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2020. 3. 15. 사적마스크를 쓰다

아~ 네모네! 2020. 3. 18. 13:41

사적 마스크를 쓰다

 

이현숙

 

   전철을 타기 위해 승강장에 내려선다. 핸드폰을 꺼내 막내 동생의 전화번호를 찾아 수신차단을 시킨다. 카톡 친구 목록에서도 동생의 카톡을 차단시킨다. 사적 마스크를 쓰는 기분이다.

   지난 일요일 밤 5번 동생이 카톡방에 글을 올렸다. 6번 동생이 상계백병원 응급실에 갔는데 담당의사가 전화를 했단다. 보호자가 필요하니 빨리 오라는 것이다. 그래서 택시 타고 백병원으로 가는 중이라 한다.

   갑자가 무슨 응급상황이 생겼나 해서 걱정하고 있는데 얼마 후 5번 동생이 다시 글을 올렸다. 아무래도 술을 먹고 쓰러져서 실려 온 것 같다고 자기는 병원에서 자야할 것 같다고 한다. 월요일은 일을 가야하니 언니 중 한 명이 와줬으면 좋겠다고 한다.

   월요일 아침에 5번 동생이 부탁한 대로 치약, 칫솔, 팬티, 컵을 챙겨들고 백병원으로 갔다. 코로나19 때문에 경계가 삼엄하다. 어떻게 왔느냐고 하여 입원환자의 보호자라고 했더니 이름을 적고 핸드폰 번호를 적은 후 들어가라고 한다. 들어가는 입구에는 열 화상기를 놓고 직원들이 열심히 체크하고 있다.

   로비에서 5번 동생에게 전화를 하니 잠시 후 병실에서 내려온다. 아무래도 우리들이 감당하기 힘드니 간병인을 쓰면 어떻겠냐고 한다. 그러자고 했더니 즉시 전화를 한다. 간병인이 1시에 오기로 했다.

   동생에게 보호자 출입증을 받아 병실로 가니 6번 동생은 눈을 감고 침대에 누워있다. 내가 가까이 가자 일어나는데 팔에 링거 줄이 줄줄이 달렸다. 술을 얼마나 마셨는지 말 할 때 얼굴을 자꾸 흔든다. 뇌교 혈관종 때문에 한 쪽 눈꺼풀도 많이 내려앉았다. 하도 힘들어서 길거리에 나와 지나가는 사람에게 119를 불러달라고 해서 여기로 왔단다. 119직원이 와서 체온을 쟀을 때 38라서 긴장했는데 응급실에 와서 다시 재니 36.5라서 안심했단다.

   화장실에 가려면 링거 줄이 매달린 스탠드를 끌고 가야하니 여간 불편한 게 아니다. 걸음걸이도 휘청휘청 불안 불안하다. 금식 중이라 아무 것도 못 먹고 연신 주사만 놓고 피만 뽑아 간다. 그래도 점심부터는 미음이 나온다고 하니 다행이다.

   보호자용 침대에 앉아 있으려니 자세가 불편하여 허리가 아프다. 앞 침대의 보호자가 보기에도 힘들어 보였는지 가방을 베고 누우라고 한다. 염치 불고하고 길게 누웠다. 시간이 왜 이렇게 안 가는지 핸드폰을 꺼내 연신 시계를 본다.

   1시가 조금 안 되어 간병인이 왔다. 구세주를 만난 기분이다. 전화번호를 물은 후 보호자 출입증을 주고 걸음아 날 살려라 하고 얼른 나왔다. 간병인들은 이 힘든 일을 매일 밤낮으로 어떻게 하는지 모르겠다.

   주말에는 간병인이 집에 가야한다고 해서 동생들과 주말 당번을 정하고 주말을 기다리는데 목요일 날 간병인이 전화를 했다. 담당의사 말씀이 뇌교 혈관종은 자기네 병원에서 수술할 수가 없으니 퇴원을 하든지 요양병원으로 가든지 하란다. 갑자기 머리가 아파진다. 6번 동생이 당분간 친정집에 가 있으면 안 되겠느냐고 한다. 5번 동생에게 전화를 하니 질겁을 하며 전화를 끊어버렸다는 것이다. 내가 생각해도 이건 말도 안 된다. 알콜 중독자와 한 집에서 지내려면 이건 지옥이 따로 없다.

