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2020. 8. 15. 팔자에 없는 금수저

아~ 네모네! 2020. 8. 16. 14:18

팔자에 없는 금수저

이현숙

 

  바로 밑의 동생이 30년 넘게 살던 단독주택에서 아파트로 이사했다. 시부모와 함께 살던 집이라 그동안 묵은 짐을 정리하느라 골머리를 앓는다. 시어머니가 계실 동안은 참고 살았는데 시어머니가 102세를 살고 돌아가시자 집을 옮기기로 마음먹었나 보다.

  시어머니가 평생 쟁여놓은 짐에 동생이 사들인 짐까지 아래위층과 지하실까지 가득 찼으니 버릴 짐이 어마무시하게 많단다. 자매들이 모일 때마다 몇 가지씩 가지고 나와서는 이거 가질 사람 없느냐고 묻는다. 나도 몇 가지 받았는데 그중 하나가 수저 세트다. 어디서 받았나 본데 한 번도 쓰지 않은 새것이다. 금은 아니지만, 금처럼 노란색이다.

집에 가져와서 저녁상에 그 수저를 놓으니 남편이

이거 금수저네!” 한다.

하긴 겉으로 보아서는 금수저와 별반 다르지 않다. 금도금을 했는지 금과 비슷한 금속으로 만들었는지 모르지만 그럴듯하다. 요즘 진짜 금수저가 아닌 가짜 금수저로 밥을 먹으며 순금 수저로 먹는 기분을 만끽한다.

  처음에는 아무 생각 없이 수저를 놓았는데 남편이 수저를 가만히 들여다보더니 자기가 수()자가 써진 것으로 먹겠단다. 자동적으로 나는 복()자가 쓰인 것을 가졌다. 수복강녕(壽福康寧 오래 살아 복을 누리며 건강하여 마음이 편안함) 중 수()가 먼저니까 자기가 수()를 갖겠다고 한다. 나야 뭐 수()도 좋고 복()도 좋고 아무거나 상관없으니 그러라고 했다. 하지만 속으로는 오래 사는 것보다 짧게 살더라도 복 많이 받고 사는 게 좋을 텐데 하였다. 그 후에는 수저를 놓을 때마다 복, , , , 하면서 복수의 칼을 갈았다. 복수를 다짐하는 건 아니지만.

  둘 다 같이 늙어가니 누가 먼저 갈지 모른다. 하지만 먼저 가는 사람이 복 많은 사람이란 생각이 든다. 일상생활에 어리버리한 남편이 나보다 먼저 가는 게 좋을 텐데 아무래도 남편은 선택을 잘 못 한 것 같다.

  수저통을 보면 갖가지 생각이 떠오른다. 아들이 어려서 먹던 작은 수저는 아직도 수저통에 그대로 있다. 이렇게 작은 수저로 밥을 먹던 아이가 지금은 100kg이 넘는 거구가 되었다.

  첫돌이 좀 안 되었을 때 내가 간염에 걸렸다. 나는 그런 줄도 모르고 이 숟가락으로 이유식을 떠먹였다. 너무 뜨겁지 않은지 보려고 그 숟가락으로 내가 먼저 먹고 나서 아들에게 먹였다. 그런데 이게 문제였다.

  몇 년이 지난 후 아이들의 간염 검사를 했다. 딸은 감염된 일도 없고 항체도 생기지 않았는데 아들은 간염 항체가 생겼다는 것이다. 의사 선생님이 언제 간염에 걸려 앓고 항체가 생겼다는 것이다. 용케 잘 이기고 항체까지 생겼으니 예방주사를 안 맞아도 된다고 한다. 나는 속으로 뜨끔했다. 나 때문에 아들이 간염에 걸린 걸 생각하니 가슴이 아팠다. 아들은 이것도 모르고 누나는 주사 맞아야 하는데 자기는 주사 안 맞아도 된다고 신나서 싱글벙글했다. 지금도 이 수저를 보면 그때 일이 떠오른다.

