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2020. 2. 8. 클레오파트라는 행복했을까?

아~ 네모네! 2020. 3. 3. 17:32

클레오파트라는 행복했을까?

이현숙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미인에 대한 관심은 인간의 가장 큰 관심 중의 하나다. 예쁜 여인을 차지하려고 목숨을 걸고 결투를 벌이는가하면 상대방을 살해하는 일도 벌어진다. 중국의 양귀비나 이집트의 클레오파트라는 지금까지도 최고의 미인으로 일컬어지고 있다.

   내가 다시 태어난다면 이들만큼은 아니더라도 언니 정도만 예쁘게 태어나고 싶다. 언니는 첫 딸이기도 했지만 얼굴이 예쁘니 어려서부터 다른 사람들의 이목을 끌었다. 친척들도 오면 예쁘다고 하고 중고등학교 때는 어디 나갔다 올 때마다 누군가 따라온다고 했다. 차를 한 잔 하자거나 잠깐 얘기를 하자거나 하며 따라온다는 것이다.

   나는 아무리 버스 타고 전차 타고 싸돌아다녀도 좇아오는 남자가 없었다. 아니 딱 한 번 있었다. 결혼 후 퇴근하고 집에 오는데 버스 안에서 어떤 남자가 차 한 잔 할 수 있냐고 말을 걸어왔다. 이런 젠장 하필이면 결혼했는데 이제야 나타나다니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얼굴이 예쁘면 모든 게 용서가 된다고 한다. 특히 남자들은 더 하다. 하다못해 TV에 나오는 여자도 얼굴이 못 생겼으면 공연히 화를 낸다. 얼굴도 못 생긴 게 꼴값한다고 말이다.

   정말 미인이 그렇게도 좋을까? 하긴 같은 여자가 봐도 기분 좋은 건 사실이다. 예쁜 사람은 보고 또 봐도 자꾸 보고 싶다. 그런데 그들은 과연 행복할까?

   옛말에 미인박명이란 말도 있고 미인 소박은 있어도 박색소박은 없다.’는 말도 있다. 양귀비는 37살에 사형을 당했고, 클레오파트라도 39살에 자살했다. 미인이 소박을 받는 이유는 뭇 남자들의 시선을 사로잡아 그 유혹에 넘어가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박색은 얼굴이 엉망이라 누구 하나 거들떠보는 사람이 없으니 조신하게 집에 머물 수밖에 없다.

   우리나라 여인들은 만약의 경우를 대비하여 은장도를 차고 살았다는데 클레오파트라는 독사를 기르고 있었나보다. 그래서 자살의 도구로 독사에 물리는 방법을 선택했다. 어쨌든 미인박명이 맞기는 맞는 것 같다.

   우리 언니도 53살에 암으로 죽었다. 미국에 이민 가서 20년쯤 살았는데 암에 걸렸다. 몸에 이상이 있어 병원에 가니 간암이라고 했다. 술도 담배도 안하는데 좀 이상하다고 전신 검사를 하니 대장암이 발생하여 이미 간에 전이된 것이라고 했다. 그 후 대장암 수술을 하고 항암 치료도 했지만 효과가 없었다. 미국은 치료 효과가 없으면 퇴원하여 자가 치료를 시킨다. 간호사가 가끔 와서 주사를 놓아주고 진통제는 본인 스스로 주사액을 조절하여 투약한다.

   언니가 미국 간지 20년이 넘도록 나는 한 번도 미국에 안 갔다. 벌써 20년도 넘었으니 그 때는 해외여행이 엄두가 안 났다. 하지만 마지막이 될 것 같아 방학 때 남편과 미국 서부 패키지여행을 따라 갔다가 언니가 사는 시애틀로 갔다. 공항에 나온 언니는 얼굴이 초췌하였지만 그런대로 움직이고 운전도 하였다. 운전대를 잡은 언니를 보니 손이 까맣게 변해 오골계를 보는 듯했다.

   그래도 집에 와서 곰국도 끓이고 반찬도 하며 우리를 대접했다. 언니와 1주일을 지내고 한국행 비행기에 오르자 나도 모르게 눈물이 솟아나왔다. 다시는 언니 얼굴을 볼 수 없다는 생각에 눈물이 그치지 않았다.

   다음 해 봄 부활절 날 언니가 돌아가셨다는 연락을 받았다. 오전에 교회 목사님이 가져오신 성찬을 받아먹고 그날 오후에 하늘나라로 갔단다. 언니를 도와주러 미국에 간 5번 동생이 언니가 전날 밤 밤새 울었다고 했다. 그리고 죽을 때는 눈을 뜬 채로 죽어 자기가 눈을 감겨주었다고 한다. 하나 밖에 없는 아들이 LA에서 공부하고 있으니 아들이 보고 싶어서 그랬을까?

   동생이 언니가 있던 방에 들어가 죽은 것을 보고 나와 형부에게 얘기했지만 형부는 먹던 저녁밥을 다 먹고 방에 들어가 보았다고 한다. 사람은 참 이상해서 극도의 환경에 부딪치면 오히려 담담해 지는 것 같다. 지금은 형부도 돌아가셨으니 둘이 만나 행복한 나날을 보내고 있을 것이다. 조카는 로스쿨을 나와서 변호사로 일하고 있다고 한다.

   딸 여섯 중 가장 예쁜 언니가 가장 젊은 나이에 저 세상으로 간 걸 보면 미인의 수명이 짧기는 짧은가 보다. 양귀비도 클레오파트라도 30대에 죽은 걸 보면 확실히 그 말이 맞는 것 같다. 그랬다고 그들이 행복한 삶을 산 것 도 아니다. 평생을 적들과 치열한 암투를 벌이며 이 남자 저 남자 갈아타면서 칼날 위의 삶을 살아온 듯하다.

   조물주는 모든 사람에게 공평하게 복을 나누어 주는 것일까? 아름다움을 많이 준 대신 수명을 적게 주었는지도 모른다. 나는 박색인 덕에 70이 넘도록 지금까지 목숨을 부지하고 살아있다. 이걸 생각하면 비록 못 생겼을 지라고 지금 이대로가 좋다. 미인으로 태어나 빨리 죽는 것 보다는 박색으로 태어나 세상 구경 오래하는 게 더 나을 듯하다.