   5번 동생은 몇 년 동안 말기 암 환자인 새어머니를 모시고 친정집에서 살았다. 돌아가신지 며칠 되지도 않았는데 6번 동생이 오겠다고 하니 그야말로 꼭지가 돌아버릴 만도 하다. 다시는 6번 얼굴을 안 보겠다고 길거리에서 죽던지 말든지 장례식장에서 전화가 와도 자기는 안 간다고 카톡방에 올렸다. 충분히 이해가 된다. 5번이 20년 넘도록 6번 때문에 속 썩인 걸 생각하면 그럴 수밖에 없다.

   그래도 이런 말을 쏟아내는 그 심정은 어떻겠나 싶다. 몸에서 독극물이 흘러나와 병에 걸릴까봐 걱정이다. 5번이 말은 이렇게 해도 우리 자매 중 제일 정이 많고 눈물도 많다. 아마 6번이 죽었다는 연락이 오면 제일 먼저 달려가서 울음보를 터트릴 것이다.

   우리 집에서 5번 동생에게 신세지지 않은 사람은 아무도 없다. 엄마가 돌아가신 후 100일 동안 상청을 차려놓고 이 동생이 아침저녁 상식을 올렸다. 그 후 새어머니가 오실 때까지 몇 년 동안 아버지 수발도 다 들었다. 미국 살던 언니가 암에 걸려서 힘들어할 때도 이 동생이 미국까지 가서 근 1년 동안 병간호하며 임종을 지켰다. 나도 집에 일 하는 사람이 없을 때 이 동생을 불렀고 3번 동생도 거제도 살 때 출산이 가까워지자 이 동생을 불렀다. 4번 동생도 일손이 달리면 수시로 이 동생을 부른다. 이런 지경이니 여기 저기 쫓아다니느라 항상 바쁘다.

   다른 동생들과 대책을 논의하니 토요일 오전에 퇴원을 시켜서 6번 동생 집으로 데려다 주자고 한다. 6번은 집 열쇠도, 핸드폰도 안 가지고 나왔다고 한다. 같은 알코올 중독자인 남편은 어디 있는지 모른다고 한다. 4번 동생과 내가 가서 퇴원시킨 후 문을 뜯어서라도 집에 데려다 주기로 했다.

   토요일 10시에 4번 동생과 병원 로비에서 만나 간병인에게 전화를 했다. 간병인과 함께 병실로 가니 벌써 짐을 다 싸 놓고 6번 동생은 옷을 갈아입고 침대에 앉아있다. 4번 동생이 간호사실에 가 퇴원 절차를 밟고 1층 원무과로 병원비를 계산하러 갔다. 나는 간병인의 계좌 번호를 물어 5번 동생에게 보냈더니 즉시 계좌이체를 해줬다. 하루에 9만원씩 6일간이라 54만원이다. 병원비는 얼마 안 되는데 간병비가 만만찮다. 간병인이 즉시 입금 확인을 하더니 함께 1층으로 내려가자고 한다.

   간병인은 6번 동생에게 술 먹지 말고 언니들 힘들게 하지 말라고 따뜻하게 안아주며 타이른다. 좋은 사람을 만난 것 같다. 간병인이 집으로 간 후 셋이서 택시를 타고 6번 동생 집으로 갔다. 집에 가도 열쇠가 없어 못 들어갈 것 같아 열쇠가게에 먼저 들렀다. 문 앞에 출장 중이라고 핸드폰 번호가 있어 전화를 하니 사장님 부인이 내려온다. 남편은 출장 가서 못 오니 다른 기사를 불러주겠다고 한다. 가게에서 한참 기다리는데 6번이 먼저 집에 한 번 가보겠다고 한다. 갔다 오더니 역시 남편은 집에 없고 문이 잠겨있다고 한다. 셋이 같이 기다리는데 사장님 부인이 기사가 올 때쯤 됐으니까 미리 집 앞에 가서 기다리란다. 기사는 오토바이 타고 금방 오니까 주소만 알려주면 곧 갈 거라고 한다.

