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2021. 10. 27. 멈출 수 없는 유혹

아~ 네모네! 2021. 10. 27. 16:00

멈출 수 없는 유혹

이현숙

 

  내가 수십 년 동안 멈추지 못하는 것은 무엇일까? 아마도 등산과 글쓰기인 것 같다.

어려서 큰댁에 가 소막고개에 올라보면 산 넘어 산이 이어졌다. 물끄러미 바라보며 저 산 너머에는 어떤 세상이 있을까 생각했다.

  대학교에 들어가 우연히 게시판을 보니 산악회 공고가 붙었다. 이번 토요일날 천마산에 가니 희망자는 청량리역으로 오라는 것이다. 누가 오라는 사람도 없고 같이 가자는 사람도 없는데 혼자서 털레털레 역으로 나갔다. 선배들을 따라 기차를 타고 마석역으로 갔다. 난생처음 산행하려니 힘에 부쳐 벌벌 기면서 정상까지 따라갔다.

  하산길은 평내역까지 와서 또 기차를 타야 하는데 막차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뛰다시피 내려왔다. 팔다리가 후들후들 떨렸다. 이때는 통행금지 시간이 있어서 막차를 놓치면 대책이 없다.

  다음 날 아침 일어나려니 온몸이 만신창이가 된 듯 쑤시고 아프다. 월요일부터 강의실을 옮겨다니려니 이게 장난이 아니다. 계단을 오르내리려면 어찌나 다리가 아픈지 난간을 붙잡고 통사정을 해야 한다. 일주일쯤 지나니 통증이 사라지고 또 산에 가고 싶다. 이렇게 시작된 나의 등산은 매주 이어졌다.

  매일 등교하면 강의실에 가기 전에 산악회실에 먼저 들렀고 하교할 때도 산악회실에 들러서 놀다가 집에 가곤 했다. 내가 대학교에 들어온 건지 산악회에 들어온 건지 구분이 되지 않았다. 그게 1968년이니 나의 산사랑은 50년 넘게 이어졌다. 지금도 롯데 화요등산반에 등록하고 매주 산에 다니고 있다.

  내가 멈추지 못하고 있는 다른 한 가지는 글쓰기다. 수필 교실에 들어온 지 올해로 18년째다. 퇴직하고 심심풀이 땅콩처럼 시작한 글쓰기가 이렇게 오래 이어질 줄 몰랐다. 하긴 뭐 공부라기보다는 놀러 오는 수준이다. 그래도 서당 개 삼 년이면 풍월을 읊는다더니 등단도 하고 수필집도 두 권이나 냈다.

  올봄에 아 네모네의 횡설수설이란 책을 내고 고교 동창들 카톡방에 자랑질을 했더니 우리 동기 회장이 전화를 했다. 책을 재미있게 읽었다고 하며 올해 코로나로 아무 행사도 못 해 아쉬운데 문집을 한 번 내보려고 한단다. 같이 편집 일을 해줄 수 있느냐고 한다. 나는 아무것도 모른다고 했더니 그래도 책을 냈으니 자기보다는 잘 알 것 아니냐고 같이 하자고 한다. 계속 거절하기도 어려워 내가 별로 도움이 되지는 않겠지만 같이 해 보자고 했다.

  편집회의를 하러 경기여고 100주년 기념관으로 오라고 한다. 알았다고 했더니 책을 한 권 가지고 오란다. 동창회에서 책을 낸 사람에게 영매상을 주는데 자기가 한번 추천해 보겠단다. 설마 이런 껄렁한 책에 무슨 상을 주겠나 싶었지만, 그냥 가지고 갔다. 회장은 추천서를 써서 사무실에 내주었다.

  그런데 10월 초에 동창회 사무실에서 메시지가 왔다. 영매상 수상자로 최종 확정되었으니 동창의 날 100주년 기념관 강당으로 오라고 한다. 좀 기쁘기도 하고 누가 알면 웃을 것 같기도 하다. 그래도 그날 강당으로 가니 회장이 꽃다발 두 개를 들고 축하해주러 왔다. 우리 동기 중 한 친구도 교육계 30년 근속으로 이날 함께 영매상을 받았다.

  며칠 후 한 친구가 카톡을 보냈다. 영매상 받을 때 화면에 나온 내 책을 사서 보았는데 재미있다고 수필집 1권도 보고 싶다고 살 수 있느냐고 한다. 이 책은 비매품으로 조금밖에 찍지 않아서 없다고 하니까 빌려줄 수 없느냐고 한다. 이것도 거절할 수는 없어서 어떻게 전해줄까를 물으니 자기는 차를 가지고 다니니까 어디든지 내가 편한 곳으로 오겠다고 한다. 어디 적당한 장소가 떠오르지 않아 나는 면목동 사는데 우리 집으로 오겠느냐고 하니 그러겠다고 한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책을 빌려주면 가지러 와야 하고 또 돌려주러 와야 하니 너무 미안해서 동생에게 카톡을 보냈다. 내가 예전에 준 수필집 가지고 있느냐고 하니 5번 동생이 있다고 한다. 다음 날 산에 가기로 되어있어 가지고 오라고 했다.

  다음 날 성남누비길을 걸으며 동생에게 수필집을 받았다. 오래되어 색깔도 누렇게 변하고 허접하기 이를 데 없다. 그래도 집에 가지고 와서 싸인도 하고 비닐봉지에 잘 쌌다.

  그 다음 날 친구가 카톡을 보냈다. 오늘 3시 반에서 4시 사이에 가려고 하는데 괜찮으냐고 한다. 그렇다고 했더니 우리 아파트에 도착해서 전화를 한다. 책을 들고 내려가 보니 내 나이 또래의 할머니가 차를 대느라고 이리저리 움직이고 있다. 6년 동안 한 반을 해 본 적도 없고 졸업 후 한 번도 만난 적이 없지만 척 봐도 이 친구임을 알 수 있었다.

  책을 주니 어디 가서 차라도 한잔하자고 한다. 사가정역에 있는 빽다방에 앉아 이런저런 얘기를 나눴다. 본 적도 없고 얘기를 나눈 적도 없었지만, 동창이라 그런지 별로 어색함이 없이 근 한 시간 동안 그동안 살아온 얘기를 나눈 후 고맙다고 와인 한 병을 주고 갔다.

  지금까지 별생각 없이 그저 숙제하려는 의무감으로 글을 썼는데 이렇게 책도 내고 읽어줄 애독자까지 생겼으니 생각만 해도 뿌듯하다. 이래서 글쓰기는 멈추지 못하는 나의 유혹이 되었다.

  인생을 살아가며 많은 취미를 갖게 되지만 육체의 훈련으로는 등산이 으뜸이고 치매 예방에는 글쓰기가 으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내 다리가 도와주는 날까지 나의 등산은 멈추지 않을 것이고 나의 팔이 건재할 때까지 나의 글쓰기도 계속될 것이다. 등산은 나의 연인이고 글쓰기는 나의 친구다. 이 연인과 친구를 벗 삼아 내 생이 끝나는 날까지 함께 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