 보고 올라가는데 가끔씩 찬 바람이 몰아쳐 킬리만자로가 녹녹지 않음을 상기시켰다. 부장님은 앞에서 끌어주고 대장님은 뒤에서 받쳐주니 어느덧 5,180m 고지에 있는 한스 마이어 동굴에 도착했다. 하늘의 별은 서서히 줄어가고 동녘 하늘이 붉게 물들더니 드디어 해가 솟았다.

  해가 뜨자 추위도 가시고 우리는 길만스 포인트(5,681m)를 향해 무의식적으로 걸음을 계속했다. 7시간의 지루한 행진 끝에 드디어 길만스 포인트에 도착했는데 여기 올라서니 넓은 분화구가 눈 앞에 펼쳐지고 분화구 건너편의 빙하도 보였다. 여기서 기념사진을 찍고는 곧 우후르피크인지 우르르~피크인지 라고 하는 진짜 정상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여기부터는 경사가 심하지 않았는데도 원체 높은 고지인데다 지칠 대로 지친 터라 사경을 헤매다시피 하며 무거운 발걸음을 옮겼다.

  우량아중의 우량아요 일곱 번째 정상에 오르는 끗발 좋은 부장님도 졸린다고 가끔씩 머리를 무릎에 대고 졸고, 어떤 사람은 바위가 보여 앉으려고 하면 바위가 없어지고 나무가 보여 잡으려고 하면 나무가 없어진다고 했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두 시간을 진행하니 드디어 우후루 피크 정상(5,895m) 팻말이 나타나고 먼저 도착한 부장님과 유덕희 님이 반가이 맞아준다. 부장님은 기념사진을 찍어주고 유덕희 님은 정상주라고 양주를 병마개에 조금 따라주는데 술이 입으로 가는지 코로 가는지 정신이 없다. 그래도 여기까지 지고 와서 따라주는 성의가 고마워 조금 마셨다.

  잠시 후 모든 대원이 도착했는데 수연씨는 가이드 팔에 매달려 땅을 밟고 오는지 공중에 매달려 오는지 눈도 제대로 못 뜬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올라온 수연씨를 보고 모두 박수를 치며 인간 승리라고 칭찬하였다.

  온갖 역경을 물리치고 킬리만자로 정상에 오른 이날은 내 인생에서 최고의 높이에 오른 내 인생 最高의 순간이었다.

호롬보 산장에서
내 배낭을 들어준 네비디와 함께
우후루피크 정상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