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2021. 10. 16. 내가 영매라고?

아~ 네모네! 2021. 10. 17. 17:03

내가 영매라고?

이현숙

 

  경기여고 개교 113주년 동창의 날 행사가 100주년 기념관에서 열렸다. 동창회에 참석한 적도 없고 학교가 개포동으로 이사한 후 강당에도 간 적이 없는데 올해는 영매상을 준다고 하여 어리버리 찾아갔다.

  영매상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박사학위를 받은 경우, 교직에서 30년 근속한 경우, 세 자매가 경기여고를 졸업한 경우 등 여러 가지가 있는데 그 중에 문화향상 부문이 있다.

  올봄에 수필집을 하나 냈다. 책 제목은 아 네모네의 횡설수설이다. 아 네모네는 면목중학교 근무할 때 제자들이 붙여준 별명이다. 내 얼굴이 네모라서 아네모네가 아닌 ~ 네모네!’.

  명예퇴직한 후 문화센터 수필 교실에 다니면서 횡설수설 끼적여 둔 글들을 모아 퍼플에서 제공하는 무료 출판에 보냈더니 그럴듯한 책을 만들어주었다. 내가 생각해도 신통방통하여 고교 시절 우리 반 카톡방에 올리고 자랑질을 했다. 살 사람은 교보문고 홈페이지에 들어가 사보라고 광고도 했더니 우리 동기 회장이 보고 영매상에 추천해주었다. 지금까지 책을 냈을 때 이런 상을 주는지도 몰랐고 누가 봐도 횡설수설 혼자서 지껄여 본 글이라 어디 내놓기도 부끄러운데 회장은 한 번 경운회 사무실에 신청서를 내보자고 하여 설마 이런 걸로 상을 주지는 않겠지 하며 그냥 내 보았다. 그런데 10월 초 경운회에서 연락이 왔다. 최종 심사 결과 시상이 확정되었으니 16일날 경기여고 100주년 기념관 강당으로 오라는 것이다.

  누가 알면 이런 걸로 무슨 상을 주느냐고 할 것 같기도 하고, 내가 보기에도 도저히 상을 받을 만한 글이 아니라 조용히 가서 받아오려고 했는데 동창 세 명이 만나기로 한 날짜와 겹쳐버렸다. 할 수 없이 실토를 하고 모임을 한 주 앞당기기로 했다. 친구들은 축하한다고 하며 흔쾌히 약속 날짜를 바꿔주었다.

  그날 한 친구는 이스라엘 사해에서 사 온 십자가와 노란색 손수건, 빨간 파우치 가방을 주었다. 말은 안 했지만, 축하 선물로 준 듯하다.

  십자가를 집에 가져와 예수상 그림 앞에 두었다. 남편이 매일 아침 여기서 잠깐씩 기도를 하는데 이걸 손에 잡고 하라고 했더니 열심히 들고 기도를 한다.

  개교 113주년 기념 동창의 날에 학교로 갔다. 이날 30년 근속한 강순옥 친구도 영매상을 받기로 되었다. 회장은 우리 둘을 위해 꽃다발을 준비해 왔다. 회장과 함께 문 앞에서 등록을 하고 강당으로 들어갔다. 꽃을 달고 내 이름이 적혀있는 의자에 앉으려니 어색하기도 하고 송구스럽기도 하다.

  이런 책으로 상을 받는다는 것이 영매상의 격을 떨어뜨리는 것 같아 부끄럽기도 하고  그저 투명 인간이 되고 싶다. 그래도 준다는 상을 거절하는 것도 예의가 아닌 것 같아 가기는 갔다. 강순옥과 같은 반 반장 노영해도 함께 했다.

  처음에 경운회에서 온 메시지에는 코로나19로 인원 제한이 있으니 수상자 본인만 오라고 해서 잘 됐다 생각했다. 남편에게도 혼자 오라니 갈 필요 없다고 선언했다. 남편도 이런 의식적 행사에 가는 걸 엄청나게 부담스러워한다. 내가 혼자 간다니까 얼굴에 안도의 기색이 역력하다.

  그 후 경운회에서 또 연락이 왔다. 다시 회의한 결과 수상자 외에 한 명 더 와도 된다는 것이다. 나는 이런 메시지가 왔다고 남편에게 말하지 않았다. 그냥 혼자 가려고 했더니 최기영 회장이 시상식에 누구와 같이 가느냐고 한다. 혼자 갈 거라고 했더니 자기가 가도 되느냐고 한다. 나야 조금 미안하기는 했지만 괜찮다고 했다. 회장과 5반 반장 노영해 덕분에 꽃다발 들고 사진도 찍고 그럴듯한 시상식을 했다.

  시상식을 마치고 사진을 찍고 있는데 63회 신세미 후배가 축하 인사를 한다. 지난번 경운 회보를 만들어 보내준 후배다. 여기에 나의 글과 사진을 실어주며 메시지만 주고받았는데 그걸 기억하고 나에게 인사를 한다. 자기가 시상식 장면을 찍었다고 사진도 카톡으로 보내주었다.

  강당을 나와 식사를 하러 갔다. 시상식에 와 준 친구들이 고마워 점심은 내가 사려고 했는데 어느결에 노영해 친구가 계산을 했다. 노영해 친구는 네 자매가 모두 경기를 졸업하여 친정엄마가 상을 받았다고 한다. 회장은 박사학위 받았을 때 영매상을 받았다고 한다. 친구들은 일찌감치 상을 받았는데 나는 73살이나 되어 이제 받았다.

  시상식 장면을 동영상으로 만들어 유튜브에 올린 후 회장에게 보냈더니 이걸 우리 동기 전체 카톡방에 올려도 되느냐고 한다. 엉성한 영상을 올리려니 쪽 팔리는 것 같기도 하고 다른 친구들에게 자랑질하는 것 같아 망설이다가 공유해도 좋다고 하니 즉시 올렸다.

  다음 날 호주 사는 친구 요심이의 카카오 스토리에 들어가 보니 여기에 이 영상이 올라와 있다. 사진을 보내달라고 하며 주위 사람들에게 자랑할 거라고 하더니 빨리도 올렸다. 요심이 딸도 경기여고를 나왔는데 딸이 대 선배님 수상 축하한다는 메시지도 보냈다.

  영매가 무엇일까 한자를 보니 꽃부리 에 매화 자 다. 우리 학교 교화가 매화라서 상의 이름을 이렇게 붙였나 보다. 집에 와서 상패를 열어보니 매화꽃 무늬에 영매상이라고 쓴 예쁜 메달이 나온다.

  좀 겸연쩍기는 해도 다 늙어서 상이라는 걸 받아보니 좋기는 좋다. 내 삶에 작은 활력소가 될 듯하다. 앞으로 얼마나 더 살지 모르지만 늙었다고 주저앉아 있지만 말고 죽는 날까지 무언가 꾸준히 해 봐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경래가 준 십자가
경래가 준 파우치
우리 집 벽에 걸린 예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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