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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야기

2021.8. 29. 있을 때 잘 하라고?

by 아~ 네모네! 2021. 8. 30.

있을 때 잘 하라고?

이현숙

 

  하와이 사는 지인이 카톡을 보냈다. 새벽에 나와 함께 산에 가는 꿈을 꾸었단다. 그러면서 남편을 이해할 걸, 재밌게 살 껄 하는 후회가 밀려온단다. 이분은 나와 면목중학교에서 같이 근무한 분이다. 집도 우리 동네라서 가끔씩 만나 산에도 가고 가깝게 지냈다. 면목중학교를 떠난 후에도 면목 로터리라는 모임을 만들어 매달 만나 영화도 보고 식사도 하고 차도 마시며 10여 년을 지냈는데 어느 날 갑자기 미국으로 이민을 갔다. 남편은 이민 가기 싫다고 하여 혼자 갔다. 친정의 형제·자매가 모두 미국에 있으니 가고 싶기도 했을 것이다. 하지만 남편을 두고 혼자 간다는 것은 보통 용기가 아니다.

  남편의 간섭이 심하다고 불평이 많기는 했지만 그렇게까지 할 줄은 몰랐다. 남편도 아마 놀랐을 것이다. 미국에 간 지 몇 년 후 남편이 전립선암에 걸렸다. 처음에는 요양보호사가 와서 돌보아주며 같이 바둑도 두고 지낸다고 했다. 그러다가 병이 더 심해지자 요양병원에 입원했다. 결혼한 아들이 가끔씩 찾아와서 잘해드린다고 했다. 그래도 열 효자가 악처 하나만 못하다고 했으니 아마 무척 힘들었을 것이다. 올봄에 아들이 엄마에게 아버지가 정신이 가끔씩 혼미해지니 한 번 와 보라고 해서 딸과 함께 한국에 왔다. 한국에 와도 코로나19로 면회가 제한되어 두 번인가 밖에 못 보고 그냥 미국으로 돌아갔다. 그런데 두 달이 못 되어 돌아가셨다고 연락이 왔다는 것이다.

  다시 부랴부랴 오려고 했지만, 코로나19 예방접종 완료 증명서 떼느라 시간이 걸리고 한국에 와서도 다시 코로나 검사하고 공항에서 결과 나올 때까지 기다리고 하느라 장례식에 참석도 못 했다. 삼우제 날 일산에 있는 납골당에 가서 유골함과 사진만 보고 왔다고 한다.

  한국에 나온 김에 얼굴 한번 보자고 해서 면목 로터리 회원 두 명과 대모산 둘레길도 가고 대공원 둘레길도 걸었다. 산행이 끝나고 집에 오면서 자기네 집에 가자고 해서 들렀더니 창가에 남편의 영정 사진을 모셔놨다. 살았을 때도 몇 번 봐서 익숙한 얼굴이다. 그래도 부인 없이 쓸쓸히 간 것을 생각하니 마음 아팠다.

  그 후 이분은 다시 하와이로 돌아갔는데 갑자기 이런 내용의 카톡을 보낸 것이다. 살아생전에는 남편과 아웅다웅하며 소 닭 보듯 사는 것 같았는데 막상 이별하고 나니 새록새록 생각나고 평소에 잘 못 한 것이 마음에 걸리나 보다. 하와이에 언니도 있고 딸도 있고 함께 트레킹 다니는 연하의 남자도 있으니 아무 어려움이 없을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닌가 보다.

  하긴 서로 살을 섞고 아들딸 낳으면서 수십 년을 살았는데 어찌 하루아침에 칼로 두부 자르듯 싹둑 잘라버릴 수 있을까? 아마 모르긴 몰라도 몇 년 동안 마음고생을 할 것 같다. 평소에 잉꼬처럼 다정다감하게 살았으면 미련이 없었을까?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살아온 만큼의 세월이 지나야 그 상처가 아물 것이다. 있을 때 잘하라는 말이 있긴 하다. 하지만 아무리 잘해도 못 한 것만 마음에 남는다고 한다.

  나도 남편에게 불만이 가득할 때가 많다. 코로나19 때문에 서로가 불만이 더 쌓인다. 오늘도 나는 교회에 가서 예배를 드리자고 하고 남편은 4단계가 끝나고 가겠다고 우기다가 결국 나는 교회에 가고 남편은 집에서 핸드폰을 보며 주일예배를 드렸다. 여자는 남편에게 복종하라는 성경 말씀을 생각하면 남편의 말을 들어야 할 것 같은데 내 고집을 꺾기 힘들다.

  모든 사물과 인간은 그 존재가 없어져야 그 필요성과 존재 가치를 실감한다. 있을 때는 앞에서 걸리적거리고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는 것 같다. 그러니 있을 때 잘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친정엄마도 아버지에게 툭하면 마누라 몇 죽어 나가봐야 알겠느냐고 큰소리치더니 정말 엄마가 나이 60에 갑자기 죽는 바람에 아버지는 3년간 혼자 사시다가 새 부인을 얻어 30년 넘게 사셨다. 이걸 보며 나도 남편이 있을 때 잘해야겠다는 다짐을 하지만 그때뿐이다. 인간은 누구나 당해봐야 안다. 그 범주를 벗어날 수 없는 것이 인간의 한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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