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2021. 4. 16. 더 납작해진 내 코

아~ 네모네! 2021. 4. 18. 17:58

더 납작해진 내 코

 

이현숙

 

  “너희 언니는 왜 그렇게 공부를 안 하니?”

제부가 내 동생에게 한 말이다. 나도 모르게 찔끔한다. 제부는 온라인 강의를 잘 듣는다. 서울 공대를 나와 평생 컴퓨터 회사에서 일해서 그런지 컴퓨터 박사다. 얼마 전 무료출판에 관한 강의를 듣고 재작년 알프스 트레킹 갔을 때 쓴 글과 사진으로 책을 만들었다. 내가 봐도 그럴 듯하다. 나에게도 무료출판에 관한 온라인 강의를 들으라고 권했는데 컴퓨터에 자신이 없어 엄두를 못 내고 있었다.

  얼마 후 동생이 책 한 권을 주며 제부가 이 책을 보고 한 번 만들어 보라고 했단다.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르고 주제 파악도 못한 채 책을 보며 도전을 해봤다.

  첫 번부터 난관에 부딪친다. 무료 서체 내려 받기를 하라는데 책에서 보여준 화면이 나타나질 않는다. 화면을 찍어 제부에게 카톡으로 보내며 이런 화면이 안 보인다고 하니 안 보여도 서체가 다운되기만 하면 되니 그냥 하란다.

  판형 정하기를 하라는데 도무지 무엇으로 해야 할지 모르겠다. 또 카톡을 보낸다. 제부가 만든 책은 판형이 뭐나고 물으니 신국판이란다. 나도 신국판을 선택한 후 그 동안 모아놓은 글을 모두 합쳐 만들기 시작했다. 아무 생각 없이 옛날에 써 둔 순서대로 그냥 갖다 붙였다. 글꼴과 단락도 나누고 페이지 나누기도 했다. 제부가 설명해줘도 모를 때는 주말에 아들이 오기를 기다렸다. 아들이 와서 가르쳐주면 그대로 하다가 또 막히면 다시 일 주일을 기다려 아들에게 다시 물어봤다. 아들도 모르면 이건 자기도 모르니 이모부에게 물어보란다.

  겨우 겨우 본문을 만들고 전체 표지를 만들려니 이게 또 장난이 아니다. 파워포인트 해본 것이 몇 십 년 전인지 기억도 안나니 아들에게 물어물어 대충 완성해서 제부에게 보내니 지적 사항이 많다. 그림의 위치가 정확하지 않는다, 약력의 글씨가 너무 크다, 퍼플로고가 밑에서 1cm에 와야 하는데 그게 틀렸다 등등 세밀하게 알려준다.

다음 주 아들에게 로고 위치를 어떻게 잡느냐고 물어보니 보기에 들어가서 눈금자와 눈금 선을 체크하란다. 그렇게 하니 눈금선이 보여 위치를 잡을 수 있었다. 자동 목차 넣기와 판권 만들기도 몰라서 그냥 제부에게 보냈더니 본인이 직접 만들어서 다시 메일로 보내준다.

  우여곡절 끝에 엉성하게 만들어 교보문고 퍼플에 올렸더니 11800원이라고 값이 매겨진다. 판매 신청을 하고 기다리려니 은근히 걱정된다. 아무래도 딱지 맞을 것 같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내가 남들보다 약간 똑똑한 축에 들지 않나 착각하고 살았다. 그런데 이번에 책을 만들면서 나의 진면목을 알게 되었다. 어리버리 엉망진창 완전 컴맹이다. 그렇지 않아도 납작한 내 코가 더 납작해졌다. 강펀치로 콧잔등을 얻어맞은 것 같다. 주제 파악 못하고 달려들었다가 아주 돌아가실 뻔 했다.

  내가 교사로 일할 때는 공부 잘 하지 못하는 학생들을 이해하지 못했다. 나는 설명을 아주 잘 한 것 같은데 엉뚱한 소리를 할 때면 한 대 쥐어박고 싶었다. 특히 실험할 때 주의 사항을 몇 번씩 말했는데도 위험한 행동을 할 때는 화를 버럭 냈다. 그런데 내가 당해보니 그 심정 알겠다. 사람은 모름지기 그 입장이 되어봐야 남을 이해할 수 있다.

  책 한 권 만들어보지 않고 남의 책을 이러쿵저러쿵 비판하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소리다. 한 마디로 언어도단이다. 내 책을 받아보니 그동안 받았던 미래수필 동인지나 리더스에세이 책이 얼마나 예쁘고, 고급지고, 정성이 많이 들어간 책인지 절실하게 느껴진다. 우리 눈은 어찌하여 99.9%의 잘 한 점은 안 보이고 0.1%의 잘못한 점만 보이는 것일까? 이제 앞으로는 어떤 책이든지 그저 감탄하며 감사하게 받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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