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2021. 7. 19. 눈 뜬 장님

아~ 네모네! 2021. 7. 22. 16:49

눈 뜬 장님

이현숙

 

  거미 한 마리가 나무에서 거미줄을 타고 내려온다. 땅에 닿자 부지런히 걸어간다. 순간 개미 한 마리가 다가와 순식간에 덮친다. 거미는 아야 소리 한 번 못 치고 순식간에 황천길로 간다. 개미는 제 몸보다 큰 거미를 질질 끌며 집으로 향한다.

  동생과 불암산에 갔다. 당고개역에서 만나 철쭉동산에서 덕릉고개를 지나 정상에 올랐다. 무더위 때문인지 코로나 거리두기 4단계라서 그런지 정상에도 별로 사람이 없다. 느긋하게 태극기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 간식도 먹고 하산을 했다. 상계동쪽으로 내려오다가 불암산 둘레길을 만나 당고개 방향으로 걸었다. 백사마을 위 의자에 앉아 빵을 먹다가 바라본 풍경이다.

  거미는 나무에서 내려올 때까지만 해도 자신의 인생? 아니 거미생이 거기서 끝날 줄은 상상도 못했을 것이다. 문득 고3 때 같은 반 친구 생각이 떠오른다.

  이 친구는 교수로 정년퇴직을 한 후 친구들 모임에 왔다가 갑자기 쓰러져서 응급실로 실려 갔다. 뇌출혈이다. 몇 주일씩 의식불명으로 지내다가 요즘 겨우 정신을 차렸다. 친구들 카톡방에는 이 친구를 응원하는 글이 수시로 올라온다. 힘 내라, 작은 거인 일어서라, 등등 많은 친구들의 글이 올라왔다. 친구는 이 글을 볼 수 없겠지만 남편이 보고 일일이 댓글을 달아준다. ‘오늘은 눈을 떴다. 오늘은 손가락을 움직였다. 머리가 길어져서 요양사 아주머니가 머리를 잘라주었다.’ 고 하며 머리 자른 사진도 올린다. 한 단계씩 살아날 때마다 그 기쁨을 표현한 글이 구구절절 가슴을 아리게 한다. 코에도 줄을 끼고, 목에도 줄을 끼고, 눈만 겨우 뜬 사진을 보니 가슴이 먹먹해진다. 벌써 몇 달 째 부인 곁에서 간호하고 기도하며 애를 태우는 모습이 눈에 선하다.

  지성이면 감천이라더니 남편의 지극정성이 하늘을 움직인 모양이다. 말 한 마디도 못하던 친구가 드디어 말을 했다고 동영상도 올라왔다. “아 에 이 오 우하고 또렷하게 발음하는 걸 보니 나도 감격하여 눈물이 날 지경이다. 남편의 기뻐하는 얼굴 모습이 떠오른다.

  평소에 우리가 맘대로 돌아다니며 맛난 음식 먹고, 수다 떨고 하는 게 얼마나 기막힌 일인지 절감한다. 이 친구는 얼마나 더 견디어야 친구들과 만나서 얘기도 하고 커피도 마시며 일상생활의 기적을 맛볼 수 있을까? 우리가 오늘 살아있는 것이 기적이라더니 그게 사실인 것 같다. 이 친구가 완전히 회복되어 함께 산에도 오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이 친구는 모임에 나올 때 오늘 집에 못 갈 줄 상상이나 했을까? 응급실에서 중환자실로 옮겨 몇 달째 고생하는 친구를 생각할 때마다 가슴이 아프다.

  우리는 눈 뜬 장님이다. 거미나 나나 마찬가지다. 눈을 뻔히 뜨고서도 한 치 앞을 못 본다. 1, 아니 1초 앞도 볼 수 없다. 어쩌면 여기가 지옥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어쩌면 우리는 에덴동산에서 이리로 쫓겨난 게 아닐까? 우리가 이 몸에서 나가는 순간 다시 에덴동산으로 돌아가 처음 창조되었을 때처럼 영생할 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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