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2021. 10. 2. 타칭 할머니

아~ 네모네! 2021. 10. 3. 16:27

타칭 할머니

이현숙

 

할머니, 베틀 바위까지 가세요?”

.”

정말 대단하시네요.”

  동해시에 있는 두타산에 갔다. 두타산에는 지난 610, 40년 만에 개방된 마천루 코스가 있다. 오늘은 화요트레킹에서 마천루까지 다녀오기로 했다. 작년에는 베틀 바위까지만 개방되어 더 이상 갈 수가 없었다.

베틀 바위까지만 다녀오려면 약 3km 정도만 걸으면 된다. 마천루까지 간다고 말하려다가 입을 다물었다. 내가 뭐 이 사람에게 자랑할 일이 있나 하는 생각도 들고 어쩐지 멋쩍기도 했다.

  그 순간 내가 왜 할머니지? 하는 생각이 든다. 어린아이들이 할머니라고 할 때는 아무 느낌이 없는데 60은 되어 보이는 아저씨가 할머니라고 하니 어쩐지 어색하다. 혼잣말로 내가 왜 니 할머니냐 이놈아.’ 하고 반문한다. 이날 마천루까지 갔다가 무릉계곡을 거쳐 주차장까지 오니 10km가 넘게 걸었다.

  내가 잘하는 것은 무엇일까? 음주·가무 아무것도 잘하는 것이 없다. 내가 내 나이 또래 사람들보다 1% 정도 잘하는 것이 있다면 걷기 운동이다. 말도 잘 못 하고, 요리도 잘 못 하고, 필체도 엉망진창이다. 남보다 약간 잘하는 것이 있다면 태어나면서부터 배운 걷기뿐이다.

  그런데 이것도 거의 끝나가는 중이다. 퇴행성 관절염에 골다공증이 심해 온몸이 다 삭았다. 왼쪽 발에는 신경종이 생겨 오래 걸으면 셋째 발가락과 넷째 발가락 사이가 아프고 저리다.

  올해 초부터 어깨가 아파 집에서 찜질하며 버티다가 점점 심해져서 정형외과에 갔다. 의사는 X-레이를 찍어보더니 뼈에는 이상이 없다고 한다. 프롤로 주사를 6, 연골 주사를 3번 맞으며 물리치료를 하라고 한다. 주사는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는지 한 번 맞을 때마다 6만 원씩 받는다. 어쩔 수 없이 하라는 대로 다 하며 3개월이나 치료를 받았는데도 차도가 없다. 같이 산에 다니는 지인이 병원을 바꿔보라고 해서 이번에는 통증의학과로 갔다.

  여기서는 어깨에 주사를 다섯 대나 놓더니 약이 잘 흡수되게 하려고 링거를 꽂는다. 이 주사는 뭔지 모르겠는데 7만 원씩이다. 갈수록 태산이다. 또 어깨에 침을 꽂은 후 전기를 통하며 자극을 준다. 주사도 엄청 아프고 침도 아프다. 그래도 참고 3주 정도 다녔더니 조금 부드러워진다. 오십견이라고 운동을 해야 한다고 하며 운동하는 그림이 그려진 종이를 준다. 정형외과에서는 운동하지 말라고 하더니 주사도 다르고 처방도 다르다.

  치료가 너무 힘들었나 이명이 생겼다. 몇 년 전 이명 때문에 1년 동안 고생한 생각이 난다. 귀에서 소리도 들리고 음식을 씹으려면 와그작와그작 크게 울려 음식 먹기도 겁난다. 할 수 없이 요새는 연고만 바르고 열심히 어깨운동을 한다.

  왼쪽 어깨가 아파서 몇 달 동안 오른쪽 손으로만 스틱을 짚고 다녔더니 오른쪽 엄지손가락이 아프다. 젓가락질하기도 힘들고, 과일 깎기도 힘들다. 옷 벗기도 힘들고 배낭 메기도 어렵다. 칫솔질할 때도 엄지손가락이 아프다.

  거기다 간에 있는 큰 혹 때문에 무거운 배낭을 지고 걸으면 오른쪽 옆구리가 쑤시고 아프다. 온몸이 성한 데가 없다. 그저 바람만 불어도 부서질 지경이다. 이쪽을 막으면 저쪽이 터지고 저쪽을 막으면 이쪽이 터진다. 몸과 마음이 약해지니 걷기도 얼마나 더 할 수 있을지 한 치 앞을 알 수 없다.

  이런 지경이면서도 할머니 소리는 듣기 싫으니 참 어리석기 짝이 없다. 외손자가 벌써 고3이니 누가 봐도 할머니가 맞다. 외모로 보나 내모로 보나 할머니가 분명한데 나 혼자 아직 할머니가 아니라고 우긴다. 지금까지는 타칭 할머니로 살았는데 앞으로는 자칭 타칭 할머니로 살아야 할 모양이다. 현실에 순순히 항복하면서 두손 두발 다 들고 살아야겠다. 에고~ 내 팔자야~’

 

  우리는 왜 할머니 소리를 듣기 싫어할까? 늙는다는 것은 어찌 보면 지극히 아름다운 일인데 말이다. 할머니라는 단어는 얼마나 따뜻하고 정겨운 말인가? 할머니 되기는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다. 내가 건강하고 남편이 건강해야 아이를 낳고 내 아이와 그 배우자가 건강해야 또 할머니가 될 수 있다. 어찌 보면 할머니가 되었다는 것은 크나큰 행복이다. 이토록 큰 복을 받고도 감사할 줄 모르니 참 인간의 속이란 알다가도 모르겠다. 한 마디로 주제 파악을 못 한다. 이제부터라도 주제 파악 똑바로 하고 할머니 소리를 들을 때마다 감사합니다.’를 외치며 살아야겠다.

베틀바위 전망대에서
마천루에서
마천루에서 회원들과 함께
용추폭포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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