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2021. 2. 17. 바보들의 행복

아~ 네모네! 2021. 2. 17. 13:41

바보들의 행복

이현숙

 

  남편과 용마산 자락길을 걷는다. 어제 눈이 내린 후 오늘은 영하 10도가 넘으니 눈이 별로 녹지 않았다. 데크길 난간 여기저기 낙서가 보인다. 첫 번째로 보이는 것이 바보. 웃음이 픽 나온다. 자신이 바보라는 것인지 보는 사람이 바보라고 놀리는 것인지 모르겠다. 아무래도 좋다.

  왜 우리는 똑똑한 사람처럼 보이려고 애쓰는 것일까? 누구든지 바보라고 하면 화를 내기 마련이다. 사실 바보들이 똑똑한 사람보다 훨씬 행복한 삶을 사는 것 같다. 똑똑한 사람들은 자살하는 경우가 많지만 바보는 그런 경우가 거의 없다.

  중학교 때 가정시간에 인형을 만들었다. 완성시킨 후 인형의 이름을 달아서 제출하라고 했다. 나는 멍청이라고 써서 제출했다. 너무 똑똑한 아이들이 많아 잔뜩 주눅이 들어 살던 나는 멍청이가 그리웠나보다. 사실 너무 완벽한 사람은 상대방의 기를 죽인다. 약간의 엉성함과 멍청함이 상대방을 따뜻하고 편안하게 만든다.

  조금 더 올라가니 ‘CHUN WOO DUK LOVE’라는 글씨가 보인다. 천우덕이란 사람이 자신을 사랑한다는 것인지, 누군가가 천우덕이란 사람을 사랑하는 건지는 모르지만 계속 똑 같은 글씨가 보이는 걸 보면 마음속 절절이 누군가를 사랑하는 게 틀림없다.

  ‘느껴봐.’라고 쓴 사람은 무엇을 느껴보라는 것일까?

  강아지 발자국을 찍은 사람도 있다. 발자국이 옆으로 나란히 찍힌 걸 보면 산짐승의 발자국 같지는 않다. 강아지 주인이 이 발자국을 찍으며 느꼈을 행복이 전해온다.

  ‘떡녀라고 쓴 사람은 떡을 엄청 좋아하나보다. 보통 밥을 좋아하면 밥순이, 떡을 좋아하면 떡순이라고 하는데 이 여자는 떡녀가 더 맘에 들었나보다.

  그 밖에도 자자’ ‘사랑해등 등 많은 글이 보인다. 뭐니 뭐니 해도 모든 동물의 최대 관심사는 사랑이다. 사랑이 없으면 모든 동식물은 벌써 멸종되었을 것이다.

  사람이나 동물이나 자신의 흔적을 남기고 싶어 하는 본능이 있나보다. 동물들은 배설물을 통해 자신의 존재를 알린다. 자신이 엄연히 살아있고 이곳의 주인이라고 곳곳에 자신의 똥과 오줌을 묻힌다.

  인간도 자신의 배설물을 곳곳에 흘리며 사는 지도 모른다. 어떤 사람은 음악으로, 어떤 사람은 그림으로, 어떤 사람은 글로 자신의 존재를 알리려고 한다. 낙서를 하는 것도 일종의 배설행위인가 보다. 하얀 벽이나 종이를 보면 무언가 흔적을 남기고 싶어 한다. 어쩌면 내가 지금 글을 쓰는 것도 내 존재를 알리기 위한 배설 행위일 것이다. 혼자서 글도 쓰고 블로그에 올리며 볼 사람도 별로 없는데 공개발행을 하는 나는 어쩌면 또 한 명의 바보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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