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2021. 4. 30. 잉꼬가 다 죽었나?

아~ 네모네! 2021. 5. 1. 14:02

잉꼬가 다 죽었나?

이현숙

 

  거의 매일 용마산 자락길을 걷는다. 매일 걷는 사람들이 많아 얼굴을 아는 사람을 자주 만난다.

막걸리 할머니가 있다. 80이 넘은 할머니인데 까만 비닐봉지에 먹을 것을 싸가지고 나온다. 거의 하루 종일 걷고 운동기구로 운동하다가 오후가 돼야 집에 간다. 우리를 보면 반색을 하며 가지고 있는 사탕이나 초콜릿을 준다. 언젠가 운동기구 옆 의자에 앉아서 큰 소리로 노래를 부른다. 가만히 보니 옆에 막걸리 병이 놓여있다. 한 잔 마시고 약간 취기가 돌았는지 아주 신이 났다. 이 할머니는 매일 집에서도 막걸리를 마신다고 한다. 그 후로 우린 이 할머니를 막걸리 할머니로 명명하였다.

  대동강 할아버지가 있다. 이 할아버지는 큰 소리로 노래를 부른다. 곡목은 항상 한 많은 대동강,이다.

한 많은 대동강아~. 변함없이 잘 있느으으냐. 모란봉아 을밀대야~~” 하면서 구성지게 불러댄다. 아마 이북에서 월남하신 분이 아닐까 싶다. 요즘은 이 할아버지가 잘 보이지 않는다. 연세 드신 분이 보이지 않으면 어디가 편찮으신가? 혹시 돌아가셨나? 하며 은근히 걱정이 된다.

  아롱이 아빠도 있다. 강아지를 데리고 운동기구 옆에서 운동을 하는데 강아지 이름이 아롱이다. 강아지 털이 검은 색과 흰색으로 아롱지게 생겼다. 자주 보니까 아롱이가 우리를 보면 반갑게 달려온다. 먼저 키우던 개가 의사의 실수로 죽었다고 지금도 분개하고 있다.

  다음은 어눌이 아주머니다. 말 하는 것이 어눌해서 어눌이 아주머니라고 부른다. 이 분도 매일 오전 오후 두 번씩 데크길을 걷는다. 언젠가 운동기구에서 운동하는데 남편도 같이 와서 의자에 앉아있다. 아주머니가 뇌출혈로 쓰러져서 고생했는데 많이 회복되었다고 한다. 남편은 요양사 자격증을 획득해서 부인을 돌보는데 한 달에 50만 원 이상 받는다고 자랑한다. 이 아주머니는 참 남편 복도 많다.

  양배추 아줌마도 있다. 젊은 아줌마인데 양배추 즙을 두 개 가져와서 우리에게 주며 말문을 텄다. 교회에 다니는지 가끔 전화 할 때면 권사님을 찾는다. 의사가 체중을 줄이라고 했다며 열심히 운동한다. 우리가 의자에 앉아서 쉬고 있으면 일부러 다가와서 인사를 한다. 그렇게 까지 하지 않아도 되는데 괜히 황송하다.

  다음은 우리 아파트 같은 라인 6층에 사는 부부다. 이 부부는 우리와 나이가 비슷하다. 남편은 우리 부부를 우리 라인에서 제일 행복한 부부라고 말한다. 내 남편을 항상 교장선생님이라고 부른다. 한 번은 나에게 교감 선생님이라고 해서 내가 교감해본 적이 없고 평생 평교사만 하다가 명퇴했다고 실토했다. 남편을 보면 교장 선생님이 우리 아파트에서 제일 잘 생겼다고 젊어서 바바리코트 입고 나가면 여자들이 줄줄 따라다녔을 거라고 추켜세운다. 빈 말이겠지만 별로 기분 나쁘지 않다. 나에게는 차마 예쁘게 생겼다고 말 할 수는 없으니 패션이 화려하다고 한다. 사실 내가 봐도 쭈그렁바가지에 검버섯 투성이니 그 말 밖에 할 수가 없을 꺼다. 갈 때가 다 돼서 그런지 성질이 더러워서 그런지 내 얼굴에는 저승꽃이 잔뜩 피었다.

  나를 볼 때마다 언니라고 부르는 여자도 있다. 이 여자는 우리를 볼 때마다 잉꼬부부라고 한다. 이렇게 아저씨하고 같이 다니니 얼마나 좋으냐고 한다. 같이 가는 일행에게도 부부 금슬이 엄청 좋은 잉꼬부부라고 소개한다. 이 말을 들을 때면 나도 모르게 피식 웃음이 나온다. 세상에 잉꼬가 다 죽었나 하는 생각이 든다. 허구 헌 날 서로 잡아먹지 못해 틱틱거리며 사는데 남들 눈에는 잉꼬로 보이나보다. 이래서 빛 좋은 개살구라는 말이 생겼나? 남들 보기에는 그럴 듯하게 보이지만 실상을 보면 엉망진창인데 말이다.

  세상에는 빛만 좋고 맛은 엉망인 개살구도 있고 모양은 엉망이지만 맛은 일품인 모과도 있다. 겉은 번지르르하지만 속은 텅 빈 사람도 있고, 겉은 허름하지만 알짜배기 부자도 있다. 이래서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는 옛말도 있나보다. 모름지기 인간은 같이 살아봐야 진면목을 알 수 있다. 우리 부부가 잉꼬 소리 들을 줄은 상상도 못 했다. 하긴 세상에 잉꼬가 다 죽으면 우리 부부가 잉꼬 될 수도 있겠다. 그런데 잉꼬는 정말 부부 사이가 좋은 걸까? 남 앞에서 주둥이만 비비는 건 아닐까? 같이 살아보지 않았으니 알 수 없는 일이다. 우리 부부도 더 살다보면 명실 공히 잉꼬부부가 될 수 있으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