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2020. 9. 19. 철 든 별

아~ 네모네! 2020. 10. 23. 15:01

  미국에 있는 아들과 영상통화를 한다. 손자가 아이스크림을 먹고 있다. 그릇을 보니 눈에 익다.

~ 그 그릇은 우리 집에 있는 거 하고 똑 같네.”

하니 며느리가

이거 어머니가 주신 건데요? 이안이가 간식 먹을 때마다 이걸 쓰고 있어요.”한다.

언제 주었는지 생각나지 않는 걸 보니 꽤 오래 됐나보다.

  이 작은 스테인레스 공기는 내가 시집올 때 친정엄마가 사 준 것이다. 아직도 여러 개가 남아있다. 우리 부부도 여태 여기에 밥을 담아 먹는다. 국그릇도 밥그릇도 결혼할 때부터 지금까지 매일 사용하고 있다. 결혼한 지 47년이 넘었으니 참 이 그릇들은 명도 길다. 떨어뜨려도 까딱없으니 깨질 일도 없고 그야말로 만년묵이다.

  인간은 언제부터 철을 사용했을까? 인간의 역사를 나눌 때 석기시대와 철기 시대가 있는 걸 보면 철을 사용하면서부터 인류문명이 엄청 나게 변화되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수많은 신소재가 나오고 있지만 여전히 철은 우리 생활에서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소재다.

  집을 지을 때도 철근은 필수요소다. 아무리 단단한 금강석도 철을 이길 수 없다. 다이아몬드나 돌은 단단하긴 하지만 탄성이 작아서 부서지기 쉽다. 철은 탄성이 커서 지진이 나도 부서지지 않는다. 단지 산소와 결합해서 녹이 슬면 잘 부서지는데 이걸 보완한 것이 스테인레스 스틸이다. 스테인(stain)은 녹이란 뜻이고 레스(less)란 없다는 뜻이니 녹슬지 않는 철이란 말이다. 그야말로 천하무적이다.

  구약성경 신명기 89절에 보면 가나안 땅에 대한 설명이 나온다.

네가 먹을 것에 모자람이 없고 네게 아무 부족함이 없는 땅이며 그 땅의 돌은 철이요 산에서는 동을 캘 것이라.’

이 구절을 볼 때마다 철은 하나님이 준 축복의 선물이란 생각이 든다. 철이 발견되면서부터 인류의 문명은 그야말로 폭발적인 변화를 거듭했다. 여러 가지 주방기구도 만들고 숟가락도 만들어 간편하게 사용한다. 아무리 불을 발견했어도 주전자나 냄비가 없으면 어찌 물을 끓이고 음식을 만들어 먹었을까?

  그런데 좋은 점만 있는 건 아니다. 칼로 재료를 썰어 음식을 만드는 것까지는 좋은데 검을 만들어 사람을 죽이고 대포를 만들어 사람을 대량으로 살상하는 사태도 생겼다. 모든 것에는 양면성이 있어서 좋은 점이 있으면 반드시 나쁜 점도 있다. 이것을 현명하게 사용하는 것이 우리 인간이 할 일이다. 원자력도 전기를 만들거나 방사선을 이용해 병의 치료에 쓰는 것은 좋지만 원자폭탄을 만들어 무수한 생명을 해하는 일은 절대 하지 말아야할 일이다. 이렇게 양쪽 날을 가진 철을 잘 사용하면 앞으로도 우리 인간에게 무한한 이익을 줄 것이다.

  철은 지구에 엄청난 양이 매장되어있으니 앞으로도 오랜 세월 사용할 수 있다. 핵 속에도 많지만 지각에도 산소와 결합된 철광석이 무수하다. 철이 든 땅은 붉은 색을 띠는 경우가 많은데 이건 철이 산소와 결합하여 산화철이 된 것이다. 한 마디로 녹이 슨 것이다. 철이 녹슬면 쉽게 부서지는데 부서진다고 해서 철이 없어지는 건 아니다. 철 성분은 여전히 땅에 섞여있고 지구 밖으로 나갈 일이 없으니 영원히 고갈되지 않을 것이다. 아마도 우리 지구는 영원토록 철을 포함하고 있을 것이다. 그야말로 이 지구는 철 든 별이다.

  우리 몸도 마찬가지다. 우리 몸에도 철성분이 들어있다. 혈액을 이루는 적혈구는 우리의 생명과 직결되는 성분이다. 피가 빨간 것은 적혈구 때문이다. 적혈구에는 헤모글로빈이라는 단백질이 들어 있는데 숨을 쉴 때 코로 들어온 산소는 허파에서 헤모글로빈과 결합한다. 헤모글로빈이 산소와 결합하면 빨간색을 띠게 된다. 철이 산화되기 때문이다.

  산소는 물에 녹으므로 그냥 피 속에 녹아 들어갈 수도 있다. 그러나 물에 별로 많이 녹지는 않는다. 하지만 헤모글로빈과 결합을 하면 산소가 피 속에 그냥 녹는 것보다 60배 이상 더 많이 녹을 수 있다. 몸에 산소를 전달해 주기 위해서는 헤모글로빈이 꼭 필요하다. 헤모글로빈과 결합한 산소는 온몸을 돌아다니다가 산소를 필요로 하는 세포에 다다르면 헤모글로빈에서 분리되어 세포 속으로 들어간다. 그 대신 세포에서 생성된 이산화탄소가 헤모글로빈과 결합한다. 헤모글로빈은 산소는 물론이고 이산화탄소와도 결합하기 때문이다. 산소는 우리 몸이 정상적으로 유지되기 위해서 꼭 필요한데 이를 적재적소에 운반해 주는 것이 적혈구다. 우리 생명유지를 위한 필수 세포이자 혈액에 포함된 가장 중요한 요소가 적혈구다.

  그런데 철분은 동물에만 들어있는 것은 아니다. 식물에도 들어있다. 빈혈에 시금치나 견과류, 해조류가 좋다고 하는 것은 여기에 철 성분이 많이 들어있기 때문이다. 철은 지구의 내부에서 겉까지 또 모든 동식물에도 포함되어 있다. 한 마디로 우리는 철 없이 살 수 없는 존재다.

  나이가 들고 생각하는 것이 어른스러워지면 철들었다고 한다. 하필이면 그 많은 원소 중 철이 든다고 했을까? 혹시 철의 단단함과 유연함을 닮았다는 것은 아닐까? 물론 철은 금속만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봄철, 가을철이란 말도 있는 걸 보면 계절이란 뜻도 있다.

  철들자 망령이란 말도 있다. 젊어서는 철이 들어 생각하는 것이 깊어지고 넓어졌다가 나이가 들면 노망이 들어 이기적이고 고집불통이 되기도 한다. 늙으면 뇌세포수가 줄어들어 나 밖에 생각하지 못하는 것일까? 어떻게 하면 철들기만 하고 노망까지 가지 않을 수 있을까? 가장 간단한 방법은 빨리 죽는 것이다. 하지만 평균수명이 점점 늘어나는 현 상황에서 이것도 쉬운 일이 아니다. 갈수록 치매환자가 많아지는 것은 우리 사회의 크나큰 병폐다. 이것을 해결하는 것이 우리들의 중요한 과제 중 하나다. 제발 나는 죽을 때까지 철들지도 말고 망령 나지도 않았으면 좋겠다. 이 철 든 별에서 건강하게 살다가 철이 드는 순간 철 든 땅에 곱게 묻혔으면 얼마나 좋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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