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2020. 8. 22. 코로나 없는 세상으로

아~ 네모네! 2020. 8. 23. 13:40

코로나 없는 세상으로

 

이현숙

 

  새벽 4시가 조금 넘어 핸드폰이 울린다. 비몽사몽간에 전화를 열어보니 032로 시작되는 번호다. 사기전화인가 하고 끊으려다가 남편도 깼기에

“032네" 하니

공항에서 온 전화인가 보다고 받으라고 한다.

남편의 예상대로 인천공항에서 온 전화다.

오늘 미국에서 자녀분이 귀국하시는 거 맞습니까?” 하고 묻기에 그렇다고 하니 이름이 어떻게 되느냐고 한다. 아들, 며느리, 손자 이름까지 줄줄이 댔더니

확인되었습니다.”하고는 끊는다.

  다시 자려고 해도 잠이 안 온다. 실은 엊저녁에 아들이 LA공항에서 출국 수속을 하면서 자기들이 한국 전화가 없어서 보호자 번호를 알려달라고 하기에 내 번호를 알려준다고 카톡이 왔었다. 난 무슨 일이 생겼을 때를 대비하려고 그런 줄 알았더니 그게 아니었나보다. 요즘 코로나19가 창궐하다보니 감염자가 한국에 들어와 잠적하면 추적이 불가능해서 그런 것 같다.

  누워서 뒤척이다보니 은근히 화가 난다. 엊저녁에 미리 확인했으면 좋으련만 굳이 꼭두새벽부터 잠을 깨우나 하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곧 마음을 고쳐먹었다. 지금도 밤새 근무하며 많은 사람에게 전화를 걸고 있을 항공사 직원을 생각하니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몇 달째 집에도 못 가고 코로나와 씨름하고 있는 의료진과 연구원들을 생각하면 고개가 절로 숙여진다.

  5시가 조금 넘어 아들이 인천공항에 잘 도착했다고 사진이 올라온다. 오후 2시가 되어야 자가 격리할 집에 체크인이 된다고 공항에서 기다리며 김밥으로 끼니를 때우는 모습도 올렸다. 어제 미국서 떠나 거의 24시간을 공항과 비행기에서 보내야하니 얼마나 피곤할까 싶다. 아들은 그곳의 짐을 포장하여 한국으로 부치느라 힘들어서 코피를 엄청 흘렸다고 하던데.

  오늘은 수필교실에서 낭독회가 있는 날이다. 쓰린 눈을 부릅뜨고 약속 장소로 나가 문우의 차를 타고 강변북로에 있는 제주밥상집으로 갔다. 코로나의 여파로 문학관들이 열지를 않으니 할 수 없이 식당을 빌려서 낭독회를 하기로 했다.

  모두 마스크를 쓰고 낭독회를 마친 후 회식을 하였다. 낭독회 도중에 전화가 울린다. 송파구청 보건소인데 김정희씨 핸드폰이냐고 묻는다. 김정희가 내 며느리라고 하니 역학조사를 해야 하는데 통화를 할 수 없느냐고 한다. 자가 격리할 집이 2시부터 체크인이라 지금 공항에서 기다리는 중이라고 하니 보건소로 연락하라고 한다. 아들에게 보건소 전화번호를 알려주고 연락하라고 카톡방에 올렸더니 잠시 후 통화했다고 답신이 왔다.

  음식을 먹고 나서 또 마스크로 무장을 하고는 식당 앞에 있는 카페로 이동하여 차를 마셨다. 또 전화가 울려댄다. 받아보니 자가 격리 물품을 격리장소에 가져왔는데 연락 좀 해달라고 한다. 격리물품이라고 해서 먹을 것이라도 주나했더니 달랑 마스크와 소독제, 체온계, 폐기물 봉투뿐이란다.

  딸은 동생이 점심을 먹기 어려울 것을 생각해서 음식을 배달시켜주겠다고 자장면, 김밥, 피자, 쌀국수, 햄버거 중 무엇이 좋으냐고 카톡방에 올렸다. 아들은 고맙다고 하며 쌀국수를 먹겠다고 한다. 저녁 해먹을 식재료도 이것 저것 배달시켜주었단다.

