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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야기

2021. 10. 11. 내 인생의 균형잡기

by 아~ 네모네! 2021. 10. 11.

내 인생의 균형 잡기

이현숙

 

  오래전 같이 모임을 하던 지인이 자전거를 타러 가자고 한다. 난 자전거 못 탄다고 했더니 자기가 가르쳐주겠다는 것이다. 그 말만 믿고 미사리 조정경기장으로 갔다. 호수 주위로 자전거를 탈 수 있는 트랙이 있다. 넓은 공터에는 자전거 대여점이 있다.

  여기서 자전거를 빌리기는 빌렸는데 평생 한 번도 타보지 않은 자전거를 다 늙어서 배우려니 도무지 엄두가 나지 않는다. 가르쳐주겠다던 지인은 말로만 몇 마디 하고는 휑하니 달아나 버린다.

  혼자서 자전거를 끌고 다리를 올려놓고 돌리려 하면 넘어가고, 다시 돌리려 하면 또 넘어간다. 한 시간 가까이 혼자 질질 끌고 다니려니 지나가던 아저씨가 보기에 딱했는지 자전거에 올라탄 후 바로 코앞을 보면 안 되고 멀리 바라보라고 가르쳐준다. 아무리 해봐도 도저히 진전이 없다.

  자전거를 반환할 시간이 다 되어 그 지인이 오더니 여태 못 타느냐고 자기가 자전거를 잡아줄 테니 한 번 페달을 밟아보란다. 몇 바퀴 돌려보니 약간 감이 오는 듯하다. 그날은 그것으로 끝내고 집에 왔다.

  나중에 지인과 다시 가서 벌벌 기며 몇 바퀴 돌았다. 비틀비틀 위험천만으로 돌려니 곧 호숫물로 처박힐 것 같다. 호수 주위에는 돌로 된 축대가 있어 거기로 넘어지면 최소 중상은 입을 듯하다.

  그 후 동네 친구가 중랑천에 가서 자전거로 의정부까지 가보자고 한다. 겁이 났지만, 천변 자전거 대여점에서 자전거를 빌려 타고 호기롭게 출발했다. 친구는 순식간에 사라지고 혼자 낑낑대며 페달을 밟는다. 엉덩이를 의자에 철썩대고 시멘트 포장길을 가려니 엉치뼈가 부서지는 듯하다. 그래도 혼자 돌아올 수는 없어서 의정부까지 갔다가 다시 돌아왔다. 며칠 동안 엉덩이가 얼얼하다. 그 후 이 친구는 자전거 타는 재미에 푹 빠져 혼자서 미사리 경기장에 가서 타다가 호수 쪽으로 넘어져 그곳 축댓돌에 처박혀 119에 실려 갔단다.

  남들이 자전거 타는 걸 보면 그렇게 경쾌해 보일 수가 없는데 나는 꼭 고문받는 폼으로 자전거를 끌고 간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자전거는 균형만 잘 잡으면 저절로 굴러갈 것 같은데 그게 쉽지 않다.

  평생을 살아오며 주위 사람들과도 균형을 잡지 못해 이리 비틀, 저리 비틀 좌충우돌 하며 살아온 것 같다. 신혼 초에는 남편과의 관계에서 균형을 잡지 못해 아웅다웅 싸움이 그치질 않았다. 아이들을 키울 때도 아이들이 내 맘대로 안 된다고 툭하면 야단을 치고 큰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그래도 지금까지 별 탈 없이 살아온 것은 남편도 무던하고 아이들도 고분고분 잘 따라주었기 때문인 듯하다.

  요새는 손자와 균형 잡기 중이다. 손자는 미국서 태어나 9살 때 한국에 와서 그런지 우리 부부에게 별 정이 없는 것 같다. 조율이 잘 안된다. 우리 집에 오면 수건도 안 쓰려한다. 손을 닦고는 바닥에다 물을 털고 온다. 우리 부부는 엎어져서 손자가 흘린 물을 닦기 바쁘다. 식기와 수저도 일 회용으로만 쓰려고 해서 일회용 수저와 컵, 접시, 공기 등을 잔뜩 사다 놨다.

  아마도 노인들은 깨끗하지 않다고 생각하나 보다. 아니면 정이 들지 않아서 우리에게 믿음이 안 가는지도 모른다. 그래도 1년 가까이 우리 집에 오더니 조금씩 경계가 풀리는 듯하다.

  몇 주 전에는 우리 아파트의 엘리베이터가 고장 나 아들네가 못 왔다. 아들이 오늘은 할아버지 할머니 집에 못 간다고 하니 손자가 울었단다. 손자는 우리 집에 오면 자기 마음대로 만화 영화 실컷 보고, 맛난 것 시켜 먹고, 집에 갈 때는 슈퍼에 들러 간식을 잔뜩 사 가지고 간다. 할아버지가 슈퍼에 따라가서 원하는 것 다 사주니까 신이 난다. 만화를 더 보려고 5분만, 10분만 하면서 시간을 끈다. 그래도 식사할 때는 엄마 아빠 옆에 앉으려고 하지 우리 옆에는 앉지 않는다. 앞으로 얼마나 더 오랜 세월을 함께 해야 손자와의 관계가 균형이 잘 맞아 자연스럽게 굴러갈지 모르겠다. 그저 이런 날이 오기나 할는지?

  앞으로 남은 날이 얼마나 될지, 얼마나 많은 사람을 만나게 될지 모르지만, 하루빨리 균형 잡기를 잘해서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며 살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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