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2021. 9. 12. 강아지 수준

아~ 네모네! 2021. 9. 20. 16:30

강아지 수준

이현숙

 

  남편과 용마산 자락길을 걷는다. 모처럼 하늘이 화창하니 정상까지 가보자고 했다. 남편은 종아리가 아파서 못 가겠다고 한다. 밤에 종아리에 쥐가 나서 지금도 아프다는 것이다. 아프다는데 별수 있나 싶어 그냥 뒤에서 천천히 따라간다. 나는 옆의 숲을 바라보며 이것도 찍고 저것도 찍고, 이것도 만져보고 저것도 만져보며 마냥 늦장을 부린다.

  요즘 야생화 이름을 알아가는 재미에 푹 빠졌다. 한 번은 조그마한 꽃에 깨 같은 열매가 붙은 것을 찍어 모까에 올렸더니 들깨풀이란다. 그 후 비슷한 것을 또 찍어서 올렸더니 쥐깨풀이란다. 그 차이를 도저히 모르겠다. 인터넷에 찾아보며 아무리 읽어봐도 모르겠다. 들깨풀에는 털이 많다고 하는데 아무리 들여다봐도 잘 보이지 않는다. 맨 위의 잎이 들깨풀은 잎자루가 없고, 쥐깨풀은 잎자루가 있다고 하는데 이것도 구별하기 힘들다. 잎맥의 모양이 어떻고, 잎자루의 길이가 어떻고 한참 설명하는데 실물을 보면 작고 잘 안 보여서 구분하기가 너무 어렵다.

  꽃이 나타날 때마다 들여다보고 만져보고 찍느라고 마냥 느려진다. 남편은 저 앞에 가다가 그늘이 나타나면 서서 기다린다. 앉을 만한 곳이 나타나면 앉아서 기다린다. 아마 엄청 답답할 것이다. 내가 생각해도 내 모양이 완전 강아지하고 똑같다. 강아지들은 한 발짝 가다가 냄새 맡고 또 한 발짝 가다가 오줌 한 방울 내갈기고 마냥 주춤거린다. 나는 한 발짝 가다가 들여다보고 또 한 발짝 가다가 사진 찍고 이 짓을 반복한다. 내 수준이 완전 강아지 수준이다. 강아지는 목줄이라도 매서 끌고 가면 될 텐데 마누라는 목줄을 맬 수도 없으니 속이 터질 것이다.

  남편은 고개를 숙이고 땅만 보며 걷는다. 내가 고개를 들고, 가슴 펴고, 당당하게 걸으라고 해도 아무 소용이 없다. 몇 년 동안 잔소리하다가 지쳐서 그냥 놔둔다. 속으로만 무슨 죄지었나? 땅에 떨어진 것 주우려고 그러나? 하며 욕을 한다.

다리가 아프면 종아리 마사지를 부지런히 하라고 하니

마사지해 주는 부인 만났으면 좋았을 텐데한다. 나도 질세라 한마디 한다.

마사지해 주는 남편 만났으면 좋았을 텐데하고 받아치니 아무 말도 안 한다.

그냥 우리는 둘 다 못 하니 각자 자기 다리 마사지합시다.” 하고 만다.

  나는 정상 쪽으로 가고 싶지만, 남편은 밑의 기슭에서만 뱅뱅 돌다가 세 바퀴를 돈 후 갈림길로 접어든다. 보통 다섯 바퀴를 도는데 한 바퀴 빼먹을 심산이다. 나는 남편 등 뒤에다 대고

저런 빙신.” 하고 마음속으로 욕을 한다. 다리가 아프면 더 많이 움직여서 풀어줘야 할 것 같은데 툭하면 빼먹으려 한다. 비가 오면 비온다고, 눈이 오면 눈 온다고, 어떨 때는 배가 쌀쌀 아프다고 하며 이유도 가지가지다.

  아마 내 남편은 엄청나게 오래 살 거다. 욕을 많이 먹으니 말이다. 남편도 속으로 나에게 욕을 해댈 테니 나도 오래 살 것 같다. 이게 가장 큰 문제다. 남자와 여자가 만나 부부가 되어 몇십 년을 살며 서로 사이좋게 사는 사람은 몇 명이나 될까? 내 주위의 사람들은 거의 모두 지지고 볶으며 아웅다웅 살아간다. 부부는 전생의 웬수가 만난 거라고 하는데 백번 맞는 말 같다. 이생에서 또 웬수가 되면 다음 생에서 또 만날 텐데. 그걸 피하기 위해서라도 서로 사이좋게 지내야 할 것 같다. 그런데 그게 맘 먹은 대로 안 되니 그게 문제다. 이러다가 내생에 둘다 강아지로 태어나 강아지 부부로 만나는 건 아닐까? 이런 사태가 발생하지 않도록 지금부터라도 약 먹는 셈 치고 열심히 노력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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