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2020. 2. 29. 정원 14

아~ 네모네! 2020. 3. 3. 17:39

정원 14

이현숙

 

   유골이 담긴 나무 상자를 열어 하얀 종이를 꺼낸다. 종이를 펴니 한 줌 밖에 안 되는 유골 가루가 있다. 여기에 흙 한 줌을 넣어 종이의 모서리를 이리 저리 움직여 섞어준다. 이 가루를 땅에 파놓은 구멍에 붓는다. 어린아이 주먹이나 들어갈 정도의 작은 구멍이다. 그 위에 흙을 더 넣어 채운 후 손바닥만 한 잔디로 덮는다. 너무도 간단하다.

   지난 일요일 교회 가기 전에 잠시 쉬고 있는데 5번 동생이 자매 카톡방에 글을 올렸다. 어머니가 위독하셔서 임종실로 옮겼으니 임종을 볼 사람은 빨리 요양병원으로 오라는 메시지가 왔다는 것이다. 어머니가 요양병원에 입원하신지 10일째 되는 날이다. 요양병원 가기 싫다고 해서 친정에서 5번 동생과 여태 지내다가 화장실을 못 갈 지경이 되자 요양병원으로 옮겼다.

   어머니는 10여 년 전 위암에 걸렸다. 수술 받고 다 나은 줄 알았는데 3년 전 다시 담도 암에 걸렸다. 수술을 받지 않겠다고 하여 그냥 집에서 지냈다. 3년 동안 잘 버티셨는데 그 후 폐로 전이 되어 급속히 나빠졌다.

   코로나19 때문에 문병도 못 가고 잘 계신가 했더니 이런 연락이 온 것이다. 급하게 택시 타고 북서울 꿈의 숲 요양병원으로 갔다. 출입문이 굳게 닫혀 머뭇거리고 있으니 한 직원이 나와 어떻게 왔느냐고 묻는다. 어머니 임종을 보러 왔다고 하니 문을 열어준다. 설문지를 주고 체크하라고 한다. 열이 없느냐, 중국 다녀온 적이 있느냐, 대구 간 적이 있느냐, 신천지 교인 아니냐, 기침 나지 않느냐 기타 등 등을 확인한 후 이마에 체온계를 대더니 36.4라고 들어가라고 한다.

   2층으로 올라가 호출 버튼을 누르니 간호사가 문을 열어주며 어떻게 왔느냐고 한다. 어머니 임종을 보러 왔다고 하니 누구냐고 묻는다. 유경희씨가 새어머니라고 했더니 210호실로 들어가라고 한다. 호적상 어머니와 10년 차이밖에 안 되니 도둑이 제 발 저리다고 묻지도 않았는데 공연히 의붓딸이라고 고백한다. 누가 봐도 머리 허연 내가 딸이라고 보긴 어려울 것 같아 필요 없는 설명을 한 것이다.

   병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침대에 이불만 보이고 사람이 보이지 않는다. 어디 가셨나 하고 다시 간호사실에 가서 아무도 없다고 하니 있다고 하며 와서 이불을 젖힌다. 원체 체구가 작았는데 더 말라서 사람이 없는 줄 알았다.

   어머니는 가쁜 숨을 몰아쉬고 있다. 얼굴과 손은 황달이 와서 노랗게 변했다. 맥박수와 호흡수가 올라갔다 내려갔다 널뛰듯 하고 있다. 혼자 서서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는데 친정 조카딸과 5번 동생이 들어선다. 5번 동생은 사람의 귀가 제일 나중에 닫히는 거라고 어머니에게 계속 말을 건다. 이 육신은 아무 것도 아니니 여기서 나가면 천국 가시는 거라고 맘 편히 가시라고 한다. 누가 뭐라던 내 모든 죄는 예수님이 다 가져 가셨으니 나는 아무 죄도 없다고 말하라고 누누이 설명한다.

   잠시 후 외삼촌 부부가 들어선다. 외삼촌은 누나를 외치며 흐느낀다. 어머니는 듣는지 못 듣는지 숨소리만 거칠어간다. 산소 포화도도 오르락내리락 한다. 간호사가 들어오기에 친 딸이 부산에서 오고 있는데 언제까지 버틸 수 있겠느냐고 하니 오래 못 버티실 것 같다고 몇 시쯤 오느냐고 묻는다. 비행기를 타고 오는데 오후 서너 시는 되어야할 것 같다고 하니 그 때까지는 못 버티실 것 같다고 한다.

