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2021. 2. 19. 택씨

아~ 네모네! 2021. 2. 22. 16:14

택씨

이현숙

 

  한 문우가 카톡방에 기대수명 측정법이란 사이트를 올렸다. 이런 게 올라오면 유혹을 견디기 힘들다. 대충 이것저것 체크했더니 기대수명이 117세라고 하며 45년 남았다고 한다. 기가 막혀서 말이 안 나온다. 동생들 카톡방에도 올리고 고교친구 카톡방에도 올렸다. 다들 측정해보고 너도 나도 기대수명을 올린다.

  5번 동생은 93세가 나왔다고 “30년 동안 뭘하지?” 한다.

3번 동생은 98세가 나왔는데 너무 좋게 대답했나보다고 다시 해보고는 94세란다. 4번 동생은 100세가 넘게 나왔다고 그 긴긴 시간을 어찌 보낼까 걱정한다. 나도 100세가 넘게 나왔다고 실토를 했다. 117세라는 말은 차마 못하겠고 다시 심사숙고하면서 측정하니 99세가 나온다. 이것도 너무 많다.

  내가 그 밑에 이런 소리 아이들 카톡방에 올리면 택씨(택도 없다. 씨발년아) 소리 듣겠다고 했더니 3번이 쥐죽은 듯 지내야겠다고 한다. 동생들은 모두 오래 살고 싶지 않은가보다. 하긴 아직 죽음이 목전에 닥치지 않아서 이런 소리를 하는지도 모른다.

  술 먹기 전 건배사를 할 때 9988234라는 것이 있었다. 99세까지 팔팔하게 살다가 2, 3일 앓고 죽자는 것이다. 우스갯소리로 이런 소리를 하며 며느리 앞에서 이런 소리 하면 며느리가 속으로 택씨한다는 것이다. ‘택두 없다 씨발 놈아.’라고는 할 수 없으니 듣기 좋게 약어로 한단다.

  예나 지금이나 장수는 최고의 축복으로 여겼다. 그런데 평균 수명이 점점 늘어나면서 사람들의 생각이 많이 달라졌다. 장수가 축복이 아니라 건강하게 사는 게 축복이란 소리다. 하긴 침대에 누워 끙끙 앓으면서 오래 살면 얼마나 괴로울까 하는 생각도 든다. 생명 연장을 하며 살고 싶지 않아서 생명연장거부 신청서를 미리 건강보험공단에 내놓은 사람도 많다. 5번 동생도 신청해 놓았다고 한다. 나도 신청하러 간다간다 하면서 아직도 안 가고 있다. 오래 살고 싶은 마음이 밑바닥에 깔려 있는지도 모른다.

  사실 언제까지 살지 아무도 모른다. 그걸 알면 무수한 범죄가 일어날지 모른다. 모르는 게 약이란 이럴 때 쓰는 말인가 보다. 누구나 죽는 것은 100% 확실한 일인데 아직은 아니라고 믿고 산다. 죽음이 코앞에 닥치면 의사를 붙잡고 살려달라고 눈물 콧물 쏟으며 매달릴 지도 모르겠다. 내가 이 세상에서 사라진 후에도 세상이 여전히 아무 일 없다는 듯이 돌아가는 것은 받아들이기 힘들 것 같다. 죽음 앞에 초연한 사람이 과연 있을까?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