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2021. 5. 1. 환장하네

아~ 네모네! 2021. 5. 2. 16:00

환장하네

이현숙

 

  오늘도 남편은 일어나자마자 베란다 창문을 열고 아래층 베란다 밖에 있는 철 난간을 내려다본다. 3월부터 두 달 가까이 이어지는 일이다. 3월 어느 날 아래층 아저씨가 우리 집으로 올라왔다. 베란다 밖에 있는 철 난간에 물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우리 베란다로 가서 보더니 물을 많이 쓰느냐고 한다. 우리는 몇 년 째 베란다에서 물을 쓴 적이 없다고 하니 겨울에 수도관이 얼어 관에 금이 가서 새는 게 아니냐고 한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럴 것 같지는 않다고 하니 같이 내려가 보자고 하여 남편이 내려갔다. 보고 온 남편에게 물으니 물방울이 가끔씩 떨어지는데 이유를 알 수가 없다고 한다.

  남편은 며느리에게 누수 잘 고치는 사람좀 알아보라고 한다. 사돈이 잘 아는 사람이 있다고 하여 그 사람을 불렀다. 그 분은 와 보더니 배관에서 새는 것 같지는 않고 빗물이 새어 들어갔다가 떨어지는 것 같다고 한다. 아래층 사람은 이걸 믿을 수 없다고 다른 업자를 불렀다. 이 사람도 배관은 아닌 것 같으나 혹시 모르니 온수를 잠그고 쓰지 말아보라고 한다.

갑자기 더운 물을 못 쓰니 냉수로 밥 해먹고 씻으려니 이게 장난이 아니다. 쌀을 씻으려니 손가락이 빠져 나가는 것 같다. 찜통에 물을 데워 세수를 하려니 제대로 씻을 수가 없다. 다음 날 아래층 아저씨에게 물어보니 변화가 없다는 것이다.

  아래층 사람은 계속 우리 수도에서 새는 것 같다고 주장하며 집을 며칠 비울 수 없느냐고 한다. 우리가 갈 곳이 없다고 하자 물을 잠그고 쓰지 말아 보라고 한다. 할 수 없이 밖의 계량기를 잠그고 대야에 받아놓은 물로 화장실에서 썼다. 대야라야 세 개 밖에 없으니 마구 부을 수도 없다. 하수구 뚜껑을 열고 바닥에서 소변을 본 후 대야의 물을 조금 부어 내려 보냈다. 도대체 이게 무슨 짓인지 환장할 지경이다. 이렇게 밤새 물을 안 써도 변화가 없다.

  남편은 오늘도 일어나자마자 또 베란다 창문을 열고 목을 있는 대로 빼고 아래층 베란다 밖을 쳐다본다. 손은 사타구니에 넣고 몇 분씩 쳐다보며 방울 수를 세고 있다. 손으로 난간을 잡고 보면 좋을 것 같은데 왜 사타구니에 손을 넣고 보는지 모르겠다. 거시기 떨어질까 봐 그러나? 하루에도 몇 번씩 이 짓을 하니 이게 어디 사람이 할 일이냐 말이다. 열심히 관찰을 한 후 관찰일기까지 쓴다. 몇 분에 한 방울 떨어졌는지 세고 비가 온 날도 표시한다. 옥상의 물탱크 청소한 날도 기록하고 변화가 있나 조사한다.

  하루는 난간에 가슴을 대고 쳐다보더니 가슴에 붉은 반점이 생겼다고 한다. 내가 보니 두드러기처럼 얼룩이 졌다. 다음 날은 붉은 점이 더 늘어나고 수포까지 생겼다. 아무래도 대상포진인 것 같아 병원에 가보라고 했다. 갔다 오더니 대상포진이 맞는다고 약을 지어왔다. 어쩐지 며칠 전부터 갑자기 머리가 아프다고 하는 게 수상했다. 붉은 반점은 등 쪽에도 생기고 목에도 생겼다. 피부가 쓰리다고 밤에 잠도 잘 못 잔다.

  약을 2주간 먹고 연고를 바르더니 이제 조금 나아졌다. 남편도 나도 너무 신경이 쓰여 이사 가고 싶은 심정이다. 하지만 양도세 낼 돈이 없어 이사도 못 가겠다. 도대체 이게 언제까지 이어질지 난감하다. 업자들도 뾰족한 수가 없는지 잘 오려고 하지 않는다.

  살다보면 몸뚱이도 집도 망가지기 마련이고 고쳐가며 살아야하는데 그게 보통 괴로운 일이 아니다. 하늘나라에서 초대장이 올 때까지 이어질 것 같다. 그래도 최후의 피난처가 있다는 것이 참 다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