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2021. 8. 25. 남편의 방역수칙

아~ 네모네! 2021. 8. 25. 16:59

남편의 방역수칙

이현숙

 

  아침부터 수필교실 카톡방에 사진이 올라온다. 문우가 한강 천을 산책하며 찍은 사진이다. 이 길을 걸으며 가끔 만나는 거지가 있는데 몸에서 냄새도 나고 해서 멀리 피해 걸었단다. 그래도 거지가 운동도 하는구나 생각하면서 곁눈으로 보며 얼굴을 유심히 살펴보면 눈이 선하게 생겼다고 한다. 그런데 오늘은 어떤 젊은 남자가 가방에서 먹을 것을 꺼내주는 것을 보았단다. 자기는 상상도 못 한 일인데 이 젊은이를 보니 너무도 훌륭해 보였다고 한다.

  나도 이런 상황이면 멀리 피해 다녔을 것이다. 세상이 험하다고, 요즘 젊은 애들은 싸가지가 없다고 종종 뇌까렸는데 알고 보면 세상에는 악한 사람보다 선한 사람이 훨씬 많다. 선한 일은 당연한 일로 받아들이고 악한 일만 크게 보도를 하니 온 세상이 악해 보인다. 내 생각에는 이 젊은이도 훌륭하지만 그런 행동을 보고 사진을 찍으며 자신을 돌아보는 문우도 참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요즘 코로나19로 문화센터 화요 등산이 몇 주째 쉬고 있다. 백화점에서는 해도 된다고 하는데 희망자가 적어서 출발하지 못한다. 가까운 사람들 몇 명이 모여서 근교 둘레길을 걷는다. 그런데 태풍이 올라오고 비바람이 몰아친다고 하니 오늘은 그것도 취소다. 하릴없이 소파에서 빈둥대는데 카톡이 울린다. 회장이 자기네 동네에 와서 점심을 먹잔다. 자기가 샤브샤브를 낼 테니 점심 식사 후 자기 집에 와서 커피를 마시자고 한다. 귀가 번쩍 뜨인다. ‘땡큐를 날린 후 부지런히 준비하고 집을 나선다.

  내가 나가려면 남편은 유심히 나를 살핀다. 마스크를 쓰고 가나 점검하는 것이다. 불안증이 있는 남편은 코로나 때문에 더 신경이 예민해졌다. 내가 어디를 가려면 어디 가느냐? 몇 명이 모이느냐? 일일이 간섭한다. 교회 가는 것만 해도 그렇다. 국가에서는 좌석수의 10%까지 대면예배가 가능하다고 한다. 목사님도 몽이 건강한 사람은 교회에 나와서 예배를 보라고 수시로 문자를 올리신다. 하지만 남편은 4단계가 풀려야 가겠단다. 나 혼자라도 가겠다고 하면 자기는 TV로 영상예배를 못 본다고 나도 못가게 한다. 내가 TV를 연결해 놓고 가겠다고 해도 제발 참으라고 한다.

  국가에서 제한하는 방역수칙만 해도 속이 터지는데 남편은 한술 더 뜨니 아주 꼭지가 돌아버릴 지경이다. 어쩌다 5명이 모일 때도 4명이라고 거짓말을 한다. 오늘도 5명인데 4명이라고 했다.

  한티역에서 만나 일공공샤브집에 가서 거하게 점심을 먹었다. 식사 후 근처에 있는 회장의 집에 가서 과일도 먹고 커피도 마시고 수다를 떨다가 일어서려니 한 사람이 자기 집이 여기서 가까운데 남편이 오늘 점심, 저녁 다 약속이 있어 나갔으니 양재천을 걷다가 자기 집에 가서 저녁을 먹자고 한다. 세 명은 선뜻 따라나서는데 나는 집에 있는 남편이 생각나 그냥 집으로 가겠다고 했다. 두 명은 남편이 없으니 걸릴 것이 없고, 한 사람도 모처럼 나왔으니 함께 하겠다는 것이다. 혼자서 집으로 오려니 공연히 두 사람이 부럽다.

  나도 남편이 없었으면 마음껏 놀다 갈 수 있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점심도 혼자 먹은 남편에게 저녁도 혼자 먹으라는 전화를 할 수가 없다.

  사람은 왜 현재 상황에 만족하지 못하고 항상 남을 부러워하는 것일까? 나의 내면만 들여다보는 나는 일종의 자폐증 환자다. 내면을 들여다보며 가진 것은 안 보고 없는 것만 찾는다. 눈을 들어 밖을 보지 못하니 남의 일에는 전혀 관심이 없다. 항상 불만투성이다.

  한강 천을 걸으며 주위 사람에게 관심을 가지고 먹을 것을 나누어주는 청년이나 그 모습을 바라보고 감탄하는 문우는 건강한 정신을 가진 사람이다. 우리 모두 눈을 조금만 들어 밖을 보고 남을 본다면 이 세상의 불행은 모조리 사라지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