  그런데 수저는 언제부터 쓰기 시작했을까? 수저는 음식을 먹을 때 사용하는 숟가락과 젓가락을 함께 이르는 말이다. 음식을 먹을 때는 숟가락과 젓가락을 따로 사용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젓가락을 사용하지 않을 때는 상에 놓아둔다.

  청동기 문화가 발전하면서 수저를 동시에 사용하는 우리 민족은 선조들의 지혜로 놋수저를 만들었다. 이 수저가 바로 방짜 수저다. 방짜 수저는 1,200도가 넘는 고온에서 놋쇠를 반복적으로 두드리면서 열처리하여 만든 것인데 잘 깨지지 않는 것이 특징이다. 명절이 돌아오면 지푸라기에 재를 묻혀 놋그릇과 수저를 반짝반짝 닦던 친정엄마가 떠오른다.

  부자를 일컬어 "밥술이나 뜨는 사람"이라고 했고, 숟가락을 엎어 놓으면 해롭다는 말이 있다. 또 숟가락을 사용할 때 "술을 가까이 잡으면 가까운 곳으로 시집가고, 멀리 잡으면 먼 데로 간다.”라는 말도 있다.

  수저는 숟가락과 젓가락을 합해 부르는 말로 숟가락을 뜻하는 ''과 젓가락을 뜻하는 저()의 합성어다. 일상적으로 숟가락의 높임말로도 사용된다. 어른이 먼저 수저를 든 후 밥을 먹어야 한다는 말도 숟가락을 존댓말로 사용한 것이다.

밥 먹을 때 사용하는 도구인 만큼 오래전부터 상징적인 의미를 많이 갖고 있다. 그래서 속담에도 수저를 소재로 한 게 많다.

  "옆집 수저 개수도 안다." 는 옆집의 모든 식구를 잘 알고 그 집 상황을 시시콜콜 잘 안다는 뜻이다.

"밥숟갈을 놓았다."는 수명이 다했다는 말이다.

  요즘 들어 출생 시 부의 정도를 수저 계급으로 나타내는 경향이 있는데 일반적으로 금수저, 은수저, 동수저, 흙수저의 4단계로 나타낸다. 흔히 부잣집 자식을 금수저를 물고 나왔다 하고 가난한 집 자식은 흙수저를 입에 물고 나왔다고 한다. 사실 부모의 막강한 재산을 물려받은 사람은 엄마 뱃속에서 금수저를 입에 물고 나온 거나 마찬가지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가난한 평민은 흙수저도 없이 맨손으로 밥을 먹을 수밖에 없다. 아프리카 여행 갔을 때 에티오피아 아이들을 보면 수저는커녕 손가락으로 집어 먹을 밥도 없다. 흙바닥에서 꼬물꼬물 움직이는 아기는 흙과 구분하기 힘들었다. 흙수저라도 물고 태어난 걸 다행으로 생각해야 하려나?

  그런데 세상에는 진짜를 능가하는 가짜도 많다. 진짜 생화보다 조화가 더 예쁘고 값도 비싸다. 명품보다 더 명품 같은 짝퉁도 많아서 보통 사람은 구별하기도 힘들다. 사실 진짜와 가짜는 사람이 인위적으로 만든 것에 불과하다. 가짜를 진짜라고 하면 그게 진짜일 것이다. 어떤 것이 진짜이고 어떤 것이 가짜인지는 마음먹기 달렸다. 진짜 금수저로 밥을 먹어도 마음이 괴로워 체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흙수저로 맨밥을 먹어도 기쁨이 넘치는 사람이 있다.

  우리 부부에게 진짜 금수저는 팔자에 없으니 가짜 금수저를 진짜로 생각하며 평생 이 수저로 밥을 먹어야겠다. 그러면 진짜 금수저와 같은 효과를 낼 것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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