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2021. 9. 4. 가장 행복한 부자

아~ 네모네! 2021. 9. 5. 16:46

가장 행복한 부자

이현숙

 

자매분들인가 봐요?”

서울창포원 직원이 우리들을 보고 하는 말이다.

  작년 12월 나보다 열 살 아래인 5번 동생이 친구와 서울둘레길을 시작했다고 카톡방에 올렸다. 나는 순간 욕심이 생겨서 나도 합류해도 되냐고 물었더니 대환영이란다. 자기는 친구와 1코스를 했지만 나를 위해 다시 1코스를 같이 걸어주겠단다. 이게 웬 떡인가?

  나이 70이 넘다 보니 이제 누구에게나 선뜻 따라나서기가 힘들다. 이런 노약자를 누가 데리고 다니겠는가? 나도 모르게 주눅이 들어 눈치를 보게 된다. 그런데 동생이 대환영이라고 하니 신이 나서 따라나섰다.

  12월 엄동설한에 도봉산역에서 만나 서울창포원 앞으로 가니 여기부터가 1코스 시작이란다. 동생이 가져온 스탬프 북을 열어 1코스 수락 불암산 코스에 도장을 '' 하고 찍었다. 이날은 수락산 둘레길을 지나 덕릉고개를 넘어 불암산 둘레길을 따라 당고개역까지 걸었다.

  이렇게 시작된 서울 둘레길 걷기를 10개월 만에 완주하게 되었다. 겨울에 시작된 것이 꽃 피는 봄을 지나 비바람 몰아치는 여름을 거쳐 가을의 문턱에 다다랐다.

  마지막 코스는 네 자매가 모두 함께 걸어 창포원에 와서 완주 증명서를 받았다. 스탬프 북을 내미니 잠시 기다리란다. 우리는 모두 마스크로 얼굴을 가리고 모자를 썼는데도 자매같이 보였나 보다. 하긴 몇 년 전 하와이 여행 갔을 때도 민박집 주인아주머니가 우리를 보자마자

“Sisters?”하고 물었다.

우리 눈에는 전혀 닮은 것 같지 않은데 남들이 보면 그래도 공통점이 있나 보다.

  화장실에 다녀오니 우리의 인증서와 배지, 리본까지 얌전히 앉아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사실 어떻게 보면 별것도 아닌데 무슨 에베레스트라도 정복한 것처럼 가슴이 벅차고 뿌듯하다. 어찌 됐든 157km를 걸었으니 내가 생각해도 장한 일이다. 4번 동생이 완주를 축하한다며 2층 카페에 가서 팥빙수와 커피를 사주어 맛나게 먹었다.

  우리 친정은 아들 하나에 딸이 여섯이다. 큰 언니는 미국에 이민 가서 살다가 53세에 암으로 죽었고 내가 2번이다. 막내동생은 건강이 안 좋아 잘 걷지를 못하니 주로 네 자매가 같이 다닌다. 지난달에도 횡성으로 여행을 가서 23일 동안 발왕산, 태기산, 선자령, 문암마을까지 휩쓸고 다니며 놀다 왔다.

  자매가 많으니 좋은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같이 영화도 보고, 뮤지컬도 보러 다니고, 여행도 다니고 산에도 다닌다. 남들에게 이런 소리를 하면 엄청 부러워한다.

  세상에는 부자가 참 많다. 땅 부자도 있고, 돈 부자, 주식 부자, 아들 부자, 기타 등등. 하지만 뭐니 뭐니 해도 딸 부자가 최고인 것 같다. 우리 자매들이 모이면 이보다 더 좋을 수가 없다. 히히, 하하, 호호, 웃음소리가 끊이질 않는다. 이건희, 이재용이 아무리 부자라고 해도 우리만큼 행복하지는 않을 것이다. 아마도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부자는 딸 부자가 아닐까? 우리 부모님이 우리에게 아무 재산도 남겨주지 못했지만, 딸을 많이 낳아준 것이 가장 큰 유산이지 싶다.

  사실 친정엄마는 여섯 번째 딸은 낳을 계획이 없었다. 큰집의 하나밖에 없는 아들이 군대에 가서 죽는 걸 보고 걱정이 되어 아들 하나 더 낳을 욕심에 임신을 하게 되었다. 낳는 날 아침에 앞집 할머니가 우리 집으로 들어오며

연숙 엄마, 딸이야. .

내가 새벽에 꿈을 꿨는데 이 집 마당에 큰 다라이가 있고 그 안에 물이 가득한데 오리 여섯 마리가 놀고 있더라.”

그 날 엄마는 할머니의 예언대로 여섯 째 딸을 낳았다. 그 후 엄마는

내가 아들 둘 되는 생각만 하고 어째 딸 여섯 될 생각을 못 했을까?” 하며 한탄을 했다.

실수로 낳았던, 의도대로 낳았던 우리는 딸 많은 게 너무 좋다. 딸 부잣집에 태어난 것이 나의 가장 큰 복이 아닐까 싶다.

 

1코스 시작점 서울 창포원
2코스 용마 아차산
3코스 고덕 일자산
4코스 대모 우면산
5코스 관악산

 

6코스 안양천
7코스 봉산 앵봉산
8코스 북한산

 

'나의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2021. 9. 12. 강아지 수준  (0) 2021.09.20
2021. 9. 11. 그래 이맛이야  (0) 2021.09.20
2021.8. 29. 있을 때 잘 하라고?  (0) 2021.08.30
2021. 8. 25. 남편의 방역수칙  (0) 2021.08.25
2021. 8. 9. 매미와 면도기  (0) 2021.08.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