꿀맛 같은 친구
이현숙
미국 사는 친구가 100달러짜리 수표를 보냈다. 이걸 어떻게 쓸지 몰라 미국서 살다 온 아들에게 사진을 찍어 보내며 어떻게 쓰느냐고 물었다. 은행에 갖다 내면 미국 은행으로 연락해서 받아주는데 수수료가 30~40%나 떼고 서너 달이 걸린다는 것이다. 그렇게 하려고 생각하고 있는데 아들이 다시 카톡을 보냈다. 자기의 미국 계좌로 보내면 자기가 찾아주겠다는 것이다. 친구에게 zelle을 하느냐고 물어서 한다고 하면 이메일 주소를 보내고 하지 않는다고 하면 계좌번호를 보내라는 것이다.
친구에게 물어보니 자기는 zelle을 하지 않으니 아들 계좌로 송금하겠다고 한다. 얼마 전 내가 수필집을 냈다고 하니 두 권만 보내달라고 해서 보낸 적있다. 그냥 선물이라고 해도 굳이 우리 주소를 묻더니 이렇게 수표를 보낸 것이다.
이 친구는 중1 때 같은 반이 되어 지금까지 친하게 지내고 있다. 이 친구는 간호학과를 나와 간호사로 근무하다가 미국으로 이민을 갔다. 우리가 다닌 경기여중은 원체 똑똑하고 잘난 아이들이 많아 나는 기를 펴지 못하고 살았다.
영어 시간이 되면 특히 죽을 맛이었다. 입학 전에 이미 영어책을 끝까지 공부하고 온 아이들이 많아 알파벳만 겨우 외어서 간 나는 도저히 따라갈 수가 없었다. 선생님이 책을 읽으면 다들 잘 따라 읽는데 나는 어디를 읽는지도 몰라서 아이들이 책장을 넘기면 따라 넘기곤 했다. 그 후 겨우겨우 발음 기호를 외어서 어리버리하게 읽곤 했다. 영어 시간이면 선생님이 날 보고 읽어보라고 할까 봐 심장이 두근두근 뛰었고 영어가 든 날은 아침에 등교할 때부터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처럼 발걸음이 무거웠다.
그런데 이 친구도 학교에 적응하기가 힘들었나 보다. 초등학교까지는 자신이 공부 잘하는 축에 들었는데 중학교에 와서 그렇지 못하니 기가 죽었다고 한다. 이런 공통점이 우리를 더 가까이하게 했는지도 모른다.
내가 책을 냈다고 하니 너무도 기뻐하며 자랑스러워했다. 나 같은 친구를 둬서 기쁘다는 것이다. 나도 이 친구를 만나서 학교생활이 수월했던 것같다. 친구는 다시 은행에 가서 아들 계좌로 송금을 했는데 수신자도 15% 수수료를 뗀다고 해서 115달러를 보냈다는 것이다. 서울 친구들 만나면 함께 식사하며 축하 파티를 하라고 한다. 친구의 이런 마음이 너무도 고마워 곧 친구를 만나려 했더니 코로나19 예방 접종 2차까지 맞고 조금 서늘해지면 만나자고 한다. 아들이 내 통장으로 보낸 11만 5천원은 고이 묻어두었다가 서울 친구 만날 때 귀하게 써야겠다.
사람의 인연이란 참 묘해서 언제 어디서 누구를 만날지 전혀 예측할 수가 없다. 같은 시대에 같은 나라에 태어나 같은 중학교에 온 것도 그렇고, 같은 반이 된 것도 우연이 아닌 필연인지도 모른다. 인생을 살아오면서 무수히 많은 사람을 만나고 헤어지지만 어떤 사람은 나에게 해를 끼치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나에게 귀한 존재가 되기도 한다. 이 친구는 내게 한 마디로 꿀맛 같은 친구다. 언제나 달달하고, 나의 피로를 풀어주고, 힘이 불끈불끈 솟게 해주는 친구다. 앞으로 살아가면서 또 어떤 인연을 만날지 모르지만 이렇게 꿀맛 같은 친구는 다시 만나지 못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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