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2021. 2. 14. 사오정이 될 수 밖에

아~ 네모네! 2021. 2. 14. 16:39

사오정이 될 수밖에

이현숙

 

  동생들과 서울둘레길을 걷는다. 두 동생은 걸음이 빠르니 저만치 앞서 간다. 동생들을 놓치지 않으려고 부지런히 발걸음을 옮긴다. 열심히 따라가도 부족한데 여기저기 한 눈을 판다. 개울에서 유유히 헤엄치는 오리도 보고 탄천에서 유유자적 노니는 철새도 보며 동영상까지 찍는다. 동생들은 내가 안 보이면 가끔씩 서서 기다린다. 내가 종종 엉뚱한 곳으로 빠지기 때문이다.

  동생들이 서로 바라보고 즐겁게 얘기하는 걸 보며 문득 내가 사오정이 되는 이유를 알겠다. 대화를 많이 해도 제대로 이해를 못해 엉뚱한 소리를 하기가 일수인데 이렇게 혼자 걷다보면 나도 모르게 말도 안 되는 소리를 지껄이게 된다.

사오정은 귀가 좀 어두웠다고 한다. 그래서 잘 알아듣지 못해 엉뚱한 소리를 잘 했다는 것이다. 늙으면 귀도 어두워지고 이해력도 떨어지니 대부분의 늙은이들은 어쩔 수 없이 사오정이 되고 만다. 자녀들과도 의사소통이 어려워지고 손자와는 더더욱 말이 안 통한다. 손자가 보는 만화영화를 보면 제대로 알아듣기도 힘들고 잘 들리지도 않는다. 아들의 통역이 필요하다.

  손자 이안이는 우리 집에 오면 내가 해주는 것도 안 먹고 우리 집 식기도 쓰지 않는다. 뭔가 깨끗하지 않다는 느낌이 드나보다. 컵도 일회용 컵으로 달라고 한다. 먹다가 무얼 흘리면 휴지를 주며 닦으라고 하는 게 싫어서인지 할머니는 저기 끝에 앉으라고 한다. 순간 나도 모르게 마음에 상처를 받는다. 뭐라고 하려다가 멈춘다. 나도 남들이 내 일에 간섭하는 거 엄청 싫어하는데 이런 성격은 나를 닮았나보다. 손자가 집으로 가며 아들에게 자기가 말을 잘 못 한 것 같다고 미안하다고 한단다. 다 알고 있는데 거기다 무슨 훈계를 하겠는가? 어쩌면 어린 나이에 코로나 사태를 만나 신경이 예민해졌을 지도 모른다. 이제 초등학교 3학년으로 올라가는데 나이가 들면 나아지겠지 하고 자위를 한다.

  영화 미나리에 나오는 할머니 윤여정이 생각난다. 미국 사는 딸네 집에 가서 같이 살게 된 윤여정은 손자들과 이런 저런 어려움을 겪는다. 미국에서 나고 자란 그들은 할머니를 잘 이해하지 못한다. 할머니가 이것저것 간섭하는 것이 싫어서 할머니를 피하고 급기야 할머니에게 고의로 자신의 오줌까지 먹인다. 아마 이들도 할머니와 함께 살지 않아서 할머니에게 정도 없고 할머니의 정서를 받아들이기 힘들었을 것이다.

  이안이가 나보다는 할아버지를 더 좋아하니 참 다행이다. 할아버지는 장난감 사라고 돈도 잘 주고 갈 때는 슈퍼까지 따라가서 아이스크림도 잘 사준다. 그렇지 않아도 불안증이 심한 남편이 손자마저 싫어한다면 엄청 상처 받았을 것이다. 그래도 학교생활은 반듯하게 하는지 2학년 담임 선생님이 며느리에게 보낸 카톡방 글을 보면 가정교육을 잘 받은 아이 같다고 칭찬한다. 천만다행이다.

손자의 선생님이 보낸 메새지

  하긴 부모자식간이라도 서로 자주 보고 많은 대화를 해야 정이 들기 마련이다. 아들네가 오면 밥도 안 해주고 항상 시켜 먹였더니 그 죗값을 받나보다. 아들이 손자와 어른들 먹을 것을 핸드폰에서 시키고 나는 식사비를 즉석에서 빠른 이체로 보내준다. 이번 설에는 직계가족도 5인 이상 집합금지라고 해서 세뱃돈도 아들에게 미리 송금했다. 그런데 설날 아들과 손자가 세배를 하러왔다. 며느리는 오지 못했다. 와서 세배를 했는데 세뱃돈은 이미 주었으니 줄 게 없다. 가다가 아이스크림 사먹으라고 그냥 돈을 조금 줬다. 아들은 손자의 세뱃돈을 손자 통장으로 이체했다고 한다. 이렇게 세뱃돈도 온라인상에서 왔다 갔다 하니 무슨 주고받는 맛이 나겠는가?

  모든 것은 인과응보라더니 내가 준대로 받고 있다. 내가 우리 아이들 어렸을 때부터 떼어놓고 싸돌아다녔더니 부모 자식 간에도 별로 정이 들지 못한 것 같다. 손자도 미국에서 태어나 지금까지 살았으니 나와 무슨 정이 들었겠느냐 말이다. 가끔 한국에 다니러 왔을 때도 외갓집에서 살았으니 외할머니와는 정이 든 듯하다. 내가 편하게 지낸 만큼 그 대가를 톡톡히 받고 있다.

  우리 마음속에는 일정량의 사랑과 미움이 존재하는 듯하다. 한쪽에 많은 사랑을 쏟아 부으면 다른 쪽에는 미움 밖에 줄 것이 없다. 지인 중에 남편 흉을 엄청 보고 욕을 하던 분이 있다. 그런데 몇 년 전 남편이 돌아가셨다. 나는 그 분이 날개를 단 듯 좋아할 줄 알았다. 그런데 허구한 날 눈물을 흘리며 남편을 그리워한다. 그렇게 좋은 사람인 줄 몰랐다는 것이다. 날개 꺾인 참새같이 풀이 폭 죽었다. 그 분은 남편 살아생전에 주지 못한 사랑과 정을 이제야 주는 듯하다.

  사실 사랑과 미움은 동전의 양 면 같아서 떼려야 뗄 수 없는 존재다. 내가 미움을 받았다면 어느 누군가는 사랑을 받을 것이다. 놀부가 있어야 흥부가 있고 팥쥐가 있어야 콩쥐가 있듯이 말이다. 잠깐 사는 세상 이도 저도 다 지나가리라. 사오정 노릇이라도 할 수 있는 지금이 좋은 시절인지도 모른다. 사오정 노릇 하는 것도 얼마 남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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