   셋이서 짐을 들고 6번 집으로 와서 문 앞에 짐을 놓고 기다리는데 마침 공사하는 사람이 집 주인 아주머니에게 연락을 했는지 주인아주머니가 2층에서 내려와 자기가 가지고 있던 열쇠를 주며 들어가라고 한다.

   4번 동생이 열쇠 가게에 전화를 했더니 이미 기사가 가게에 왔으니 출장비를 주어야한다고 해서 돈을 주러 가게로 갔다. 짐을 들고 안으로 들어가려하니 6번 동생이 집에서 냄새가 많이 나니까 들어오지 말라고 한다. 문을 빼꼼히 열고 짐만 들여 놓으려니 술 냄새와 역한 냄새가 진동하여 들어오라고 해도 못 들어가겠다. 이런 지하방에서 평생 지낼 동생을 생각하니 안쓰럽기도 하고 불쌍하기도 하다.

밖에 나와 기다리는데 4번 동생이 온다. 출장비 2만원을 주었다고 했다. 6번이 당장 먹을 게 없을 것 같아 3만원만 주고 가자고 하니 집에 가서 돈을 주고 나온다.

   카톡방을 보니 5번 동생이 우릴 보고 친정집에 와서 점심을 먹고 가란다. 마침 점심때도 됐으니 4번과 함께 돈암동 친정집으로 갔다. 5번은 언니들이 고생하는 것이 미안했는지 새 밥을 하고 생선을 구워 점심상을 차린다. 금방 한 따뜻한 밥을 먹으려니 밥이 입안에서 살살 녹는다. 퇴직한 후 16년 만에 점심 때 새 밥 먹기는 처음이다.

   점심 식사 후 딸기도 먹고 커피까지 마신 후 친정집을 나와 전철을 타러 갔다. 아무리 생각해도 6번 동생을 감당할 자신이 없다. 노인성 난청이라 전화 소리나 TV 소리는 정확하게 알아듣질 못한다. 거기다 인지능력도 떨어져 엉뚱한 소리하기가 일쑤다. 내가 생각해도 완전 사오정 됐다.

   6번 동생은 술에 취해 도저히 알아볼 수도 없는 메시지를 마구 보내고, 전화를 하면 횡설수설하니 내 능력으로는 어찌할 수가 없다. 비정한 언니라고 욕을 먹어도 할 수 없다 싶어 연락을 차단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세상에 이런 언니도 있을까?

   요즘 공적 마스크를 사느라 약국마다 긴 줄이 늘어서 있는데 나는 동생을 차단하려고 사적 마스크를 쓰고 있다. 그저 30여 년 동안 근무하면서 소득세 내고, 퇴직 후 지금까지 재산세와 건강보험료 내고 있으니 국가에서 6번 동생을 잘 보살펴 주기만 바랄 뿐이다. 하지만 이건 누가 봐도 말도 안 되는 변명일 뿐이다. 설득력 없는 헛소리에 불과하다. 공적 마스크도 벗고 사적 마스크도 벗어 던지고 하얀 이를 드러내며 활짝 웃는 날이 어서 빨리 왔으면 좋겠다. 이런 날이 과연 오기는 올까?


'나의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2020. 3. 28. 환상의 남도여행  (0) 2020.04.02
2020. 3. 23. 코 끼는 날이 제삿날?  (0) 2020.03.25
2020. 3. 6. 마스크는 생명줄?  (0) 2020.03.06
2020. 2. 29. 정원 14  (0) 2020.03.03
2020. 2. 16. 무재주가 풍성하다  (0) 2020.03.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