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2020. 8. 29. 며느리의 생일날

아~ 네모네! 2020. 8. 30. 13:13

며느리의 생일날

 

이현숙

 

  수필수업을 듣는데 동생들 카톡방에 글이 올라온다. 5번 동생이 포토원더에서 어떻게 글을 쓰느냐고 묻는다. 나는 요새 포토원더를 쓰지 않아서 앱을 깐 후 핸드폰에 있던 냉면 사진에 냉면이라고 써서 올린 후 Photo Edit로 들어가서 해보라고 하니 그런 게 없단다. 내일 만날 때 가르쳐 달라고 하여 그러마고 했다. 그런데 웬 냉면이 이렇게 썰렁하냐고 묻는다. 3번 동생도 어째 냉면에 삶은 계란도 없고 오이채도 없고 면발뿐이냐고 하기에 자초지중을 설명했다.

  어제가 며느리 생일인데 요기요로 무스쿠스에 음식을 시켜 먹으려고 했단다. 그런데 본인도 모르는 사이에 취소되어 갑자기 냉장고에 있던 냉면을 삶아 먹는다고 했다. 미국에서 입국한 지 일주일 밖에 안 된 아들네는 아직도 격리중이다. 자가 격리 중에 생일을 맞았으니 함께 음식도 못 먹고 아침에 축하한다는 이모티콘만 세 개 날렸다. 그야말로 그림의 떡이 아니고 그림의 케익이다. 이걸 본 딸이 자기가 시켜줄까 하고 물으니 아들이 점심은 먹었으니 빙수나 시켜달란다.

  얼마 후 팥빙수 사진이 올라왔다. 그림으로 보기에도 휘황찬란하게 생겼다. 손자는 신이 나서 양쪽 귀에다 붕어빵을 대고 입이 귀에 걸렸다. 아들도 한국 빙수 양이 어마어마하다고 좋아한다.

  아들네는 자기들도 이마트에 계정을 만들어 택배를 시키니까 이제 누나 신세 덜 져도 된다고 하더니 뭐가 제대로 안 되는 모양이다. 며느리 생일날 먹으려고 했는지 깻잎 순대도 시켰다고 나에게 배송정보가 수시로 날아온다. 아들네가 한국 전화번호가 없어서 내 번호를 썼나보다. 결재완료 시간부터 상품준비, 부천선도 집화처리, 간선하차, 간선상차, 배달출발, 배송완료, 상품을 문 앞에 두었으니 분실하지 않도록 바로 확인하라는 등등의 메시지가 계속 온다. 그 때마다 아들에게 중계방송을 해야 하니 그것도 보통 일이 아니다.

  빙수가게에서 온 배달원도 숙소를 못 찾겠다고 딸에게 연신 전화를 했나보다. 한 식구 2주간 먹여 살리는 것도 보통 일이 아니다. 생일날 겨우 냉면 쪼가리나 먹고 있어 내 마음이 짠 한데 남편도 그랬는지 생일날 면을 먹으면 명이 길다고 위로의 말을 카톡방에 올린다.

  얼마 전 며느리 생일 축하비를 조금 보내긴 했는데 그래도 마음 한구석이 허전하다. 저녁은 또 어떻게 때우고 있나 궁금하던 차에 며느리가 케익을 앞에 놓고 또 사진을 찍어 올렸다. 아들과 손자가 생일 축하노래 하는 것도 동영상으로 올렸다. 내가 케익이 엄청 크다고 하니 친정아버지가 사서 보내주셨단다. 이래저래 며느리 생일날 손자만 신이 났다.

 

  요즘 손자는 한국 학교생활에 적응하기 위해 한글과 구구단을 외운다고 공부하는 사진과 구구단 외우는 동영상도 올렸다. 이이 파알 시입육, 이이 구우 시파알 하고 더듬거리는데 한국 사람인 우리가 들어도 뭔 소린지 모르겠다. 완전히 영어를 하는 건지 한국말을 하는 건지 구별이 안 된다. 학교에 가면 반 아이들에게 놀림감이 될까봐 걱정이다. 미국에서 태어나 9년을 살았으니 미국 사람이 한국말 하는 것처럼 어리버리하다. 어서 빨리 자가 격리 끝내고 한국학교에 들어가 빠리빠리한 한국 아이들 닮아 갔으면 좋겠다.

 

  코로나가 무엇인데 온 세계 사람들에게 이렇게 족쇄를 채우고 감옥살이 생일잔치를 하게 하는지 참 그 위세가 어마어마하다. 눈에 보이지도 않는 미물이 만물의 영장인 인간을 이렇게 이리저리 휘둘러 댈지는 아무도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지금은 인간이 아니라 코로나 바이러스가 만물의 영장인 것 같다. 어서 빨리 치료약과 백신이 개발되어 이 코로나의 공포에서 벗어났으면 좋으련만.

  요즘 우리 아파트 우리가 사는 라인에서도 확진자가 나왔다고 엘리베이터에 공고문이 붙었다. 811일부터 826일까지 주의 깊게 건강 상태를 파악하고 이상 징후가 보이면 즉시 보건소로 전화하라고 전화번호까지 크게 써 붙였다. 코로나가 점점 목을 조여 온다. 곧 코로나에 코 끼어 숨통이 막힐 것만 같은 공포가 몰려온다재난문자도 차단시키고 까짓것 사람이 죽기 밖에 더 하겠어? 하며 큰소리 땅 땅 쳤는데 이제 모기 소리도 못 내겠다. 지금까지는 사람들이 마이크까지 대고 큰소리치며 기세등등하게 살았는데 이제 입 닥치라는 코로나의 명령에 마스크로 입을 틀어막고 찍소리 못하고 산다.

  사람의 목숨이 얼마나 미약하고 하루살이 같은지 요즘 실감한다. 어쩌면 아침 햇살에 사라지는 안개 방울 같은 것이 인간인지도 모르겠다. 아마도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생물은 아무 것도 없을 것이다. 파리 한 마리도 잡으려고 하면 얼마나 날쌔게 도망가는지 혀를 내두를 지경이다.

  우리는 왜 이토록 죽음을 두려워하는 것일까? 사후의 세계를 모르기 때문이 아닐까? 생물이 죽은 후 남은 잔해를 보면 모든 것이 끝난 것처럼 보인다. 아마도 우리는 그 껍질만 보고 슬퍼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애벌레가 번데기가 되었다가 성충이 되어 날아가듯 사람도 껍질을 남기고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멋진 모습으로 날아가는 건 아닐까?

아무쪼록 내년 며느리 생일날엔 함께 웃으며 맘 놓고 식사할 수 있기만을 바랄 뿐이다.

이 글로 받은 효석백일장 최우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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