  아들네는 송파구 보건소에 가서 코로나 검사를 하고 왔다고 하며 내일 쯤 내 전화로 결과를 알려줄 것 같다고 한다. 아들이 집에 도착할 시간에 맞춰 쌀국수가 도착하도록 딸이 신경을 써주어 잘 먹었다고 한다. 한 가족이 미국에서 오니 온 가족이 비상이다.

  카페에서 차를 마시고 있는데 또 보건소에서 문자가 왔다. 자가 격리 철저히 하라는 당부의 말이다. 820일부터 93일 오전 1159분까지 자가 격리 기간이며 낮 12시 부로 해제된다는 것이다. 45일부터 감염병 예방 및 관리에 관한 볍률 개정에 따라 자가 격리 이탈 시 1000만 원 이하의 벌금 또는 1년 이하의 징역이라고 협박 비슷한 말과 함께 보건소를 방문할 때도 보건소에 사전 신고를 해야 하고 GPS를 항상 켜 두어야한단다. 지속적으로 꺼져 있거나 통신 오류가 생기면 담당 공무원이 불시에 방문할 수도 있으니 명심하라고 한다. 긴 메시지를 복사하여 아들 카톡방에 올렸다.

딸은 아들네가 배고플까봐 빵도 시키고 기타 필요한 것 있으면 알려달라고 한다. 이래서 형제자매가 좋은 가보다.

  다음 날은 아들의 교회 후배가 방 앞에 음식물을 잔뜩 사다놓고 갔다면서 사진을 올렸다. 확대해서 보니 비빔면, 초코칩, 라면, 홈런볼, 양파링, 새우깡, 고구마깡, 땅콩, 휴지, 생수, 포도, 복숭아, 삼겹살에 커피까지 어마어마하다. 아들이 인복이 많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아들은 계속 필요한 물품을 올린다. 키친 타올, 세제, 수세미, 일회용 그릇, 플라스틱 수저, 나무젓가락, 버터 등등 끊임없이 올려대니 딸은 계속 자기 카드로 주문해준다. 손자가 그곳 식기가 더럽다고 양치질도 그곳 컵으로 하지 않는단다. 그 오피스텔이 다른 시설은 좋은데 식기가 좀 꼬질꼬질해서 손자가 그곳 식기로 음식을 안 먹는단다.

  점심때쯤 물품이 도착하여 일회용 그릇으로 손자가 삼겹살 잘 먹고 있다고 한다. 아들이 또 계란, 우유, 주스 등도 필요하다고 하니 딸은 3만 원 이상이라야 배송비가 안 드니 더 필요한 것 없느냐고 한다. 아들은 사과, 아보카도, 콤푸차도 주문해 달라고 한다.

  저녁에는 교회 친구가 피자를 배달해주어 먹고 있다고 사진을 올렸다. 전날 저녁에는 처형이 치킨을 배달시켜줘서 먹었다고 하더니 부모, 친척, 친구, 후배들까지 모조리 동원 되어 한 가족 살리기에 나선 셈이다.

  6.25때 난리는 난리도 아니라고 하더니 도대체 이게 뭔 난리인지 모르겠다. 마음 같아서는 공항으로 달려가 유학 간지 11년 만에 박사가 되어 돌아오는 아들을 꼬옥 껴안아 주고 싶건만 집 근처에 와도 얼굴을 못 보니 이게 뭔 일이냐 말이다. 미국에서 태어난 손자도 벌써 초등학교 2학년이 되었는데 영상 통화만 하고 있으니 참 속 터질 지경이다.

  한국에 와도 집에 못 가고 2주일씩이나 방황해야하니 참 코로나가 뭔지 그 위력이 어마무시하다. 도대체 코로나는 언제 까지 계속될까? 우리 모두가 하늘나라로 피신을 가야하려나? 하늘나라에 가면 다시는 이 세상에 오고 싶지 않을 것이다. 굳이 하나님이 다시 세상으로 가야한다고 하면 한 가지 조건을 걸어야겠다. 코로나 없는 세상으로 보내달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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