   맥박수가 20까지 떨어지더니 멈췄다가 한참 후 다시 한 번 뛰기를 반복한다. 잠시 후 의사가 들어오더니 운명하신 거라고 한다. 조금만 더 기다려보자고 하니 기계는 멈추고 의사가 오전 1120분에 운명하신 것으로 처리하겠다고 장례식장을 알아보란다. 의정부 사는 3번 동생은 운명하시기 5분 전에 도착하여 아슬아슬하게 임종을 지켜봤다. 4번 동생은 택시 타고 오는 중인데 어머니 돌아가셨다고 카톡을 보냈더니 택시를 되돌려 장례식장으로 가겠다고 한다.

   초가 다 타고 꺼져가는 모양을 보는 듯하다. 큰 고통 없이 편안히 돌아가셔서 감사한 마음이 든다. 외삼촌 내외가 간호사실에 가서 알아보더니 미아사거리에 있는 뉴타운 장례식장으로 모시겠다고 한다.

   유족은 나가라고 해서 밖으로 나오고 장례식장에서 온 사람들이 시신을 수습하여 장례식장으로 옮겼다. 미리 장례식장에 가서 기다리니 곧 구급차에 실린 어머니가 도착한다. 몸이 너무 작아 들것 바닥에 착 붙었다. 어머니는 냉동실로 들어가고 우리는 조문실을 배정 받아 그곳으로 갔다. 어머니 영정 사진을 만들고 꽃으로 제단을 꾸몄다. 어머니의 여동생들도 도착하여 울부짖는다. 벽제승화원으로 가서 화장하고 용미리 공원묘지에 모시기로 했다.

   저녁때가 다 되어 친딸과 사위가 도착했다. 친딸이 엄마를 부르며 우는 것을 보니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흘러내린다. 엄마의 임종을 보지 못해 무척 아쉬웠을 것이다. 코로나19가 만연된 상태라 외부 사람들에게는 알리지 않고 가족들끼리 조용히 장례를 치렀다.

   발인하는 날은 아침부터 비가 부슬부슬 내렸다. 운구하는 사람들이 관을 들고 차로 옮기는 동안 관을 덮은 천이 비를 조금 맞았다. 우산을 씌워주려했지만 그럴 겨를도 없이 버스 트렁크에 마련된 장소로 들어갔다.

   벽제 승화원에 도착하니 빗줄기가 약해진다. 차들이 줄을 서서 순서를 기다린다. 소각로를 배정 받고 어머니는 소각로 안으로 사라졌다. 우리는 유족대기실에서 두 시간 정도 기다리니 장례사가 와서 소각이 완료됐으니 다시 소각로 앞으로 가자고 한다. 1번 소각로 앞에 서서 기다리니 커튼이 올라가고 어머니 유골이 보인다. 다 타고 얼마 남지 않았다. 그 안쪽에서 한 사람이 빗자루를 들고 유골을 쓸어 담는다.

   유골수습실로 가라고 하여 옆에 있는 수습실로 갔더니 유리창 안쪽에서 직원이 화장 후 남은 이빨 부속물을 보여주며 폐기할 거냐고 묻는다. 그렇게 하라고 하니 유골을 분쇄기에 넣어 순식간에 갈아서 하얀 종이에 담아 나무 상자에 넣는다. 상주가 유골함을 받으라고 하여 사위가 앞에서 기다리니 사람이 직접 전해주는 것이 아니고 안에서 밖으로 컨베이어벨트처럼 생긴 곳에 유골함이 놓여나온다.

   유골함과 영정 사진을 들고 버스로 돌아와 용미리 추모공원으로 갔다. 지정된 장소로 올라가니 공원 직원이 하얀 천막 아래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유골 가루를 꺼내어 정성스레 묻어주고는 비슷한 묘지가 많으니 번호를 잘 기억하라고 한다. 나는 얼른 핸드폰을 꺼내 사진을 찍었다. 정원14라고 쓴 작은 팻말이다. 앞으로 성묘를 오더라도 꽃이나 음식은 절대 여기 두지 말라고 한다. 모두 쓰레기로 처분하니 가져오지 말라고 한다. 한 구역에 20명 정도가 다 들어가면 한꺼번에 묘비를 만들어주겠다고 한다.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 석 자를 남긴다는데 이름 세 글자와 묘지 번호 정원14’만 남았다.

   사람이 흙에서 왔다가 다시 흙으로 돌아가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인데 매번 왜 이렇게 당황하고 허무하고 비통한 마음이 드는 것일까? 지극히 자연스런 자연 현상인데 말이다. 내가 떠나온 본향으로 다시 돌아가는 날 한 없이 평안하고 기쁘고 가벼운 마음으로 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